증언자의 등장
주인공: 최유나
카페 문을 열자 습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최유나는 멈춰 서서 실내를 훑었다. 창가 구석,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익명 제보자. 문자로만 세 번 연락을 주고받았고, 오늘이 첫 만남이었다.
"최유나씨 맞죠?"
목소리가 낮았다. 여자였다. 유나는 마주 앉으며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렸다.
"확실해? 정말 5년 전 일을 알고 있는 거 맞아?"
"...네."
제보자가 고개를 숙였다. 후드 그림자가 얼굴 절반을 가렸다. 테이블 위 커피잔에서 김이 올랐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처음부터."
유나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제보자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5년 전, 최유진 학생이 실종되던 날이요. 경찰 발표랑 다른 게 있어요."
"...뭐가?"
"유진 학생은 혼자 실종된 게 아니에요. 그날 뒷산에 다른 사람도 있었어요."
유나의 손가락이 휴대폰 케이스를 긁었다. 제보자는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손이 떨렸다. 잔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커피 표면에 파문이 일었다.
"누가 있었는데?"
"김미연 선생님이요."
김미연. 5년 전 유진의 담임이었던 교사. 유나는 그 이름을 수십 번 떠올렸다. 경찰 조사에서도 나왔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그날 오후 내내 교무실에 있었다고 했다.
"그건 알고 있어. 근데 알리바이가 있었잖아."
"거짓말이에요."
제보자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손가락 사이로 오래된 화상 자국이 보였다. 울퉁불퉁하게 굳은 살. 유나는 그 자국을 응시했다.
"어떻게 알아?"
"제가... 봤거든요."
"뭘?"
"김미연 선생님이 뒷산으로 올라가는 거요. 그날 오후 4시쯤이었어요. 유진 학생 실종 신고가 들어오기 한 시간 전이에요."
유나는 숨을 들이켰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5년 전 경찰 보고서를 수십 번 읽었다. 김미연의 진술은 명확했다. '오후 내내 교무실에서 시험지를 채점했다. 동료 교사 두 명이 증인이다.'
"그럼 교무실에 있었다는 증언은?"
"조작이에요. 아니면... 착각이거나."
제보자가 후드를 살짝 벗겼다. 20대 후반쯤 보이는 여자였다. 얼굴에 피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왜 이제 와서 말하는 거예요?"
"무서웠어요. 그때도 지금도."
"...뭐가?"
"김미연 선생님이요."
유나는 제보자의 눈을 봤다. 그 안에 두려움이 있었다. 진짜였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근데 왜 갑자기 용기가 생긴 건데?"
"강민서 학생 때문이에요."
유나의 등이 굳었다. 강민서. 한 달 전 실종된 청림고 2학년 여학생. 경찰은 가출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5년 전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민서랑 유진이 무슨 상관인데?"
"둘 다 김미연 선생님 반이었어요."
유나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녹음 시간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확실해? 정말?"
"네. 그리고..."
제보자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손으로 쓴 메모였다. 유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 김미연 / 청림동 327-5 /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외출
"이게 뭔데?"
"김미연 선생님 집 주소요. 목요일마다 집을 비워요. 한 시간 반 정도."
유나는 메모를 주머니에 넣었다.
"왜 이걸 줘?"
"거기 가보세요. 뭔가 있을 거예요."
제보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나는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잠깐. 이름이라도 알려줘."
"...그건 안 돼요."
"연락처는?"
"제가 다시 연락할게요."
제보자가 후드를 다시 눌러쓰고 카페 문을 나갔다. 유나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테이블 위 커피잔을 봤다. 손가락 자국이 잔 표면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
목요일 오후 7시.
유나는 김미연의 집 앞 골목에 서 있었다. 구도심 주택가. 낡은 빌라 2층이었다. 창문에 불이 꺼져 있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외출.'
제보자의 말대로였다. 유나는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지 않았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건 불법 침입이었다. 하지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유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5년 전 마지막으로 본 동생의 웃는 얼굴.
문을 밀고 들어갔다.
거실은 어두웠다. 유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빛이 벽을 훑었다. 평범한 거실이었다. TV, 소파, 책장. 먼지가 쌓인 액자들.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서류 뭉치가 있었다. 학교 관련 문서들. 유나는 서랍을 열었다. 펜, 클립, 포스트잇.
두 번째 서랍. 공책 몇 권. 세 번째 서랍. 검은색 수첩.
유나는 수첩을 꺼냈다.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첫 페이지를 펼쳤다.
— 최유진 / 2019.03.15 / X
손이 떨렸다. 유진의 이름. 그 옆에 붉은 펜으로 X표시.
다음 페이지.
— 강민서 / 2024.02.08 / X
유나는 숨을 멈췄다. 민서의 이름도 있었다. 역시 붉은 X표시.
다음 페이지들을 넘겼다. 이름이 더 있었다.
— 이수현 / 2020.11.03
— 박지은 / 2021.06.22
— 한예린 / 2023.09.14
X표시가 없는 이름들. 하지만 날짜가 적혀 있었다. 유나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손이 떨려서 초점이 흔들렸다. 다시 찍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얼어붙었다. 수첩을 서랍에 도로 넣고 불을 껐다. 거실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7시 반까지 안 올 거라고 했잖아.'
유나는 서재 문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귓가에서 쿵쿵 울렸다.
복도에 불이 켜졌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느렸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누구야?"
남자 목소리였다. 낮고 거친 목소리. 김미연이 아니었다.
유나는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서재 문 앞에서 멈췄다. 문 틈으로 그림자가 보였다. 후드를 쓴 남자였다.
"나와."
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문을 밀었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유나는 뒤로 물러났다. 창문이 등 뒤에 닿았다.
남자가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후드 그림자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손에 뭔가 들고 있었다. 길고 가는 것.
"왜 여기 있어?"
유나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갈게."
"늦었어."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유나는 옆으로 비켜서며 문 쪽으로 움직였다. 남자가 팔을 뻗었다. 유나는 몸을 숙여 피했다.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가 부딪혔다. 통증이 번졌다.
복도로 뛰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현관문이 보였다. 손잡이를 잡았다. 열리지 않았다. 잠겨 있었다.
"제발..."
유나는 손잡이를 흔들었다. 남자가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았다.
"다음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유나는 거실로 뛰어들었다. 창문. 창문을 열어야 했다. 손가락이 창문 손잡이를 잡았다. 남자가 거실로 들어왔다.
"...너였구나."
남자의 목소리에 미소가 섞여 있었다.
유나는 창문을 밀었다. 열리지 않았다.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다. 손가락으로 장치를 풀려고 했다. 떨려서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남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
"도망칠 생각 마."
유나는 돌아섰다. 소파를 사이에 두고 남자와 마주 섰다. 남자가 들고 있던 것이 보였다. 쇠파이프였다.
"뭘 원하는데?"
"그냥...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어."
남자가 소파를 돌아 다가왔다. 유나는 뒤로 물러났다. 벽에 등이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확실해? 정말 날 죽일 거야?"
유나는 자신의 말버릇이 나온 걸 깨달았다.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런 순간에.
남자가 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여자 목소리. 김미연이었다. 불이 켜졌다. 유나와 남자, 둘 다 현관 쪽을 봤다.
김미연이 멈춰 섰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최유나?"
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파이프를 내렸다. 김미연을 봤다.
"왜 일찍 왔어?"
김미연이 남자를 봤다. 그리고 유나를 봤다. 입술이 떨렸다.
"...이게 무슨."
"설명은 나중에."
남자가 유나를 잡으려 했다. 유나는 옆으로 굴렀다. 소파 뒤로 넘어졌다. 바닥에 부딪히며 어깨가 욱신거렸다.
일어나서 현관으로 뛰었다. 김미연이 길을 막았다.
"비켜요!"
유나는 김미연을 밀쳤다. 김미연이 벽에 부딪혔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뒤에서 남자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골목으로 나왔다. 어두웠다. 가로등이 깜빡거렸다. 유나는 숨을 헐떡이며 뛰었다. 뒤를 돌아봤다. 남자가 골목 입구에 서 있었다. 쫓아오지 않았다. 그냥 서서 유나를 봤다.
유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큰길이 나왔다. 사람들이 보였다. 편의점 불빛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주저앉았다. 손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첩을 열었다. 수첩 사진이 있었다. 흐릿했지만 이름들이 보였다.
최유진. 강민서. 이수현. 박지은. 한예린.
붉은 X표시.
유나는 휴대폰을 쥐고 눈을 감았다. 귓가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다음은...'
편의점 형광등이 너무 밝았다. 유나는 눈을 떴다. 손이 아직도 떨렸다. 휴대폰 화면에 수첩 사진이 떠 있었다.
이름들. 날짜들. X표시.
'박지은 2021년. 한예린 2023년.'
유나는 검색창에 이름을 쳤다.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타를 지우고 다시 쳤다.
'박지은 실종'
기사가 떴다. 2021년 6월. 청림시 인근 대학생 실종. 등산로에서 마지막 목격. 미제.
'한예린 실종'
역시 기사가 있었다. 2023년 9월. 고등학생. 학원 가는 길에 실종. 미제.
유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숨이 막혔다. 5년 전 유진이. 3년 전 박지은. 작년 한예린. 그리고 이번 달 강민서.
패턴이 있었다.
"손님, 괜찮으세요?"
편의점 알바생이 카운터 너머로 물었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골목 입구를 봤다. 남자는 없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경찰서. 가야 해.'
유나는 걸었다. 큰길을 따라 경찰서 방향으로. 하지만 발이 자꾸 멈췄다.
'뭘 말하지? 남의 집에 불법 침입했다고? 수첩을 훔쳐봤다고?'
게다가 그 남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 후드만 기억났다. 목소리만 기억났다.
'확실해? 정말?'
자신의 말버릇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다. 본 것도, 들은 것도, 심지어 수첩에 적힌 내용도. 유나는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유나는 받지 않았다. 다시 울렸다. 같은 번호.
세 번째 울렸을 때 받았다.
"...여보세요."
"최유나 씨죠?"
여자 목소리. 김미연이었다.
"어떻게 내 번호를."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어디예요?"
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왜요?"
"만나야 해요. 혼자."
"왜 만나야 하는데요?"
김미연이 잠시 침묵했다. 숨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불안한 숨소리.
"제가... 설명할게요. 전부."
"그 남자는 누구예요?"
"만나면 말할게요. 제발. 경찰은 안 돼요."
유나는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이었다.
"왜요? 불리해서?"
"...당신도 불리해요. 불법 침입. 주거침입죄. 그거 알죠?"
유나는 입을 다물었다. 김미연 말이 맞았다.
"어디서 만날 건데요."
"청림고. 후문. 30분 후."
"학교요? 지금?"
"네. 거기가 안전해요."
전화가 끊어졌다. 유나는 휴대폰을 쥔 채 서 있었다. 학교. 밤 9시가 다 된 학교.
'미친 짓이야.'
하지만 갈 수밖에 없었다. 김미연이 뭔가 알고 있었다. 수첩의 의미. 남자의 정체. 유진과의 연결고리.
유나는 택시를 잡았다. 학교까지 10분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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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림고 후문은 어두웠다. 가로등이 하나 깜빡거렸다. 유나는 담벼락에 기대 서서 시계를 봤다. 9시 15분.
바람이 불었다. 나무 잎이 바스락거렸다. 뒷산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고개를 돌렸다. 김미연이 후문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혼자였다.
"왔네요."
김미연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얼굴이 창백했다.
"설명해요. 지금."
유나는 차갑게 말했다. 김미연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후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요. 여기선 안 돼요."
"왜요?"
"...보는 사람 있어요."
유나는 주변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김미연 눈빛이 진지했다.
둘은 후문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이 보였다. 텅 비어 있었다. 교사동 불도 꺼져 있었다.
"여기서 말해요."
유나가 멈춰 섰다. 김미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좀 더 안쪽."
"어디요?"
"...미술실."
유나는 미술실을 알고 있었다. 3층 끝. 유진이 미술부였을 때 자주 갔던 곳.
'왜 하필 거기.'
하지만 따라갔다. 교사동으로 들어갔다. 복도가 어두웠다. 비상구 유도등만 희미하게 빛났다.
계단을 올랐다. 발소리가 울렸다. 김미연이 앞서 걸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3층 복도. 끝에 미술실 문이 보였다. 김미연이 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요."
유나는 망설였다. 김미연이 안을 가리켰다.
"빨리요. 시간 없어요."
유나는 미술실로 들어갔다. 캔버스들이 벽에 기대 있었다. 물감 냄새가 났다.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왔다.
김미연이 문을 닫았다. 잠그지는 않았다.
"이제 말해요. 그 수첩이 뭐예요?"
유나가 물었다. 김미연이 창가로 걸어갔다. 밖을 내다봤다.
"...기록이에요."
"무슨 기록이요?"
"목록."
김미연이 돌아섰다.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사라진 사람들. 다음 차례. 전부 적혀 있어요."
유나는 숨이 막혔다.
"누가 적은 거예요?"
"...제가요."
유나는 뒤로 물러났다. 등이 책상에 부딪혔다.
"당신이?"
"아니, 정확히는 시키는 대로 적은 거예요. 그 사람이."
"누구요?"
김미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말할 수 없어요. 말하면... 전 죽어요."
"강민서는요? 강민서도 그 사람이 데려간 거예요?"
김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민서는... 알았어요. 너무 많이. 그래서."
"뭘 알았는데요?"
"5년 전 일. 당신 동생 일."
유나는 얼어붙었다.
"유진이를... 알아요?"
"네. 민서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증거를. 그래서."
김미연이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저었다.
"어디 있어요? 민서 어디 있어요?"
유나가 다가갔다. 김미연이 뒤로 물러났다.
"몰라요. 진짜 몰라요. 그 사람만 알아요."
"그럼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요!"
"안 돼요. 말하면 저도, 당신도..."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둘 다 문 쪽을 봤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천천히. 규칙적으로.
김미연 얼굴이 새하얘졌다.
"...왔어요."
"누가요?"
"그 사람."
유나는 문을 봤다.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갔다. 문이 열렸다.
후드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 아까 그 남자. 하지만 이번엔 후드를 벗었다.
얼굴이 보였다.
유나는 비명을 삼켰다.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 유나야."
남자가 웃었다. 유나는 뒤로 물러났다.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청림고 교사. 5년 전 유진의 담임이었던 사람. 유나도 알고 있었던 사람.
이정훈.
"놀랐지? 나도 놀랐어. 네가 여기까지 올 줄은."
이정훈이 문을 닫았다. 잠갔다. 주머니에서 뭔가 꺼냈다. 작은 칼이었다.
"미안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김미연이 구석으로 물러났다. 울고 있었다.
"선생님... 제발..."
"닥쳐, 미연아. 넌 이미 쓸모없어."
이정훈이 유나를 봤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네 동생도 이랬어. 마지막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유나는 온몸이 얼었다.
"유진이가... 뭐라고 했어요?"
"궁금해?"
이정훈이 한 걸음 다가왔다. 칼날이 달빛에 반짝였다.
"마지막 말? '왜요, 선생님?' 그랬어. 딱 너처럼."
유나는 책상을 잡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정훈이 또 한 걸음 다가왔다.
"넌 목록에 없었어. 근데 네가 자꾸 파고드니까. 어쩔 수 없잖아."
"강민서는... 어디 있어요?"
"곧 만나게 될 거야. 같은 곳에서."
이정훈이 칼을 들었다.
그때 창문이 깨졌다.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누군가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교복 입은 여학생이었다.
강민서였다.
"유나 언니!"
민서가 소리쳤다. 손에 벽돌을 들고 있었다. 이정훈이 돌아섰다.
"네가...?"
민서가 벽돌을 던졌다. 이정훈이 팔로 막았다. 벽돌이 바닥에 떨어졌다.
"도망쳐요!"
민서가 유나를 밀었다. 유나는 문 쪽으로 비틀거렸다. 김미연이 문 잠금을 풀었다.
복도로 나왔다.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민서 목소리였다.
"민서!"
유나가 돌아서려 했다. 김미연이 팔을 잡았다.
"안 돼요! 가요!"
"놔요!"
유나는 김미연을 뿌리쳤다. 미술실로 다시 들어갔다.
민서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이정훈이 칼을 들고 서 있었다.
"끈질기네, 진짜."
이정훈이 유나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좋아. 둘 다 여기서 끝내자. 5년 만에 자매 상봉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