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귀환
주인공: 조태수 / 조미란
블랙로즈 입구의 네온사인이 깜빡였다.
조미란은 담배를 입에 문 채 클럽 앞에 섰다.
2년 만이었다.
강남 한복판, 자신이 세운 이 건물 앞에 다시 서기까지.
'씨발, 간판도 안 바꿨네.'
입구 계단에 경비원 셋이 서 있었다.
검은 정장, 귀에 이어폰, 허리춤에 불룩한 것까지 똑같았다.
조미란이 계단을 올랐다.
"손님, 오늘 예약제예요."
덩치 큰 놈이 손을 들어 막았다.
조미란은 담배 연기를 그의 얼굴에 천천히 내뿜었다.
"예약? 내가?"
"네. 회원 아니시면—"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조미란의 오른손이 그의 명치를 찔렀다.
정확히 갈비뼈 사이.
덩치는 소리 없이 무릎을 꿇었다.
옆의 경비원이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조미란이 먼저 움직였다.
왼발로 그의 무릎을 차고, 몸이 기울자 뒷목을 잡아 계단 난간에 박았다.
쾅.
마지막 한 명이 총을 빼려는 순간.
조미란은 이미 그의 등 뒤에 있었다.
팔을 비틀어 꺾고, 총을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아악!"
"시끄러."
귀에 박힌 이어폰을 뽑아 짓밟았다.
3초.
세 명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다.
조미란은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 계단에 비볐다.
'몸은 기억하네.'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저음의 비트가 귀를 때렸다.
1층 홀은 붉은 조명 아래 사람들로 가득했다.
술잔 부딪치는 소리, 웃음소리, 비명 같은 음악.
아무도 조미란을 쳐다보지 않았다.
'좋아. 그게 낫지.'
계단을 올랐다.
2층 복도는 한산했다.
VIP룸 입구마다 경호원이 서 있었다.
조미란은 제일 안쪽 방을 향해 걸었다.
'저기.'
문 앞의 경호원이 고개를 들었다.
"손님, 여긴—"
조미란이 그의 멱살을 잡아 벽에 쳤다.
쿵.
머리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졌다.
문을 열었다.
VIP룸 안은 조용했다.
원형 테이블에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박진우가 테이블 상석에 앉아 웃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물량은..."
말이 끊겼다.
모두의 시선이 조미란에게 쏠렸다.
박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야?"
조미란은 대답 대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테이블 맞은편 빈 의자를 빼고 앉았다.
"오랜만이네, 진우야."
박진우의 얼굴이 굳었다.
"...뭐?"
"2년이면 길지. 안 그래?"
조미란이 테이블 위의 위스키 병을 집어 잔에 따랐다.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싸구려 쓰는구나.'
박진우가 손짓했다.
옆의 남자들이 일어났다.
"잠깐."
조미란이 잔을 내려놓았다.
"앉아 있어. 나 혼자 얘기하러 왔어."
"미친년이..."
한 남자가 총을 꺼냈다.
조미란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박진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쏴봐. 네가 감당할 수 있으면."
박진우가 손을 들었다.
"기다려."
남자들이 멈췄다.
박진우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누군데 이러는 거야?"
조미란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던졌다.
사진 속엔 어깨에 새겨진 문신이 있었다.
깨진 왕관.
박진우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설마."
"설마가 맞아."
조미란이 웃었다.
"형님?"
"형님은 죽었어."
조미란이 잔을 비웠다.
"난 조미란이야."
침묵.
박진우의 입이 벌어졌다 닫혔다.
옆의 남자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거짓말..."
"거짓말? 야."
조미란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네가 날 버린 날 기억나? 2년 전, 3월 17일 밤 11시."
박진우의 눈이 흔들렸다.
"부산 앞바다
"부산 앞바다에 날 던져놨잖아. 총 세 발 맞고."
조미란이 셔츠 단추를 풀었다.
쇄골 아래, 희미한 총상 흉터 세 개가 드러났다.
"이거 기억 안 나?"
박진우의 손이 떨렸다.
"형님... 아니, 당신이..."
"살아남았지. 미안하게."
조미란이 셔츠를 다시 여몄다.
박진우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계산적인 미소.
'시작이네.'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박진우가 손을 내밀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다시—"
조미란이 테이블 위의 와인잔을 집어 던졌다.
쾅!
잔이 박진우 머리 옆 벽에 박살났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환영?"
조미란이 일어섰다.
"개소리 집어치워. 넌 날 버렸잖아."
박진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경호원들이 일제히 총을 겨눴다.
조미란은 웃었다.
"쏴. 근데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어."
"뭔데."
"최영석이 어디 있어?"
박진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왜?"
"궁금해서. 그 새끼도 같이 있었잖아. 그날 밤."
"영석이는 몰라. 연락 끊긴 지 오래야."
"거짓말."
조미란이 한 발 다가섰다.
총구들이 따라 움직였다.
"최영석은 지금 너네 자금 세탁 담당이잖아. 부동산 쪽으로."
박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알아?"
"알 것 다 알아. 너네가 뭐 하는지, 누구랑 거래하는지."
조미란이 테이블에 손을 짚고 몸을 숙였다.
"2년 동안 가만히 있었던 줄 알아?"
박진우가 손짓했다.
경호원 하나가 조미란의 뒤통수에 총을 겨눴다.
"움직이지 마."
조미란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박진우의 귀에 속삭였다.
"밖에 차 한 대 세워뒀어. 트렁크에 C4 10킬로."
박진우의 얼굴이 굳었다.
"타이머는 3분. 지금 2분 30초 남았어."
"...미친년."
"미친 건 너지. 날 죽이려 했으니까."
조미란이 몸을 일으켰다.
뒤의 경호원이 총을 더 바짝 들이댔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조미란이 박진우를 내려다봤다.
"너, 최영석, 그리고..."
목소리가 낮아졌다.
"날 판 나머지 새끼들. 다 찾아갈 거야."
박진우가 이를 갈았다.
"쏴!"
조미란이 뒤로 몸을 젖혔다.
총성.
탕!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조미란은 이미 경호원의 팔을 비틀어 총을 빼앗은 상태였다.
총구를 박진우에게 겨눴다.
"2분."
"뭐?"
"폭탄까지 2분 남았다고."
조미란이 뒤로 걸으며 문을 열었다.
"도망쳐. 아니면 여기서 죽든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를 뛰어 계단을 내려갔다.
1층 홀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왔다.
클럽 앞 주차장.
검은 벤츠 한 대가 서 있었다.
조미란이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었다.
룸미러로 클럽 입구를 봤다.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박진우가 경호원들을 끌고 뛰어나왔다.
'1분.'
조미란이 핸드폰을 꺼냈다.
타이머 앱이 떴다.
00:47
"거짓말이었는데."
조미란이 웃으며 타이머를 껐다.
트렁크엔 아무것도 없었다.
빈 가방 하나뿐.
'쫄았네, 진우야.'
차를 빼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받았다.
"누구?"
-조미란씨?
낯선 남자 목소리.
"누군데."
-최영석입니다.
조미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빠르네. 벌써 연락이 오다니."
-뭘 원하십니까?
"원하는 거? 많지."
조미란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일단 너 죽이는 거?"
-...
"농담이야. 진담이긴 한데."
라이터를 켰다.
-만납시다. 얘기하죠.
"만나? 좋아. 근데 혼자 와."
-알겠습니다
# 여왕의 귀환 - Part 2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조미란은 담배 연기를 길게 뱉었다.
'빠른 놈.'
핸드폰을 던져 조수석에 놨다.
시동을 걸고 클럽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룸미러로 뒤를 봤다.
박진우가 경호원들과 뭔가 소리치고 있었다.
'쫄지 마, 개새끼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
강남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신호에 걸렸다.
옆 차선의 택시 기사가 조미란을 힐끔 봤다.
눈이 마주쳤다.
기사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뭘 봐.'
신호가 바뀌었다.
액셀을 밟았다.
20분 후, 논현동 이면도로.
낡은 오피스텔 앞에 차를 세웠다.
4층 건물.
1층은 폐업한 편의점.
조미란이 내려 건물을 올려다봤다.
'여긴 아직도 그대로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
열렸다.
계단을 올랐다.
3층 복도.
제일 안쪽 방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았다.
잠겨 있지 않았다.
'들어오라는 거네.'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불 켜."
조미란이 말했다.
탁.
형광등이 켜졌다.
방 안 소파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최영석.
마흔 초반.
정장 차림에 안경을 낀 얼굴.
2년 전보다 머리가 많이 벗겨졌다.
"앉으시죠."
최영석이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조미란은 서 있었다.
"서서 할래."
"...그러시죠."
최영석이 테이블 위의 서류 뭉치를 밀었다.
"이게 뭔데?"
"형님 명의로 된 계좌 내역이요."
조미란이 서류를 집어 들었다.
숫자가 빼곡했다.
"2년 전, 형님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움직인 돈."
"얼만데?"
"120억."
조미란의 손이 멈췄다.
"어디 갔어?"
"박진우한테 넘어갔죠."
"합법적으로?"
최영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형님이 죽었다는 전제하에요. 유언장 위조했죠."
"씨발."
조미란이 서류를 던졌다.
종이가 바닥에 흩어졌다.
"왜 말 안 했어? 그때."
"말할 수가 없었어요."
최영석이 안경을 벗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진우 형이... 아니, 박진우가 날 잡고 있었어요."
"뭘로?"
"제 딸."
조미란의 눈빛이 흔들렸다.
"수아?"
"예. 지금 일곱 살이에요."
최영석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교복 입은 여자아이.
"진우가 수아 학교 앞에 사람을 세워뒀어요. 매일."
조미란이 사진을 봤다.
'개새끼.'
"그래서 넌 선택했고."
"...죄송합니다."
최영석이 고개를 숙였다.
조미란은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이려다 말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미안은 됐고. 넌 왜 날 불렀어?"
"형님 편에 서고 싶어서요."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에요."
최영석이 테이블 서랍을 열었다.
USB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데?"
"박진우가 지난 2년간 한 거래 내역이요. 전부."
조미란이 USB를 받았다.
"왜 줘?"
"형님이 돌아오셨으니까요."
"믿을 수가 없는데."
조미란이 USB를 손바닥에 올렸다.
"넌 날 팔았잖아."
"팔게 한 건 박진우예요."
최영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도 형님 살아계신 거 몰랐어요. 진짜로."
"그래?"
조미란이 USB를 주머니에 넣었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 내가 살아있는 거."
"오늘 클럽에서 난리 났잖아요. 소문 퍼지는 데 10분도 안 걸렸죠."
최영석이 일어섰다.
"형님, 부탁이 있어요."
"뭔데?"
"수아 좀 빼내주세요. 제발."
조미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문으로 걸어가 커튼을 걷었다.
밖은 어두웠다.
가로등 아래 검은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
'저거.'
"영석아."
"예."
"저 차, 네 거 아니지?"
최영석이 창가로 다가왔다.
얼굴이 굳었다.
"...진우 거예요."
"언제부터?"
"아까부터요. 제가 여기 들어올 때부터 있었어요."
조미란이 웃었다.
"쫓아온 거네."
"형님, 어떻게..."
"닥쳐."
조미란이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박진우한테서 문자 세 통.
[어디야]
[영석이랑 있냐]
[30분 안에 안 나오면 들어간다]
마지막 문자는 5분 전.
'재밌네.'
조미란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가자."
"예? 지금요?"
"응. 같이."
최영석이 뒤로 물러섰다.
"형님, 전 못 나가요. 수아가..."
"수아 데리러 가는 거야, 병신아."
조미란이 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갔다.
최영석이 따라왔다.
"진짜요?"
"거짓말하면 뭐 좋냐?"
계단을 내려갔다.
1층 현관문을 열었다.
밖은 쌀쌀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 세단.
운전석 문이 열렸다.
남자 둘이 내렸다.
덩치 큰 놈들.
조미란이 그쪽으로 걸었다.
최영석이 뒤따랐다.
"형님..."
"입 닥쳐."
경호원 한 놈이 다가왔다.
"조미란씨?"
"그래."
"사장님이 찾으십니다."
"박진우?"
"예."
조미란이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였다.
"안 가."
경호원의 표정이 굳었다.
"...가셔야 합니다."
"싫은데?"
"그럼 모시고 가겠습니다."
경호원이 손을 뻗었다.
조미란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탁.
조미란이 담배를 경호원 손등에 눌렀다.
"아!"
경호원이 비명을 질렀다.
뒤에 있던 놈이 달려들었다.
조미란이 몸을 숙였다.
주먹이 머리 위를 스쳤다.
일어서며 턱을 쳐올렸다.
퍽.
경호원이 뒤로 넘어졌다.
첫 번째 놈이 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칼이네.'
조미란이 먼저 차 문을 열었다.
안에서 소화기를 꺼냈다.
경호원이 칼을 빼는 순간.
쾅.
소화기로 옆구리를 쳤다.
경호원이 신음하며 무릎을 꿇었다.
조미란이 소화기를 던졌다.
최영석이 받았다.
"차 키 어디 있어?"
"...여기요."
쓰러진 경호원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조미란이 받아 운전석에 올랐다.
최영석이 조수석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수아 어디 있어?"
"집이요. 강동구."
"주소."
최영석이 네비에 주소를 쳤다.
차가 출발했다.
룸미러로 뒤를 봤다.
경호원 둘이 일어나 뭔가 통화하고 있었다.
'신고하겠네.'
조미란이 액셀을 밟았다.
**
강동구 아파트 단지.
30분 만에 도착했다.
"몇 동?"
"105동이요."
차를 세웠다.
아파트 입구에 CCTV가 보였다.
"경비실 지나가야 돼?"
"아뇨. 옆문으로 가면 돼요."
최영석이 먼저 내렸다.
조미란이 따라 내렸다.
옆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12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최영석이 손을 비볐다.
"형님."
"왜."
"수아 데리고 어디 가실 거예요?"
"일단 안전한 데."
"어디가 안전해요?"
조미란이 최영석을 봤다.
"내가 있는 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12층.
문이 열렸다.
복도는 조용했다.
1203호 앞에 섰다.
최영석이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렸다.
안은 어두웠다.
"수아야?"
최영석이 불을 켰다.
거실이 보였다.
텅 비어 있었다.
"수아!"
최영석이 안방으로 뛰어갔다.
조미란이 따라 들어갔다.
방도 비어 있었다.
이불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없어."
최영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조미란이 거실로 나왔다.
식탁 위에 쪽지가 있었다.
집어 들었다.
[딸 보고 싶으면 클럽으로 와. -진우]
'이 개새끼가.'
조미란이 쪽지를 구겨 바닥에 던졌다.
최영석이 주저앉았다.
"수아..."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떨렸다.
조미란은 창문으로 걸어갔다.
밖을 내려다봤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검은 차 두 대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빠르네.'
최영석이 고개를 들었다.
"형님, 저 혼자 갈게요."
"닥쳐."
"수아는 제 딸이에요. 제가..."
"닥치라고."
조미란이 돌아섰다.
최영석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정신 차려. 지금 무너지면 딸도 못 구해."
"하지만..."
"진우 그 새끼, 수아 안 죽여."
조미란이 최영석을 밀어냈다.
"인질로 쓰려고 데려간 거야. 아직 시간 있어."
최영석이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아세요?"
"알아. 그 새끼 수법."
조미란이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갔다.
최영석이 따라왔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향했다.
"형님, 어디 가세요?"
"옥상."
"왜요?"
대답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12층에서 옥상까지는 두 층.
철문을 밀어 열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옥상 난간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였다.
입구 쪽에 검은 차 네 대.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여덟 명.'
조미란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최영석이 물었다.
"누구한테 전화하세요?"
"아무도."
카메라 앱을 켰다.
줌을 당겨 아래를 찍었다.
남자들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중 한 명, 덩치 큰 놈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들켰네.'
조미란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영석아."
"예."
"넌 여기 있어."
"예? 형님은요?"
"나는 내려가."
최영석이 조미란의 팔을 잡았다.
"안 돼요. 저 인원으론..."
"손 떼."
조미란이 팔을 뿌리쳤다.
최영석의 손목을 비틀어 난간에 밀어붙였다.
"아!"
"들어봐. 넌 지금 쓸모없어."
최영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아 구하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
"...뭘 하라고요?"
조미란이 최영석을 놓았다.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쥐여줬다.
"이거 들고 경찰서 가."
"경찰서요?"
"응. 강남서."
최영석이 USB를 내려다봤다.
"이거 넘기면 박진우 끝이에요. 근데 그럼 수아는..."
"내가 데려온다고."
조미란이 최영석의 어깨를 쳤다.
"넌 증거 확보나 해. 진우 그 새끼 감방 보낼 준비."
"형님 혼자서..."
"혼자 아니야."
조미란이 웃었다.
"진우 그 새끼, 날 얕보거든."
계단으로 향했다.
최영석이 뒤따라왔다.
"형님!"
"왜."
"...살아 돌아오세요."
조미란은 대답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
1층 로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조미란이 나왔다.
입구 쪽에 남자 넷이 서 있었다.
덩치 큰 놈이 앞으로 나왔다.
"조미란씨?"
"그래."
"사장님 모시러 왔습니다."
"수아는?"
"클럽에 있습니다."
조미란이 다가갔다.
남자들 사이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에 검은 벤츠.
뒷좌석 문이 열려 있었다.
조미란이 올라탔다.
안에 박진우가 앉아 있었다.
문이 닫혔다.
"오랜만이네, 미란아."
박진우가 웃었다.
조미란은 웃지 않았다.
"수아 어디 있어?"
"급하네. 앉자마자 그게 할 소리야?"
"시간 없어. 애 어디 있냐고."
박진우가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네가 영석이 딸 찾으러 올 줄 알았어."
"그래서?"
"그래서 미리 데려왔지."
박진우가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조미란에게 보여줬다.
CCTV 화면.
클럽 지하 창고.
구석에 의자 하나.
거기 묶인 여자아이.
수아였다.
조미란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수아의 입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다.
"애 건드리면 너도 죽는다."
박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죽여? 너 혼자?"
"혼자 아니야."
조미란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박진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손 빼."
"빼는데."
천천히 손을 꺼냈다.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을 박진우에게 보여줬다.
아까 옥상에서 찍은 사진.
"이거 경찰한테 넘어갔어. 네 부동산 서류랑 같이."
박진우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소리야?"
"USB. 네 계좌 추적 자료 다 들어 있는 거."
조미란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쯤 강남서 형사들이 열람하고 있을걸."
박진우가 담배를 창밖으로 던졌다.
"미친년."
운전석 쪽 남자에게 손짓했다.
"확인해봐."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형님, 최영석 놈 경찰서 들어갔습니다."
박진우의 주먹이 시트를 쳤다.
"그 새끼를!"
조미란이 말했다.
"수아 풀어줘. 그럼 USB 회수해올게."
"회수? 어떻게?"
"방법 있어."
박진우가 조미란을 빤히 봤다.
"...넌 왜 이래?"
"뭐가."
"2년 전엔 도망만 다녔잖아. 근데 지금은..."
박진우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뭘 믿고 이러는 거야?"
조미란이 웃었다.
"너."
"나?"
"응. 넌 수아 못 죽여."
박진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왜?"
"애 죽이면 넌 끝이거든."
조미란이 박진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영석이 그냥 안 넘어가. 경찰한테 다 불어. 네가 수아 죽였다고."
"증거 없으면 소용없어."
"증거? CCTV 있잖아."
조미란이 박진우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저거. 네가 직접 찍어준 거."
박진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들었네.'
조미란이 손을 거뒀다.
"그러니까 협상하자. 수아 풀어주면 USB 회수. 네가 이득이야."
박진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클럽 가자."
운전석 남자에게 말했다.
"출발."
차가 움직였다.
조미란이 창밖을 봤다.
아파트 단지가 멀어졌다.
'영석아, 잘하고 있어.'
차는 강남 방향으로 달렸다.
신호에 걸렸다.
옆 차선에 오토바이 한 대가 섰다.
라이더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봤다.
헬멧 너머로 눈이 보였다.
'...저건.'
신호가 바뀌었다.
오토바이가 앞질러 갔다.
번호판이 가려져 있었다.
조미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지?'
박진우가 말했다.
"미란아."
"왜."
"USB 회수 못 하면 어쩔 거야?"
"회수해."
"만약에."
조미란이 박진우를 봤다.
"만약은 없어."
"그래도."
박진우가 웃었다.
"혹시 모르잖아. 경찰이 안 내줄 수도 있고."
"그럼?"
"그럼 넌 죽는 거야. 수아도."
조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알면서 왜 이래?"
"날 판 나머지 새끼들도 있거든."
박진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
"태수. 명호. 그리고 너."
조미란이 박진우의 목을 움켜쥐었다.
"셋 중 하나만 죽여도 본전이야."
박진우가 숨을 헐떡였다.
운전석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형님!"
조미란이 손을 놓았다.
박진우가 기침을 했다.
"...미친년. 진짜."
차가 클럽 앞에 섰다.
문이 열렸다.
조미란이 먼저 내렸다.
박진우가 따라 내렸다.
클럽 입구에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박진우가 손짓했다.
"안으로."
조미란이 들어갔다.
어두운 복도.
저 끝에 계단이 보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박진우가 앞장섰다.
"따라와."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