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재벌가 개가 되어준 결과가 이겁니다

약 11분

재벌가 개가 되어준 결과가 이겁니다

주인공: 한지오

차가운 액체가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어이, 개새끼."


차윤성의 목소리가 만찬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크리스탈 잔이 지오의 머리 위에서 완전히 뒤집혔고, 샴페인이 이마를 타고 눈썹까지 적셨다.


"알겠습니다."


지오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목에 걸린 가죽 목줄이 짤랑, 소리를 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는 손뼉까지 쳤다.


'저 웃음소리들, 다 기억해둬야지.'


지오의 눈은 테이블 아래를 향해 있었다. 낮게 깔린 시선으로 사람들의 구두 코를, 바지 밑단을, 흘러내리는 술잔의 그림자를 하나하나 담았다.


차윤성이 지오의 턱을 구두 끝으로 툭 건드렸다.


"고개 들어봐. 표정 좀 보자."


고개를 든 지오의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젖은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눈은 유리알처럼 맑고 건조했다.


"뭘 봐, 이 새끼가."


"죄송합니다."


기계 같은 대답이었다. 3년째 반복해온, 감정이 완전히 발라내진 문장.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네가 술을 쏟은 거지.'


속으로 뇌까리는 말과 입 밖으로 나가는 말은 언제나 달랐다. 그 간극이 지오를 여기까지 살려놓은 유일한 재주였다.


차명운 회장은 상석에 앉아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표정에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에게 지오는 그저 저택에 풀어놓은 개 한 마리였고, 개가 어떻게 굴려지든 관심 밖의 일이었다.


'저 노인네 눈에는 나도 저 술잔이랑 똑같은 소모품이겠지.'


지오는 그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다시 숙였다.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샴페인의 온도가 서늘했다.


그때였다.


저택 안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날카롭고 짧은, 그러나 분명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집사 김 여사의 것 같기도 했다.


만찬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누군가의 잔이 테이블 위로 떨어져 쨍그랑 깨졌다.


"뭐야, 지금 저거."


차윤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지오는 그 순간 이미 일어나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은 첫 움직임이었다.


"야, 저 새끼 왜 저래."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지오는 복도를 내달렸다. 3년 동안 개처럼 기어 다니며 익힌 저택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지도처럼 펼쳐졌다.


'정면 계단으로 가면 늦어. 뒤쪽 복도, 하인들이 쓰는 통로.'


발끝으로 대리석 바닥을 박차며 방향을 틀었다. 명령을 수행할 때는 네발로 기어야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두 발로 뛰는 감각이 낯설었다. 오랜만이었다.


서재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스며 나오는 불빛이 이상하게 붉었다.


지오는 문을 밀고 들어섰다.


차윤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책상 옆, 카펫 위로 검붉은 얼룩이 넓게 번져 있었고 그 중심에 진짜 상속자의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죽었다.'


머릿속에서 냉정한 결론이 먼저 나왔다. 감정보다 판단이 빨랐다. 3년 동안 훈련된 반응이었다.


지오는 무릎을 굽혀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목 언저리에 손가락을 대봤지만 맥은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카펫 위에서 뭔가 반짝였다.


작은 금속 조각이었다. 커프스 버튼 한 짝.


지오의 눈이 그것에 고정됐다.


'저건... 차윤성이 늘 차고 다니는 그 브랜드잖아.'


특유의 문양, 은은한 광택. 그 만찬장에서도 지오는 저 버튼을 봤었다. 차윤성의 손목에서.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의 것이었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 다급한 숨소리.


'생각할 시간이 없어.'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버튼을 집어 든 손이 소매 안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심장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두려움 대신 서늘한 계산만 남아 있었다.


'이걸 주우면... 나도 공범이 되는 건가.'


자조 섞인 생각이 스쳤지만 손은 이미 소매를 정돈하고 있었다.


발소리가 문 앞에 도착했다.


"뭐야, 이게 대체—"


차명운 회장이 문턱에서 얼어붙었다. 뒤따라온 사람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지오는 시신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었다. 젖은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눈은 여전히 감정이 없었다.


"뭘 하고 있었어, 너."


차명운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살기가 섞여 있었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지오가 대답했다. 목줄이 아직도 목에 걸려 있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침묵 속에서 유독 크게 울렸다.


차윤성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시신을 지나 지오에게 꽂혔다.


"너 여기서 뭘 봤어."


질문이 아니라 협박에 가까웠다.


지오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손목의 커프스 버튼, 한쪽만 남은 그 자리를.


'저 새끼 눈치챘나. 아니, 아직 모른다.'


"못 봤습니다."


건조한 대답이었다. 목소리에 어떤 떨림도 없었다.


차명운이 지오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똑바로 말해. 여기 있었잖아. 뭘 봤냐고."


"들어왔을 때 이미 이랬습니다."


지오는 시신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표정은 여전히 종이처럼 평평했다.


"제가 본 건 이게 전부입니다."


침묵이 서재를 채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지오와 시신 사이를 오갔다.


그 순간, 지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계산된 미소였다. 순종적인 개의 얼굴 뒤에 숨겨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 믿었던 균열.


차윤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그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너 방금... 웃었냐?"


차윤성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목소리가 낮게 갈라져 있었다.


지오는 고개를 숙였다. 소매 속 커프스 버튼을 움켜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아닙니다."


"방금 봤어. 분명히 웃었잖아."


'봤다는 건 인정하는 거잖아. 뭘 감추고 있는지 스스로 말하는 꼴이지.'


"착각하셨을 겁니다."


차명운이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만해. 지금 이럴 때야?"


회장의 눈은 여전히 시신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에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경찰 부르기 전에 정리부터 한다. 사고사로 처리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 알겠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서은채가 늦게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무너지듯 오빠에게 달려갔다.


"오빠, 오빠아—"


울음소리가 서재를 채웠다. 지오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눈물은 진짜인데... 표정이 반 박자 늦었어.'


문틈으로 안을 먼저 들여다본 자의 얼굴. 놀람보다 확인이 앞선 얼굴이었다.


'저 여자, 이미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


지오는 그 생각을 삼켰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차명운이 지오를 향해 몸을 돌렸다.


"넌 아무것도 못 봤다. 그렇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자 명령이었다.


"못 봤습니다."


지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목줄이 짤랑거렸다.


경호팀이 도착해 서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신을 옮기고 카펫을 걷어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흔적을 지웠다.


지오는 그 과정을 구석에서 지켜봤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개는 원래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존재지.'


그 무관심이 지오에게는 무기였다. 사람들이 그를 투명인간 취급할 때마다 지오는 그들의 표정을, 손짓을, 흘리는 말들을 하나씩 주워 모았다.


새벽 두 시, 지오는 지하 별채의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방이라기보다 창고에 가까운 좁은 공간이었다. 침대 하나, 목줄을 걸어두는 고리 하나가 벽에 박혀 있었다.


지오는 문을 잠그고 소매에서 커프스 버튼을 꺼냈다.


손바닥 위에서 금속이 차갑게 빛났다. 특유의 문양이 선명했다.


'이거 하나로 뭘 할 수 있을까.'


증거로 내밀기엔 너무 약했다. 도리어 자신이 훔쳤다는 사실만 드러날 게 뻔했다.


'차명운이 사고사로 덮으려는 이유가 뭐지. 서은채는 왜 표정 관리가 늦었을까.'


머릿속에서 만찬장의 장면들이 다시 재생됐다. 구두 코, 바지 밑단, 흘러내리던 술잔의 그림자.


그중 하나가 걸렸다. 만찬 중반, 차윤성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시간.


'그때 시간이 얼마나 됐지. 십오 분? 이십 분?'


계산이 맞아떨어지면 알리바이가 무너진다. 지오는 버튼을 다시 소매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때였다.


문손잡이가 소리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오의 눈이 문을 향했다. 숨을 죽였다.


잠긴 문이었다. 그런데도 손잡이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야.'


지오는 침대 옆 벽에 등을 붙였다. 목줄 고리 아래 숨겨둔 작은 칼이 손끝에 닿았다.


손잡이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완전히 돌아갔다.


문이 열리기 직전, 지오는 숨을 참았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들어온 건 사람이 아니었다.


바람이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든 새벽 공기가 방 안을 훑고 지나갔다.


'뭐야.'


지오는 칼자루를 쥔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눈은 여전히 열린 문에 고정돼 있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문 앞 바닥에 뭔가 놓여 있었다.


흰 봉투였다.


'누가 왔다 갔어. 손잡이 소리가 났던 건 이걸 놓고 가려던 거였나.'


지오는 몸을 낮춘 채 문가로 다가갔다. 복도 끝까지 시선을 훑었지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봉투를 집어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다시 잠그고 등을 기댔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낯설었다.


'나답지 않게.'


봉투 안에는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만찬장 사진이었다. 차윤성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고, 시간이 기록돼 있었다.


21시 47분,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각.


'이십삼 분. 서재까지 왕복하고도 남는 시간.'


지오의 눈이 사진 아래 적힌 글씨로 옮겨갔다.


손글씨였다. 급하게 휘갈긴 흔적이 역력했다.


"네가 뭘 주웠는지 안다."


숨이 턱 막혔다.


'누가... 봤어?'


서재에서 커프스 버튼을 줍던 순간을 떠올렸다. 발소리가 도착하기 전, 그 짧은 틈을.


'그때 누가 있었다고?'


머릿속으로 그 순간을 다시 재생했다. 문틈, 붉은 조명, 시신, 그리고 번쩍이던 금속 조각.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어. 처음부터.'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흘렀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판을 흔들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이 편지를 보낸 게 차윤성이면 협박이고, 서은채면 거래고, 제삼자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끝이 멈췄다.


'제삼자라면 그게 진범일 수도 있어.'


지오는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시각을 기록해둔 정교함, 필체의 다급함. 어느 하나 힌트가 되지 못했다.


소매 속 커프스 버튼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이걸 쥐고 있는 게 나 하나가 아니었어.'


그때, 창밖에서 인기척이 스쳤다.


지오는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 어둠 속에 사람의 형체가 서 있었다.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오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림자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거기 서!"


지오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순간, 발밑에서 뭔가 밟혔다.


또 다른 종이였다. 방금 전엔 없던 것.


떨리는 손으로 주워 든 종이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진짜 범인은 아직 이 집에 산다."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하나가 아니었다.

총 5,469자 · 약 11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오늘도파이팅

Powered by NtoTOON

#재벌#서스펜스#하이틴#미스터리#복수
오
오늘도파이팅

새 화가 올라오면 알려드려요

이 작품처럼 나도 만들기

아이디어 한 줄이면 AI가 웹소설을 써드려요 · 가입하면 웹툰 2편 무료

나도 만들기
첫 화입니다
마지막 화입니다

오늘도파이팅 —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후원으로 작가에게 힘을 보내세요

댓글 0

로그인하고 댓글 달기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나만의 AI 작품을 만들어보세요

가입하면 웹툰 2편을 무료로 만들 수 있어요!

무료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