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6,751자

천하제일 사육사

주인공: 하준혁

폐사원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준혁은 발을 헛디뎠다. 돌바닥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흔들렸다.

"미친."

욕이 튀어나왔다.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석 달, 아직도 이 망할 중력 감각에 적응이 안 됐다.

'차라리 실험실에서 죽을 걸.'

떠오르는 건 연구소 복도였다. 비명. 무너지는 천장.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던 동료의 얼굴.

하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다.

사원 안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공기가 무겁다기보다는, 뭔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게 뭐냐고."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 뚫린 구멍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먼지가 빛줄기를 타고 춤췄다.

제단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가 너덜너덜했다. 글씨는 한자였지만 웬일인지 읽혔다. 이것도 차원 이동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이 세계 룰인지는 모르겠다.

'영수소환술 입문.'

하준혁은 책을 집어 들었다. 종이가 바스러질 것 같았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 그림이 나왔다. 사람 주위를 짐승들이 둘러싼 형상이었다. 호랑이, 독수리, 늑대. 그림 아래 작은 글씨가 빼곡했다.

'내공으로 영수를 소환하고, 영수로 천하를 제압한다.'

"아, 이거."

마을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이 세계 무인들은 직접 싸우지 않는다. 소환수를 부려서 대리전을 벌인다. 길거리에서도 가끔 보였다. 주먹만 한 여우를 어깨에 얹고 다니는 놈, 독수리를 날려 보내는 놈.

'그래서 내가 아무리 싸워도 이상하게 보던 거구나.'

하준혁은 허탈하게 웃었다.

"일단 해보고 생각하자."

입버릇이 튀어나왔다. 언제나 그랬다. 연구소에서도, 실험실에서도. 일단 버튼을 눌러보고 결과를 봤다.

그게 동료들을 죽인 이유였다.

'아니, 지금은.'

책장을 넘겼다. 소환 방법이 나왔다. 단전에 내공을 모으고, 손바닥에 기를 집중시킨 뒤, 원하는 형상을 떠올리며 밖으로 밀어낸다.

간단했다.

"근데 내공이 어딨어."

중얼거렸지만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배에 힘을 줬다. 뭔가 뜨끈한 게 뱃속에서 올라왔다.

'오, 이거?'

신기했다. 석 달 동안 이 세계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몸이 바뀐 모양이었다. 열기가 손바닥으로 모였다.

하준혁은 눈을 감았다. 형상을 떠올리라고 했다.

'뭘 소환하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물? 새? 아니면 뱀?

그 순간, 옛날 연구소 복도 벽에 걸렸던 그림이 떠올랐다. 중국 출장 갔을 때 누군가 선물로 준 액자. 황금빛 비늘, 다섯 개의 발톱, 구름을 헤치고 올라가는 용.

"용이나 나와봐라."

농담처럼 내뱉었다.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열기가 폭발했다. 눈을 뜨자 사원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뭐야!"

바닥에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천장을 뚫고 하늘까지 뻗었다. 귀가 먹먹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빛기둥 안에서 뭔가 떠올랐다.

알이었다.

주먹만 한 크기. 표면은 매끈했고, 은은한 금빛이 흘렀다. 알 표면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용.

"설마."

하준혁은 알을 받아 들었다. 따뜻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이거 진짜 용 아냐?'

웃음이 났다. 미친 상황이었다. 차원 이동도 모자라 용까지 소환하다니.

"일단 숨기고 보자."

알을 품에 넣었다. 옷 속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사원을 나왔다. 햇빛이 눈부셨다. 마을까지는 한 시진 거리였다.

---

주막 앞에 도착했을 땐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하준혁은 구석 자리에 앉아 술을 시켰다. 알은 여전히 품속에서 따뜻했다.

'이걸 어떻게 부화시키지.'

비급에는 부화 방법이 안 나와 있었다. 그냥 '주인의 내공과 정신력으로 깨운다'는 애매한 문구만 적혀 있었다.

"저기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여자가 서 있었다. 스무 살쯤 됐을까. 흰색 도포에 허리춤에 검을 찼다. 얼굴은 차갑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자리 없는데."

하준혁은 술잔을 들었다.

"당신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나요."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위압감이 실렸다.

'들켰나.'

하준혁은 속으로 욕했다. 겉으로는 웃었다.

"기운? 나 씻은 지 사흘 됐는데 냄새 나나?"

"농담 말고 대답해요."

여자 뒤에서 뭔가 움직였다. 그림자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짐승이었다.

백호였다.

어깨까지 오는 크기. 새하얀 털에 검은 줄무늬. 눈은 푸른빛이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설가의 설아린이에요.

# 천하제일 사육사

"설가요?"

하준혁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설가. 무림맹 오대세가 중 하나.'

마을에서 주운 정보가 머릿속을 스쳤다. 백호를 소환할 수 있는 건 설가 직계뿐이라던 주막 주인의 말이 떠올랐다.

"아, 그 유명한 설가."

일부러 느긋하게 웃었다. 하지만 품속 알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설아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신 같은 하급 무인이 왜 황급 기운을 품고 있죠?"

"황급?"

"거짓말 마요. 내 설린이 반응하고 있어요."

백호가 한 걸음 다가왔다. 발톱이 바닥을 긁었다. 주막 안 사람들이 슬금슬금 밖으로 빠져나갔다.

'씨, 냄새로 알아채나.'

하준혁은 속으로 욕했다. 겉으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개한테 물어보시지 그래요. 나보고 어쩌라고."

"개?"

설아린의 얼굴이 굳었다. 백호가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설린은 상급 영수예요. 함부로 말했다간—"

"물려 죽는다?"

하준혁이 말을 끊었다.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여기서 사람 죽일 거야?"

목소리가 낮아졌다. 설아린이 잠깐 망설였다.

'빈틈.'

하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품속 알을 손으로 감쌌다.

"난 그냥 떠돌이 무인이고, 당신은 명문세가 아가씨잖아요. 여기서 시비 붙으면 손해 보는 쪽은—"

"닥쳐요."

설아린이 손을 들었다. 백호가 뛰어올랐다.

하준혁은 뒤로 물러섰다. 테이블이 넘어졌다. 술병이 바닥에 깨졌다.

'미친, 진짜 덤비네.'

백호의 발톱이 가슴팍을 스쳤다. 옷이 찢어졌다. 알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금빛이 주막 안을 가득 채웠다.

설아린의 눈이 커졌다.

"저게..."

"아, 씨."

하준혁은 알을 주워 들었다. 표면의 용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설아린이 뒷걸음질 쳤다. 백호마저 꼬리를 내렸다.

"황룡? 다섯 발톱 황룡이요?"

"모르겠는데요."

하준혁은 알을 품에 넣었다. 빛이 사그라들었다.

설아린이 검을 뽑았다. 날이 떨렸다.

"그게 어디서 난 거예요."

"주웠어요."

"거짓말!"

검끝이 목을 향했다. 하준혁은 손을 들었다.

"진짜라니까. 폐사원에서 주웠다고."

"폐사원? 설마 북쪽 금강사?"

설아린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거긴 백 년 전 황실 금서고였어요.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몰랐는데요. 표지판이라도 붙여놨어야지."

하준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설아린이 검을 거뒀다.

"당신 지금 역모죄예요."

"뭐?"

"황룡은 황실 전유물이에요. 민간인이 소유하면 삼족이 멸해요."

설아린이 주막 밖을 봤다.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소문 벌써 퍼졌을 거예요. 아까 그 빛, 십 리 밖에서도 봤을걸요."

"그래서?"

"무림맹 소환수 관리국에 신고할 거예요."

설아린이 품에서 전음부를 꺼냈다. 작은 옥패였다.

하준혁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놔요."

"신고하면 나 죽어요."

"당연하죠."

설아린이 차갑게 말했다. 하준혁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럼 거래해요."

"거래?"

"이거 부화시키는 법 알려주면, 당신한테 필요한 거 해줄게요."

설아린이 코웃음 쳤다.

"내가 왜 역모죄인을 도와요."

"도우면 이득이니까."

하준혁이 웃었다. 설아린의 눈을 똑바로 봤다.

"당신 지금 뭔가 찾고 있잖아요. 이 변두리 마을까지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설아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떻게..."

"표정에 다 써 있어요. 급한 사람 얼굴은 숨길 수가 없거든."

하준혁이 손을 놓았다. 설아린이 한참 그를 쳐다봤다.

"청화곡에 사파연합 아지트가 있어요."

"사파?"

"거기서 우리 설가 비급을 훔쳐갔어요. 『백호신공』 하권."

설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거 없으면 우리 오빠가 평생 하급 소환수밖에 못 부려요."

'오빠.'

하준혁은 속으로 씩 웃었다.

'그래, 사람은 다 약점이 있지.'

"도와줄게요."

"뭐라고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이거 부화시키는 법 알려주고, 무림맹한테는 비밀로 해줘요."

설아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백호가 주인을 올려다봤다.

"미친 짓이에요."

"원래 미친 짓이 이득이 크잖아요."

하준혁이 손을 내밀었다. 설아린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을 잡았다.

"후회할 거예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

---

주막을 나왔을 때 해가 완전히 졌다.

설아린이 앞장섰다. 백호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청화곡까지 사흘이에요."

"멀긴."

하준혁은 품속 알을 만졌다. 여전히 따뜻했다.

'부화시키는 법. 대체 뭐가 필요한 거야.'

비급에는 '주인의 내공과 정신력'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너무 추상적이었다.

# 천하제일 사육사

"저기요."

설아린이 걸음을 멈췄다.

"알 좀 보여줘요."

"왜요?"

"부화 조건 확인해야죠."

하준혁은 품에서 알을 꺼냈다. 금빛 문양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

설아린이 알을 들여다봤다. 눈썹이 찌푸려졌다.

"이상해요."

"뭐가."

"껍질에 금이 안 가 있어요."

설아린이 손가락으로 표면을 쓸었다.

"보통 영수 알은 부화 직전에 금이 가요. 근데 이건..."

"완전 멀쩡하네."

하준혁이 알을 흔들었다.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당연히 살아 있죠. 문제는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는 거예요."

설아린이 한숨을 쉬었다.

"황룡급은 최소 일 년은 품고 다녀야 해요. 주인 기운에 익숙해져야 하거든요."

"일 년?"

하준혁의 얼굴이 굳었다.

'그 전에 황실한테 걸리겠네.'

설아린이 알을 돌려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완전히 각인 안 됐다는 거예요."

"각인?"

"주인과 영수가 정신적으로 연결되는 거요. 각인되면 이마에 문양이 새겨져요."

설아린이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희미하게 백호 형상이 보였다.

"각인 전까지는 누가 주인인지 확정 안 돼요. 그러니까..."

"뺏길 수도 있다?"

"네."

하준혁은 알을 다시 품에 넣었다.

'일 년. 너무 길어.'

뒤에서 백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설아린이 고개를 돌렸다.

"설린이?"

백호가 숲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귀가 쫑긋 섰다.

"누가 와요."

설아린이 검을 뽑았다. 하준혁은 뒤로 물러섰다.

숲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날아오는 소리였다.

"엎드려요!"

설아린이 소리쳤다.

화살이 빗발쳤다. 백호가 앞으로 뛰어나가 발톱으로 쳐냈다. 불꽃이 튀었다.

'독화살.'

하준혁은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봤다. 촉 끝에 검은 액체가 묻어 있었다.

"사파연합이에요!"

설아린이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뻗어 나가 나무를 잘랐다.

숲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검은 복면에 검은 옷. 손에는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짐승들이 있었다.

독사, 전갈, 박쥐. 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소환수였다.

"설가 아가씨, 오랜만이네요."

앞에 선 남자가 복면을 벗었다. 얼굴 반쪽에 화상 자국이 있었다.

"진무광."

설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파오독 중 하나인 주작 진무광이요?"

"오, 소문 들었구만."

진무광이 웃었다. 그의 어깨 위로 붉은 새가 날아올랐다.

주작이었다.

불길이 깃털에서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닿자 풀이 타들어 갔다.

"설가 비급은 잘 쓰고 있어요. 고마워요."

"돌려줘요!"

설아린이 달려들었다. 백호가 함께 뛰었다.

진무광이 손가락을 튕겼다. 주작이 불을 뿜었다.

화염이 설아린을 덮쳤다. 백호가 앞을 가로막았다. 털이 타들어 갔다.

"설린!"

설아린이 비명을 질렀다. 백호가 비틀거렸다.

하준혁은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저게 소환수 배틀.'

심장이 뛰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뭔가 익숙한 감각이었다.

'연구소에서 실험체들 싸울 때랑 똑같네.'

진무광의 시선이 하준혁에게 향했다.

"너, 아까 주막에서 금빛 뿜던 놈이지?"

"아뇨."

"거짓말. 내 주작이 반응해."

진무광이 손을 들었다. 주작이 하준혁을 향해 날아왔다.

불길이 몸을 감쌌다.

'뜨겁.'

하준혁은 팔로 얼굴을 가렸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품속 알이 뜨거워졌다.

아니, 뜨거운 정도가 아니었다. 끓어올랐다.

"으윽!"

하준혁은 알을 꺼냈다. 표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금이 갔다.

가느다란 선이 알 중앙을 가로질렀다. 빛이 새어 나왔다.

진무광의 눈이 커졌다.

"저게 뭐야."

주작이 비명을 질렀다. 불길이 꺼졌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후퇴했다.

알에서 금이 더 퍼졌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깨어나는 건가.'

하준혁은 알을 두 손으로 받쳤다. 껍질이 흔들렸다.

안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똑.

리듬이 있었다. 심장 박동 같았다.

하준혁의 심장도 같은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숨이 가빠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에서 뭔가가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아니, 반대였다.

하준혁의 뭔가가 알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내공? 아니, 이건—'

정신이었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연구소, 실험실, 폭발, 동료들의 비명.

'그만.'

하준혁은 알을 던지려 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알이 완전히 갈라졌다.

빛이 폭발했다.

진무광이 팔로 눈을 가렸다.

총 6,751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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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환수#성장#배틀
푱
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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