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사냥꾼 [각선미]
주인공: 윤서진
새벽 세 시.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윤서진은 라텍스 장갑을 끼며 문틈으로 들어섰다.
복도에 불이 켜져 있었다.
바닥은 깨끗했다.
너무 깨끗했다.
"또 밤샘이네."
뒤따라 들어온 강민혁이 하품을 했다.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장을 훑었다.
거실 소파는 제자리.
테이블 위 리모컨도 가지런했다.
싸운 흔적이 없었다.
'아는 사람이거나.'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침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감식반은?"
"10분 뒤 도착한대요."
민혁이 뒤에서 말했다.
서진은 문을 밀었다.
침대 위에 시체가 있었다.
20대 후반.
긴 머리가 베개 위로 흘러내렸다.
얼굴은 창백했다.
목에 손가락 자국이 선명했다.
질식사.
이불은 가슴까지 덮여 있었다.
누가 정리한 거였다.
범인이.
서진은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협탁 위에 액자가 놓여 있었다.
사진이었다.
피해자의 다리.
무릎부터 발끝까지.
하얀 피부에 날씬한 종아리 라인.
뒷배경은 한강 공원이었다.
시야가 흔들렸다.
'아니.'
서진은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두 배 속도로 뛰었다.
손끝이 저렸다.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 형사님?"
민혁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서진은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뚜껑을 열고 알약 하나를 입에 넣었다.
물 없이 삼켰다.
"괜찮으세요?"
"응."
서진은 짧게 대답했다.
심호흡을 했다.
시야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괜찮아. 다 계획대로야.'
계획 같은 건 없었다.
"5번째네요."
민혁이 침대 끝에 서서 말했다.
"3개월 동안 5명."
"알아."
서진은 액자를 다시 봤다.
이번엔 시선을 사진 밖으로 고정했다.
액자 테두리.
나무 재질.
흠집 없이 깨끗했다.
"근데 이거 진짜 이상한 게."
민혁이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현장이 너무 깨끗하잖아요. 애초에 싸움도 없었고."
"피해자가 저항 안 한 거야."
"네?"
"아는 사람이니까."
서진은 침대 시트를 살폈다.
구겨진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앉았던 자리.
"여기 앉아서 대화했어. 범인이랑."
"대화를요?"
"피해자는 경계하지 않았어. 그래서 목을 졸렸을 때도 제대로 저항 못 했고."
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은 일어섰다.
현관 쪽에서 소음이 들렸다.
누군가 소리 지르는 목소리.
"언니! 언니!"
감식반이 막고 있었다.
젊은 여자였다.
20대 초반쯤 보였다.
"언니 어딨어요! 들어가야 한다고요!"
서진은 복도로 나갔다.
여자가 경찰 라인을 넘으려 했다.
감식반 직원이 팔을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진정이 돼요? 언니가 죽었다는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서진은 다가갔다.
"한지우 씨?"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네?"
"피해자 동생 맞죠?"
"네... 맞는데요."
서진은 명함을 꺼냈다.
"윤서진 형사예요.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언니 보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요."
"왜요?"
"현장 보존 때문에."
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진은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해요."
"싫어요. 언니..."
"범인 잡고 싶으면 협조해야죠."
지우가 멈칫했다.
서진은 그녀를 복도 끝으로 데려갔다.
계단 입구에 벤치가 있었다.
서진은 지우를 앉혔다.
옆에 나란히 앉았다.
"언제 연락받았어요?"
"한 시간 전에요."
지우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경찰이 전화했어요. 언니 집에서... 그랬다고."
"최근에 언니가 이상한 얘기 한 적 있어요?"
"이상한 얘기요?"
"누가 따라오는 것 같다거나. 스토킹당한다거나."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서진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언니가 그런 말 했어요?"
"일주일 전에요."
지우는 코를 훌쩍였다.
"카페에서 만났는데. 언니가 요즘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대요."
"누가?"
"모르겠대요. 그냥 느낌이래요."
"신고는요?"
"안 했어요. 언니가... 그냥 기분 탓이겠지 했대요."
서진은 침묵했다.
지우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근데 이거."
화면을 켰다.
SNS 앱이었다.
"언니 계정이에요."
서진은 화면을 들여다봤다.
피드에 사진들이 쭉 나열돼 있었다.
카페.
음식.
셀카.
그리고.
다리 사진.
심장이 쿵 소리를 냈다.
"일주일 전에 올린 거예요."
지우가 사진을 확대했다.
한강 공원.
벤치에 앉은 각도.
무릎부터 발끝까지.
침실 액자 속 사진이랑 똑같았다.
서진의 시야가 붉게 번졌다.
'안 돼.'
숨이 막혔다.
귓속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렸다.
쿵. 쿵. 쿵.
"댓글 보세요."
# 본능의 사냥꾼 (전개부)
지우가 화면을 가리켰다.
댓글 창이 열렸다.
'예쁜 다리네요.'
익명 계정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검은 실루엣.
계정명은 '@silhouette_walker'.
서진의 손이 얼어붙었다.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지우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언니 다른 사진엔 댓글 없는데. 이것만..."
서진은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화면을 확대했다.
계정을 눌렀다.
프로필이 열렸다.
게시물 1개.
팔로워 0.
팔로잉 0.
게시물을 눌렀다.
검은 배경.
여성의 다리 실루엣.
무릎부터 발끝까지.
윤곽만 하얗게 빛났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왔다.
쿵.
쿵.
쿵.
귓속에서 맥박이 터졌다.
시야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었다.
'안 돼.'
서진은 눈을 감았다.
숨을 참았다.
열까지 세었다.
다시 떴다.
지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괜찮으세요?"
"응."
서진은 핸드폰을 돌려줬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계정 혹시 언니한테 DM 보낸 적 있어요?"
"모르겠어요. 언니 핸드폰이..."
"경찰이 가지고 있을 거예요."
서진은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여기서 기다려요."
"어디 가세요?"
"금방 올게요."
복도를 따라 침실로 돌아갔다.
감식반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중이었다.
민혁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피해자 핸드폰 어디 있어?"
"증거봉투에 넣었어요."
"꺼내봐."
"네?"
"지금 당장."
민혁이 눈을 깜빡였다.
서진의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현관 쪽으로 나갔다.
1분 뒤 돌아왔다.
투명 봉투에 든 핸드폰을 건넸다.
"비밀번호는요?"
"지문 인식."
서진은 침대로 다가갔다.
피해자의 손을 들었다.
차가웠다.
검지를 핸드폰 화면에 댔다.
잠금이 풀렸다.
SNS 앱을 열었다.
DM 목록을 확인했다.
있었다.
'@silhouette_walker'
대화를 눌렀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네요.'
3일 전 메시지였다.
피해자는 답장하지 않았다.
'혹시 한강 공원 자주 가세요?'
2일 전.
답장 없음.
'오늘 저녁 시간 있으세요?'
어제.
답장 없음.
마지막 메시지.
'집 앞 카페에서 기다릴게요.'
오늘 오후 6시.
서진의 손이 멈췄다.
"형사님?"
민혁이 어깨 너머로 들여다봤다.
"이거..."
"범인이야."
"네?"
"피해자한테 스토킹하다가 오늘 만났어."
"그럼 CCTV 확인하면..."
"해봐야지."
서진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침대 시트를 다시 봤다.
구겨진 자리.
두 사람이 앉았던 흔적.
범인은 여기 앉아서 대화했다.
피해자는 경계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을 졸렸다.
왜?
서진은 액자를 다시 봤다.
다리 사진.
정성스럽게 프린트해서 액자에 넣었다.
'집착.'
범인은 피해자의 다리에 집착했다.
사진을 찍었다.
프린트했다.
액자에 넣었다.
그리고 죽였다.
왜 죽였을까?
서진은 침대 밑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옷장을 열었다.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다 제자리였다.
범인은 정리 강박이 있었다.
"민혁아."
"네."
"다른 피해자 현장도 이렇게 깨끗했어?"
"네. 전부 다요."
"싸운 흔적은?"
"없었어요."
서진은 옷장 문을 닫았다.
뒤돌아섰다.
민혁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근데 형사님."
"왜?"
"이 계정 다른 사람들한테도 메시지 보냈나 봐요."
"어떻게 알아?"
"SNS에서 검색해봤는데."
민혁이 화면을 보여줬다.
게시물이 여러 개 떴다.
전부 다리 사진이었다.
댓글에 '@silhouette_walker'가 있었다.
'예쁜 다리네요.'
똑같은 멘트.
서진은 게시물을 하나씩 눌렀다.
카페.
공원.
지하철.
거리.
전부 야외였다.
그리고.
"이거."
민혁이 한 게시물을 가리켰다.
오늘 올라온 거였다.
3시간 전.
사진 속 여자가 카페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다리가 보였다.
댓글이 달려 있었다.
'오늘 밤 뵐 수 있을까요?'
30분 전 댓글.
서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게시물 주인 누구야?"
민혁이 프로필을 눌렀다.
'한지우.'
서진은 복도로 뛰어나갔다.
계단 입구.
벤치가 비어 있었다.
"지우 씨!"
대답이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로비.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단지 입구.
가로등 불빛만 깜빡였다.
서진은 핸드폰을 꺼냈다.
지우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끊겼다.
다시 걸었다.
받지 않았다.
"젠장."
서진은 민혁에게 전화했다.
"지우 씨 연락처 있지?"
"네. 조서에 적혀 있어요."
"주소 확인해봐."
"잠깐만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남구 논현동이요."
"몇 동?"
"래미안 아파트 103동."
"알았어."
전화를 끊었다.
# 본능의 사냥꾼 (위기부)
차 키를 움켜쥐었다.
주차장까지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찼다.
시야가 흔들렸다.
'진정해.'
차 문을 열었다.
시동을 걸었다.
핸들을 잡는 손이 떨렸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논현동.'
15분 거리.
액셀을 밟았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다.
그냥 지나쳤다.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미안.'
다시 지우에게 전화했다.
신호음.
받지 않았다.
"제발..."
핸들을 꺾었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깜빡였다.
시야 가장자리가 붉게 번졌다.
'안 돼. 지금은.'
주머니에서 알약통을 꺼냈다.
한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알약 두 개를 입에 넣었다.
씹지 않고 삼켰다.
쓴맛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심장이 두드렸다.
쿵. 쿵. 쿵.
귓속에서 맥박이 터졌다.
'괜찮아. 다 계획대로야.'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신호등 앞에서 멈췄다.
빨간불.
숨을 골랐다.
백미러를 봤다.
뒤에 차가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민혁이었다.
"형사님."
"왜?"
"CCTV 확인했어요."
"뭐 나왔어?"
"피해자 아파트 현관에 오후 7시쯤 남자가 들어갔어요."
서진의 손이 멈췄다.
"얼굴 나왔어?"
"모자 눌러쓰고 마스크 했어요."
"키는?"
"175 정도요."
"체형은?"
"보통이에요. 특징 없어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그게 다야?"
"아니요. 엘리베이터 CCTV도 봤는데."
민혁이 숨을 들이켰다.
"손에 뭔가 들고 있었어요."
"뭔데?"
"액자요."
서진의 발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급정거했다.
"액자?"
"네. 검은색 액자."
"크기는?"
"A4 정도."
침실에 있던 액자.
다리 사진이 들어 있던.
"범인이 직접 가져온 거야."
"네. 그리고 나갈 땐 빈손이었어요."
서진은 핸들을 움켜쥐었다.
"지금 어디야?"
"사무실이요."
"그 CCTV 파일 내 메일로 보내."
"네."
전화를 끊었다.
다시 액셀을 밟았다.
논현동까지 5분.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지우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길게 울렸다.
받지 않았다.
"왜 안 받아..."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세요? 연락 주세요.'**
전송 완료.
1분.
2분.
답장 없음.
심장이 빨라졌다.
쿵. 쿵. 쿵.
시야가 흔들렸다.
붉은 기운이 번졌다.
'아니야. 아직 아니야.'
알약이 효과가 없었다.
래미안 아파트 입구가 보였다.
차를 세웠다.
경비실 앞에 섰다.
"103동 어디예요?"
경비원이 창문을 열었다.
"저쪽이요."
손가락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뛰었다.
단지 안 가로등이 깜빡였다.
놀이터를 지나쳤다.
103동.
현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층수를 몰랐다.
다시 민혁에게 전화했다.
"몇 층이야?"
"12층이요."
"호수는?"
"1204호."
끊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들어갔다.
12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혔다.
상승.
심장이 귀를 두드렸다.
쿵. 쿵. 쿵.
엘리베이터 안 형광등이 깜빡였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창백했다.
눈동자 가장자리가 붉었다.
'제발.'
12층.
문이 열렸다.
복도로 나갔다.
1204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대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딩동. 딩동.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문이 열렸다.
지우였다.
"형사님?"
멀쩡했다.
서진은 숨을 내쉬었다.
"왜 전화 안 받았어요?"
"아, 핸드폰 진동으로 해놔서..."
지우가 미안한 얼굴로 웃었다.
"들어오실래요?"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었다.
거실이 보였다.
깨끗했다.
소파.
테이블.
TV.
전부 제자리.
"커피 드릴까요?"
"아니요."
서진은 거실을 둘러봤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커튼이 바람에 흔들렸다.
"혼자 사세요?"
"네."
지우가 소파에 앉았다.
"언니랑 같이 살다가 작년에 독립했어요."
서진은 창가로 갔다.
밖을 내려다봤다.
12층.
아래가 까마득했다.
"오늘 SNS 확인했어요?"
"네?"
지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계정에 댓글 달린 거 봤냐고요."
"아... 그거요?"
지우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상한 사람이 자꾸 댓글 달더라고요."
SNS 앱을 열었다.
서진에게 보여줬다.
오늘 올린 게시물.
카페 사진.
댓글.
'오늘 밤 뵐 수 있을까요?'
서진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답장했어요?"
"아니요. 무서워서."
"DM은?"
"확인 안 했어요."
서진은 핸드폰을 받았다.
DM 목록을 열었다.
'@silhouette_walker'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예쁜 다리네요.'
'자주 그 카페 가세요?'
'오늘 저녁 시간 있으세요?'
마지막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