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7,102자

당첨된 사랑의 번호

주인공: 이도준

형광등 불빛이 깜빡였다.

한서윤은 카운터에 팔꿈치를 괸 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토요일 밤 11시, 편의점은 텅 비어 있었다.

'아, 진짜 오늘도 망했네.'

로또 추첨 방송이 끝난 지 두 시간. 당첨 번호를 확인하는 손님들이 몇 명 다녀갔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윤이 하품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었다.

"...로또?"

구겨진 용지 한 장. 냉장고 앞 바닥에 버려진 것처럼 놓여 있었다.

서윤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가 주웠다. 1221회. 오늘 추첨분이었다.

'누가 떨어뜨렸나.'

별 생각 없이 핸드폰 화면과 대조했다. 장난삼아. 그냥.

첫 번째 번호. 일치.

두 번째도.

세 번째.

'어?'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전부 맞았다.

"...헐."

용지를 쥔 손이 떨렸다. 형광등 불빛 아래 숫자들이 일렁였다.

327억.

1등 당첨금.

'이게... 진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번호를 하나씩, 천천히. 손끝이 축축해졌다.

틀림없었다.

서윤은 용지를 카운터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미쳤네, 진짜 미쳤어.'

327억이면 뭘 할 수 있을까. 월세 걱정 안 해도 되고, 알바 세 개 뛰지 않아도 되고, 엄마 병원비도...

"잠깐."

서윤은 제자리에 멈췄다.

이건 내 거 아니잖아.

누가 떨어뜨린 거잖아.

'...주인을 찾아줘야 하나?'

양심이 목을 조였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주인이 누군데? CCTV 확인해? 며칠 치 다 돌려봐? 그 사람이 정말 주인이라는 보장은?'

손이 다시 용지로 향했다.

그때였다.

띵동—

편의점 문이 열렸다.

서윤은 화들짝 놀라 용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들어온 사람은 남자였다.

검은 코트, 짙은 눈썹, 차가운 인상.

그는 카운터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발소리마저 조용했다.

"...혹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단조로웠다.

"로또 용지 못 보셨나요?"

서윤의 숨이 멎었다.

'설마.'

남자의 시선이 서윤의 주머니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용지 끝으로.

"그거."

그가 말했다.

"제 겁니다."

---

# Part 2: 전개

서윤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예?"

"로또 용지요."

남자가 턱으로 주머니를 가리켰다.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서윤은 억지로 웃었다.

"아, 이거요?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주웠는데..."

"그게 제 겁니다."

"...증거 있으세요?"

말이 너무 빨리 튀어나왔다. 남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며칠 전에 여기서 샀어요. 기억 안 나세요?"

"저 매일 수백 명 상대하는데 어떻게 기억해요."

서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손은 여전히 주머니를 감싸 쥐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CCTV 확인하면 되겠네요."

"삭제됐어요. 일주일 지나면 자동으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남자의 시선이 서윤을 뚫었다.

'왜 이렇게 눈빛이 무서워...'

서윤은 침을 삼켰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당첨됐나 보네요."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뭐?"

"그 용지. 확인하셨죠?"

서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아니, 그게..."

"괜찮아요."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제지하듯.

"별로 상관없는데요."

"예?"

"그냥 가지세요."

서윤은 귀를 의심했다.

327억이라고. 327억을 그냥 가지라고?

"...장난해요?"

"아니요."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나가려는 것 같았다.

서윤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게 뭐야. 이 사람 진짜 이상한데?'

돈에 관심 없는 척? 아니면 정말 부자? 아니면 사기꾼?

남자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서윤은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코트 자락이 흔들렸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본능이 속삭였다.

서윤은 카운터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잠깐만요!"

남자의 팔을 잡았다. 코트 소매가 손에 잡혔다.

남자가 멈췄다.

돌아본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귀 끝이 붉어져 있었다.

"...왜요."

"이거, 정말 당신 거 맞아요?"

서윤이 용지를 꺼내 들었다. 손이 떨렸다.

남자는 용지를 보지 않았다. 서윤의 눈을 봤다.

"맞아요."

"그럼 왜 그냥 가요? 327억이라고요. 327억!"

"...별로 필요 없어서요."

"미쳤어요?"

서윤의 목소리가 커졌다. 남자의 눈이 흔들렸다.

"필요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로또를 왜 사요, 그럼?"

"...그냥."

"그냥?"

# Part 2: 전개

남자가 서윤의 손을 내려다봤다.

코트 소매를 움켜쥔 손. 떨리고 있었다.

"놓아주시겠어요."

"아니요."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손에 더 힘을 줬다.

"설명해 주세요. 왜 그냥 가려는 건지."

"...별로 할 말이 없는데요."

"거짓말."

서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첨된 거 알면서 포기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것도 327억을."

"그게 당신한테 왜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서윤이 소리쳤다. 편의점 유리창에 목소리가 부딪혔다.

"당신이 진짜 주인이면 제가 도둑이 되잖아요. 이거 들고 당첨금 타러 가면... 그게 사기라고요."

남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생각보다 정직하네요."

"비웃는 거예요?"

"아니요."

남자가 한 발짝 다가섰다. 서윤의 손이 저절로 풀렸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코트에서 은은한 향이 났다. 비싼 향수 냄새.

'이 사람... 보통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서윤은 뒤로 물러섰다. 등이 편의점 유리문에 닿았다.

남자는 멈췄다. 서윤과 한 뼘 정도 떨어진 거리.

"제안이 있어요."

"...뭔데요."

"일단 그 용지, 당신이 맡아두세요."

서윤의 눈이 커졌다.

"예?"

"대신 내일 아침에 같이 판매점 가요. 구매 기록 확인하고."

"그래서요?"

"진짜 제 거면 반반 나눠요."

서윤은 숨이 막혔다.

반반? 163억?

"...미쳤어요, 진짜?"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하지만 귀 끝이 또 붉어지고 있었다.

'왜 저래. 부끄러운 거야?'

서윤은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무표정한 듯하지만, 뭔가 어색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당신 이상해요."

"별로 상관없는데요."

남자가 시선을 피했다.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서윤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재밌네, 이 사람.'

그때였다.

띵동—

편의점 문이 열렸다.

정장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인상이 날카로웠다.

"도준 형님."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눈은 웃지 않았다.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서윤 앞의 남자—도준—가 고개를 돌렸다.

"...민재야."

"비서실에서 난리 났어요. 스케줄 다 취소하고 어디 가신 거예요?"

민재가 서윤을 힐끗 봤다.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혹시 이 분과... 무슨 일이라도?"

"별일 아닙니다."

도준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민재는 픽 웃었다.

"그래요? 형님이 편의점 앞에서 한 시간째 서 계신 게 별일 아니라고요?"

서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비서실? 스케줄?'

뭔가 이상했다.

민재가 명함을 꺼내 서윤에게 내밀었다.

"혹시 형님한테 무슨 제안 받으셨으면, 저한테도 연락 주세요."

"...예?"

"더 좋은 조건 드릴 수 있습니다."

명함에는 '도현그룹 기획실 강민재'라고 적혀 있었다.

도현그룹.

서윤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재벌이네. 그것도 엄청 큰.'

도준이 민재의 팔을 잡아끌었다.

"나가."

"형님, 이러시면—"

"나가라고."

도준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민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알겠어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민재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침묵이 흘렀다.

서윤은 명함을 쥔 채 도준을 봤다.

"...재벌이에요?"

"그게 중요한가요."

"당연하죠!"

서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이 저절로 주머니로 갔다.

"그럼 327억 같은 건 정말 별것도 아니겠네요. 그래서 그렇게 쉽게..."

"아니에요."

도준이 끊어 말했다.

"돈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서윤이 한 발 다가섰다. 도준은 피하지 않았다.

"왜 저한테 이래요? 왜 반반 나누자고 해요? 그냥 가져가면 되잖아요. 당신 거라고 했으면서."

"...그냥."

"또 그냥?"

서윤은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설마 불쌍해서 그래요? 편의점 알바생 봐주는 거예요?"

"아니에요."

도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게 아니라..."

말이 끊겼다. 도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윤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귀가 빨개져 있었다. 목덜미도. 심지어 손등까지.

'...진심인가?'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도준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먼저 주웠으니까요."

"...예?"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떨어뜨린 것도, 당신이 주운 것도."

서윤은 숨을 참았다.

도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말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 정말 서툴구나.'

서윤은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내일 아침 몇 시?"

"아홉 시요."

"여기서 만나요?"

"네."

도준이 뒤로 물러섰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서윤은 그의 뒷모습을 봤다.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다음 날 아침.

서윤은 로또 판매점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추워..."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 시계를 봤다. 8시 57분.

'3분 남았네.'

주머니 속 용지가 묵직했다. 간밤에 몇 번이나 꺼내 봤는지 모른다.

327억.

숫자가 자꾸 어지러웠다.

'진짜 반반 나눠준다고?'

말도 안 됐다. 재벌이 편의점 알바한테 163억을.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나?'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 도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빨개진 귀. 떨리던 목소리.

'거짓말하는 얼굴은 아니었는데.'

그때였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일찍 오셨네요."

서윤이 휙 돌아봤다.

도준이 아니었다.

정장 차림의 남자. 어제 그 비서—강민재.

"...어?"

"안녕하세요, 한서윤 씨."

민재가 웃으며 다가왔다.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서윤은 한 발 물러섰다.

"도준 씨는요?"

"형님은 못 오신대요."

"...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재가 봉투를 내밀었다.

"대신 이거 전해드리래요."

"이게 뭔데요?"

"열어보세요."

서윤은 봉투를 뜯었다. 손이 떨렸다.

안에는 서류 뭉치와 명함이 들어 있었다.

서류 첫 장에 도준의 얼굴 사진이 박혀 있었다.

'이도준. 도현그룹 전무이사. 자산 2천억 추정.'

숨이 막혔다.

2천억?

"...이게 뭐예요. 장난해요?"

"사실이에요."

민재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형님, 재벌 2세예요. 그것도 후계자 1순위."

서윤의 손에서 서류가 떨어질 뻔했다.

민재가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어제 327억 반반 나누자고 했죠? 그거 진심 아니에요."

"...뭐?"

"형님이 원래 그래요. 관심 있으면 일단 접근하고, 질리면 버려요."

서윤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거짓말..."

"거짓말? 증거 드릴까요?"

민재가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서윤에게 보여줬다.

메시지였다.

'민재야, 오늘 약속 취소해. 귀찮아졌어.'

발신자는 이도준.

시간은 오늘 새벽 4시.

서윤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놀라셨어요?"

"아니요."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손이 떨렸지만 꾹 참았다.

"예상했어요. 재벌이 편의점 알바한테 163억 줄 리 없죠."

"똑똑하시네요."

민재가 봉투를 다시 가리켰다.

"그 안에 합의서 있어요. 서명하시면 위로금 천만 원 드릴게요."

"위로금?"

"로또 용지 돌려주시는 조건으로요."

서윤은 봉투를 내려다봤다.

합의서. 천만 원.

'...이게 끝이구나.'

가슴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민재가 한 발 다가섰다.

"한서윤 씨, 조언 하나 할게요."

"..."

"형님한테 관심 있으시면 접으세요. 그 사람 감정 표현 못 해서 주변 사람 다 상처받거든요."

서윤은 민재를 똑바로 봤다.

"당신도요?"

"...예?"

"당신도 상처받았어요? 도준 씨한테?"

민재의 표정이 굳었다.

서윤은 봉투를 민재에게 돌려줬다.

"필요 없어요."

"뭐?"

"천만 원. 안 받을게요."

민재의 눈이 가늘어졌다.

"후회하실 텐데요."

"상관없어요."

서윤은 주머니에서 용지를 꺼냈다. 손에 꽉 쥐었다.

"이거 도준 씨 거 맞아요. 제가 확인할게요. 직접."

"형님 안 오신다니까요."

"그럼 제가 찾아가죠."

서윤이 돌아섰다.

민재가 팔을 잡았다.

"한서윤 씨."

"놓으세요."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민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윤은 뿌리쳤다.

"손 대지 마세요!"

그때였다.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민재야."

서윤의 심장이 멎었다.

천천히 돌아봤다.

도준이 서 있었다.

검은 코트. 손에 커피 두 잔.

민재가 휙 돌아섰다.

"형님, 왜 오셨어요. 분명 취소하신다고—"

"입 닥쳐."

도준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민재는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준이 서윤에게 다가왔다. 민재를 지나칠 때 어깨가 부딪혔다.

민재는 비틀거렸다.

도준은 멈추지 않았다.

서윤 앞에 섰다.

거리가 가까웠다. 코트에서 어제 그 향이 났다.

"...늦어서 죄송해요."

도준이 커피를 내밀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윤은 커피를 받지 않았다.

"메시지 봤어요."

"...예?"

"새벽 4시에 보낸 거. 약속 취소한다고."

도준의 눈이 흔들렸다.

뒤에서 민재가 웃었다.

"들키셨네요, 형님."

도준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민재야, 넌 지금 뭐 하는 거야."

"사실대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사실?"

도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언제 약속 취소했어."

"메시지 보냈잖아요."

"그건—"

말이 끊겼다. 도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뭔가 이상했다.

도준의 표정.

총 7,102자 · 약 14분

- 1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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