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의 귀환
주인공: 차수정
검이 허공을 갈랐다.
차수정의 손목이 꺾이며 칼날이 회전했다. 지하 훈련장의 차가운 공기가 땀으로 젖은 목덜미를 스쳤다.
스승의 목을 벤 지 사흘째.
"핫."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검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콘크리트 바닥에 땀이 똑똑 떨어졌다.
'왜 안 떠나.'
김수철의 눈빛이 어른거렸다. 칼이 목에 닿던 순간, 그는 웃었다. 미소를 지었다.
말이 안 되잖아.
차수정은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쇳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수고했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황진영이었다.
차수정은 돌아서지 않았다.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보고 드릴 게 없습니다."
"그래? 난 있는데."
황진영이 천천히 다가왔다. 구두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는 차수정 옆에 서서 벽에 기댔다.
"과거 세대 폐기 작전, 완료됐어. 김수철까지 정리했으니 이제 방해물은 없지."
"...예."
"근데 왜 그렇게 어두워? 임무 성공했잖아."
차수정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황진영이 픽 웃었다.
"아, 스승이라 그래? 감상 좀 빠지나?"
"아닙니다."
"그럼 됐고."
황진영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차수정에게 내밀었다.
"새 임무야. 김수철이랑 같이 활동했던 은퇴 조직원들 명단. 셋 다 정리해."
차수정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또?'
"언제까지입니까."
"일주일. 천천히 해도 돼."
황진영이 차수정의 어깨를 툭 쳤다.
"넌 이제 내 오른팔이야. 과거는 깔끔하게 지워야 미래가 열리는 법이거든."
그는 뒤돌아 걸어 나갔다. 훈련장 문이 닫혔다.
차수정은 봉투를 쥔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스승님이 함께했던 사람들.'
손끝이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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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타깃의 집은 외곽의 낡은 단독주택이었다.
차수정은 담을 넘었다. 뒷마당에 빨래가 나부꼈다. 평범한 집이었다.
'이한석. 전직 조직원. 현재 세탁소 운영.'
창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거실에 불이 꺼져 있었다. TV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차수정은 유리를 살짝 밀었다. 잠금장치가 풀렸다. 몸을 들이밀어 안으로 들어갔다.
발소리를 죽였다.
거실을 지나 안방 쪽으로 향했다.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뭐?"
침대 위에 시체가 있었다.
이한석이었다. 목에 정확한 단검 자상. 피가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차수정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 방식은.'
김수철의 시그니처 킬링이었다.
목 좌측 경동맥 3cm 깊이. 단칼에 끝내는 방식. 조직에서 김수철만 쓰던 기술.
"말도 안 돼."
차수정은 시체 옆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목 상처를 확인했다.
각도, 깊이, 모두 일치했다.
'내가 죽였는데.'
분명 김수철의 심장을 찔렀다. 칼이 갈비뼈 사이로 들어가는 감촉까지 생생했다.
그런데 이건 뭐야.
차수정은 뒤로 물러났다. 등이 벽에 닿았다.
'누가 흉내 낸 건가. 아니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설마 살아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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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타깃의 집은 도심의 오피스텔이었다.
차수정은 비상계단으로 올라갔다. 5층. 복도가 조용했다.
'박민재. 전직 조직원. 현재 중고차 딜러.'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전자키를 해킹해 문을 열었다.
현관에 신발이 어질러져 있었다.
차수정은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쪽에서 냄새가 났다. 피 냄새.
'또?'
심장이 빨라졌다.
거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박민재가 쓰러져 있었다. 목에 똑같은 상처. 피가 소파를 타고 흘러내렸다.
차수정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이건..."
무릎이 꺾였다. 벽에 손을 짚었다.
'두 번은 우연이 아니야.'
똑같은 방식. 똑같은 각도. 김수철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살인.
차수정은 시체 옆으로 다가가 목을 확인했다. 칼이 들어간 깊이까지 정확했다.
"살아있다..."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손이 떨렸다.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내가 실수한 건가. 급소를 빗나간 건가.'
그날 밤이 떠올랐다. 버려진 낚시터. 스승이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
"찔러, 수정아."
김수철이 말했다.
"이게 네 마지막 시험이야."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을 향해 밀어 넣었다. 갈비뼈가 느껴졌다. 더 깊이. 끝까지.
김수철이 무릎을 꺾었다. 피가 입가로 흘렀다.
"잘했어."
그가 웃었다.
그리고 쓰러졌다.
'분명 죽었어. 맥박도 끊겼어.'
차수정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창문 밖을 봤다.
도심의 불빛이 깜빡였다.
'스승님이 살아계신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서움과 기대가 뒤섞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황진영이었다.
"어떻게 돼가?"
"...첫 번째 타깃, 이미 처리됐습니다."
"뭐?"
"누군가 먼저 죽였습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식은?"
"김수철 스타일입니다."
황진영이 낮게 웃었다.
"누가 장난치는 거야. 모방범이겠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타깃 위치 보낼게. 거기서 범인 잡아."
전화가 끊겼다.
차수정은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곧 메시지가 왔다.
'강남구 뒷골목. 폐건물 3층.'
---
밤 11시.
차수정은 골목 입구에 섰다.
가로등이 깜빡거렸다. 폐건물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세 번째 타깃. 최영수. 전직 조직원.'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 건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랐다. 2층, 3층.
복도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차수정은 숨을 죽였다. 벽에 붙어 천천히 다가갔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최영수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목에 같은 상처.
그리고.
그 옆에 누군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 뒷모습.
차수정의 심장이 멎었다.
'스승님.'
김수철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차수정과 눈이 마주쳤다.
"왔구나."
낮은 목소리.
차수정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손이 떨렸다. 단검을 뽑았다.
"어떻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김수철이 한 걸음 다가왔다.
"심장 1cm 옆을 찔렀더라. 고맙게도."
"거짓말입니다."
"네 손이 떨렸어, 수정아."
차수정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떨렸나. 그때 내가.'
김수철이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이거 받아."
"뭡니까."
"황진영이 네게 숨긴 것들. 네 부모님 죽음의 진실도 들어 있어."
차수정의 손이 멈췄다.
"...부모님?"
"조직이 죽인 거야. 황진영 명령으로."
숨이 막혔다.
김수철이 USB를 차수정 손에 쥐여줬다. 그의 손이 따뜻했다.
"넌 이용당한 거야. 처음부터."
"왜 이제야 말씀하십니까."
"살아야 했으니까."
차수정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김수철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선택해. 진실을 알고 싶은지, 모른 척 살고 싶은지."
그때였다.
골목 양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
김수철이 창문을 봤다. 검은 옷을 입은 조직원들이 건물을 포위했다.
"황진영이 눈치챘나 보네."
그가 차수정을 뒤로 밀었다.
"가."
"스승님."
"USB 들고 가라고."
김수철이 창문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유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3층 높이. 몸이 허공에 떴다.
차수정은 움직이지 못했다.
'뛰어내렸어.'
김수철이 바닥에 착지했다. 무릎을 굽혀 충격을 흡수했다. 조직원 둘이 달려들었다.
김수철의 칼이 번쩍였다.
첫 번째 목. 두 번째 가슴.
피가 튀었다.
차수정은 USB를 쥔 채 창가로 다가갔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김수철이 골목을 달렸다. 뒤에서 조직원 넷이 쫓았다.
'스승님.'
뛰어내려야 했다. 도와야 했다.
하지만 다리가 떨렸다.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게 목에 닿았다.
칼날이었다.
"움직이지 마."
낮은 목소리.
여자였다.
차수정은 숨을 멈췄다. 칼날이 피부를 눌렀다.
"누구."
"오랜만이야, 수정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목소리.'
아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죽었어야 할 사람.
"...서연 선배?"
칼을 든 여자가 픽 웃었다.
"기억하네."
차수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칼날이 목을 따라 움직였다.
서연이었다.
5년 전 조직을 떠난 전설. 김수철의 첫 번째 제자. 황진영이 '사고사'로 처리했다던 그 사람.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믿으라고 했으니까."
서연이 차수정의 손목을 잡았다. USB를 빼앗았다.
"이거 받았구나."
"돌려주십시오."
"안 돼."
서연이 USB를 주머니에 넣었다. 칼을 거두지 않았다.
"넌 아직 몰라도 돼. 알면 죽어."
"무슨 소립니까."
"USB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 조직 배후 명단. 재벌, 정치인, 검사. 다 들어있어."
차수정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네 부모님 죽인 사람 이름도."
숨이 막혔다.
서연이 차수정을 밀었다. 벽에 등이 부딪혔다.
"황진영 혼자 한 게 아냐. 위에서 지시 내려왔어. 네 아버지가 조직 비리 알아챘거든."
"거짓말."
"네 아버진 경찰이었잖아. 조직 추적하다 죽었어. 교통사고로 위장했고."
차수정의 눈앞이 흐려졌다.
'아버지가.'
기억이 떠올랐다. 12살 때. 아버지가 퇴근하지 않던 날.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 주저앉던 모습.
"사고였대. 트럭이..."
어머니가 울었다.
한 달 뒤 어머니도 죽었다. 가스 누출 사고.
"어머니도?"
"당연하지. 입 막으려고."
서연이 창문을 봤다. 아래 골목이 조용해졌다.
"김수철은 도망쳤어. 넌 여기 남아."
"왜 저를 안 죽입니까."
서연이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차가웠다.
"넌 내 후배니까. 그리고 필요해."
"뭐가."
"황진영 죽이는 데."
---
서연이 차수정을 끌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뒷골목. 검은 승용차가 대기 중이었다.
"타."
차수정은 뒷좌석에 탔다. 서연이 운전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했다.
"어디 갑니까."
"안전가옥. 김수철 기다리는 곳."
"스승님이 살아계신 거 알고 있었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살렸는데."
차수정은 주먹을 쥐었다.
"5년 전부터 계획한 겁니까."
"그래. 황진영 권력 잡는 거 지켜봤어. 증거 모으면서."
차가 한강대교를 건넜다. 강물이 검게 흘렀다.
서연이 백미러로 차수정을 봤다.
"넌 황진영한테 이용당했어.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조직에 있어?"
차수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일까.'
스스로도 몰랐다. 부모님 원수를 모르고 살았다. 그 사람 밑에서 칼을 휘둘렀다.
"넌 복수해야 돼."
서연이 말했다.
"안 그러면 평생 후회해."
차수정은 창밖을 봤다. 도심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복수.'
손끝이 저렸다.
안전가옥은 강북의 폐공장이었다.
녹슨 철문. 깨진 유리창.
차수정은 서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시멘트 바닥에 발소리가 울렸다.
"여기서 기다려."
서연이 안쪽 방을 가리켰다.
문을 열자 김수철이 서 있었다.
"데려왔구나."
"USB는 뺏었어요."
서연이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김수철에게 건넸다.
차수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처음부터 짜고 치신 겁니까."
김수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사과 따윈 필요 없습니다."
차수정이 단검을 뽑았다. 김수철을 겨눴다.
"진실이 뭡니까. 다 말하십시오."
김수철은 칼을 피하지 않았다.
"네 아버지 이름은 차동혁. 서울청 광역수사대 경위였어."
차수정의 손이 굳었다.
"2년간 조직 추적했지. 뒷배경까지 파고들었고."
"그래서 죽였습니까."
"황진영 위에 있는 놈들이 지시했어. 난 그때 알았어. 조직이 얼마나 깊은지."
김수철이 USB를 들었다.
"여기 다 들어있어. 재벌 3세, 국회의원 여섯, 검사장 둘. 조직은 그 놈들 청부업체였던 거야."
차수정의 입술이 떨렸다.
"증거가 있습니까."
"통화 녹취, 계좌 추적, 암살 지시서. 20년치."
서연이 끼어들었다.
"황진영은 말단이야. 진짜 적은 위에 있어."
차수정은 칼을 내렸다.
'아버지.'
목구멍이 메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김수철이 차수정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선택해. 복수할 거냐, 도망칠 거냐."
"...복수."
"각오는 됐어?"
차수정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달라졌다.
"죽여도 상관없습니까."
"다 죽여."
서연이 웃었다.
"그래야 우리 셋이 산다."
그때 김수철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황진영.
김수철이 전화를 받았다.
"왜."
"김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황진영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흘렀다.
"차수정이 거기 있죠?"
김수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USB 소용없습니다. 이미 백업 다 지웠거든요."
"거짓말."
"확인해보시죠."
김수철이 노트북을 켰다. USB를 꽂았다.
파일이 열렸다.
텅 비어 있었다.
"제가 서연 선배 추적한 지 두 달 됐습니다. USB 바꿔치기한 건 일주일 전이고요."
차수정의 얼굴이 굳었다.
서연이 노트북을 뺏어 확인했다.
"미친."
황진영이 웃었다.
"세 분 다 계시네요. 좋습니다. 같이 정리하죠."
전화가 끊겼다.
김수철이 창문을 봤다.
공장 밖에 차 불빛이 보였다. 한 대, 두 대, 세 대.
다섯 대가 공장을 포위했다.
"포위당했어."
서연이 총을 꺼냈다.
차수정은 단검을 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짜 USB는 어디 있지.'
김수철이 뒷문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빠져."
"스승님은요."
"난 여기 남아서 시간 번다."
"안 됩니다."
"가라고."
김수철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 최소 열 명 이상.
서연이 차수정의 팔을 잡았다.
"따라와."
"선배님."
"김수철은 안 죽어. 우린 죽고."
서연이 차수정을 끌고 뒷문으로 달렸다.
문을 열자 골목이 보였다.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서연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크윽."
서연이 비틀거렸다. 차수정이 붙잡았다.
골목 끝에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양복. 총을 든 손.
황진영이었다.
"어디 가시게요."
그가 총구를 차수정에게 겨눴다.
"수정아. 넌 날 배신했어."
차수정은 서연을 뒤로 밀었다. 단검을 들었다.
"배신은 당신이 먼저 했습니다."
"뭘 배신해? 난 널 키웠는데."
"제 부모님 죽인 주제에."
황진영이 픽 웃었다.
"그거 알았구나. 김수철한테 들었어?"
차수정은 황진영을 똑바로 봤다.
"네."
"그 새끼 거짓말쟁이야. 증거도 없어."
"USB 봤습니다."
황진영이 총구를 내렸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빈 파일 봤겠지. 진짜는 따로 있어."
뒤에서 서연이 신음했다.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차수정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뺐다. 숨을 고르게 쉬었다.
'3미터. 총알이 빠르다. 하지만.'
황진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수정아. 마지막으로 묻는다. 나랑 갈래, 저 배신자들이랑 죽을래?"
"...질문이 이상합니다."
"뭐가."
"선택지가 둘뿐이면 선택이 아니니까요."
차수정이 단검을 던졌다.
황진영이 고개를 숙였다. 칼이 빗나갔다.
그 순간 차수정이 바닥을 굴렀다. 황진영의 다리를 쳤다.
"크윽!"
황진영이 휘청였다.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차수정이 총을 낚아챘다. 황진영을 겨눴다.
"안 움직이십시오."
황진영이 손을 들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총 쏠 수 있어?"
"...해본 적 없습니다."
"그럼 못 쏘겠네."
황진영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수정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황진영 옆 벽을 뚫었다.
"다음은 안 빗나갑니다."
황진영의 손이 멈췄다.
"...배짱 하나는 늘었네."
공장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김수철의 목소리였다.
차수정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스승님.'
황진영이 웃었다.
"김수철 죽었다. 이제 넌 혼자야."
"거짓말."
"확인해볼래?"
차수정은 총을 겨눈 채 뒤로 물러났다. 서연을 일으켰다.
"설 수 있습니까."
"...어깨만 스친 거야."
서연이 일어났다. 얼굴이 창백했다.
황진영이 손목시계를 봤다.
"30초 안에 조직원들 나온다. 그럼 넌 끝이야."
차수정은 골목 끝을 봤다. 어둠뿐이었다.
'도망칠 수 있나.'
서연이 속삭였다.
"하수구. 왼쪽 10미터."
차수정이 고개를 돌렸다. 골목 벽에 철제 뚜껑이 보였다.
"뛰어."
서연이 차수정을 밀었다.
두 사람이 달렸다. 황진영이 소리쳤다.
"쏴!"
총성이 울렸다. 벽에 총알이 박혔다.
차수정이 하수구 뚜껑을 열었다. 어둠이 입을 벌렸다.
"들어가십시오."
"넌?"
"뒤따라갑니다."
서연이 뛰어내렸다. 물 튀는 소리가 들렸다.
차수정이 뒤를 돌았다. 황진영이 5미터 앞에 서 있었다.
총을 들지 않았다. 맨손이었다.
"도망 안 쳐?"
"...질문 있습니다."
"뭔데."
"제 아버지 마지막 말이 뭐였습니까."
황진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걸 왜 물어."
"대답하십시오."
"'수정이 부탁한다'였어. 그게 마지막이었어."
차수정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손에 쥔 총이 떨렸다.
황진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래서 난 널 키웠어. 아버지 유언 지킨 거야."
"...거짓말 마십시오."
"진짜야. 넌 내가 지킨 거야. 조직에서 죽이려 했거든."
차수정의 손이 멈췄다.
'무슨 소리지.'
황진영이 또 한 걸음 다가왔다.
"네 아버지 죽인 건 맞아. 하지만 널 살린 것도 나야."
"왜 그랬습니까."
"...빚이 있어서."
황진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공장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조직원들이 나오고 있었다.
황진영이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이야. 나랑 가. 진실 다 알려줄게."
차수정은 총을 내렸다.
'스승님은. 진짜 죽었을까.'
하수구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정아! 빨리!**"
차수정이 뒤로 물러났다. 하수구 입구에 섰다.
황진영이 달려왔다.
차수정이 뛰어내렸다.
어둠이 삼켰다.
수구 바닥에 발이 닿았다.
물이 무릎까지 찼다. 차갑고 끈적했다.
서연이 차수정의 팔을 잡았다.
"이쪽."
어둠 속에서 서연이 앞장섰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차수정은 뒤를 돌아봤다.
하수구 입구로 빛이 쏟아졌다. 황진영의 실루엣이 보였다.
"차수정!"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넘긴 게 있어! USB 아냐!"
차수정의 발이 멈췄다.
서연이 손목을 잡아당겼다.
"듣지 마."
"하지만."
"전부 거짓말이야."
하수구 위에서 총성이 울렸다. 물에 총알이 박혔다.
두 사람이 달렸다.
하수구가 갈라지는 지점에 섰다. 왼쪽, 오른쪽.
서연이 왼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스승님은요."
"...모른다."
서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김수철 죽었을 수도 있어."
차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안 죽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연이 총을 꺼냈다. 한 손으로 들었다.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난 여기 남아서 막는다."
"선배님."
"넌 가. 오른쪽 끝까지 가면 출구 있어."
"같이 갑시다."
"안 돼."
서연이 차수정을 밀었다.
"넌 살아야 해. 복수 안 끝났잖아."
차수정의 목이 조였다.
'또 혼자 남는다.'
발소리가 10미터 앞까지 왔다.
서연이 총을 들어 올렸다.
"가!"
차수정이 뛰었다.
오른쪽 하수구로 몸을 던졌다.
뒤에서 총성이 터졌다. 세 발, 네 발.
비명이 들렸다. 서연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차수정은 멈추지 않았다.
어둠 속을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찼다.
출구가 보였다. 희미한 빛.
계단을 올라 뚜껑을 밀었다.
밖은 골목이었다. 새벽 공기가 폐를 찔렀다.
차수정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이 떨렸다. 총을 떨어뜨렸다.
'스승님. 서연 선배.'
눈물이 났다. 참았다.
주머니에서 뭔가 만져졌다.
꺼내 봤다.
USB였다.
'이게 왜 내 주머니에.'
언제 들어온 건지 몰랐다.
김수철이 넣은 걸까. 서연이 넣은 걸까.
USB를 쥐었다. 플라스틱이 손바닥에 눌렸다.
발소리가 들렸다.
차수정이 고개를 들었다.
골목 입구에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가로등 불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차수정의 숨이 멎었다.
"...아버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수정아."
그의 목소리는 차수정이 기억하는 것과 달랐다.
낮고, 차갑고, 낯설었다.
남자가 웃었다.
"USB 잘 받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