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7,069자

그가 돌아온 이유

주인공: 이서하

찬 바람이 목을 조였다.

"민준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였다. 천장의 형광등이 깜빡이고, 산소호흡기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렸다.

'왜 날 버렸어.'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이곳에 없었으니까.

손끝이 차가워졌다. 감각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 사랑 안 해.'

어둠이 밀려왔다.

그런데.

따뜻했다.

얼굴에 닿는 게 차가운 공기가 아니라 햇살이었다. 눈을 떴다. 하얀 천장 대신 파란 하늘이 보였다.

"...뭐지?"

벤치였다. 나무 벤치.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었다. 손에 뭔가 들려 있었다. 내려다봤다.

졸업식 팜플렛.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게 뭐야.'

주변을 둘러봤다. 캠퍼스였다. 벚꽃이 흩날렸다. 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누군가 "졸업 축하해!"라고 외쳤다.

손을 들어봤다. 떨렸다. 병들어 마른 손이 아니었다. 통통하고 젊은 손이었다.

'이게... 진짜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팜플렛을 펼쳤다. 날짜가 적혀 있었다.

5년 전.

민준을 처음 만난 그날.

"하..."

웃음이 나왔다. 미친 사람처럼.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물이 흘렀다.

'돌아왔어. 진짜 돌아왔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걸을 수 있었다. 뛸 수도 있었다. 숨이 찼지만 아프지 않았다.

'이번엔 달라.'

주먹을 쥐었다.

'절대 사랑 안 해. 그 사람 인생, 내가 망가뜨릴 거야.'

***

일주일이 지났다.

서하는 거울 앞에 섰다. 정장 차림이었다. 화장은 연하게 했다. 순해 보이는 게 좋았다. 민준은 그런 걸 좋아했으니까.

'아니지. 좋아했었지.'

과거형이었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 민준 입사일: 4월 3일

- 회사 위치: 강남역 3번 출구

- 점심시간: 12시 30분

전생의 기억을 모조리 적어뒀다.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프로젝트를 했는지. 언제 윤채린을 만났는지.

'다 알아. 내가 다 기억해.'

수첩을 덮었다. 가방에 넣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

강남역은 복잡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3번 출구로 나왔다. 건물이 보였다. 민준이 입사할 회사. 유리로 된 고층 빌딩이었다.

서하는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창가 쪽이었다. 회사 정문이 보이는 자리.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맛이 혀를 감쌌다.

시계를 봤다. 12시 20분.

곧 나올 시간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진짜 보게 되는 거야. 5년 전 민준을.'

그때였다.

유리문이 열렸다.

남자가 나왔다.

검은 정장. 흰 셔츠. 넥타이는 조금 헐겁게 맨 상태. 키가 컸다. 어깨가 넓었다.

강민준.

숨이 멎었다.

저렇게 젊었나. 저렇게 빛났나.

'...미친.'

컵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게 느껴졌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야. 감정 없어. 난 이제 아무 감정도 없어.'

거짓말이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죽기 직전까지 그를 원망했는데. 지금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민준은 동료들과 함께 걸었다.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너만 행복했지.'

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들었다.

밖으로 나갔다.

민준 일행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서하는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한식당이었다.

'기억나. 여기서 자주 먹었지.'

서하는 잠시 망설였다. 들어갈까. 아니면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

'지금은 아니야.'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저기요"

멈칫했다. 돌아봤다.

민준이 서 있었다.

혼자였다. 식당 밖에. 그는 서하를 보고 있었다.

"...네?"

목소리가 떨렸다. 왜 나온 거지. 왜 날 보고 있지.

민준이 한 발 다가왔다. 표정이 이상했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확인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

그가 입을 열었다.

"서하씨... 맞죠?"

세상이 멈췄다.

"...예?"

"이서하씨."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서하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떻게. 내가 이름을 말한 적이 없는데.'

"저... 죄송하지만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제 이름을 어떻게..."

민준이 다가왔다. 가까워졌다. 그의 눈이 보였다. 떨리고 있었다.

"기억..."

그가 속삭였다.

"기억 나세요?"

***

카페였다.

아까 그 카페. 서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민준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서하는 컵을 들었다 내려놨다 반복했다.

민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도 돌아왔어요."

서하의 손이 멈췄다. 컵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무슨 말씀이세요."

"회귀했다는 거. 서하씨랑 똑같이."

목소리가 낮았다. 확신에 차 있었다.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민준을 똑바로 봤다.

'거짓말.'

하지만 그의 눈은 진지했다. 떨리고 있었다.

"증명할게요."

민준이 말했다.

"서하씨는 매운 걸 못 먹어요. 근데 억지로 먹죠. 저랑 같이 있을 때."

심장이 철렁했다.

"떡볶이 먹고 나서 항상 우유 사 마셨어요. 편의점에서. 바나나맛."

"그, 그게 아니라..."

"첫 데이트 때 비 왔어요. 서하씨 구두가 젖어서 제 양말 빌려줬죠."

"......"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하씨는 죽기 전에 절 원망했어요. 맞죠?"

숨이 막혔다.

"어떻게..."

"저도 봤으니까요. 서하씨 마지막 모습."

민준이 고개를 숙였다.

"병실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었어요."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 왔었어? 내가 죽을 때?'

"왜 안 들어왔어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끝까지 비겁했어요."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다예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봤다. 신경 쓰지 않았다.

"죄송하지만요, 저 지금 너무 화나거든요."

민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올려다봤다.

"화내세요. 당연해요."

"당연하긴요."

서하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다신 안 만날 거예요. 이번 생에선."

돌아섰다.

"서하씨."

뒤에서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카페 문을 밀고 나왔다.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왜 그 사람까지 돌아온 거야.'

복수하려 했는데. 혼자 행복하게 사는 그를 망가뜨리려 했는데.

'같이 돌아오면 어떡해.'

핸드폰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SNS를 열었다.

민준의 계정.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벤치 사진. 캡션은 '이제야 다시 만났네.'

'이 벤치...'

확대했다. 배경이 보였다. 캠퍼스였다. 서하가 깨어난 바로 그곳.

'설마.'

댓글을 내렸다. 업로드 시간이 적혀 있었다.

일주일 전.

서하가 회귀한 바로 그날.

***

집으로 돌아왔다.

원룸이었다. 좁았지만 깨끗했다. 전생에서 살던 그 집.

침대에 쓰러졌다. 천장을 봤다.

'그 사람도 알고 있어. 내가 회귀했다는 걸.'

머리가 복잡했다. 계획이 틀어졌다.

'어떻게 하지.'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였다.

모르는 번호.

열어봤다.

- 내일 만나요. 할 말이 있어요. - 민준

손가락이 멈췄다.

지울까. 차단할까.

'아니야.'

서하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 왜 돌아왔어요?

전송했다.

답장은 금방 왔다.

- 서하씨 때문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거짓말 마세요.

- 거짓말 아니에요. 전생에서 후회했어요. 매일.

- 그럼 왜 날 버렸어요.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띵.

- 내일 얘기할게요. 문자론 길어요.

서하는 핸드폰을 던졌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하지만 궁금했다. 진짜 이유가 뭔지.

'하루만. 딱 하루만 들어보자.'

***

다음 날.

약속 장소는 한강공원이었다.

서하는 일찍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날렸다.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봤다.

민준이었다.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청바지에 검은 재킷. 손에 뭔가 들고 있었다.

종이봉투.

"이거."

민준이 건넸다.

"뭐예요?"

"바나나맛 우유."

서하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안을 들여다봤다. 정말 우유였다.

"...기억하네요."

"다 기억해요."

민준이 옆에 앉았다. 거리를 뒀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얘기해줄게요. 왜 서하씨를 떠났는지."

서하는 우유를 꺼냈다. 빨대를 꽂았다. 한 모금 마셨다.

달았다.

"들을 준비됐어요."

민준은 한강을 봤다. 물이 흘렀다.

"전생에서... 채린 아버지가 절 협박했어요."

"...뭐라고요?"

"서하씨랑 헤어지지 않으면 서하씨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고."

우유가 목에 걸렸다. 기침이 났다.

"그게 무슨..."

"서하씨 아버지 회사 기억나요? 작은 출판사."

기억났다. 아버지는 평생 그 회사를 키웠다.

"채린 아버지 계열사가 그 출판사 메인 거래처였어요. 계약 끊으면 바로 부도였죠."

민준이 주먹을 쥐었다.

"저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요."

서하가 쏘아붙였다.

"왜 혼자 결정해요.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물어봤으면 어쩔 건데요."

민준이 돌아봤다.

"서하씨는 아버지 회사 포기했을 거예요. 저랑 있으려고."

"......"

"그럴 거 알았어요. 그래서 못 말한 거예요."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서하는 우유팩을 구겼다.

"그게 이유예요? 그게 다예요?"

민준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에요."

"뭐가 더 있는데요."

"채린이가..."

말을 멈췄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협박만 한 게 아니에요. 서하씨를 직접 건드리려 했어요."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슨 소리예요."

"교통사고처럼 꾸미려 했대요. 제가 안 떠나면."

숨이 막혔다.

'미친.'

"그래서 도망친 거예요? 나 지키겠다고?"

"도망 아니에요."

민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제가 채린이 곁에 있으면 서하씨를 감시할 수 있었어요. 뭘 계획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럼 말을 하지."

서하가 벌떡 일어났다.

"죄송하지만요, 그딴 식으로 지키는 거 전혀 안 고마워요."

민준도 일어섰다. 한 걸음 다가왔다.

"알아요. 변명이란 거. 근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요."

"최선이요?"

서하가 비웃었다.

"최선은 나 혼자 아프게 죽는 거였어요?"

"......"

"당신 곁에서 행복한 채린 보면서 난 병실에서 죽어갔거든요."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게 최선이었어요? 정말?"

민준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서하를 봤다.

"미안해요."

"미안해서 뭐가 달라져요."

서하는 돌아섰다.

'이제 그만. 더 들으면 무너질 것 같아.'

***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진짜였을까. 민준 말이.'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냈다. 수첩 앱을 열었다.

- 윤채린 조사하기

타이핑하다 멈췄다.

'아니야. 직접 확인해야 해.'

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 채린은 언제 민준 회사에 나타났지.

'4월 말. 프로젝트 미팅 때.'

아직 2주 남았다.

'그 전에 먼저 움직이자.'

서하는 검색창을 열었다. 윤채린 아버지 회사를 쳤다.

대성그룹.

계열사 목록이 주르륵 떴다. 출판, 유통, 건설, 금융.

'아빠 회사랑 거래한 건... 유통 쪽.'

클릭했다. 담당자 정보를 찾았다.

이름이 보였다. 박재훈 이사.

'이 사람.'

전생에서 아버지가 통화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떨리던 손. 창백한 얼굴.

'계약 끊긴 게 이 사람 때문이었어.'

서하는 번호를 저장했다.

***

사흘 뒤.

서하는 대성유통 앞에 서 있었다.

고층 빌딩이었다. 유리창이 햇빛을 반사했다.

심호흡했다. 로비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에 다가갔다.

"박재훈 이사님 계신가요?"

직원이 쳐다봤다.

"예약 있으세요?"

"아뇨. 그게 아니라..."

어떻게 말하지. 고민하는데.

"서하씨?"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봤다.

민준이었다.

정장 차림이었다.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왜 여기..."

"미팅 있어요. 근데 서하씨는요?"

서하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들키면 안 되는데.'

민준이 다가왔다. 목소리를 낮췄다.

"채린 아버지 회사 맞죠. 여기."

"......"

"혼자 뭐 하려고요."

"상관없잖아요."

서하가 돌아섰다.

민준이 손목을 잡았다.

"위험해요."

"놔요."

"이 사람들 만만하게 봤다간 다쳐요."

서하는 손을 뿌리쳤다.

"죄송하지만요, 전 이제 다치는 것도 안 무서워요."

민준의 표정이 굳었다.

"...서하씨."

"전생에서 이미 다 다쳤거든요. 이번엔 내가 먼저 칼 쥘 거예요."

로비를 나갔다.

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손이 떨렸다.

'바보같이.'

왜 민준 앞에서 약해지는 거지. 왜 자꾸 흔들리는 거지.

핸드폰이 울렸다.

민준이었다. 받지 않았다.

또 울렸다. 또 씹었다.

문자가 왔다.

- 같이해요. 혼자 하지 말고.

손가락이 멈췄다.

- 왜요? 전생엔 혼자 했잖아요.

전송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

저녁.

원룸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여는데 이상했다.

잠금이 안 돼 있었다.

'분명 잠갔는데.'

천천히 문을 밀었다.

불이 켜져 있었다.

거실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여자였다.

긴 생머리. 하얀 얼굴. 붉은 입술.

윤채린.

심장이 멎었다.

"어머. 늦게 오시네요."

채린이 웃었다.

"기다렸잖아요."

서하는 문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도망칠 준비를 했다.

"어떻게 여기를..."

"오빠한테 들었어요. 이서하씨 집 주소."

오빠?

"민준 오빠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짓말."

"거짓말은요."

채린이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민준과의 카톡 화면이었다.

- 서하 주소 좀. 할 얘기 있어.

- 왜?

- 오빠가 알 필요 없잖아요. 그냥 줘요.

스크롤을 내렸다. 주소가 보였다.

서하의 집 주소.

"...미친."

"미친 건 오빠예요. 아직도 절 못 끊어내니까."

채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가왔다.

서하는 뒤로 물러났다. 등이 문에 닿았다.

"왜 왔어요."

"경고하러요

총 7,069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아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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