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7,067자

우리 얘기 좀 해

주인공: 서윤아

금요일 밤 10시.

"어?"

서윤아는 침대에 배를 깔고 누운 채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민준 오빠한테 온 카톡.

아니, 카톡이라기보단... 기획서?

[내일 데이트 일정 공유]

10:00 - 연남동 브런치 카페 '썬데이모닝' (예약 완료)

12:00 - 성수동 전시회 '빛의 순간들' (티켓 구매 완료)

14:00 - 한강 뚝섬 산책 (날씨 맑음 예상)

17:00 - 이태원 파스타 레스토랑 '라비타' (예약 완료)

윤아는 눈을 깜빡였다.

다시 깜빡였다.

"...미쳤나?"

손가락이 화면을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일정표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동 시간까지 계산되어 있었다. 지하철 2호선 환승 구간, 도보 12분, 예상 소요 시간 1시간 20분.

'아니 이 오빠 진짜...'

윤아는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좋아하긴 하는데.

진짜 좋아하긴 하는데.

가끔 이러면 숨이 막혔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민준: 혹시 못 오는 곳 있으면 미리 말해줘. 바로 플랜B로 변경할게.**

플랜B까지 있다고?

윤아는 이불을 걷어찼다. 발이 공중에서 두어 번 허우적거렸다.

"아 진짜!"

그때였다.

창문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윤아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까만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 위를 걷고 있었다.

"야옹~ 너 배고파?"

고양이는 윤아를 힐끗 보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윤아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이 반짝였다.

"어? 갑자기 생각났는데~"

손가락이 휴대폰을 두드렸다.

윤아: 오빠!!

윤아: 내일 새벽에 일출 보러 가면 안 돼??

윤아: 남산!!!

**윤아: 딱! 거기!**

답장은 3분 뒤에 왔다.

민준: ...새벽?

윤아: ㅇㅇ 5시 반쯤?

윤아: 일출 보면 진짜 예쁠 것 같아

**윤아: 어? 어때??**

민준: 그럼 브런치 예약은?

**윤아: 그건... 좀 늦춰?**

민준: 전시회 티켓이 12시 입장인데.

윤아: 아 그럼 일출 보고 바로 가면 되지!

민준: ...

점 세 개.

윤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 점 세 개의 의미를 너무 잘 알았다.

'아 내가 또...'

하지만 이미 머릿속은 남산 일출로 가득 찼다. 주황빛 하늘, 서울 야경, 민준 오빠 옆모습.

휴대폰이 울렸다.

**민준: 알았어. 5시 반에 남산 만나자.**

"헐 대박!"

윤아는 침대 위에서 폴짝 뛰었다.

***

토요일 새벽 5시 20분.

"으으..."

윤아는 알람을 끄고 눈을 비볐다.

왜 알람을 맞췄더라?

아, 맞다. 일출.

'아 맞아, 민준 오빠!'

부스스한 머리로 옷장을 열었다. 뭘 입지?

후드티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니트를 꺼냈다가 또 넣었다.

시계를 봤다. 5시 27분.

"헐!"

아무거나 집어 입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양말이 짝짝이인 건 계단을 내려가다 발견했다.

'뭐 어때, 어차피 어두운데.'

남산 케이블카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5시 35분.

민준은 이미 와 있었다.

"오빠!"

윤아는 우다다다 달려갔다. 민준은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5분 늦었어."

"미안~ 근데 5분은 괜찮지?"

"케이블카 첫차가 5시 반인데, 놓쳤어."

"...헐."

민준은 한숨을 쉬는 대신 윤아의 머리를 톡톡 쳤다.

"걸어 올라가자."

"걸어서?!"

"응. 30분이면 돼."

윤아는 민준의 뒷모습을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하아... 하아..."

숨이 턱까지 찼다. 민준은 멀쩡했다.

"오빠, 잠깐만."

"일출 시간 6시 12분인데.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알았어!"

윤아는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올랐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왜 일출을 보자고 했지?'

그때 민준의 손이 윤아 쪽으로 뻗어왔다.

"손."

"...응?"

"잡아."

윤아는 민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따뜻했다.

민준은 윤아를 천천히 끌어당기며 계단을 올랐다.

"오빠."

"응."

"나 또 이상한 거 제안한 거 같지?"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윤아의 손을 더 꽉 쥐었다.

***

남산 팔각정.

"우와..."

윤아는 난간에 기대어 서울 야경을 내려다봤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늘 아래, 건물들이 반짝였다.

민준은 배낭에서 돗자리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앉아."

"오빠 이것도 준비했어?"

"응. 원래 한강에서 쓰려고 했는데."

윤아는 돗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민준도 옆에 앉았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6시 12분까지 7분 남았어."

민준이 말했다. 윤아는 무릎을 껴안고 하늘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었다. 차가웠다.

"추워?"

"아니, 괜찮아."

# 우리, 오늘부터 1일 (2/3)

민준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5분 남았어."

"응..."

윤아는 무릎에 턱을 괴었다. 하늘 끝이 살짝 붉어지고 있었다.

'진짜 예쁘긴 하네.'

근데 왜 가슴이 답답할까.

민준은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마셔."

"뭔데?"

"핫초코. 네가 좋아하잖아."

윤아는 보온병 뚜껑을 받아 들었다. 따뜻했다.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게 목으로 넘어갔다.

"...오빠."

"왜?"

"이것도 원래 준비한 거야?"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 갈 때 마시려고."

윤아는 보온병 뚜껑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 끝이 시렸다.

'나 때문에 계획이 다 틀어졌는데...'

"오빠, 미안해."

"뭐가?"

"그냥... 다."

민준은 윤아 쪽을 돌아봤다. 윤아는 고개를 숙인 채 핫초코만 홀짝였다.

"윤아야."

"응?"

"나온다."

윤아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 끝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주황빛이 건물 옥상을 타고 번졌다. 구름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우와..."

윤아는 보온병 뚜껑을 내려놓고 난간으로 달려갔다.

"대박! 오빠, 진짜 예쁘다!"

민준도 천천히 일어나 윤아 옆에 섰다.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서울이 빛으로 가득 찼다.

윤아는 민준의 팔을 붙잡았다.

"오빠, 고마워."

"...응."

"내 말 들어줘서."

민준은 대답 대신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람이 또 불었다. 이번엔 따뜻했다.

***

오전 7시.

남산에서 내려온 두 사람은 케이블카 정류장 앞 편의점에 앉아 있었다.

윤아는 삼각김밥을 뜯으며 민준을 힐끗 봤다.

민준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심각했다.

"오빠, 뭐 해?"

"일정 수정 중."

"...아."

윤아는 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참치가 입안에서 퍼졌다.

민준의 손가락이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브런치는 10시 예약이니까 못 가고."

"응..."

"전시회는 12시 입장이니까 맞출 수 있는데."

"그럼 괜찮은 거 아냐?"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중간에 두 시간이 비어. 원래는 브런치 먹고 천천히 성수동 가려고 했거든."

윤아는 김밥을 삼키지 못하고 입안에 머금었다.

'아... 내가 또...'

"그냥 카페 가 있으면 안 돼?"

민준은 휴대폰 화면을 윤아에게 보여줬다.

[수정된 일정]

07:30 - 남산 하산

08:00 - 귀가 후 샤워

09:30 - 성수동 이동

11:00 - 카페 '어반브루' 대기

12:00 - 전시회 입장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윤아는 일정표를 보다가 민준 얼굴을 봤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었다. 어젯밤에 잠을 못 잔 걸까.

"오빠, 피곤하지?"

"괜찮아."

"진짜?"

"응."

거짓말이었다.

윤아는 알 수 있었다. 민준은 피곤할 때 말수가 줄었다.

김밥을 다시 한 입 베어 물었다. 목이 메었다.

'나 진짜... 왜 이러지.'

휴대폰이 울렸다. 민준의 휴대폰이었다.

민준은 화면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누구야?"

"회사..."

"회사? 토요일인데?"

민준은 전화를 받았다.

"네, 과장님."

윤아는 김밥을 내려놓고 민준을 바라봤다.

"...네. 지금요?"

민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알겠습니다. 한 시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민준은 휴대폰을 천천히 내렸다.

"윤아야."

"...응."

"미안한데, 회사 가봐야 할 것 같아."

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전시회는..."

"혼자 갈게."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미안해."

"아니야,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윤아는 웃으려 애썼다. 입꼬리가 떨렸다.

민준은 배낭을 메고 일어났다.

"저녁은 꼭 같이 먹자. 약속."

"응."

민준이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갔다.

윤아는 유리창 너머로 민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민준은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들었다.

윤아는 삼각김밥을 집어 들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씹었다.

삼켰다.

맛이 없었다.

***

오후 12시 30분.

성수동 전시회장.

윤아는 혼자 전시회를 돌았다.

'빛의 순간들'이라는 제목답게 사진들이 벽에 가득했다.

석양, 촛불, 가로등, 달빛.

다 예뻤다.

근데 재미없었다.

윤아는 한 사진 앞에 멈춰 섰다.

커플이 손을 잡고 석양을 바라보는 뒷모습이었다.

'...민준 오빠.'

휴대폰을 꺼냈다. 민준한테 온 메시지는 없었다.

대신 친구 지수한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지수: 야 너 오늘 민준이랑 데이트 아니었어?

윤아: ㅇㅇ

지수: 왜 혼자 전시회 인증 올려 ㅋㅋㅋ

윤아: 오빠 회사 갔어

**지수: 또? 요즘 너네

# 우리, 오늘부터 1일 (3/3)

**지수: 또? 요즘 너네 맨날 그러더라**

윤아는 답장을 쓰다 말고 지웠다.

뭐라고 써야 할까.

'응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전시회를 나왔다. 햇빛이 눈부셨다.

'이제 뭐 하지.'

원래 계획이라면 민준이랑 성수동 카페 가는 시간이었다.

발걸음이 저절로 카페 쪽으로 향했다.

***

'어반브루'.

민준이 예약해둔 카페였다.

윤아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원두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서 오세요."

"아... 저 예약했는데요. 강민준?"

직원이 태블릿을 확인했다.

"아, 2인 예약이시네요. 동행분은요?"

"...못 와요."

"그럼 1인으로 변경해드릴까요?"

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가 자리로 안내받았다. 2인 테이블이었다.

윤아는 맞은편 빈 의자를 봤다.

'민준 오빠가 앉을 자리...'

메뉴판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아, 아메리카노요."

"HOT으로 드릴까요?"

"네."

직원이 가고 윤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다들 누군가랑 함께였다.

휴대폰을 꺼냈다.

민준한테서 온 메시지는 여전히 없었다.

대신 엄마한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엄마: 윤아야 저녁 뭐 먹어?

윤아: 아직 몰라

엄마: 민준이랑 잘 놀고 있어?

윤아는 답장을 쓰다 멈췄다.

'잘 놀고 있어?'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게 혀끝을 자극했다.

'나... 민준 오빠랑 잘 맞는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오빠는 계획적이고 나는 즉흥적이고.

오빠는 약속을 지키고 나는 자꾸 바꾸고.

오빠는 나한테 맞춰주는데 나는...

"윤아야?"

윤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민준이 서 있었다.

"오빠?!"

"놀랐어?"

민준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와이셔츠 소매가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회사는? 끝났어?"

"응. 생각보다 빨리."

민준은 윤아 얼굴을 들여다봤다.

"울었어?"

"...아니."

"눈 빨개."

윤아는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먼지 들어갔나봐."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윤아를 봤다.

한참을.

"윤아야."

"응?"

"우리 얘기 좀 하자."

***

민준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윤아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입술만 깨물었다.

"나 요즘 생각했거든."

민준의 목소리가 낮았다.

"우리... 너무 다른 것 같아."

윤아의 손가락이 컵을 꽉 쥐었다.

"나는 계획 세우는 게 좋고, 너는 즉흥적으로 사는 게 편하고."

"...응."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민준은 말을 멈췄다.

윤아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근데 가끔은... 힘들어."

"미안해."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

민준이 윤아 손에 자기 손을 포갰다.

"그냥 우리 중간을 찾고 싶어. 너도 좀 맞춰주고, 나도 좀 맞춰주고."

윤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민준이 웃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할 수 있을까?"

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해볼게."

"고마워."

민준이 윤아 손을 쓰다듬었다.

윤아는 웃으려 했다. 근데 눈물이 났다.

"어? 왜 울어?"

"몰라..."

민준이 휴지를 건넸다. 윤아는 눈물을 훔쳤다.

'나 진짜 왜 이래.'

***

저녁 7시.

두 사람은 한강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민준이 준비한 돗자리 위였다.

"오빠."

"응?"

"오늘 고마워."

"뭐가?"

"그냥 다."

민준은 윤아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바람이 불었다. 강물이 출렁였다.

윤아는 민준 손을 꼭 잡았다.

'중간을 찾자. 나도 할 수 있어.'

***

일요일 밤 11시.

윤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남산, 일출, 전시회, 카페, 한강.

그리고 민준의 말.

'중간을 찾고 싶어.'

윤아는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서랍을 열었다. A4 용지 뭉치가 나왔다.

'나도 해야지. 계획.'

펜을 집어 들었다.

첫 페이지 맨 위에 제목을 썼다.

서윤아♥강민준 3개월 데이트 계획표

윤아는 혼자 웃었다.

'민준 오빠 깜짝 놀라겠다.'

펜을 놀렸다.

1주차: 즉흥 데이트 금지 주간

2주차: 민준 오빠 스타일로 데이트하기

3주차: ...

손이 멈췄다.

'어? 3주차는 뭐하지?'

윤아는 펜 끝을 입술에 댔다.

생각이 안 났다.

'일단 1주차부터 채우자.'

다시 펜을 들었다.

[1주차 세부 계획]

월요일: 저녁 7시 홍대 파스타 집 (민준 오빠 픽)

화요일: ...

화요일 칸이 비어 있었다.

'화요일은... 뭐하지?'

윤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총 7,067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우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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