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6,957자

친구라는 이름의 안전지대

주인공: 이지호

"또 차였어."

수아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떨렸다.

지호는 키보드 위에 올려진 손을 멈췄다. 모니터 속 원고 파일이 흐릿하게 번졌다.

"어디야?"

"홍대 그 카페. 올 수 있어?"

"응, 갈게."

끊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벌써 세 번째네.'

지호는 책상 서랍에서 지갑을 꺼내며 한숨을 삼켰다. 출판사 복도를 걷는 동안 구두 소리만 덩그러니 울렸다.

***

카페 문을 열자 익숙한 원두 향이 코끝을 스쳤다.

창가 자리에 앉은 수아가 보였다. 빨간 눈두덩이, 구겨진 티슈, 반쯤 식은 아메리카노.

"미안, 또 불렀지?"

수아가 코를 훌쩍이며 웃었다.

"괜찮아. 뭐 먹을래?"

"아니, 됐어. 그냥 앉아."

지호는 수아 맞은편에 앉으며 가방을 옆 의자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일 있었어?"

"별거 아냐. 그냥... 가치관이 안 맞는대."

수아가 티슈를 구겼다.

"만난 지 석 달밖에 안 됐는데 무슨 가치관을 알아. 핑계지, 핑계."

"그 사람이 뭐라는데?"

"나보고 너무 자기 일에만 집중한대. 주말에도 일한다고."

수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근데 그게 뭐가 문제야. 나 마케터잖아. 주말에 캠페인 터지면 당연히 일해야지."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또 시작이네.'

"너 잘못 없어. 그 사람이 이해를 못 하는 거지."

"진짜?"

수아가 지호를 올려다봤다. 눈가에 번진 마스카라가 안쓰러웠다.

"응. 너한테 맞는 사람 꼭 나타날 거야."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기계처럼 느껴졌다. 이 대사, 벌써 몇 번째인지 세기도 싫었다.

"왜 나한테는 좋은 사람이 안 나타나냐..."

수아가 테이블에 이마를 댔다.

"나 뭐가 문제야? 얼굴? 성격? 일? 대체 뭘 고쳐야 해?"

"아무것도 안 고쳐도 돼."

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수아는 그대로 괜찮아."

"거짓말. 괜찮으면 왜 맨날 차이냐고."

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또 흘렀다.

"지호 같은 남자 없을까? 너처럼 날 이해해주는 사람."

심장이 멎었다.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페 안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지호는 컵을 쥔 채 굳어버렸다.

'...뭐라고?'

"너는 내가 주말에 일해도 이해해주잖아. 늦게 연락해도 화 안 내고. 왜 남자들은 다 너 같지 않은 거야?"

수아가 휴지로 눈가를 닦았다.

지호는 숨을 참았다.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치솟았다.

'나 같은 남자. 나 같은...'

"그런 사람 있을 거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지호는 헛기침을 했다.

"수아 같은 여자 좋아할 사람 많아."

"그럼 왜 안 나타나. 난 지쳤어, 진짜."

수아가 한숨을 쉬었다.

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만 달싹거렸다.

'내가 여기 있잖아. 나.'

하지만 그 말은 목구멍 안쪽에서 녹아내렸다.

***

카페를 나선 건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집까지 바래다줄게."

"괜찮아, 택시 타면 돼."

"에이, 걍 가자. 어차피 방향 같잖아."

지호가 먼저 걷기 시작했다. 수아가 뒤따라왔다.

골목길을 걸으며 지호는 평소처럼 농담을 던졌다.

"근데 그 남자 얼굴은 어땠어? 최소한 잘생기긴 했어?"

"야, 이 상황에 그게 중요해?"

수아가 지호의 팔을 툭 쳤다.

"중요하지. 차일 거면 최소한 얼굴값은 해야지."

"너 진짜..."

수아가 피식 웃었다. 처음으로 웃는 얼굴이었다.

지호는 옆모습을 힐끗 봤다. 가로등 불빛 아래 수아의 옆얼굴이 희미하게 빛났다.

'예쁘네.'

생각이 튀어나오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다음 주 소개팅은 어떻게 할 거야?"

"...응?"

"친구가 소개해준다며. 그거."

수아가 걸음을 멈췄다.

"아, 맞다. 깜빡했네."

"취소할래?"

"아니, 갈래. 근데..."

수아가 지호를 쳐다봤다.

"같이 가줄 수 있어?"

"...뭐?"

"카페 근처까지만. 혼자 가기 무서워. 또 이상한 사람 나오면 어떡해."

지호는 멈춰 섰다. 발바닥에 힘이 빠졌다.

"소개팅에 나까지 가면 이상하지 않아?"

"근처까지만! 끝나고 연락할게. 30분만 기다려줘."

수아가 손을 모았다.

"응? 지호 오빠?"

오빠라는 호칭이 귀를 파고들었다. 수아는 평소엔 반말만 했다.

"...괜찮아."

지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갈게."

"진짜? 고마워!"

수아가 환하게 웃었다.

지호는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만 올라갔다. 눈은 웃지 않았다.

***

수아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

"들어가. 조심히."

"응, 오늘 고마워.

# 친구라는 이름의 안전지대 (2/3)

"오늘 고마워. 너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수아가 현관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지호는 고개만 끄덕였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들어가. 내일 봐."

"응, 조심히 가!"

철컥, 현관문이 닫혔다.

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복도 센서등이 꺼졌다. 다시 켜졌다.

발이 안 떨어졌다.

'왜 이러지.'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을 때마다 가슴속이 조여왔다.

***

집에 도착한 건 밤 열한 시였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몸을 던졌다. 천장만 멍하니 바라봤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수아: 집 도착했어?]

지호는 화면을 쳐다봤다. 답장을 치려다 말았다.

'뭐라고 써야 하지.'

[지호: ㅇㅇ 도착]

짧게 보내고 핸드폰을 엎었다.

소파 쿠션을 끌어안았다. 수아의 향수 냄새가 났다. 지난주 여기 앉았었나.

"...미친."

중얼거리며 쿠션을 던졌다.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 한 캔이 덩그러니 있었다.

따서 단숨에 반을 비웠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소개팅 동행이라니.'

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알루미늄이 찌그러졌다.

창밖을 봤다. 건너편 아파트 불빛만 깜빡였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자문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평소처럼 붐볐다.

핸드폰을 꺼냈다. 수아의 SNS가 먼저 떴다.

[오늘의 다짐: 좋은 사람 만날 거야 🌸]

업로드 시간은 새벽 두 시.

지호는 화면을 껐다.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팀장이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지호 씨, 오늘 저자 미팅 있죠?"

"...네?"

"이틀 전에 말했잖아요. 오후 세 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맞다. 죄송합니다."

"정신 차려요. 요즘 왜 이래?"

팀장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지호는 책상에 앉아 달력을 펼쳤다.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집중 좀 하자.'

모니터를 켰다. 원고 파일을 열었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왔다.

핸드폰이 울렸다.

**[수아: 지호야, 다음 주 토요일 맞지? 소개팅]**

손가락이 멈췄다.

[지호: ㅇㅇ]

**[수아: 근처 카페에서 기다려줘. 한 시간이면 끝날 거야]**

[지호: 알았어]

대화창을 닫았다. 심장이 빨라졌다.

'한 시간. 한 시간 동안 뭐 해.'

상상이 펼쳐졌다. 수아가 모르는 남자 맞은편에 앉아 웃는 모습. 그 남자가 수아 손을 잡는 모습.

"...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옆자리 동료가 힐끗 쳐다봤다.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거짓말이었다.

***

저녁 여섯 시, 퇴근길.

수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지금 시간 돼?"

"응, 왜?"

"홍대 쪽 갈 일 있어? 같이 저녁 먹자."

"...갑자기?"

"응, 친구가 소개팅 상대 사진 보내줬거든. 같이 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 오늘 좀..."

"에이, 밥은 먹어야지. 삼겹살 살게!"

전화가 끊겼다.

지호는 핸드폰을 쥔 채 멈춰 섰다. 지하철역 입구 앞이었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깨가 부딪혔다.

'가지 말까.'

하지만 발은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

삼겹살집은 연기로 자욱했다.

수아가 먼저 와 있었다. 테이블 위엔 이미 고기가 지글거리고 있었다.

"늦었네?"

"미안. 지하철 막혀서."

지호가 맞은편에 앉았다.

"자, 봐봐. 이 사람."

수아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 속엔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어때? 괜찮지?"

"...응."

"목소리가 왜 그래. 별로야?"

"아니, 괜찮은 것 같아."

지호는 고기를 뒤집었다. 기름이 튀었다.

"이름은 민준이래. 나랑 동갑이고, IT 회사 다닌대."

"...그래?"

"응. 친구 말로는 성격 엄청 좋대. 근데 소개팅 경험이 별로 없어서 좀 어색할 수도 있대."

수아가 상추를 쌌다.

"너 의견은 어때? 만나볼 만해?"

지호는 젓가락을 놓았다.

"수아가 좋으면 되지."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수아가 환하게 웃었다.

지호는 소주잔을 들이켰다. 목이 탔다.

"근데 토요일에 진짜 같이 가줄 수 있어?"

"...응."

"고마워. 너 없으면 진짜 못 해."

수아가 지호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건배!"

잔이 부딪쳤다.

지호는 또 단숨에 비웠다.

'이번엔 다를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잘될까.'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선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잘되면 안 되는데.'

손이 떨렸다. 잔을 내려놓았다

# 친구라는 이름의 안전지대 (3/3)

"또 마실 거야?"

수아가 소주병을 빼앗았다.

"너 오늘 이상해. 무슨 일 있어?"

"...아니."

지호는 젓가락으로 상추만 찢었다.

"거짓말. 표정 보면 다 알아."

수아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테이블 너머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말해봐. 나한테는 말해도 되잖아."

입술이 달싹거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너 때문이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삼켰다.

"...회사 일."

"또? 팀장이 또 뭐래?"

"응."

수아가 한숨을 쉬었다.

"너 진짜 착하긴 한데, 그게 문제야. 맨날 혼자 끙끙 앓잖아."

착하다는 말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비웃음이 치솟았다.

'착해? 나를?'

지호는 고개를 들었다. 수아가 고기를 집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자도 안 생기지. 좀 더 적극적으로 굴어봐."

"...그럴 시간 없어."

"시간은 무슨. 만들면 되지."

수아가 쌈을 입에 넣었다.

"나도 바쁜데 소개팅 나가잖아. 너도 해봐. 소개해줄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됐어."

"왜? 괜찮은 애들 많은데."

"관심 없어."

목소리가 딱 잘렸다.

수아가 젓가락을 멈췄다.

"...화났어?"

"아니."

"목소리 들으면 화난 것 같은데."

지호는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미안. 오늘 좀 피곤해."

"그럼 일찍 들어가. 괜히 나 때문에 무리하지 말고."

'너 때문에 무리하는 거 맞아.'

속으로 삼켰다. 입 밖으론 나오지 않았다.

***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차가웠다. 수아가 목도리를 여몄다.

"집까지 바래다줄까?"

"아니, 괜찮아. 택시 탈게."

"...그래."

지호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럼 토요일에 봐. 두 시에 홍대 입구역에서 만나자."

"응."

수아가 손을 흔들었다.

지호는 고개만 끄덕였다.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지호야."

발이 멈췄다.

"...응?"

"고마워. 진짜로."

수아가 웃었다. 가로등 아래 얼굴이 환했다.

"너 같은 친구 있어서 다행이야."

친구.

그 단어가 가슴에 박혔다.

지호는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갔다.

"...나도."

***

토요일 오후 두 시.

홍대 입구역 3번 출구 앞.

수아는 이미 와 있었다.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 벌써 왔어?"

"응. 좀 일찍 나왔어."

지호는 수아를 훑어봤다. 머리를 새로 했다. 화장도 평소보다 진했다.

"...예쁘네."

"진짜? 안 과해?"

"아니, 딱 좋아."

수아가 핸드폰을 꺼냈다.

"민준이가 벌써 카페에 도착했대. 나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응."

"너는 저기 스타벅스에서 기다려줘. 한 시간이면 끝날 거야."

수아가 가방을 여몄다.

"혹시 이상한 사람이면 신호 보낼게. 그럼 전화해줘."

"알았어."

수아가 골목 안쪽으로 걸어갔다.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

스타벅스 창가 자리.

지호는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시간은 두 시 십오 분.

수아는 지금쯤 민준 맞은편에 앉았을 것이다.

'뭐 하고 있을까.'

상상이 펼쳐졌다. 수아가 웃는 모습. 민준이 말을 거는 모습.

손가락으로 컵을 툭툭 쳤다.

'집중 좀 하자.'

핸드폰을 뒤집었다. 하지만 5분도 안 돼서 다시 들었다.

SNS를 켰다. 수아의 계정엔 아무 업데이트도 없었다.

당연했다. 지금 소개팅 중인데.

시간은 두 시 삼십 분.

아메리카노는 이미 반이 줄었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수아: 잘되고 있어!]

이모티콘이 세 개 붙어 있었다.

지호는 화면을 껐다. 테이블에 핸드폰을 던졌다.

'잘되고 있다니.'

가슴속이 답답했다. 숨이 막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이 창백했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정신 차려.'

중얼거렸지만 소용없었다.

***

세 시 십 분.

지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창밖을 봤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커플도 보였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수아: 조금만 더 있을게. 대화가 잘 통해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지호: ㅇㅇ]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엎었다.

'대화가 잘 통한다.'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랑은 안 통해?'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시간은 세 시 사십 분.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섰다.

골목 안쪽으로 걸었다. 수아가 들어간 카페가 보였다.

유리창 너머로 안이 보였다.

수아가 있었다.

맞은편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민준이었다.

수아가 웃고 있었다.

환하게.

지호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저렇게 웃어.'

총 6,957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장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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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감성#일상#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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