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자극
주인공: 한소리
오늘도 스물세 명.
한소리는 카페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손님들을 훑었다. 창가 자리 남자, 노트북 켜놓고 계속 쳐다봄. 입구 쪽 대학생, 커피 식은 지 한 시간. 둘 다 핸드폰 들고 몰래 사진 찍는 중.
'어제보다 둘 늘었네.'
소리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립글로스를 꺼내 입술에 발랐다. 거울 대신 에스프레소 머신 표면을 봤다. 반사된 얼굴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소리야, 3번 테이블 좀."
매니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네, 오빠~"
밝게 대답하고 쟁반을 들었다. 창가 남자 테이블로 걸어갈 때 일부러 허리를 조금 숙였다. 남자 시선이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아메리카노 나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아, 네. 고마워요."
남자가 얼굴 빨개져서 웃었다. 소리는 돌아서며 입꼬리를 내렸다.
'재미없어.'
다들 똑같아.
퇴근 후 원룸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라벤더 디퓨저랑 섬유유연제. 감성 인테리어 계정에서 본 대로 꾸민 방. 페어리라이트 켜놓으면 인스타 감성 폭발.
소리는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다가 핸드폰을 켰다.
DM 47개.
"여신 그 자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예뻐요ㅠㅠ"
"소리님 직접 보고 싶어요. 팬미팅 안 하세요?"
스크롤 내리다가 껐다.
'다 똑같은 말만 하네.'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침대 아래 손을 넣어 검은색 상자를 꺼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표면. 뚜껑을 열자 정갈하게 정리된 물건들이 나왔다.
사진 열두 장.
각자 다른 남자들. 다 웃고 있었다. 소리 옆에서 찍은 셀카들. 마지막 사진은 김민재.
'사흘 전이었지.'
민재 사진 옆엔 은색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하트 모양 펜던트. 뒷면에 'To. 소리'라고 새겨진 거.
"소리야, 이거 받아줘.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민재가 건넬 때 했던 말. 소리는 그때 눈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입 가렸었다.
"오빠, 진짜요? 너무 예쁜데..."
"너한테 어울려. 해줄래?"
목걸이 채워주는 민재 손이 떨렸었다. 소리는 거울 보며 웃었고, 민재는 뒤에서 소리 어깨에 턱을 괴었다.
"소리야."
"응?"
"사랑해."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소리는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한강 다리 아래. 새벽 네 시. 민재가 난간에 기대서 있을 때 표정.
'뻔했어.'
상자를 다시 닫았다. 침대 아래로 밀어넣고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소리가 웃고 있었다.
"나 예쁘지?"
대답은 없었다. 소리는 작게 웃으며 옷을 벗었다.
"당연하지."
---
다음 날 카페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소리는 카운터에 기대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인스타 스토리 올릴 사진 고르는 중. 어제 찍은 셀카 중에 제일 각도 잘 나온 거.
문 열리는 소리.
고개 들었다.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키 크고 말랐다. 검은색 후드에 청바지. 얼굴은... 그냥 평범했다. 특별히 잘생긴 것도 아니고.
'새 손님인가.'
남자가 카운터로 걸어왔다. 소리는 핸드폰 내려놓고 미소 지었다.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남자는 메뉴판을 봤다. 소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메리카노요."
"아이스요, 핫이요?"
"아이스."
"네~"
주문 받고 돌아서는데 이상했다. 남자가 소리를 한 번도 안 봤다. 메뉴판만 보고, 카드 꺼낼 때도 카운터만 보고.
'뭐지.'
커피 뽑으면서 슬쩍 남자를 봤다.
노트북을 펼쳤다. 화면 켜지자마자 타이핑 시작.
소리는 아메리카노를 쟁반에 올리고 남자 테이블로 갔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남자는 고개도 안 돌렸다.
"거기 놔주세요."
"네."
컵 내려놓을 때 일부러 손가락이 남자 손등 스칠 뻔하게 했다. 남자는 컵만 집어 들었다.
소리는 카운터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 남자를 쳐다봤다.
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이쪽을 안 봤다.
'진짜 한 번도?'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짜증? 아니면 다른 거?
손님 없을 때 소리는 일부러 남자 테이블 옆을 지나갔다. 메뉴판 들고 바닥 닦는 척하다가 '실수로' 메뉴판을 떨어뜨렸다.
철컥.
남자가 타이핑을 멈췄다. 그래도 고개는 안 돌렸다.
"거기 떨어졌네요."
"아, 죄송해요."
소리는 웃으며 메뉴판을 주웠다. 일어서면서 남자 노트북 화면을 힐끗 봤다.
곤충 사진이었다.
거미, 사마귀, 딱정벌레. 확대된 더듬이와 겹눈. 다리 마디마디 털까지 선명하게.
'역겨워.'
소리는 표정 관리하며 카운터로 돌아왔다. 손을 씻으면서 남자를 다시 봤다.
여전히 화면만 보고 있었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퇴근 시간.
소리는 앞치마 벗으며 매니저한테 인사했다.
"오빠, 먼저 들어갈게요~"
"어, 조심히 가."
밖으로 나왔다. 저녁 일곱 시. 아직 해 안 졌다.
소리는 카페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섰다. 핸드폰 꺼내서 게임하는 척했다.
십 분 후, 남자가 나왔다.
후드 입은 뒷모습. 소리는 핸드폰 주머니에 넣고 따라갔다.
남자는 대학 방향으로 걸었다. 소리는 십 미터 뒤에서 따라갔다. 사람 많은 거리. 들킬 일 없었다.
대학 정문 지나서 왼쪽 건물로 들어갔다. 낡은 회색 건물. 소리는 입구에서 멈춰 섰다.
유리문 너머로 남자가 계단 올라가는 게 보였다.
소리는 십 초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 올라가서 복도를 봤다.
남자가 맨 끝 방으로 들어갔다.
소리는 천천히 걸어갔다. 문패가 보였다.
'곤충학 연구실'
불 켜지는 소리. 안에서 의자 끄는 소리.
소리는 핸드폰 꺼내서 문패 사진 찍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서 연구실 문 쳐다봤다.
'곤충학.'
입꼬리가 올라갔다.
---
사흘 동안 남자는 매일 카페에 왔다.
오후 두 시쯤 들어와서 네 시까지 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 노트북 켜고 타이핑.
소리를 쳐다본 횟수: 0회.
소리는 일부러 남자 테이블 닦으러 갔다.
"혹시 리필 필요하세요?"
"괜찮아요."
"아, 네~"
남자는 화면만 봤다. 이번엔 논문 같은 거였다. 영어로 빼곡하게 쓰인 글.
소리는 카운터 돌아와서 립글로스 다시 발랐다. 거울 보며 각도 확인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돼?'
근데 이상했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심장이 뛰었다.
저녁에 또 미행했다. 남자는 연구실 나와서 편의점 들렀다. 삼각김밥 두 개랑 바나나우유 샀다.
소리는 편의점 밖에서 기다렸다.
남자가 나왔다.
소리는 타이밍 맞춰서 걸었다. 남자 앞에서 '실수로' 발 헛디뎠다.
"앗!"
넘어지는 척. 무릎 바닥에 닿기 직전.
남자가 지나갔다.
그냥.
소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 쓰렸다. 스타킹 찢어진 게 느껴졌다.
남자 뒷모습이 멀어졌다. 편의점 봉투 들고 유유히 걷는 뒷모습.
소리는 바닥에 앉은 채 남자를 봤다.
손이 떨렸다.
'뭐야, 진짜.'
일어서서 무릎 털었다.
스타킹 찢어진 무릎이 쓰렸다. 소리는 천천히 일어섰다.
우진은 이미 골목 모퉁이를 돌았다.
'이상해.'
손바닥에 땀이 났다. 닦으려다 말고 그대로 뒀다. 축축한 감촉이 낯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우진 생각이 났다. 샤워하다가도, 드라이기 돌리다가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봤다.
"예쁜데."
대답 없는 거울.
핸드폰 켜서 인스타 들어갔다. 어제 올린 셀카에 좋아요 2,347개. 댓글 189개.
스크롤 내렸다. 다 똑같았다.
"여신", "사랑해요", "어떻게 이렇게 예뻐요ㅠㅠ"
껐다.
침대 아래 상자를 꺼냈다. 뚜껑 열고 사진들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열두 장.
민재, 준호, 성훈, 동현...
다 웃고 있었다. 소리 옆에서. 소리만 보면서.
'근데 우진은.'
사진 위로 핸드폰을 올려놨다. 화면 켜서 우진 얼굴을 떠올렸다.
평범한 얼굴. 특별할 것 없는.
"왜 안 봐."
말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
다음 날도 우진은 왔다.
오후 두 시. 아메리카노 아이스.
소리는 이번엔 다르게 했다. 컵에 시럽 넣고 휘핑크림 올렸다. 카라멜 드리즐까지.
"서비스예요~"
우진이 컵을 봤다.
"주문한 거랑 다른데요."
"오빠 피곤해 보여서! 단 거 드시면 좋아요."
"아메리카노 주문했어요."
목소리가 평평했다.
소리는 웃음 유지하며 컵을 도로 가져갔다.
"아, 죄송해요. 바로 다시 만들어드릴게요."
우진은 대답 없이 자리로 갔다.
아메리카노 다시 뽑으면서 손이 떨렸다. 컵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뭐가 문제야.'
컵 들고 가서 테이블에 놨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우진은 노트북만 봤다.
소리는 카운터로 돌아와서 우진을 쳐다봤다. 한 시간 동안.
우진은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
퇴근하고 또 따라갔다.
우진은 연구실로 갔다. 소리는 건물 앞 벤치에 앉았다.
밤 아홉 시까지 기다렸다.
연구실 불 꺼졌다. 우진이 나왔다.
소리는 일어섰다. 우진이 정문 쪽으로 걸었다.
소리는 뛰어갔다.
"저기요!"
우진이 멈춰 섰다. 돌아봤다.
처음이었다. 우진이 소리를 똑바로 본 게.
소리는 숨 고르며 웃었다.
"카페에서 뵀죠? 저 기억하세요?"
"...아뇨."
"에이, 거의 매일 오시잖아요."
"커피만 사러 가요."
우진이 다시 돌아섰다.
소리는 앞으로 가서 우진 앞을 막았다.
"잠깐만요. 혹시 제가 뭐 잘못했나요?"
"비켜주세요."
"오빠, 저한테 왜 이러세요?"
우진이 소리를 봤다. 표정 없는 얼굴.
"모르는 사람한테 오빠라고 하지 마세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우진이 소리 옆을 지나쳐 갔다.
소리는 그 자리에 서서 우진 뒷모습을 봤다.
가로등 불빛 아래 걷는 우진.
손이 떨렸다. 이번엔 양손 다.
'모르는 사람?'
입술 깨물었다. 비린 맛이 났다.
---
집에 와서 샤워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만 봤다.
핸드폰 진동 울렸다. DM 알림 53개. 안 봤다.
일어나서 침대 아래 상자를 꺼냈다.
사진들 꺼내서 하나하나 봤다.
민재. 마지막 날 밤, 한강 다리에서.
"소리야, 나 없으면 안 되지?"
"당연하지, 오빠."
"진짜?"
"응."
민재가 웃었다. 난간에 기댄 채로.
"그럼 다행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소리는 사진을 바닥에 놓고 다음 사진을 꺼냈다.
준호. 옥상에서 찍은 사진. 서울 야경 배경으로.
"소리 없으면 나 못 살아."
"오빠, 그런 말 너무 무겁다."
"진심인데."
준호도 웃었다. 소리만 보면서.
사진 뒤집어서 바닥에 놨다.
'다 똑같았어.'
성훈, 동현, 재혁... 열두 명 전부.
소리는 사진들을 다시 상자에 넣고 뚜껑 덮었다.
핸드폰 켜서 우진 인스타 들어갔다.
게시물 세 개. 전부 곤충 사진.
사마귀, 장수풍뎅이, 거미.
팔로워 87명. 팔로잉 12명.
마지막 게시물 댓글 두 개.
"연구 화이팅!"
"오 신기하다"
소리는 우진 프로필 사진을 확대했다. 연구실에서 찍은 증명사진 같은 거.
무표정한 얼굴.
화면 꺼서 가슴에 올려놨다.
심장 뛰는 게 느껴졌다. 빠르게.
'왜 이래.'
---
일주일 동안 우진은 매일 왔다.
소리는 매일 다른 옷 입고, 다른 립스틱 바르고, 다른 향수 뿌렸다.
우진은 아메리카노만 주문했다.
"또 뵙네요~"
"네."
"오늘 날씨 좋죠?"
"..."
"혹시 설탕 필요하세요?"
"아뇨."
대화 끝.
목요일엔 아예 말 안 걸었다. 그냥 커피 건넸다.
우진이 카드 내밀었다.
손가락이 스쳤다.
우진은 아무 반응 없었다.
소리는 카운터 아래서 손톱으로 손바닥을 긁었다. 빨갛게 자국 날 때까지.
---
금요일 밤.
소리는 연구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비상구 문 살짝 열고 복도 봤다.
3층 끝에 불 켜진 방 하나. 곤충학 연구실.
계단 내려가서 복도 걸었다.
연구실 문 앞에 섰다.
유리창 너머로 우진이 보였다.
현미경 들여다보고 있었다. 노트에 뭔가 적고.
소리는 문손잡이에 손 올렸다.
차가웠다.
'들어가면?'
손잡이 돌렸다. 잠겨 있었다.
우진이 고개 들었다.
창문 너머로 눈 마주쳤다.
소리는 웃었다. 손 흔들었다.
우진은 표정 안 바뀌었다. 그냥 봤다.
5초.
우진이 다시 현미경 쪽으로 고개 돌렸다.
소리는 손 내렸다.
복도 형광등이 윙 소리 냈다.
'나한테 관심 없는 게 아니야.'
문에 이마 댔다. 차가운 유리.
'날 안 보는 거야.'
입술 깨물었다. 이번엔 더 세게.
피 맛 났다.
---
집 와서 거울 봤다.
입술에 피 묻어 있었다. 닦았다.
거울 속 얼굴 봤다.
예쁜 얼굴.
"왜 안 봐."
거울한테 물었다.
대답 없었다.
침대 아래 상자 꺼냈다. 뚜껑 열었다.
사진 열두 장. 목걸이 열두 개.
빈 공간이 하나 있었다. 열세 번째 자리.
소리는 핸드폰 꺼내서 우진 사진 찾았다. 인스타 프로필 캡처한 거.
화면 보면서 웃었다.
"오빠도 날 보게 될 거야."
목소리 떨리지 않았다.
이번엔.
---
토요일 오전.
소리는 연구실 건물 앞 카페에 앉았다. 창가 자리.
우진은 열 시에 나타났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건물 들어가는 우진 뒷모습 봤다. 검은 백팩. 청바지.
소리는 커피 놔두고 일어났다.
건물 정문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앞.
3층 버튼 눌렀다.
문 열리고 복도 나왔다.
연구실 문 앞.
이번엔 노크했다.
똑똑.
안에서 발소리.
문 열렸다.
우진이 섰다. 소리 봤다.
"뭐 하시는 거예요."
목소리 평평했다.
소리는 웃었다.
"오빠, 나예요."
"모르는 사람이요."
"카페 알바생이요. 맨날 아메리카노 드시잖아요."
"그래서요?"
우진이 문 닫으려 했다.
소리가 발로 막았다.
"왜 이래요."
"비켜주세요."
"날 왜 안 봐요."
우진이 멈췄다.
소리를 똑바로 봤다.
처음으로.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이러면 신고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 올라왔다.
목까지.
소리는 웃음 지웠다
우진이 문 닫았다.
찰칵.
소리는 복도에 혼자 섰다.
형광등 깜빡였다. 윙 소리.
발 내려다봤다. 문틈에 끼었던 발.
빨간 운동화.
'신고?'
웃음이 났다.
소리는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 창문 열었다.
바람 들어왔다. 머리카락 날렸다.
아래 보이는 주차장. 차 세 대.
뛰어내리면 끝이겠지.
고개 저었다.
'아니지.'
창문 닫고 계단으로 갔다.
---
카페로 돌아왔다. 커피 식어 있었다.
한 모금 마셨다. 쓰고 미지근했다.
핸드폰 꺼냈다. 우진 인스타.
게시물 하나 올라와 있었다. 10분 전.
사마귀 사진. 확대된 앞다리.
캡션: '포획 후 관찰 3일 차.'
소리는 사진 확대했다.
사마귀 앞다리에 뭔가 붙어 있었다. 작은 곤충. 반쯤 먹힌.
'먹이.'
화면 꺼서 테이블에 놨다.
---
일요일.
소리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봤다.
핸드폰 진동. DM 127개.
다 똑같은 내용이었다.
"소리야 어디야"
"연락 좀"
"보고 싶어"
차단했다. 전부.
일어나서 옷장 열었다.
제일 안쪽 서랍.
칼 세 개. 밧줄 한 뭉치. 장갑.
손 뻗었다가 멈췄다.
'아직 아니야.'
서랍 닫았다.
---
월요일.
소리는 카페 안 나갔다. 매니저한테 아프다고 문자 보냈다.
대신 연구실 건물 앞 편의점 갔다.
우진이 자주 사는 거. 삼각김밥이랑 바나나우유.
똑같이 샀다.
건물 뒤편 벤치 앉아서 김밥 뜯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참치 맛.
'맛없어.'
뱉어냈다.
우유 빨대 꽂아서 마셨다. 달았다.
'이것도.'
버렸다.
벤치 등받이에 기대서 연구실 창문 봤다.
3층 끝. 불 켜져 있었다.
---
밤 열 시.
연구실 불 꺼졌다.
우진 나왔다.
소리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후드 눌러 썼다.
우진이 정문 쪽으로 걸었다.
소리는 따라갔다. 이번엔 더 가까이.
오 미터 뒤.
우진이 편의점 들어갔다.
소리는 밖에서 기다렸다.
유리창 너머로 우진 보였다. 음료 코너 앞.
우유 집어 들었다.
계산하고 나왔다.
소리는 후드 더 눌러 쓰고 고개 숙였다.
우진이 지나갔다.
발소리.
소리는 세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우진이 멈춰 섰다.
뒤돌아봤다.
"왜 따라와요."
목소리 평평했다.
소리는 후드 벗었다. 웃었다.
"산책이요."
"이 시간에?"
"네."
우진이 소리를 봤다. 5초.
"그만하세요."
"뭘요?"
"스토킹."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 올라왔다.
소리는 웃음 유지했다.
"오빠, 오해예요."
"경찰 신고할 거예요."
우진이 핸드폰 꺼냈다.
소리는 앞으로 걸어갔다.
우진이 뒤로 물러섰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오빠."
"모르는 사람한테 오빠라고—"
"알잖아요."
우진이 멈췄다.
소리는 한 걸음 더 갔다.
"저 매일 봤잖아요. 카페에서. 연구실에서."
"그게 아는 거예요?"
"그럼 뭐예요?"
우진이 핸드폰 화면 켰다.
"지금 신고합니다."
소리는 우진 손목 잡았다.
차가웠다.
우진이 손 뿌리쳤다.
"손 대지 마세요."
소리는 손 내렸다.
떨리지 않았다.
"오빠는 왜 그래요."
"..."
"왜 날 안 봐요."
우진이 한숨 쉬었다.
"당신 문제 있어요."
돌아서서 걸었다.
소리는 그 자리에 섰다.
가로등 아래.
우진 뒷모습 멀어졌다.
손 봤다. 아까 우진 손목 잡았던 손.
차가움이 남아 있었다.
입꼬리 올라갔다.
---
집 와서 샤워했다.
물 뜨겁게 틀었다. 피부 빨개질 때까지.
거울 봤다.
거울 속 얼굴 흐릿했다.
손으로 김 닦았다.
얼굴 나타났다.
입술 빨갛게 부어 있었다. 자꾸 깨물어서.
'문제 있대.'
웃었다.
거울 속 소리도 웃었다.
---
화요일.
소리는 카페 출근했다.
매니저가 물었다.
"괜찮아?"
"네."
"얼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요."
카운터 섰다.
손님 받았다. 웃었다. 커피 만들었다.
오후 세 시.
우진 안 왔다.
네 시.
다섯 시.
여섯 시.
폐점까지 안 왔다.
소리는 앞치마 벗으면서 핸드폰 켰다.
우진 인스타.
새 게시물. 두 시간 전.
'휴학계 제출 완료. 당분간 서울 떠납니다.'
사진은 기차표.
목적지: 부산.
소리는 화면 꺼서 주머니 넣었다.
---
밤 열한 시.
소리는 연구실 건물 앞에 섰다.
정문 잠겨 있었다.
옆으로 돌아서 비상구 찾았다.
문 열렸다.
계단 올라갔다. 3층.
복도 불 꺼져 있었다.
핸드폰 손전등 켰다.
연구실 문 앞.
손잡이 돌렸다. 잠김.
주머니에서 핀 꺼냈다. 머리핀.
자물쇠에 넣어서 돌렸다.
찰칵.
문 열렸다.
안 들어갔다.
손전등으로 안 비췄다.
책상. 현미경. 표본 상자들.
벽에 붙은 사진들. 곤충 클로즈업.
책상 서랍 열었다.
노트 한 권. 펼쳤다.
'관찰 일지 - 사마귀 포획 개체 #7'
'3일 차: 먹이 거부. 앞다리 움직임 둔화.'
'5일 차: 탈피 시도 실패. 활동성 저하.'
'7일 차: 폐사.'
다음 페이지.
'#8 개체도 동일 패턴. 포획 후 생존율 0%.'
'결론: 사육 환경 부적합. 야생 관찰로 전환 필요.'
소리는 노트 덮었다.
서랍 더 뒤졌다.
USB 하나. 라벨: '관찰 영상'.
주머니에 넣었다.
---
집 와서 노트북에 USB 꽂았다.
폴더 열었다. 영상 파일 스물세 개.
첫 번째 클릭.
화면에 사마귀 나왔다. 유리 케이스 안.
우진 목소리.
- "1일 차. 오전 9시. 급이 시작."
핀셋으로 귀뚜라미 집어 넣었다.
사마귀가 안 움직였다.
- "거부 반응. 예상 범위."
영상 끝.
소리는 다음 파일 열었다.
- "3일 차. 탈피 징후 없음."
다음.
- "5일 차. 앞다리 경직."
다음.
- "7일 차..."
화면 속 사마귀 움직이지 않았다.
우진이 케이스 열었다. 핀셋으로 건드렸다.
반응 없음.
- "폐사 확인."
영상 꺼졌다.
소리는 스물세 개 파일 전부 봤다.
전부 똑같았다.
포획. 관찰. 폐사.
마지막 파일.
우진 얼굴 나왔다.
정면 응시.
- "결론. 포획한 개체는 살 수 없다."
- "관찰자가 원인이다."
화면 꺼졌다.
소리는 노트북 덮었다.
---
수요일 새벽 네 시.
소리는 침대 아래 상자 꺼냈다.
사진 열두 장 펼쳤다.
하나씩 봤다.
첫 번째. 고등학교 선배.
두 번째. 과외 선생님.
세 번째.
네 번째.
열두 번째까지.
빈 자리 하나.
소리는 우진 인스타 프로필 캡처 출력했다.
사진 들고 봤다.
열세 번째 자리에 놓았다.
딱 맞았다.
'포획한 개체는 살 수 없다.'
우진 목소리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는 사진 집어 들었다.
찢었다.
반으로. 또 반으로.
조각 바닥에 떨어졌다.
숨 쉬기 힘들었다.
가슴이 아팠다.
아니.
뭔가 올라왔다.
목구멍까지.
화장실 달려가서 변기에 엎드렸다.
토했다.
커피. 위액. 쓴맛.
한참 토하고 물 틀었다. 입 헹궜다.
거울 봤다.
눈 충혈돼 있었다.
입꼬리 올라가 있었다.
웃고 있었다.
'왜 웃어.'
모르겠다.
'왜.'
거울 주먹으로 쳤다.
금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