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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클나르도의 검

약 13분

미클나르도의 검

주인공: 레이젠 하울릭

검이 목을 스쳤다.


다르한의 검끝이 레이젠의 뺨을 갈랐다. 뜨거운 실선이 그어지고 피가 방울져 떨어진다.


'하나.'


레이젠은 뒤로 밀리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다르한의 검이 원을 그리며 다시 짓쳐 들어온다.


콰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대련장 천장까지 울렸다. 손목이 저릿하다.


'검사는 약한 사람을 지킨다.'


이 순간에 그 문장이 왜 떠오르는지 레이젠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르한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상급검사와 일반검사의 격차는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뭘 그렇게 중얼거려?"


다르한이 이죽거리며 검을 밀어붙였다. 어깨가 뒤로 꺾일 것 같다.


'둘.'


레이젠의 눈이 다르한의 호흡을 좇았다. 들숨과 날숨 사이, 아주 미세한 틈.


'검을 내지르기 직전, 어깨가 한 뼘 내려간다.'


그 버릇을 세 번째 마주하고서야 확신이 섰다. 늦었다. 항상 이렇게 한 박자 늦게 확신한다.


"끝내주지."


다르한의 검이 정면으로 뻗어왔다. 어깨가 내려간 순간.


레이젠의 몸이 반보 옆으로 미끄러졌다. 검로가 허공을 갈랐다.


'셋.'


숫자를 셀 필요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다르한의 옆구리가 완전히 비었다.


검을 세웠다. 그대로 밀어 넣으면 승부는 끝난다.


'검사는 약한 사람을 지킨다. 검사는 함부로 베지 않는다.'


칼끝이 다르한의 목 앞, 손가락 한 마디 거리에서 멈췄다.


"…졌다."


다르한이 검을 떨어뜨렸다. 쇳소리가 바닥에 길게 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대련장이 터졌다.


"미쳤다, 저거!"


"어깨 내려가는 거 어떻게 본 거야, 나는 눈 뜨고도 못 봤는데."


훈련생들의 함성이 벽을 타고 튕겨 나왔다. 레이젠은 검을 거두고 숨을 골랐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검집 안으로 검을 밀어 넣으며 손끝을 감췄다.


"야, 하울릭."


동기인 카일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다가왔다.


"넌 이겼는데 왜 표정이 그렇게 죽상이야?"


"안 죽었다."


"방금 그 얼굴이 딱 초상집인데?"


레이젠은 대답 대신 이마의 땀을 닦았다. 카일이 킥킥거리며 어깨동무를 걸어왔다.


"칭찬 좀 받아라. 좀. 사람이 이렇게 뻣뻣해서야."


"할 일 했을 뿐이다."


"에이, 그놈의 할 일. 넌 그 대사밖에 몰라?"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레이젠은 무표정하게 어깨를 으쓱였을 뿐이다.


'…목 앞에서 멈추는 게 반 박자만 늦었어도.'


속으로는 여전히 방금 전 순간을 곱씹고 있었다. 확신이 너무 늦게 왔다. 만약 다르한이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레이젠."


낯선 목소리가 웃음소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실비아가 서 있었다.


검성회의 소속, 성채 안에서도 몇 안 되는 여성 검사. 훈련생들 사이에서 그녀의 이름은 동경과 두려움이 반반 섞여 불렸다.


"…실비아 님."


레이젠의 목소리가 순간 낮아졌다. 상급자 앞에서 나오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방금 그 판단, 인상 깊었어. 어깨 내려가는 버릇을 세 번 만에 잡아냈다며?"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는데."


실비아가 웃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향긋한 냄새가 훅 끼쳤다.


"잠깐 시간 있어? 보여줄 게 있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지하 훈련장. 요즘 거기서 이상한 소문이 좀 돌아서 말이야."


레이젠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문이라면 그도 들은 적이 있다. 견습검사들이 하나둘 사라진다는 흉흉한 이야기.


"…따라가겠습니다."


카일이 옆에서 눈을 크게 떴다.


"야, 너 방금 대련 끝났는데 어디 가?"


"금방 온다."


짧게 대답하고 실비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성채 뒤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평소 쓰이지 않는 통로였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졌다. 습한 냄새와 함께 무언가 비릿한 기운이 코를 찔렀다.


'…이 냄새는.'


레이젠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실비아는 앞서 걸으며 뒤돌아보지 않았다.


"실비아 님, 여긴…."


"거의 다 왔어."


낡은 철문 앞에 도착했다. 문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실비아가 문을 밀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쪽 풍경이 드러났다.


레이젠의 눈이 굳었다.


밧줄에 묶인 소년이 벽에 기대 있었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다.


"…저게 뭡니까."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


'검사는 약한 사람을 지킨다.'


규율 제1조가 머릿속을 때렸다. 이건 생각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이봐, 정신 차려."


레이젠이 소년의 어깨를 흔들었다. 소년의 눈꺼풀이 힘없이 떨렸다.


"…괜찮으냐."


소년의 눈동자가 서서히 열렸다. 초점이 없다. 마치 안개 낀 유리알 같았다.


"...일곱 개의 규율은..."


레이젠의 손이 멈췄다.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이니..."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규율 제1조의 문장과 섬뜩하게 닮아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 다르다. 결이 다르다. 마치 뒤틀린 메아리처럼.


"…뭐라고?"


"...하울릭... 도 결국은..."


레이젠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돌아볼 새도 없이 실비아의 눈이 옆으로 스윽 움직였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


레이젠이 몸을 틀었을 때, 다르한의 검이 그와 소년 사이 정확히 그 지점에서 떨고 있었다.


칼끝이 소년의 이마 한 뼘 앞. 손잡이를 쥔 다르한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다르한?"


레이젠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방금 전까지 대련장에서 패배를 인정하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마치 그 소년과 똑같이.


"너도…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다르한의 입술이 달싹였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규율은, 재판 없이…."


검이 부들부들 떨리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소년의 이마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레이젠의 검이 다르한의 검을 쳐올렸다. 쇳소리와 함께 칼끝이 소년의 이마에서 손가락 두 마디 위로 밀려났다.


"다르한, 정신 차려."


대답이 없다. 다르한의 눈은 여전히 초점을 잃은 채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지금.'


레이젠의 시선이 다르한의 눈동자를 훑었다. 동공이 풀린 게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다르한 님?"


목소리가 튀어나온 건 레이젠의 등 뒤였다. 실비아였다.


그 부름에 다르한의 어깨가 움찔했다. 검을 쥔 손에서 힘이 살짝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레이젠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실비아의 목소리가 다르한을 흔든 것이다.


"실비아 님, 지금 이게 무슨…."


돌아보며 묻는 순간 실비아와 눈이 마주쳤다. 표정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레이젠, 검을 거둬."


"이 상황에서 검을 거두라니, 지금 다르한이…."


"거두라고 했어."


말이 짧게 끊겼다. 원칙주의자 특유의 건조한 어조였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 목소리가 오히려 더 서늘했다.


'…이 사람, 지금 상황을 알고 있다.'


레이젠의 검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검을 거두면 다르한의 칼이 다시 소년을 향할 것이다. 거두지 않으면 실비아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상급자의 명령. 그리고 규율 제1조.


'검사는 약한 사람을 지킨다.'


"…거둘 수 없습니다."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실비아의 눈썹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거절하는 거야?"


"저 소년이 위험합니다. 다르한도 정상이 아니고요."


"정상이 아닌 건 맞아."


실비아가 한 걸음 다가왔다. 발소리가 낮게 울렸다.


"근데 그게 네가 검을 겨눌 이유는 안 돼."


"…무슨 뜻입니까."


"다르한은 지금 훈련 중이야."


레이젠의 눈이 커졌다. 훈련이라는 단어가 이 상황과 도무지 맞물리지 않았다.


"훈련이라니, 사람을 이런 식으로…."


"레이젠 하울릭."


이름이 불리자 말이 끊겼다. 실비아의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넌 방금 그 애가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들었지?"


"…들었습니다. 규율 문장과 비슷했습니다."


"비슷한 게 아니야."


실비아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그건 정확히 규율 제1조를 뒤집어놓은 문장이야. 누가 그걸 저 애 머릿속에 심었을까."


레이젠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심었다는 표현.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이건 실험입니까."


대답이 없다. 실비아의 침묵이 오히려 더 명확한 대답이었다.


'사라진 견습검사들.'


머릿속에서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실종 사건과 지금 눈앞의 소년. 그리고 다르한의 저 눈빛.


"…이 소년도 사라졌던 견습검사 중 하나입니까."


"질문이 많네."


실비아가 짧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온기가 없었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녀의 시선이 다르한에게로 옮겨갔다. 그 순간 다르한의 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소년의 이마를 향해 내려간다.


"다르한!"


레이젠이 다시 검을 들었다. 그러나 몸이 반보 늦었다.


'…또, 늦었다.'


숫자를 셀 겨를도 없다. 다르한의 검끝이 소년의 살갗에 닿기 직전, 레이젠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끼어들었다.


쇳소리가 지하 훈련장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불꽃이 튀었다가 사라졌다.


"…실비아 님. 이걸 막지 않으실 겁니까."


숨이 가빠졌다. 팔이 저릿하다. 실비아는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막을 이유가 없어."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여기 있는 거잖아."


실비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순간 소년의 눈이 다시 떠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레이젠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너도... 결국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르한의 검이 힘을 되찾았다. 레이젠의 검을 밀어내는 압력이 갑자기 두 배로 불어났다.


버티던 팔이 떨렸다. 발이 바닥을 파고들 듯 힘을 주었지만 검신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소년의 이마와 검 끝 사이, 남은 거리가 한 뼘도 되지 않았다.


팔이 떨렸다. 그러나 다리는 버텼다.


'…힘으로 미는 게 아니다.'


레이젠의 눈이 다르한의 발끝을 훑었다. 체중이 앞으로 쏠려 있다. 조종당하는 몸은 균형을 신경 쓰지 않는다.


'중심이 비어 있어.'


검을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힘을 흘려보냈다.


비스듬히, 검신을 타고 다르한의 압력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순간 다르한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검 끝이 허공을 갈랐다.


레이젠의 발이 반보 들어갔다. 어깨로 다르한의 팔을 걷어 올렸다.


쇳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 나가 바닥에 박혔다.


"…됐다."


숨을 몰아쉬며 소년 앞을 막아섰다. 다르한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좋아. 조종당하는 몸은 반사가 없다. 흐름을 읽으면 이긴다.'


그러나 안도할 틈은 없었다.


다르한의 손이 바닥에 떨어진 검을 다시 쥐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없다.


"…또 오는군."


레이젠이 검을 고쳐 잡았다. 이번엔 먼저 움직였다.


발끝으로 바닥을 박찼다. 다르한의 검이 올라오기 전에 검신으로 손목을 후려쳤다.


'끝났다.'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레이젠."


실비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낮게 울렸다.


"그 실력, 확인했어."


말이 이상했다. 시험. 그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돌아보려는 찰나 실비아의 손이 움직였다. 품에서 꺼낸 것은 작은 호각이었다.


낮고 긴 소리가 지하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철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쏟아지듯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다. 여럿이다.


'…무슨.'


레이젠의 검끝이 흔들렸다. 다르한을 막아선 채로 시선만 문 쪽을 향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로브를 걸친 자들이 걸어 나왔다. 얼굴을 가린 채. 하나같이 검을 들고 있었다.


"실비아 님. 이게 다 뭡니까."


목소리가 갈라졌다. 대답 대신 실비아가 소년을 향해 걸어갔다.


밧줄에 묶인 채 늘어진 소년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이 아이는 세 번째 실패작이야."


담담한 어조였다. 감정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실패작이라니."


"규율 제1조를 뒤집어서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거든."


레이젠의 손끝이 검을 쥔 채로 굳었다.


'검사는 약한 사람을 지킨다.'


그 문장을 뒤집으면.


"…검사는 약한 사람을 벤다."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 근데 이 애는 완성이 안 됐어. 저항이 남아서."


"…무슨 소리를…."


"넌 안 그럴 것 같아서 데려온 거야."


레이젠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훑고 내려갔다.


"규율을 강박적으로 되뇌는 놈일수록, 뒤집었을 때 완성도가 높거든."


숨이 턱 막혔다. 여기 온 순간부터, 어쩌면 대련장에서부터.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나.'


로브를 걸친 자들이 서서히 원을 좁혀왔다. 다르한은 여전히 뒤에서 검을 겨눈 채였다.


앞뒤로 갇힌 형국. 소년은 실비아의 손에 붙잡혀 있다.


'검사는 약한 사람을 지킨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울렸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발이 먼저 튀어 나갔다. 소년을 향해서가 아니다.


실비아를 향해서였다.


"레이젠?"


놀란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검끝이 그녀의 목 앞에서 멈췄다.


"…소년을 놓으십시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실비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거야, 내가 원했던 반응이."


박수 소리가 어둠 속에서 짧게 울렸다. 로브를 걸친 자들의 검이 일제히 들렸다.


레이젠의 검끝이 실비아의 목에 닿기 직전, 다르한의 검이 등 뒤에서 짓쳐 들어왔다.


앞은 실비아, 뒤는 다르한.


그리고 소년의 눈이 다시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는다."


이를 악물며 검을 고쳐 쥐었다.


등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밀려왔다.

총 6,749자 · 약 13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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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액션#다크판타지#성장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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