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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아이들

약 14분

섬의 아이들

주인공: 강민우

파도 소리가 귀를 찢었다.


민우는 창고 지붕 위에 엎드린 채 쌍안경을 눈에 댔다. 검은 바다 위로 불빛 세 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순찰선."


현수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세 척이나. 이건 일반 순찰이 아니야."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며 불빛 너머를 훑었다. 순찰선들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규칙적인 패턴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연이는 저 배들 중 하나에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억제제 없이 이틀째다. 서연이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이미 늦은 건 아닐까.


"민우야."


현수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저거 봐. 순찰선 뒤쪽."


쌍안경을 다시 들었다. 불빛 너머로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물살이 갈라지는 게 보였다. 수면 아래에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잠수함?"


"맞아."


현수가 쌍안경을 빼앗듯 가져갔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파도 소리만 들렸다.


"젠장."


현수가 쌍안경을 내리며 욕을 뱉었다.


"계획 변경이다. 지금 당장 철수해."


"뭐?"


민우가 몸을 일으켰다.


"서연이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저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그럼 언제?"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수가 민우의 어깨를 잡았다.


"진정해. 서연이 구하려다 우리까지 다 죽으면 그게 말이 돼?"


"근데 지금 아니면—"


"민우야."


현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내 말 들어. 지금은 때가 아니야."


'이 사람, 뭔가 이상해.'


본능이 경고했다. 현수는 항상 침착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형은 뭘 알고 있어?"


민우가 한 발짝 물러섰다.


"왜 갑자기 철수하자는 거야. 뭐 때문에—"


쾅.


창고 문이 박살났다.


철제 문짝이 안쪽으로 날아와 바닥을 굴렀다. 먼지가 피어올랐다. 민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나와."


여자 목소리였다. 낮고 차가웠다.


먼지 너머로 인영들이 보였다. 다섯, 아니 여섯. 전부 총을 들고 있었다.


"강민우, 정현수. 손 들고 나와."


민우는 현수를 봤다. 현수는 이미 두 손을 들고 있었다.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


"레나."


현수가 먼지 속을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네."


"닥쳐, 배신자."


여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검은 전투복에 짧은 머리. 왼쪽 눈 밑에 긴 흉터가 있었다. 총구가 정확히 현수의 이마를 겨냥했다.


"레지스탕스 본부에서 왔어. 정현수, 넌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한다."


"이중 스파이?"


민우가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형, 그게 무슨—"


"미안."


현수가 민우를 봤다. 웃고 있었다. 쓸쓸한 미소였다.


"처음부터 계획이었어. 너희를 이용해서 군부 정보를 빼내는 거."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거짓말이지."


"아니."


현수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유리병이었다.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억제제야. 서연이 거. 가져가."


병을 민우에게 던졌다. 민우는 반사적으로 받았다.


"도망쳐. 지금."


"형은?"


"난 괜찮아."


현수가 웃었다. 진짜 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난 이미 끝났어. 넌 살아남아야 돼."


총성이 터졌다.


현수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몸이 뒤로 휘청였다. 레나가 총을 내렸다.


"경고야. 다음은 머리."


민우는 움직일 수 없었다. 발이 땅에 박힌 것처럼.


"민우야!"


현수가 소리쳤다.


"가라고!"


레나의 부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우는 억제제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뛰었다. 창고 뒤편으로. 총성이 등 뒤에서 터졌다.


탕. 탕탕.


총알이 벽을 뚫고 날아왔다. 민우는 몸을 낮추고 계속 달렸다. 항구 쪽으로.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곳으로.


"놓치지 마!"


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따라왔다.


민우는 컨테이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좁은 틈이었다. 어깨가 철판에 긁혔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서연이. 억제제.'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수가 배신자라니. 그럼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나. 아니, 억제제는 진짜니까. 그럼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 거야.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민우는 숨을 죽이고 컨테이너 뒤에 몸을 숨겼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이쪽!"


누군가 소리쳤다. 발소리가 왼쪽으로 향했다.


민우는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컨테이너 미로는 복잡했다. 몇 번을 돌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계속 움직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발소리가 멀어졌다.


민우는 컨테이너 벽에 등을 기댔다. 철판이 차가웠다.


숨소리가 너무 컸다. 입을 막았다. 손바닥에 땀이 흘렀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심장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슴팍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주머니 속 유리병이 만져졌다. 억제제. 현수가 던진.


"이 새끼."


욕이 저절로 나왔다. 작게. 이빨 사이로.


현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웃고 있던 얼굴. 총 맞기 직전의.


'처음부터 계획이었어.'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지워지지 않았다.


"거짓말쟁이."


민우는 주먹으로 컨테이너를 쳤다. 쿵.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발소리가 멈췄다.


"저쪽이야!"


레나의 목소리였다. 가까웠다.


민우는 몸을 일으켰다. 반대편으로 뛰었다. 컨테이너 모서리를 돌아 또 달렸다.


탕탕.


총성이 뒤에서 터졌다. 총알이 철판을 뚫고 날아왔다. 불꽃이 튀었다.


민우는 몸을 낮췄다. 계속 달렸다. 숨이 목까지 찼다.


'어디로 가야 돼.'


항구 끝이 보였다. 바다였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멈춰!"


레나의 부하가 앞을 막았다. 총구가 민우를 겨냥했다.


민우는 멈췄다. 뒤에서도 발소리가 들렸다. 포위됐다.


"손 들어."


부하가 다가왔다. 총을 겨눈 채.


민우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시선은 바다를 향했다. 파도가 컨테이너 밑을 때리고 있었다.


'뛰어들까.'


생각이 스쳤다. 바다로. 그럼 살 수 있을까.


"움직이지 마."


부하가 2미터 앞까지 왔다. 손에 수갑이 들려 있었다.


그때 폭발음이 터졌다.


컨테이너 반대편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충격파가 바닥을 흔들었다.


부하가 비틀거렸다. 민우는 그 틈을 노렸다. 몸을 낮춰 달려들었다.


부하의 손목을 잡았다. 총을 위로 밀어 올렸다. 탕. 총알이 하늘로 날아갔다.


민우는 무릎으로 부하의 옆구리를 찍었다. 부하가 신음하며 쓰러졌다.


총을 빼앗았다. 무거웠다. 손에 익지 않았다.


"거기 서!"


레나의 목소리였다. 뒤에서.


민우는 돌아봤다. 레나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표정이 차가웠다.


"총 버려. 지금."


민우는 총을 내려다봤다.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다.


'쏠 수 있을까.'


손이 떨렸다. 사람을 쏴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 경고야."


레나가 한 발짝 다가왔다.


민우는 총을 바닥에 던졌다. 선택지가 없었다.


"무릎 꿇어."


레나가 명령했다.


민우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손을 머리 뒤로 깍지 꼈다.


레나가 다가왔다. 총구가 민우의 뒤통수에 닿았다.


"RH-null. 군부가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알아?"


"몰라."


"너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르겠지."


레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섬에서. 폭격 때."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이 메었다.


"내 동생도 거기 있었어. 열네 살이었지."


총구가 더 세게 눌렸다.


"너 같은 애들 지키려고 죽었어. 개처럼."


"미안해."


민우가 중얼거렸다.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레나가 비웃었다.


"그게 끝이야? 미안하다고?"


민우는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일어나. 본부로 간다."


레나가 총을 거뒀다. 민우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때 무전기 소리가 들렸다.


"레나, 응답하세요."


레나가 무전기를 꺼냈다.


"여기 레나."


"목표물 확보했습니까?"


"확보했다. 지금 이동 중—"


쿵.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민우도 봤다.


컨테이너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실루엣만 보였다. 달빛을 등지고.


"준호?"


민우가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었다.


"맞아."


준호였다. 목소리가 거칠었다. 다쳤을 때처럼.


"오래 기다렸지."


준호가 컨테이너에서 뛰어내렸다. 착지하며 무릎을 짚었다. 일어서는 게 느렸다.


"넌 죽었잖아."


민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죽을 뻔했지. 근데 안 죽었어."


준호가 웃었다. 입꼬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폭격 피해서 해안가로 갔어. 밀수업자 배 탔고."


"어떻게—"


"나중에 얘기해."


준호가 민우를 봤다. 눈빛이 달라 보였다. 예전보다 어두웠다.


"지금은 일단 여기서 나가야 돼."


레나가 총을 들었다. 준호를 겨냥했다.


"한 발짝만 더 움직여봐."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걸어왔다. 천천히.


"쏠 거면 쏴."


"진짜 쏜다."


"그래. 쏴봐."


준호가 웃었다. 이상한 웃음이었다. 포기한 사람의 웃음.


레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준호의 어깨를 뚫었다. 피가 튀었다.


준호는 비틀거렸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계속 걸어왔다.


"미쳤어?"


레나가 다시 쐈다. 탕탕.


준호의 다리가 꺾였다.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하지만 손은 앞으로 뻗어 있었다. 레나를 향해.


"이 미친놈!"


레나가 뒤로 물러섰다. 총을 재장전하려는데 준호가 발목을 잡았다.


레나가 비틀거렸다.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민우야!"


준호가 소리쳤다. 피를 토하면서.


"지금 뛰어!"


민우는 움직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레나가 총을 주우려 손을 뻗었다. 민우가 먼저 찼다. 총이 컨테이너 아래로 굴러갔다.


"개새끼들."


레나가 일어서며 칼을 뽑았다. 날이 달빛에 반짝였다.


민우는 뒤로 물러섰다. 주먹을 쥐었다. 맨손이었다.


'죽겠네.'


레나가 달려들었다. 칼이 민우의 목을 향했다.


민우는 옆으로 몸을 틀었다. 칼날이 어깨를 스쳤다. 뜨거웠다.


"으윽—"


신음이 새어 나왔다. 피가 옷을 적셨다.


레나가 다시 찔러왔다. 이번엔 옆구리.


민우는 팔로 막았다. 칼이 팔뚝을 그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죽어!"


레나가 소리쳤다. 칼을 위에서 내려찍었다.


민우는 두 손으로 레나의 손목을 잡았다. 칼끝이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힘겨루기였다. 레나가 더 셌다. 칼이 조금씩 내려왔다.


'안 돼.'


민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팔이 떨렸다. 칼끝이 코앞까지 왔다.


"놔!"


누군가 레나의 머리를 쳤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레나가 비틀거렸다. 칼을 놓쳤다.


준호였다. 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가... 가야 돼."


준호가 헐떡였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형, 병원 가야 돼."


민우가 준호를 붙잡았다. 몸이 너무 가벼웠다.


"안 돼. 시간 없어."


준호가 민우의 손을 뿌리쳤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본부로 가야 돼. 서연이..."


말이 끊겼다. 준호가 피를 토했다. 검붉은 덩어리였다.


"형!"


민우가 달려가 준호를 잡았다. 준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괜찮아."


준호가 웃었다. 이빨에 피가 묻어 있었다.


"거짓말 마."


"진짜야. 나... 원래 이래."


준호가 주머니를 뒤졌다. 뭔가를 꺼냈다. 종이였다. 구겨진.


"지도. 본부 가는."


민우의 손에 쥐여줬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서연이 구해. 넌... 할 수 있어."


"형이 가야지. 같이."


"못 가."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눈이 풀려 있었다.


"나 이미... 끝났어. 폭격 때... 파편 맞았거든."


민우의 손이 멈췄다. 준호의 옆구리를 봤다. 옷이 찢어져 있었다.


안이 보였다. 검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루나 감염. 파편에 묻어 있었나 봐."


준호가 웃었다. 슬픈 웃음이었다.


"어차피 오래 못 살아. 그러니까..."


말을 잇지 못했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피가 쏟아졌다.


"형."


민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에 뭔가 고였다.


"울지 마. 너답지 않게."


준호가 민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차갑고 무거웠다.


"미안해. 먼저 가서."


"가지 마."


"...가야 돼."


준호의 손이 떨어졌다. 바닥에 닿았다.


눈이 감겼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형?"


민우가 준호를 흔들었다. 대답이 없었다.


"형! 일어나!"


소리쳤다. 목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민우는 준호를 안았다. 몸이 떨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또야. 또...'


서연이도. 현수도. 이제 준호까지.


전부 잃었다.


"으아아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늘을 향해.


달이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민우는 준호를 내려놓았다. 눈을 감겨줬다.


지도를 펼쳤다. 손이 떨려서 잘 안 보였다.


본부 위치가 표시돼 있었다. 항구 반대편. 폐공장 지하.


'서연이.'


민우는 일어났다.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억제제를 만졌다. 주머니 속에서. 아직 깨지지 않았다.


'가야 돼.'


뒤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레나였다. 일어나고 있었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놓치지 않아."


레나가 총을 주웠다. 민우를 향해 겨눴다.


민우는 뛰었다. 컨테이너 사이로.


탕탕탕.


총성이 뒤를 쫓았다. 총알이 철판을 뚫었다.


민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 달렸다.


지도를 쥔 채.


항구를 벗어났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발소리가 따라왔다. 여럿이었다.


"저쪽이다!"


레나의 부하들이었다.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었다.


민우는 골목 끝에서 멈췄다. 막다른 길이었다.


벽만 있었다. 3미터는 넘어 보였다.


'넘을 수 있을까.'


뒤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민우는 벽을 올랐다. 손톱이 벽돌 틈에 걸렸다. 발이 헛디뎠다.

총 6,770자 · 약 14분

- 4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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