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이 보이는 남자
주인공: 강태민
알람이 울린 건 7시 30분이었다.
강태민은 침대 밑에서 울리는 스마트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바닥을 더듬었지만 닿지 않았다.
"아... 씨."
결국 침대에서 반쯤 떨어진 자세로 겨우 알람을 껐다.
머리가 무거웠다. 눈꺼풀은 모래주머니처럼 감겼다.
'어제 몇 시에 잤더라.'
핸드폰 화면을 켜자 새벽 5시 23분에 마지막으로 본 숏츠 제목이 떠올랐다. '직장인 월급으로 파이어족 되는 법 (레전드)'
"...레전드는 개뿔."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월요일이었다. 출근까지 30분. 씻을 시간도 없었다.
태민은 거울 앞에 섰다.
부은 눈, 기름진 이마, 턱선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얼굴.
"하... 이래서 내가 안 되는 거지."
혼잣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왔다.
그때였다.
시야 한쪽 구석에 뭔가 떴다.
반투명한 사각형 창. 파란빛 테두리가 희미하게 빛났다.
[강태민 Lv.1]
근력: 12 / 지구력: 8 / 집중력: 5 / 의지: 3
"...뭐야 이거."
태민은 눈을 비볐다.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창이 손끝을 피해 미끄러졌다.
'눈에 뭐 들어갔나.'
세수를 다시 했다. 찬물로 눈을 헹궜다.
거울을 보니 창은 여전히 떠 있었다. 숫자들이 또렷했다.
"의지 3... 진짜 개웃기네."
자조 섞인 웃음이 났다. 어제 새벽까지 숏츠 본 인간한테 딱 맞는 수치였다.
'피곤해서 환각 보는 건가.'
일단 출근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현관을 나섰다.
---
지하철 안은 월요일 특유의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태민은 손잡이를 잡고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습관적으로 숏츠 앱을 켰다.
첫 영상이 재생되는 순간이었다.
상태창에 빨간 글씨가 떴다.
[경고: 도파민 과다 섭취 감지]
[-1 집중력 / -1 의지]
"...헐."
태민은 화면에서 눈을 뗐다.
상태창의 숫자가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집중력: 5→4
의지: 3→2
'이거 진짜야?'
심장이 빨라졌다. 손끝이 저렸다.
다시 숏츠 화면을 보자 경고창이 또 떴다.
[-1 의지 예상]
태민은 앱을 껐다.
숫자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미친... 이게 뭔데.'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창은 오직 그에게만 보였다.
---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땐 8시 50분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태민이 무리 뒤에 섰을 때, 상태창에 새 메시지가 떴다.
[튜토리얼 퀘스트]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3층까지 오르기
보상: 지구력 +1
"...뭐?"
태민은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보상. 지구력 +1.
'게임도 아니고.'
하지만 아까 숏츠 봤을 때 수치가 진짜로 떨어졌다.
그럼 이것도 진짜일까?
'에이, 설마.'
태민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상태창이 흔들렸다.
[보상 포기 시 패널티 없음 / 단, 재도전 불가]
발이 멈췄다.
재도전 불가.
"...아 진짜."
태민은 돌아섰다. 비상계단 문을 밀었다.
계단은 예상보다 가팔랐다.
숨이 차기 시작한 건 1층 반쯤 올라갔을 때였다.
'평소에 얼마나 안 움직였으면.'
다리가 무거웠다. 허벅지가 당겼다.
3층 문 앞에 도착했을 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퀘스트 완료!]
지구력 8→9
황금빛 글씨가 터졌다. 작은 불꽃 이펙트가 흩어졌다.
그 순간, 몸이 달라졌다.
미세하게, 정말 미세하게.
호흡이 가라앉는 속도가 빨라졌다. 다리의 무게감이 줄었다.
"...헐."
태민은 제자리에서 두 발을 굴렀다.
분명히 달랐다.
'이거 진짜잖아.'
손이 떨렸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
점심시간까지 태민은 상태창만 들여다봤다.
업무 중에도 시야 한쪽에 떠 있는 숫자들이 신경 쓰였다.
물을 한 잔 마셨다.
[수분 보충 / 집중력 일시 +1]
집중력: 4→5(일시)
"오..."
화장실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유연성 +0.5 / 근력 +0.2]
"이거 완전 게임이잖아."
태민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점심은 평소처럼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포크를 들려다 멈췄다.
상태창에 영양 정보가 떴다.
[탄수화물 과다 / 단백질 부족 / 나트륨 초과]
[예상 효과: 집중력 -1, 지구력 -0.5]
"...에이 설마."
태민은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포크가 밥에 닿지 않았다.
'한 번만... 한 번만 참아보자.'
그는 도시락을 덮고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닭가슴살 샐러드와 삶은 계란을 샀다.
먹고 나자 상태창이 떴다.
[균형 잡힌 식사 / 집중력 +1, 지구력 +0.5]
"미쳤다..."
태민은 샐러드 용기를 내려다
태민은 샐러드 용기를 내려다봤다.
입맛은 없었다. 솔직히 편의점 도시락이 훨씬 당겼다.
'그래도 숫자는 올랐잖아.'
화면 속 집중력 수치를 보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5. 아침보다 1 올랐다.
"이 정도면 오후 회의 때 졸지 않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모니터 앞에 앉자 상태창이 또 떴다.
[일일 퀘스트 갱신]
**1. 물 2L 마시기 (진행도: 300ml/2000ml)**
**2. 30분 이상 집중 업무 (0/30분)**
**3. 간식 참기 (성공 시 의지 +1)**
"간식 참기라..."
태민은 서랍을 열었다. 초코바 세 개가 굴러다녔다.
'일단 나중에.'
서랍을 닫았다. 손이 근질거렸지만 참았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자 타이머가 돌기 시작했다.
[집중 시간 측정 중 / 00:00:12]
"오 이건 또 뭐야."
신기해서 계속 지켜봤다. 10초, 20초, 30초.
그러다 핸드폰 진동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집중 중단 / 00:00:37]
"아 씨..."
타이머가 리셋됐다.
'30분을 한 번에 채워야 하는 건가.'
태민은 핸드폰을 서랍에 쑤셔 넣었다.
이번엔 진짜 모니터만 봤다.
---
30분이 지났을 때 알림이 터졌다.
[퀘스트 완료!]
집중력 +1
5에서 6으로 올랐다.
동시에 머릿속이 맑아졌다.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이거... 진짜 체감이 되네.'
아까보다 모니터 글씨가 선명했다. 타자 속도도 빨라진 것 같았다.
옆자리 박준혁이 고개를 돌렸다.
"태민아, 오늘 왜 이렇게 열심히 해?"
"...그냥요."
"점심도 샐러드 먹고. 다이어트 시작했어?"
준혁의 눈빛이 묘했다.
평소처럼 장난스럽지 않았다. 뭔가 확인하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아뇨, 그냥 몸이 안 좋아서요."
태민은 시선을 피했다.
준혁은 잠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몸 관리 잘해."
돌아서는 준혁의 뒷모습이 이상했다.
어깨가 너무 펴져 있었다. 걸음걸이도 평소보다 가벼웠다.
'...설마.'
태민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태민은 가방을 챙기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일일 퀘스트 진행도]
**1. 물 2L 마시기 (1,200ml/2,000ml) - 미완료**
**2. 30분 이상 집중 업무 - 완료**
**3. 간식 참기 - 완료**
"물은 좀 더 마셔야겠네."
정수기로 걸어가는데 상태창에 새 메시지가 떴다.
[메인 퀘스트 해금까지: 2일]
현재 레벨로는 클리어 불가능
권장 사항: 지구력 15 이상 달성 후 도전
"메인 퀘스트?"
태민은 걸음을 멈췄다.
지금까지 나온 건 전부 일일 퀘스트였다.
메인은 뭐가 다를까.
'2일 후면... 수요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 반, 불안 반.
물을 한 컵 더 마시고 나왔다.
[일일 퀘스트 완료! / 보상: 체력 +0.5]
---
집에 도착한 건 7시였다.
평소 같았으면 배달 앱을 켰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냉장고를 열자 상태창이 식재료를 분석했다.
[계란 6개 - 단백질 우수 / 시금치 - 철분 풍부 / 햄 - 나트륨 과다, 비권장]
"햄은 빼고..."
태민은 계란과 시금치를 꺼냈다.
요리라고 해봤자 스크램블 에그가 전부였지만, 만드는 동안 상태창이 계속 떴다.
[조리 스킬 경험치 +1]
[영양 균형 +5%]
"스킬 경험치까지 있어?"
웃음이 났다.
접시에 담아 먹는데 맛은 별로였다. 소금을 덜 넣었다.
그래도 상태창은 칭찬했다.
[자취 요리 달성!]
의지 +1 / 체력 +0.5
"의지가 올라?"
태민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아까 2였던 의지가 이제 4였다.
간식 참은 것, 요리한 것. 두 번 올랐다.
'그럼 의지를 올리려면 뭔가를 참아야 하는 건가.'
메모장을 꺼내 적었다.
- 집중력: 업무, 독서 등
- 지구력: 계단, 운동
- 의지: 유혹 참기, 귀찮은 일 하기
- 근력: 운동?
"체계가 있네."
태민은 핸드폰을 들었다.
습관적으로 숏츠 앱을 켜려다 멈췄다.
아침에 봤던 경고창이 떠올랐다.
[-1 의지 예상]
'...참자.'
핸드폰을 엎어놨다.
대신 유튜브에서 '헬스 초보 루틴'을 검색했다.
영상을 보는 동안 상태창이 떴다.
[학습 중 / 집중력 +0.2]
"이것도 올라?"
태민은 영상을 끝까지 봤다.
푸시업 10개, 스쿼트 20개, 플랭크 30초.
"할 만한데?"
거실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
푸시업 다섯 개째에서 팔이 풀렸다.
"으으..."
바닥에 엎어졌다. 숨이 턱까지 찼다.
[근력 부족 / 현재 수행 가능 횟수: 5개]
"...겨우 5개?"
자존심이 상했다.
태민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다시 자세를 잡았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에서 팔꿈치가 꺾였다.
턱이 바닥에 닿았다.
[푸시업 8회 달성!]
근력 +0.5
"겨우... 8개로..."
태민은 매트에 누웠다. 심장이 귀에서 뛰었다.
팔이 떨렸다. 삼두근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게... 운동이구나.'
숨을 고르는데 상태창이 또 떴다.
[회복 권장 / 무리한 운동 시 부상 위험 +30%]
"알았어, 알았다고."
태민은 일어나 물을 마셨다.
시계를 보니 밤 9시였다.
'샤워하고 자야지.'
---
침대에 누웠을 때 상태창이 하루를 정리했다.
[DAY 1 결산]
체력: 15→16
근력: 3→3.5
지구력: 8→9
집중력: 4→6
의지: 2→4
레벨 업 진행도: 47%
"내일도 이 정도면 레벨 2 되겠는데?"
태민은 이불을 덮었다.
근육통이 느껴졌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처음으로 뭔가 해낸 것 같은데.'
눈을 감았다.
상태창은 천천히 희미해졌다.
---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어?"
태민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5시 3분.
평소엔 알람을 세 번 꺼야 일어났다.
상태창이 떴다.
[수면의 질: A-]
회복량: 92%
새로운 특성 획득: 조기 기상 Lv.1
"특성?"
메시지를 펼쳤다.
[조기 기상: 수면 효율 증가, 기상 후 피로도 -20%]
"미쳤다..."
태민은 몸을 일으켰다.
어제 운동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근육통도 거의 없었다.
상태창 상단에 새 알림이 있었다.
[레벨 업!]
Lv.1 → Lv.2
새로운 기능 해금됨
심장이 뛰었다.
태민은 메시지를 눌렀다.
화면이 바뀌며 새 탭이 열렸다.
[메인 퀘스트]
1단계: 30일 안에 체력 30 달성
현재 체력: 16
남은 기간: 30일
보상: ???
실패 시: 상태창 영구 소멸
"...뭐?"
태민은 화면을 다시 읽었다.
30일. 체력 30.
지금 16이니까 14를 올려야 한다.
'하루에 0.5씩만 올려도... 아니 그게 가능한가?'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마지막 문장이었다.
'실패 시 영구 소멸?'
목구멍이 말랐다.
상태창을 잃는다는 건 이 모든 변화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그건... 싫은데.'
태민은 화면을 내렸다.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현재 활성 사용자: 247명]
완주자: 3명
탈락자: 189명
손이 떨렸다.
"사용자가... 247명?"
태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만 가진 게 아니었어.'
247명.
그럼 회사에도 있을 수 있다. 길거리에도.
'박준혁도?'
어제 준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똑바른 자세. 가벼운 걸음걸이.
"설마..."
---
출근길 지하철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태민은 손잡이를 잡고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누가 사용자일까.
겉으로는 알 수 없었다.
'완주자 3명, 탈락자 189명...'
탈락자가 훨씬 많았다.
그럼 실패하는 게 정상인 건가.
가슴이 답답했다.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태민아."
박준혁이었다.
"...선배님."
"오늘 일찍 나왔네. 어제 일찍 잤어?"
준혁의 눈빛이 달랐다.
농담하는 게 아니었다. 뭔가 확인하려는 시선이었다.
"네, 좀."
"요즘 달라진 거 있어?"
"...예?"
태민은 한 발 물러섰다.
준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몸 관리 시작했다며. 샐러드 먹고, 계단 오르고."
"그냥... 건강 챙기려고요."
"그래?"
준혁은 잠시 그를 보다가 낮게 웃었다.
"조언 하나 할게."
목소리가 낮아졌다.
"숫자를 쫓지 마. 숫자가 너를 쫓게 만들어."
"...네?"
"곧 알게 될 거야."
준혁이 돌아섰다.
그 순간, 태민의 상태창에 빨간 알림이 떴다.
[경고!]
**근처에 Lv.??? 사용자 감지**
권장 행동: 접촉 회피
태민은 숨을 멈췄다.
준혁의 뒷모습 위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상태창이었다.
준혁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레벨이 물음표였다.
'레벨을 측정할 수 없다고?'
준혁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웃었다.
"30일. 생각보다 짧아."
등골이 서늘했다.
준혁은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태민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상태창이 또 떴다.
[메인 퀘스트 갱신]
경고: 고레벨 사용자와의 접촉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변수?"
태민은 화면을 응시했다.
그때 새 메시지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숨겨진 정보 해금]
완주자 3명 중 1명: 박준혁
달성 일자: 58일 전
손에서 힘이 빠졌다.
준혁은 이미 끝낸 사람이었다.
58일 전이면 두 달 전이었다.
'그때부터였구나.'
준혁이 달라진 시점과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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