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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도둑

약 16분

감정 도둑

주인공: 강서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 얼굴이 다 보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그냥 앉아 있을 뿐이고, 사람들은 그냥 지나갈 뿐이니까.


"서윤아, 너 요즘 좀 이상해."


민수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


"그냥... 뭐랄까. 예전보다 더 말이 없어진 것 같아."


"원래 이런데."


"아니, 그게 아니라."


민수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의 눈을 보지 않으려고 창밖을 봤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신호가 바뀌면 멈추고, 다시 바뀌면 걷는다. 단순한 일이다.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없는데."


"진짜?"


"응."


민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니, 크게 들린 게 아니라 무거웠다. 한숨이 무게를 가질 수 있나 싶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가슴 어딘가가 눌리는 느낌. 숨 쉬기가 조금 힘들어졌다.


"요즘 회사에서 힘들어서 그래. 상사가 미친 것 같아. 매일 야근이고, 주말에도 연락 오고."


민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긴 뭐가 있어. 진짜 미치겠다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넌 항상 그렇게 말하더라. 어쩔 수 없다고."


민수가 컵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떨림을 따라가듯 시선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죽고 싶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다. 내 생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 생각이 아닌데, 뇌 안쪽 어딘가에 못처럼 박혀서 빠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참았다. 민수를 봤다. 그의 눈이 텅 비어 있었다.


"민수야."


"응?"


"너 괜찮아?"


"뭐가?"


"그냥."


민수는 웃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죽어 있었다.


"나 괜찮아. 너나 좀 밝게 살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자기가 하겠다며 카운터로 갔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손을 봤다. 떨리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숨 쉬기가 편했다.


민수가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거실에 앉아 있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자막만 올라가고 있었다.


"밥 먹었어?"


"응."


"뭐 먹었는데?"


"친구랑 카페 갔어."


"카페에서 밥을 먹어?"


나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췄다. 엄마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그냥 커피 마셨어."


"점심도 안 먹고?"


"먹었어, 학교에서."


"학교에서 뭐 먹었는데?"


"...김밥."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복도에 서서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돌리지는 않았다.


"서윤아."


"응."


"너 요즘 왜 그래?"


"뭐가."


"내가 뭐 물어보면 대답을 성의 없이 해. 예전엔 안 그랬는데."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뭐가 그럴 수도 있어?"


엄마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손잡이를 돌렸다.


"엄마, 나 피곤해."


"야, 강서윤."


문을 닫았다. 엄마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알아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죽고 싶다.'


그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민수 것이었는데 이제는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구분이 안 됐다. 나는 눈을 감았다.


---


지현이한테 연락이 온 건 일주일 뒤였다.


"서윤아, 나 너 만나야 할 것 같아."


"왜?"


"그냥... 할 말이 있어."


우리는 학교 근처 스터디룸에서 만났다. 지현은 평소와 달리 화장을 하지 않았다. 머리도 대충 묶었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은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어?"


"응."


지현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켜지도 않고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 요즘 이상해."


"어떻게?"


"감정이 안 느껴져."


나는 지현을 봤다.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 그냥... 아무것도 안 느껴져."


"우울한 거 아니야?"


"우울한 것도 아니야. 우울하면 슬픈 거잖아. 근데 나는 슬프지도 않아. 그냥 텅 빈 것 같아."


지현이 나를 봤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너 나한테 뭐 한 거 아니야?"


"...뭘?"


"마지막으로 너 만나고 나서부터 이래. 그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은 있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미안."


"뭐가 미안한데?"


"나도 모르겠어."


지현은 웃었다. 민수처럼 표정 없이 웃었다.


"너 진짜 이상해.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응."


"나 너 만나기 싫어졌어."


그 말이 칼처럼 박혔다. 지현은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연락하지 마. 나도 안 할게."


문이 닫혔다. 나는 혼자 남았다. 스터디룸 안은 조용했다. 에어컨 소리만 들렸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지현과의 대화창을 봤다. 마지막 메시지는 일주일 전이었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 ㅋㅋㅋ 다음에 또 보자!' 느낌표가 세 개나 붙어 있었다. 그때 지현은 웃고 있었다. 진짜로 웃고 있었다.


나는 대화창을 지우지 않았다. 그냥 껐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삼각김밥 하나와 물을 샀다. 계산대 직원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나도 그를 보지 않았다. 카드를 찍고 나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엄마가 거실에 서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디 갔다 와?"


"스터디룸."


"누구랑?"


"혼자."


엄마는 나를 뚫어지게 봤다. 나는 신발을 벗었다.


"서윤아, 나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뭔데."


"너 내 마음에 뭘 한 거니?"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슨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근데 요즘 너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내가 널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공허해."


엄마가 눈물을 닦았다. 손등으로 대충 닦아서 얼굴이 젖었다.


"엄마는 너 낳고 키우면서 한 번도 이런 생각 안 해봤어. 근데 요즘 자꾸 드는 거야.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이게 맞는 건지."


"엄마..."


"너 나한테 뭐 한 거 맞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울음을 듣고 있었다. 가슴 어딘가가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텅 비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핸드폰을 켰다. 민수한테서 온 메시지가 있었다.


"서윤아, 나 입원했어."


시간은 세 시간 전이었다. 나는 일어나 앉았다.


"어디? 왜?"


답장은 바로 왔다.


"손목 그었어. 많이는 아니고. 엄마가 발견해서."


손이 떨렸다.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어느 병원?"


"성모병원. 근데 오지 마. 너 보고 싶지 않아."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숨이 막혔다. 방 안 공기가 무거웠다. 나는 창문을 열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민수가 손목을 그었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그의 감정을 가져갔으니까. 그가 느껴야 할 슬픔도, 고통도, 심지어 살고 싶은 마음까지 내가 다 빼앗아버렸으니까.


나는 거울을 봤다. 거울 속 내가 울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모르겠었다. 이게 내 감정인지 민수 것인지, 엄마 것인지, 지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사라지면 되는 거 아닐까.'


그 생각이 스쳤다. 너무 자연스럽게 스쳐서 무서웠다. 이게 내 생각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에 엄마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소리가 안 들렸다. 음소거였다.


"엄마."


엄마가 나를 봤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병원."


"아파?"


"아니, 친구 문병."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누구 문병이냐고, 위험하지 않냐고, 언제 들어오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엄마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현관문을 나섰다.


---


병원까지는 버스로 삼십 분이었다. 창밖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민수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또 그의 감정을 빼앗아버리는 걸까. 이미 남은 게 없는데 뭘 더 가져간다는 거지.'


버스 안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핸드폰을 보거나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옆자리 할머니는 졸고 있었다. 앞자리 남자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응, 알았어. 조금 있다 갈게."


나는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만약 눈이 마주치면, 만약 그들의 감정이 느껴지면, 또 가져가버릴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로비는 밝았지만 복도는 어두웠다. 안내 데스크에서 민수 병실 번호를 물었다. 간호사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6층 603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문이 열릴 때마다 소독약 냄새가 짙어졌다. 6층에서 내렸다. 복도는 조용했다. 간호사 몇 명이 지나갔다. 나는 603호 앞에 섰다.


문을 열지 못했다. 손이 손잡이에 닿았지만 돌리지 못했다.


'들어가면 안 돼. 또 망가뜨릴 거야.'


하지만 나는 문을 열었다.


민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왼쪽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창가를 보고 있다가 나를 봤다.


"오지 말랬잖아."


"미안."


"미안하면 뭐 해. 넌 항상 미안하다고만 하잖아."


나는 입구에 서 있었다. 들어가지 못했다.


"나 때문이지?"


민수는 웃었다. 억지로 웃는 것 같았다.


"너 때문이면 어쩔 건데. 책임질 거야?"


"...모르겠어."


"그럼 오지 말았어야지. 왜 왔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수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얼굴이 창백했다.


"서윤아, 너 진짜 이상해. 너 만나고 나면 다들 망가져. 지현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알아."


"알면서 왜 계속 사람 만나?"


"...나도 모르겠어."


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지친 표정이었다.


"가줄래. 보기 싫어."


나는 뒤돌아 나왔다. 문을 닫을 때 민수가 다시 창가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의 뒷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다.


복도를 걷는데 다리에 힘이 없었다. 벽에 기대 서서 숨을 쉬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울고 싶었지만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아?"


나는 돌아봤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놀란 표情으로 나를 봤다.


"여기 왜 왔어? 아파?"


"아뇨, 친구 문병."


"누구? 민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표정이 어두워졌다.


"들었어. 많이 놀랐지?"


"...네."


선생님이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서윤아, 너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 무슨 일 있어?"


"아뇨."


"선생님한테 말해봐.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이 다가오지 못하게 손을 들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왜?"


"그냥... 오지 마세요."


선생님이 멈췄다.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계단으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었다. 6층에서 1층까지 뛰어 내려갔다. 숨이 찼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차갑게 얼굴을 때렸다. 나는 병원 앞 벤치에 앉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어디야?"


"병원 앞."


"언제 와?"


"...모르겠어."


"서윤아, 엄마 너 없으면 안 돼. 제발 집에 와."


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울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바로 다시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봤다. 별이 없었다. 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내가 사라지면 다들 괜찮아질까.'


그 생각이 또 스쳤다. 이번엔 더 선명했다. 더 확실했다.


핸드폰을 다시 켰다. 검색창에 '감정 전이'를 쳤다. 여러 글이 나왔다. 심리학 용어, 상담 사례, 공감 능력에 대한 글들. 하지만 내 경우와 같은 건 없었다. 다들 비유적 표현이었다. '마치 감정을 빼앗기는 것 같다'는 식이었다. 진짜로 빼앗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다른 검색어를 쳤다. '감정 흡수', '공감 능력 과다', '타인 감정 느끼기'. 역시 비슷한 글들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초능력'을 검색했다. 판타지 소설, 영화, 만화가 나왔다. 현실과는 관계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껐다. 주머니에 넣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늘게, 그다음엔 굵게.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비를 맞았다. 옷이 젖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다. 차가웠다.


누군가 우산을 내 위로 가져다 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르는 남자였다. 삼십 대쯤 되어 보였다. 정장을 입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미소 지었다. 피곤한 미소였다.


"저도 힘든 날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당신이 보이더라고요."


남자가 옆에 앉았다. 우산을 우리 둘 사이에 세웠다.


"혹시 말 들어줄 수 있어요?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저는 안 돼요."


"왜요?"


"저한테 말하면 안 좋아져요."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이에요?"


"그냥 그래요. 저한테 감정을 드러내면 그게 없어져요."


남자가 웃었다. 진짜로 웃었다.


"그럼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요? 힘든 감정 없애주는 거잖아요."


"아뇨. 좋은 감정도 없어져요. 전부 다요."


남자의 웃음이 사라졌다. 나를 빤히 봤다.


"그럼 지금 내가 당신한테 말하면..."


"제가 가져가요. 당신 감정을."


남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아요. 어차피 이 감정들 가지고 있어봤자 힘들기만 하니까."


"나중에 후회해요."


"후회해도 상관없어요. 지금 당장이 너무 힘드니까."


남자가 말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해고당했다는 것, 아내가 떠났다는 것, 아이를 볼 수 없게 됐다는 것.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을 참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느꼈다. 그의 슬픔이, 분노가, 절망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걸. 마치 물이 스며들듯이. 거부할 수 없었다. 막을 수도 없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평평해졌다. 감정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표정해졌다.


"...이상하네요. 말하다 보니까 별로 슬프지 않아요."


"그럴 거예요."


"당신 말이 맞았네요. 정말 없어지는 것 같아요."


남자가 일어났다. 우산을 접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좀 나아진 것 같아요."


남자가 걸어갔다. 뒷모습이 가벼워 보였다. 텅 빈 것처럼.


나는 다시 혼자 남았다. 비를 맞으며 앉아 있었다. 남자의 슬픔이 내 안에 쌓였다. 이미 가득 찬 것 같았는데 계속 들어왔다.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났다. 비틀거렸다. 병원 쪽을 봤다. 불이 켜져 있었다. 민수가 저 안에 있었다. 엄마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현은 어디선가 텅 빈 채로 살고 있었다.


다 내 탓이었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냥 걸었다. 비를 맞으며, 젖은 옷을 입고, 무거운 몸을 끌고.


길모퉁이를 돌았을 때 누군가와 부딪쳤다. 넘어질 뻔했지만 그 사람이 잡아줬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자였다.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우산을 쓰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안 보고 왔어요."


여자가 나를 자세히 봤다.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완전 젖었네요. 괜찮아요?"


"네."


"우산 같이 쓸래요? 어디 가세요?"


"...모르겠어요."


"네?"


나는 여자를 봤다. 그녀의 눈이 보였다. 따뜻했다.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느꼈다. 그녀의 감정이 흘러들어오는 걸. 따뜻함이, 친절함이, 걱정이.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쳤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여자가 놀라 뒤로 물러났다. 우산이 떨어졌다.


"왜, 왜 그러세요?"


"그냥 가세요. 제발."


"하지만..."


"가라고요!"


내 목소리가 커졌다. 여자가 무서워하는 게 보였다. 우산을 집어 들고 뒤돌아 걸어갔다. 한 번 뒤돌아봤지만 이내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이 가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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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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