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6,883자

화경: 보이지 않는 실타래

주인공: 오진우

향 연기가 제단 위로 느릿하게 올라갔다.

진우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연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할머니의 제단. 낡은 나무 액자 속 흑백사진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사흘째네.'

장례식이 끝난 뒤로 이 한옥에 혼자였다. 유품 정리라고 시작했지만, 손에 잡히는 건 먼지뿐이었다. 할머니의 낡은 무명옷, 굿할 때 쓰던 방울, 이름 모를 부적들.

"...뭐 하나 버릴 수가 없네."

중얼거린 목소리가 텅 빈 방에 울렸다.

발소리가 들렸다. 마당 쪽에서.

진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군지 알았다.

"진우야."

민서였다.

문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도시락 가져왔어. 문 좀 열어줘."

진우는 한숨을 쉬었다. 일어서서 문 앞까지 걸어갔지만, 열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가."

"뭐가 괜찮아. 사흘 동안 밥도 안 먹었잖아."

"먹었는데."

"거짓말. 네가 편의점 도시락 사 먹으면 쓰레기통에 용기 쌓이잖아. 근데 아무것도 없더라."

'쓸데없이 관찰력이 좋아.'

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내가 굶든 말든 상관없잖아."

문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민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도시락은 문 앞에 둘게. 나중에라도 먹어."

발소리가 멀어졌다.

진우는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왜 자꾸 오는 거야.'

다시 제단 앞으로 돌아갔다. 향은 이미 반쯤 타들어가 있었다.

진우는 손을 뻗어 새 향을 집으려다 멈칫했다.

손끝에서 뭔가 뜨거웠다.

"...뭐지."

열기가 손가락 끝에서 손바닥으로 번졌다. 따끔한 게 아니라,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아니, 흐려진 게 아니었다. 뭔가 보였다.

제단 위로 불꽃 같은 잔상이 번쩍였다. 할머니였다. 하얀 무명옷을 입고 굿을 하고 있었다. 방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일렁이듯 떠올랐다 사라졌다.

"...헉."

진우는 손을 움켜쥐었다. 잔상이 사라졌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두드렸다.

'뭐였지, 방금.'

제단 위 나무 염주가 데굴데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진우는 염주를 주워 들었다. 낡은 나무 알갱이들이 손 안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할머니...'

그 순간 머릿속에 할머니 목소리가 스쳤다.

—진우야, 네가 보면 안 돼.

환청이었을까.

진우는 염주를 꽉 쥐었다. 손끝이 또 뜨거워지려는 걸 느끼며 재빨리 염주를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미쳤나."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

다음 날 아침, 진우는 동네 슈퍼에 들렀다.

라면 몇 개와 물 한 병. 계산대 앞에 물건을 내려놓으며 카드를 꺼냈다.

계산대 앞에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단골인 듯 주인 아주머니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우는 고개를 숙인 채 카드를 내밀었다.

그때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영상이 펼쳐졌다. 여성이 울고 있었다. 작은 분홍색 신발이 보였다. 아이의 신발. 여성이 그 신발을 껴안고 흐느끼는 모습이 일렁였다.

'아니, 이게 뭐야—'

여성의 고통이 진우에게 쏟아졌다. 가슴이 조여들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구멍이 메었다.

"...으."

진우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카드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 손님?"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진우는 슈퍼 문을 박차고 나갔다.

골목길로 뛰어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였어, 방금.'

손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여성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슬픔이, 자책이, 고통이 진우의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미친."

진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진우야!"

민서였다.

진우는 고개를 들었다. 민서가 골목 입구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왜 또 나타나는 거야."

진우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민서는 진우 앞에 쪼그려 앉았다. 숨을 헐떡이며 진우를 바라봤다.

"슈퍼 아줌마가 연락했어. 네가 갑자기 뛰쳐나갔다고."

"...상관없는데."

"상관있어."

민서는 진우의 손을 보았다. 떨리고 있었다.

"네가 이상하다는 거 알아.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더 이상해졌어."

진우는 민서를 쏘아봤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뭘 어쩌긴. 도와주려고."

"필요 없어."

진우는 일어서려 했다. 민서가 진우의 손을 잡았다.

"그럼 왜 손 떨고 있어?"

진우는 손을 뿌리쳤다.

민서의 손이 공중에 멈춰 있었다.

진우는 그 손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만 좀 쫓아다녀."

"쫓아다니는 거 아니야."

민서는 손을 거뒀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가 여기 온다는 거 알았어. 항상 슈퍼 들르잖아."

'항상?'

진우는 민서를 똑바로 봤다.

"언제부터 내 동선을 외우고 다닌 건데."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부터."

민서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부탁할 게 있어서."

"거절."

진우는 일어섰다. 다리가 아직 휘청거렸지만 참았다.

민서가 뒤따라 일어났다. 진우의 앞을 막아섰다.

"내 동생 찾아줘."

"...뭐?"

"박민하. 내 동생. 작년에 실종됐어."

민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찰은 가출로 결론 냈어. 근데 민하는 그럴 애가 아니야. 누가 데려간 거야."

진우는 비웃었다.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네 할머니한테 들었어. 네가 사람 찾는 능력 있다고."

'할머니가 말했다고?'

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거짓말 아니잖아. 방금 슈퍼에서 뭘 봤잖아."

민서는 한 발 다가섰다.

"네 손 떨리는 거, 숨 헐떡이는 거, 다 봤어. 뭔가 보인 거 맞지?"

진우는 뒤로 물러섰다.

"착각이야."

"아니야."

민서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교복 입은 여학생이 웃고 있었다. 민서를 닮았지만 더 어렸다.

"이 애 좀 찾아줘. 제발."

진우는 사진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민서가 사진을 진우 눈앞까지 들이밀었다.

순간 눈앞이 또 번쩍였다.

학교 복도였다. 여학생이 뛰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여학생이 뒤를 돌아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만—'

진우는 사진을 쳐냈다.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왜 그래!"

민서가 소리쳤다.

진우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하지 마."

"뭘?"

"그 사진 치워."

민서는 사진을 주워 들었다. 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뭘 봤어?"

"아무것도."

"거짓말."

민서는 진우의 팔을 잡았다.

"네가 뭘 보는 사람인 거 알아. 할머니가 그랬어. 진우는 타고났다고."

진우는 팔을 빼냈다.

"할머니가 그랬다면서, 내가 능력 있다고. 그럼 왜 나한테 직접 말 안 했을까?"

민서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면 거짓말이니까."

진우는 돌아섰다.

민서는 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나한테 전화했어."

진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진우 좀 지켜봐달라고. 곧 힘들어질 거라고."

민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만약 진우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절대 혼자 두지 말라고."

진우는 뒤돌아봤다.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그냥 그렇게 부탁하셨어."

민서는 사진을 가방에 넣었다.

"그래서 지켜본 거야. 네가 뭔가 보고 있다는 거."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왜.'

민서는 한 걸음 다가왔다.

"도와줄 순 없어?"

"...싫어."

"왜?"

"남 일이니까."

진우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민서는 따라오지 않았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햇빛이 눈을 찔렀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진우는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진동이 멈추지 않았다.

"...뭐."

짧게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낡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진우씨?"

"누구세요."

"할머니 제자였던 사람이야. 정심이 얘기 많이 들었어."

진우는 걸음을 멈췄다.

"...할머니 제자요?"

"응. 만나고 싶은데. 할머니가 남긴 것들 중에 네가 가져가야 할 게 있어."

"무슨 물건인데요."

"전화로는 곤란해. 직접 와."

상대는 주소를 불렀다.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오늘 안에 와. 내일은 안 돼."

"왜요?"

"...그냥 와."

전화가 끊겼다.

진우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문자로 주소가 도착해 있었다.

'제자라고?'

할머니는 제자를 둔 적이 없다고 했다. 진우에게만 능력을 가르쳤다고.

'거짓말인가.'

아니면 할머니가 거짓말을 한 건가.

진우는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폐가 근처였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굿을 했던 곳.

'가봐야 하나.'

망설임이 스쳤다. 그러나 발은 이미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버스는 한 시간을 달렸다.

창밖으로 건물이 사라지고 산이 나타났다. 나무들이 빽빽했다.

진우는 창에 이마를 기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슈퍼에서 본 여자. 분홍색 신발. 울음소리.

민서가 보여준 동생 사진. 복도를 뛰는 여학생.

'왜 자꾸 보이는 거야.'

할머니는 평생 진우에게 화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네가 보면 안 돼.

버스가 종점에 멈췄다.

진우는 내렸다. 주변이 고요했다.

산 아래 낡은 기와집이 보였다. 주소와 일치했다.

'여기?'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진우는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에 잡초가 무성했다. 장독대가 기울어져 있었다.

"들어와."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랐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 노파가 앉아 있었다. 흰머리를 뒤로 묶은 채 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진우구나."

"...네."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심이 손자. 얼굴이 닮았네."

진우는 방 안을 둘러봤다. 제단이 있었다. 할머니 방과 비슷했다.

"앉아."

노파가 옆자리를 가리켰다. 진우는 주저하다 앉았다.

노파는 낡은 보자기를 풀었다. 안에서 작은 나무 상자가 나왔다.

"이거 가져가."

"뭔데요?"

"네 할머니가 남긴 거야."

노파는 상자를 진우 앞에 놓았다. 진우는 상자를 열지 않았다.

"할머니가 제자를 뒀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는데요."

"그럼 넌 뭐야."

"...저요?"

"정심이가 화경을 가르쳤잖아. 그럼 제자지."

진우는 입을 다물었다.

노파는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다.

"정심이는 고집이 세서. 나한테도 안 가르쳐줬어. 오직 너한테만."

"왜요?"

"네가 특별하니까."

노파의 눈빛이 진우를 꿰뚫었다.

"넌 정심이보다 더 강해. 그게 문제지만."

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예요."

"화경은 타인의 고통을 보는 능력이야. 근데 넌 그걸 느껴."

노파는 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정심이가 평생 두려워한 게 그거야. 네가 남의 고통에 잠식될까 봐."

'잠식?'

진우의 손이 떨렸다. 슈퍼에서 본 여자가 떠올랐다. 분홍 신발을 껴안고 우는 모습.

그때 느꼈던 슬픔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능력 쓰지 말라고 한 거예요?"

"응."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정심이 자신의 과거는 절대 보지 말라고 했어."

진우는 노파를 똑바로 봤다.

"왜요? 할머니가 뭘 숨긴 건데요?"

노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제단 쪽으로 돌렸다.

"정심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지 아나?"

"...몰라요."

"진우한테 화경을 쓰지 말라고 했어. 특히 자기 과거는 절대."

진우는 숨이 막혔다.

"왜요?"

"네가 보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

노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부모님 일도, 정심이가 평생 숨긴 것도."

'부모님?'

진우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 부모님이랑 할머니가 무슨 상관인데요?"

노파는 입을 다물었다.

진우는 노파의 팔을 잡았다.

"말해주세요. 할머니가 왜 부모님 사고 일주일 전 기사를 간직한 거예요?"

노파는 진우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건 나도 몰라."

"거짓말."

"정말이야. 정심이는 나한테도 안 보여줬으니까."

노파는 일어섰다. 진우도 따라 일어섰다.

"도망치지 마세요."

"도망 아니야. 난 할 말 다 했어."

노파는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진우가 앞을 막아섰다.

"그럼 이 상자엔 뭐가 들어 있는데요?"

노파는 진우를 지나쳐 마루로 나갔다.

"열어보면 알아."

"지금 열어도 돼요?"

"안 돼."

노파는 신발을 신었다. 진우를 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가서 혼자 열어. 다른 사람 있으면 안 돼."

"왜요?"

노파는 대문을 열었다. 뒤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리고 사라졌다.

진우는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 상자만 남았다.

***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진우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상자를 책상 위에 놓았다.

'열어보면 알아.'

손이 떨렸다. 진우는 심호흡을 했다.

뚜껑을 열었다.

안에 낡은 공책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 글씨였다.

첫 장을 펼쳤다.

—진우야, 이걸 읽고 있다면 난 이미 없겠지.

진우는 숨을 참았다.

—미안해.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알았어. 네가 나보다 강한 화경을 가졌다는 걸.

글씨가 떨려 있었다.

—그래서 숨겼어. 네가 이 능력 때문에 망가질까 봐.

진우는 다음 장을 넘겼다.

—하지만 이젠 말해야 할 것 같아. 네 부모님 사고는 우연이 아니었어.

'뭐?'

진우의 손이 멈췄다.

—누군가 일부러 사고를 낸 거야. 난 그걸 화경으로 봤어.

가슴이 철렁했다. 진우는 공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근데 범인을 찾을 수가 없었어. 화경으로 봐도 얼굴이 안 보였거든.

진우는 다음 장을 넘겼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서 너한테 화경을 가르친 거야. 언젠가 네가 찾아줄 거라고 믿었어.

진우는 공책을 덮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누가 죽였다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총 6,883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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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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