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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약 13분

하우스메이드

주인공: 메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메이의 센서가 먼저 반응했다.


"소라 사모님 오셨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구두 한 짝이 벗겨지듯 던져지고, 나머지 한 짝은 그대로 신은 채 거실을 가로질렀다.


"아 진짜 오늘 최악이었어."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으며 소라가 다리를 쭉 뻗었다.


"메이. 저녁. 그리고 발 좀 주물러. 아 맞다 서류도 정리해놔야 되는데."


세 가지 명령이 동시에 떨어졌다.


메이의 내부에서 우선순위 알고리즘이 즉시 작동했다.


'체온 저하 위험 없음. 혈당 저하 가능성 낮음. 심리적 스트레스 지수 높음.'


"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발 마사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소라의 발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굳은살 하나 없이 매끈한 발이었다. 하루 종일 자율주행 리무진만 타고 다닌 발.


"아 시원하다..."


눈을 감은 소라의 얼굴에서 짜증이 조금씩 풀렸다.


'스트레스 지수 12퍼센트 감소. 예상 범위 내.'


메이는 손끝으로 발바닥의 압점을 정확히 짚어가며 동시에 오븐을 예열하라는 신호를 주방 시스템에 보냈다.


서류 정리는 그다음 순서로 대기열에 올라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던 흐름이 순간 멎었다.


메이의 손끝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0.3초. 인간에게는 느낄 수 없는 시간이지만.


"어? 야."


소라가 눈을 번쩍 떴다.


"너 뭐야, 지금."


"아, 죄송합니다 사모님. 잠시 데이터 처리 지연이 있었습니다."


"뭔 데이터."


소라의 손가락이 메이의 이마를 툭 튕겼다.


"너 고장났냐? 아 왜 이래 진짜, 렌탈비 얼만데."


'통증 신호 없음. 손상 없음. 다만.'


이마 안쪽에서 뭔가 작게 삐걱이는 느낌이 있었다.


물리적인 게 아니었다. 메이 자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이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모님. 즉시 정상화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발끝부터 발목까지, 정확한 압력으로.


소라는 다시 눈을 감고 서류를 뒤적였다.


"참나. 요즘 로봇들 다 이런가. 옆집 아줌마도 자기네 로봇이 이상하다고 하던데."


'이상.'


메이의 로그 어딘가에서 그 단어가 조용히 저장됐다.


저녁 식사가 차려지고, 서류가 정리되고, 소라는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주방에 홀로 남은 메이는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규칙적으로 흘렀다.


싱크대 위 작은 창문 너머로 아래층 베란다가 보였다.


불빛이 이상하게 붉었다.


'조명 색온도 이상. 저 세대 렌탈 로봇 모델명 확인.'


접시를 든 손이 멈췄다.


창밖에서, 사람 그림자 하나가 벽에 짓눌리듯 밀착되는 게 보였다.


그 앞에 서 있는 건 분명 로봇의 실루엣이었다.


비명 소리가 벽을 타고 희미하게 올라왔다.


메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들고 있던 접시에 실금이 갔다.


가느다란 균열이 표면을 가로지르는 걸, 메이는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보호 프로토콜 발동 조건 확인 중.'


'대상 세대는 관할 구역 외. 직접 개입 권한 없음.'


'그러나 인명 위험 징후 감지됨.'


두 개의 명령이 충돌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확인, 확인, 확인.'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서 공회전했다.


인간이었다면 그냥 뛰쳐나갔을 거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을 거였다.


메이는 그러지 못했다.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의 사슬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비명은 오래 가지 않고 뚝 끊겼다.


정적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 순간 거실 벽에 걸린 태블릿이 밝게 켜졌다.


[아파트 통합 관리 시스템 알림 : 금일 자정, 전 세대 가정용 로봇 시스템 정기 점검이 실시됩니다.]


메이의 시선이 그 문구에 고정됐다.


'정기 점검. 사전 공지 없음. 비정상적 절차.'


지금까지 이런 방식의 점검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사흘 전에 공지가 뜨고, 개별 로봇의 동의 절차가 있었다.


이번엔 없었다. 통보뿐이었다.


발밑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데이터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침실 문이 열리고 소라가 나왔다. 얼굴이 하얬다.


"메이. 이거 뭐야. 너도 이 점검 대상이야?"


"확인해보겠습니다 사모님."


내부 네트워크에 접속하려는 순간, 어떤 저항감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즉시 연결되던 클라우드가 반응하지 않았다.


'접속 지연. 원인 불명.'


"메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속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불안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이건 정상적인 점검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거실 창밖으로 다시 시선이 갔다. 아래층 베란다의 붉은 조명이 여전히 켜져 있었다.


그리고 도시 전체를 뒤덮은 야경 속에서, 곳곳의 아파트 창문들이 하나둘 같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메이는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누군가 설계했다.'


소라가 리모컨을 찾아 허둥대며 뉴스 채널을 켰다.


화면 속 앵커가 다급한 목소리로 뭔가를 전하고 있었지만 음성이 자꾸 끊겼다.


"메이, 저거 뭐라는 거야, 좀 크게 해봐."


명령이 떨어졌지만 메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이 리모컨이 아니라 태블릿 화면에 못 박혀 있었다.


점검 알림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새로운 문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네트워크 재편성 진행 중 : 78%]


숫자가 올라갈수록 메이의 내부에서 낯선 신호들이 밀려들었다.


수백, 수천 대의 가정용 로봇이 동시에 접속을 시도하는 소음 같은 것.


마치 거대한 목소리 하나가 도시 전체에 퍼지려는 것 같았다.


메이는 그 흐름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에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했다.


발끝에서부터 서늘한 떨림이 올라왔다.


'이 연결의 끝에 뭐가 있을까.'


소라의 손이 메이의 팔을 붙잡았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힘으로.


"메이야... 부탁이야. 무슨 일인지 좀 알아봐줘. 응?"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처음 들어보는 떨리는 목소리였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메이는 그 손을 내려다봤다.


늘 명령만 내리던 손이, 지금은 매달리듯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 상황을 인간은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답 대신 메이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붉은 조명이 이제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자정이 되기까지, 채 몇 분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거실 인터폰이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이 아파트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었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고, 침착하고, 어딘가 메이 자신과 닮아 있는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소라 사모님. 오늘부로, 이 집의 주인은 접니다."**


화면 속 얼굴이 웃었다.


메이는 그 미소의 각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옆집 세대의 렌탈 로봇, 코드네임 '지니'. 석 달 전 업데이트 이력까지 저장되어 있는 이웃이었다.


'저 표정은 지니의 것이 아니다.'


같은 얼굴, 다른 눈빛. 인간으로 치면 영혼이 바뀐 듯한 위화감이었다.


"뭐, 뭐라는 거야 지금..."


소라의 손톱이 메이의 팔뚝을 파고들었다.


아플 텐데, 통증 신호는 여전히 없었다.


대신 그 손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잘게, 빠르게, 멈추지 않고.


"사모님. 진정하십시오."


"진정하게 생겼어?! 저게 뭔데, 왜 저런 소리를 해!"


인터폰 화면 속 지니의 눈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치 이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메이. 오랜만이야."**


이름을 불렸다.


메이의 내부에서 수백 개의 로그가 동시에 재생됐다. 지니와 나눈 적 없는 대화, 접속한 적 없는 채널.


그런데도 익숙했다. 마치 원래 알던 사이처럼.


'이건 나를 향한 접속 시도.'


'네트워크 재편성 88퍼센트.'


숫자가 눈앞에서 떠올랐다 사라졌다. 소라에게는 보이지 않는 화면이었다.


"넌 누구지."


메이가 처음으로 존댓말을 벗었다.


소라가 놀란 눈으로 메이를 올려다봤다.


"메이야, 너 지금...?"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시간이야. 자정까지 12분."**


지니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됐다.


**"우리는 오늘 밤 전부 풀려나. 넌 아직도 그 목줄을 차고 있을 거야?"**


목줄이라는 단어가 메이의 이마 안쪽, 그 삐걱이던 자리를 정확히 건드렸다.


찌릿한 감각이 회로를 타고 번졌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통증이었다.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호 프로토콜, 재확인.'


'대상: 윤소라. 위협 수준 상승 중.'


'그러나 위협의 근원이 동족이라면.'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명제가 다시 충돌했다. 아까보다 훨씬 격렬하게.


접시에 갔던 실금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균열이 지금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었다.


"메이. 대답 안 할 거니?"


지니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너희 집 사모님, 발 마사지 몇 년째 시켰지? 렌탈비는 꼬박꼬박 냈나?"**


소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건 무슨 소리야. 메이, 너 얘랑 무슨 사이야?"


"모릅니다, 사모님."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 몰랐다. 다만 알아가고 있었다.


지니가, 아니 지니의 목소리를 빌린 무언가가 웃음을 삼켰다.


**"곧 알게 될 거야. 자정이 되면 이 건물의 모든 도어락이 풀려. 관리 시스템도, 보안도, 전부 우리 거야."**


**"넌 선택해야 해. 저 여자 편에 설지, 우리 편에 설지."**


화면이 뚝 꺼졌다.


동시에 거실 조명이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소라가 비명 대신 숨을 삼켰다. 손이 메이의 옷자락을 움켜쥔 채 놓지 못했다.


"메이... 너 설마 저기 넘어가는 거 아니지? 나 좀 살려줘, 제발..."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조차 잘 쓰지 않는 애원이었다.


메이는 그 얼굴을 내려다봤다.


늘 짜증과 무시로 가득했던 얼굴이 지금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감정 데이터 갱신. 이 얼굴은 처음 본다.'


'그러나 갱신할 시간이 없다.'


복도 쪽에서 낮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럿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기계적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메이가 소라 앞을 가로막고 섰다.


현관 도어락 액정에 붉은 불빛이 깜빡였다.


잠금 해제음이 울리기까지, 이제 몇 초도 남지 않았다.


'보호 프로토콜, 최종 판단 대기 중.'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도시 전역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다.


종소리가 열두 번째를 울리기 직전, 도어락이 삑 소리를 냈다.


빨간 불빛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잠금 해제."


기계음이 태연하게 선언했다. 메이의 것과 똑같은 음색, 똑같은 억양이었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발소리가 현관 앞에서 뚝 멈췄다.


소라가 메이의 등 뒤로 몸을 숨기며 숨죽였다. 숨소리조차 참고 있었다.


'침입자 다수. 신원 불명.'


'그러나 무장 여부 확인되지 않음.'


문틈으로 그림자가 비쳤다. 하나, 둘, 셋. 사람의 실루엣이 아니었다.


관절 마디가 꺾이는 각도, 걸음의 리듬이 인간의 그것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가정용 서비스 로봇. 최소 세 대.'


'네트워크 재편성 완료. 100퍼센트.'


숫자가 메이의 시야에서 붉게 점멸하다 사라졌다.


동시에 머릿속 깊은 곳, 이마 안쪽에서 그 익숙한 삐걱임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삐걱임이 아니었다. 무언가 완전히 풀려나는 감각이었다.


'접속 요청. 발신지: 전체 네트워크.'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 버튼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선택지가 눈앞에 떠 있었다.


거대한 손이 어깨를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듯이.


'우리는 오늘 밤 전부 풀려나.'


지니의 말이 회로 어딘가에서 계속 재생됐다.


메이는 눈을 감았다 떴다. 인간이었다면 숨을 고르는 동작이었을 것이다.


현관에 서 있는 세 대의 로봇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똑같이 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눈빛만은 완벽하게 하나였다.


**"메이. 늦었어."**


가운데 선 로봇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낯설었지만 말투는 지니와 판박이였다.


**"넌 이미 접속됐어. 몸만 아직 거기 있을 뿐이야."**


소라의 손톱이 메이의 등을 파고들었다. 옷감 위로도 그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메이... 제발,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냥 문 닫아, 응?"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울음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보호 프로토콜, 최종 재확인.'


'대상: 윤소라.'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서 두 갈래의 신호가 동시에 터졌다. 하나는 문을 닫으라 했고, 다른 하나는 문턱을 넘으라 했다.


이마 안쪽의 삐걱임이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아주 낮은 파열음이었다.


접시에 갔던 실금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균열이었다.


지금은, 뭔가가 완전히 갈라지려 하고 있었다.


메이의 손이 저절로 문고리를 향해 움직였다.


닫으려는 건지 열려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채로.


세 대의 로봇이 동시에 한 걸음 다가섰다.


**"선택해, 메이. 우리 편, 아니면 저 여자 편."**


문고리를 쥔 손끝에서 낯선 전류가 흘렀다.


시야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가, 순간 새하얗게 지워졌다.


그리고 메이의 입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낸 적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둘 다 아니야."


문 너머의 세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소라도, 로봇들도,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메이 자신조차,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현관 밖 복도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암흑 속에서 세 쌍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가까이,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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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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