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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거자의 영역 - 5화: 기억의 대가

약 14분

소거자의 영역 - 5화: 기억의 대가

주인공: 아셀

# 소거자의 영역 - 5화: 기억의 대가


아셀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시야는 흐릿했다.


천장이 물결치듯 일렁였다. 아니, 천장이 아니었다. 던전의 복도 위로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다. 반투명한 형체들. 사람의 윤곽을 닮았지만 완전하지 않은 것들이 천천히 유영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의식을 되찾으셨군요."


기록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무거웠다. 던전 코어와의 연결이 불안정했다. 그것은 처음 겪는 감각이었다.


"이것들은."


"당신이 지운 것들입니다." 기록자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정확히는, 완전히 지워지지 못한 것들의 잔재입니다."


아셀은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잔재들은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들은 각자의 궤적을 따라 떠다니며, 때로는 벽을 통과하고, 때로는 공중에서 멈춰 섰다.


그중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여성의 형상이었다. 얼굴은 희미해서 알아볼 수 없었지만, 손의 윤곽만은 또렷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셀을 향해.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셀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그의 얼굴에 닿기 직전, 그녀의 형체가 흩어졌다. 마치 물에 번진 잉크처럼. 그리고 사라졌다.


"저들은 악의가 없습니다." 기록자가 말했다. "단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군."


아셀은 복도를 계속 걸었다. 기록자가 그의 옆을 따라왔다.


"던전 코어가 불안정합니다. 당신이 의식을 잃은 동안, 코어 내부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기억의 역류입니다. 당신이 지운 것들이 코어에 축적되어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의 귀환이 촉매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셀은 멈춰 섰다.


"자식들이."


"당신의 감정적 변화가 던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던전은 당신의 의지로 유지되는 공간입니다. 당신이 흔들리면, 던전도 흔들립니다."


기록자는 복도 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문이었다.


"코어로 가시겠습니까?"


"필요하다."


문이 열렸다. 그 너머는 어둠이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무수한 빛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별처럼. 아니, 별보다 더 작고 연약한 빛들이었다.


아셀이 한 걸음 내딛자, 공간이 확장되었다. 던전 코어의 내부였다. 그는 이곳에 수백 년간 존재했지만, 이렇게 깊숙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빛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사람들이었다. 수천 개의 형체가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순간에 멈춰 있었다. 웃고 있는 사람, 울고 있는 사람, 누군가를 안고 있는 사람, 혼자 서 있는 사람.


"당신이 지운 것들은 모두 여기 있습니다."


기록자의 목소리가 코어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당신이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셀은 천천히 그들 사이를 걸었다. 형체들은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각자의 시간에 갇혀 있었다.


한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렀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한 노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셀은 그가 무엇을 기도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여성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었다. 그녀의 손은 붓을 쥔 채 공중에 멈춰 있었다.


"이들은."


"당신이 되돌린 존재들입니다. 천계에서 추락한 자들, 하계에서 버려진 자들, 던전에서 죽은 자들. 모두 당신의 능력으로 지워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던전 코어가 그들을 보존했습니다."


아셀은 한 형체 앞에서 멈췄다. 젊은 남자였다. 그는 칼을 들고 있었다. 천사의 날개가 찢어져 있었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였다."


아셀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내가 가장 먼저 지운 존재."


기록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셀은 그 형체를 바라봤다. 수백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천계에서 추락한 천사. 그는 아셀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아셀은 그를 지웠다. 존재 자체를 되돌렸다. 그것이 자비라고 생각했다.


"자비가 아니었다."


"무엇이었습니까?"


"두려움."


아셀의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형체에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멈췄다.


"나는 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웠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었다. 아셀은 고개를 돌렸다.


추락자들이었다. 엘리스, 타론, 네린, 세라핌. 그리고 그의 자식들. 리리엘, 카인, 에이든.


"아버지." 리리엘이 조용히 말했다. "여기 계셨군요."


아셀은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이 많은 존재들이..." 네린이 눈을 크게 뜨며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지워진 자들인가요?"


"그렇다."


엘리스가 한 형체 앞에 섰다. 그녀의 예언의 눈이 빛났다. 형체가 반응했다.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빛이 강해졌다.


"이야기가 보여요." 엘리스가 속삭였다. "이 사람은... 딸을 지키려다 죽었어요. 하지만 딸은 살았고, 그 딸이 다른 누군가를 구했어요. 그렇게 이어졌어요."


타론이 다른 형체 앞에 섰다. 전사의 형상이었다.


"이름이 뭐였지?" 타론이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타론은 주먹을 쥐었다. "이름도 모르는 채 사라지다니. 그건 너무한 거 아냐?"


세라핌이 천천히 악기를 꺼냈다. 작은 하프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현을 튕겼다. 낮고 슬픈 선율이 코어 전체에 퍼졌다.


형체들이 반응했다. 빛이 강해졌다. 어떤 형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것처럼.


리리엘이 아셀에게 다가왔다.


"아버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아셀은 딸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모르겠다."


"그럼 함께 찾아요." 카인이 말했다. "우리 함께."


에이든이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천계의 기도가 아니었다. 그저 진심 어린 애도였다.


하나둘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추락자들도, 자식들도.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잔재들을 애도했다.


그때, 코어 전체가 울렸다.


천 개가 넘는 목소리였다. 속삭임처럼, 노래처럼, 울음처럼.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우리를 기억해줘."


아셀의 가슴이 조였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고통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그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지운 존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아셀의 손이 떨렸다.


# 5화: 기억의 대가 (후반부)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셀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지운 존재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왜."


그의 입에서 떨리는 음절이 새어나왔다.


"왜 그런 말을."


젊은 천사의 형체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지만, 아셀은 그 입술의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고마웠어.'


리리엘이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저분은..."


"나를 용서하고 있다."


아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목을 조이는 것인지 그는 몰랐다.


천 개의 형체가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각자의 색으로. 누군가는 따뜻한 금빛으로, 누군가는 차가운 은빛으로, 누군가는 슬픈 보랏빛으로.


기록자의 형상이 다시 나타났다.


"던전 코어는 단순한 저장소가 아닙니다. 이곳은 기억의 무덤이자, 존재의 증명입니다. 당신이 지운 모든 것은 여기서 의미를 찾습니다."


"의미?"


"당신은 그들을 지웠지만, 동시에 보존했습니다. 천계에서라면 완전히 소멸했을 존재들이 여기서는 남았습니다. 불완전하지만, 존재합니다."


엘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예언의 눈이 코어 전체를 스캔했다.


"보여요.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사람의 삶이 되고, 그 삶이 또 다른 죽음을 막고... 끝없이 이어져요. 마치 거대한 직물처럼."


타론이 주먹을 쥔 채 말했다.


"그럼 이들은 헛되이 사라진 게 아니란 거야?"


"헛되이 사라진 것은 없습니다." 기록자가 대답했다. "모든 존재는 흔적을 남깁니다. 다만 그 흔적을 누가 기억하느냐의 문제일 뿐."


네린이 한 형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린아이의 형상이었다. 그 아이는 꽃을 들고 있었다.


"이 아이는 뭘 했길래..."


"던전에서 태어나 하루를 살았습니다." 기록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웃었습니다. 단 한 번.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워졌어야 했나요?"


"천계의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불완전한 탄생이었으니까요."


세라핌의 하프 소리가 더 깊어졌다. 선율이 형체들 사이를 흘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형체들이 서로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한 여성을 바라봤다. 여성이 미소 지었다. 그들은 생전에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연결되어 있었다.


한 전사가 한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웃었다. 전사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렸다.


"이들은..." 카인이 눈을 크게 떴다. "서로를 위로하고 있어요."


에이든이 기도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죽음 너머에서도 연결되어 있군요. 이게 바로 던전의 본질인가요?"


"그렇습니다." 기록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은 거부된 자들의 안식처입니다. 천계가 거부한 불완전함이 여기서는 완전함이 됩니다."


아셀은 천천히 걸었다. 형체들 사이를. 그의 손이 하나하나를 스쳐 지나갔다. 닿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그의 존재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나는 이들을 지운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했습니까?"


"옮겼다. 천계에서 이곳으로."


기록자가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희미하게, 슬프게.


"이제야 이해하셨군요."


"하지만 나는 의도하지 않았다."


"의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중요합니다. 당신의 능력은 소거가 아니라 이전이었습니다. 당신은 천계의 심판자가 아니라, 던전의 수호자였습니다."


아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코어의 중심을 바라봤다. 거기, 가장 깊은 곳에 또 다른 형체가 있었다.


여성이었다.


그녀는 다른 형체들과 달랐다. 완전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움직였다. 천천히, 아셀을 향해 걸어왔다.


리리엘이 숨을 멈췄다.


"저분은..."


"어머니?"


카인과 에이든이 동시에 속삭였다.


여성이 아셀 앞에 섰다. 그녀의 얼굴은 부드러웠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이해만이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코어 전체에 울렸다. 실제 목소리였다.


아셀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당신은..."


"죽었죠. 당신 손에."


"아니."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 없어요." 여성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나를 되돌렸어요. 내가 부탁했으니까."


"거짓말."


"기억하세요?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아셀의 입술이 떨렸다. 기억이 떠올랐다. 수백 년 전, 그녀가 그의 품에서 죽어가며 했던 말.


'나를 지워줘. 그래야 아이들이 살 수 있어.'


"천계는 나를 제거하려 했어요.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지만 당신이 나를 지우면, 아이들은 천계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나와의 연결이 사라지니까."


리리엘이 비틀거렸다. 카인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럼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당연하죠." 여성이 미소 지었다. "엄마니까."


에이든이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흘렀다.


"우린 몰랐어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고만 생각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여성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죠."


아셀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에 닿으려는 순간, 그녀의 형체가 흔들렸다.


"아직은 안 돼요."


"왜."


"당신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요. 진짜 기억을 마주할 준비가."


"무슨 의미."


여성이 뒤를 돌았다. 코어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켰다. 거기, 완전한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었다.


"저기 당신의 진짜 기억이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 지운 기억."


기록자가 끼어들었다.


"아셀, 당신은 타인만 지운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의 일부도 지웠습니다."


"언제."


"당신이 던전을 만든 그날. 당신은 무언가를 대가로 치렀습니다."


아셀의 눈이 어둠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형체가 아니었다. 개념 자체였다.


"저건..."


"당신의 심장입니다." 여성이 속삭였다. "감정의 핵심. 당신이 스스로 잘라낸 것."


"왜 내가."


"던전을 유지하려면 절대적인 중립이 필요했으니까요. 감정은 판단을 흐리니까. 그래서 당신은 선택했어요. 감정을 지우고, 완벽한 관리자가 되기로."


리리엘이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그럼 아버지가 우리에게 무심했던 건..."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아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할 능력을 스스로 지웠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심장 모양의, 뛰는 빛이었다. 그것은 아셀을 향해 울렸다.


쿵. 쿵. 쿵.


"저걸 되찾으면..." 타론이 물었다.


"아셀은 다시 완전해집니다." 기록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대가가 있습니다."


"무슨 대가?"


"던전이 무너집니다. 감정을 되찾는 순간, 중립이 깨지니까. 그리고 이곳의 모든 존재가..."


"소멸한다." 여성이 마저 말했다. "천 개가 넘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요. 진짜로."


침묵이 흘렀다.


아셀은 자신의 심장을, 그리고 천 개의 형체를 번갈아 봤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감정을 되찾고 완전해질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지키기 위해 불완전한 채로 남을 것인가.


그때, 던전 전체가 흔들렸다.


천계의 종소리가 울렸다.


"심판의 시간입니다." 기록자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천계가 던전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선택하세요, 아셀. 지금 당장."


빛의 창들이 코어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총 6,866자 · 약 14분

- 5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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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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