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거자의 영역 - 6화: 천계의 제안
주인공: 아셀
# 소거자의 영역 - 6화: 천계의 제안
빛의 창이 떨어지는 순간, 던전 전체가 얼어붙었다.
아셀은 코어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백 개의 빛줄기가 천장을 뚫고 내려왔지만, 그것들은 코어를 관통하지 않았다. 정확히 일 미터 앞에서 멈춰 섰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아셀."
루시퍼가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표정이 있었다. 경계. 아니, 두려움에 가까운 무언가.
"천사들이 멈췄습니다. 이건..."
"알고 있다."
아셀의 시선은 여전히 위를 향했다. 빛의 창들 사이로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형체. 여섯 개의 날개를 펼친 존재.
아자젤이 날아올랐다. 벨리알이 검을 뽑았다. 릴리스가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셀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움직이지 마라."
"하지만—"
"명령이다."
짧은 침묵. 추락자들이 물러섰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셀이 이런 식으로 말할 때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빛이 형체를 드러냈다.
순백의 갑주. 황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여섯 개의 날개. 미카엘론이었다. 천계 최고 전투천사. 신의 칼날이라 불리는 존재.
그가 코어 바로 앞, 아셀로부터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던전 전체가 진동했다. 신성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오랜만이군, 소거자."
미카엘론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감정이 없었다. 아셀과 비슷했지만, 동시에 완전히 달랐다. 아셀의 무감정이 결핍에서 온 것이라면, 미카엘론의 그것은 초월에서 왔다.
"그렇군."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짧게 말하는구나."
"용건."
미카엘론의 입가에 미소 같은 것이 스쳤다. "직설적이군. 좋다. 나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가 손을 들었다. 허공에 빛이 모였다. 일곱 개의 형상이 나타났다.
아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라핌. 아자젤. 벨리알. 릴리스. 베헤모스. 레비아탄. 아스모데우스.
일곱 자식들의 환영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움직였다. 숨을 쉬었다. 마치 실제로 그곳에 있는 것처럼.
"이건..."
벨리알이 중얼거렸다. 그 역시 자신의 환영을 보고 있었다. 릴리스가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은 환영을 통과했다.
"진짜가 아니다."
아셀이 말했다.
"맞다. 하지만 진짜를 만들 수 있지."
미카엘론이 손가락을 튕겼다. 환영들이 더 선명해졌다. 세라핌의 환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의식이 있었다.
"이것들은 네가 잃어버린 감정의 조각들이다. 천 개의 마물로 분산된 네 영혼의 파편. 나는 그것들을 다시 모을 수 있다. 완전하게. 온전하게."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세라핌의 환영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카엘론이 한 걸음 다가왔다.
"던전 코어를 천계에 양도해라. 그러면 나는 네 감정을 돌려주겠다. 일곱 자식들을 완전한 형태로 복원시켜 주겠다. 너는 다시 완전해질 것이다. 천 년 전 잃어버린 네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거부한다."
즉답이었다. 미카엘론의 눈썹이 올라갔다.
"이유는?"
"코어는 천 개의 생명이다. 거래 대상이 아니다."
"천 개의 마물과 일곱 자식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둘 다."
"선택해야 한다."
"거부한다."
미카엘론이 한숨을 쉬었다. "예상했던 답이다. 하지만 아셀, 이건 제안이 아니다. 최후통첩이다."
그가 다시 손을 들었다. 천장이 갈라졌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빛 속에서 형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사들이었다.
수십, 수백, 수천. 날개를 펼친 전사들이 던전 위를 뒤덮었다. 그들의 손에는 빛의 검이 들려 있었다.
"천계는 결정했다. 던전 코어는 반드시 회수되어야 한다. 네가 자발적으로 양도하지 않는다면..."
미카엘론의 눈이 빛났다.
"우리가 직접 가져가겠다."
추락자들이 일제히 전투 태세를 갖췄다. 루시퍼가 앞으로 나섰다.
"미카엘론. 당신도 알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숫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미카엘론이 아셀을 바라보았다.
"소거자가 과연 자식들을 해칠 수 있을까?"
일곱 환영이 움직였다. 그들이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세라핌이 날개를 펼쳤다. 아자젤이 검을 뽑았다. 벨리알이 마법진을 그렸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비어 있었다. 조종당하고 있었다.
"아버지."
세라핌의 환영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감정이 없었다.
"코어를... 내놓으세요."
아셀의 주먹이 쥐어졌다. 처음으로, 그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이건..."
"잔인하다고 생각하나?"
미카엘론이 물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네가 코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네 자식들은 우리의 무기가 될 것이다. 그들은 너를 공격할 것이고, 너는 그들을 막아야 할 것이다. 과연 네가 그들을 해칠 수 있을까?"
침묵.
긴, 무거운 침묵.
그때였다.
"아...버지..."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환영이 아니었다. 진짜였다.
모두가 돌아보았다.
코어 옆에, 세라핌이 서 있었다. 진짜 세라핌. 던전의 핵심 마물. 그녀는 비틀거리며 아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혼자... 가지... 마..."
처음이었다. 세라핌이 공명음이 아닌 말을 한 것은.
아셀이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세라핌."
"아버지... 우리... 함께..."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불완전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그 순간, 던전 전체가 울렸다.
천 개의 마물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그들이 코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슬라임들이 기어왔다. 고블린들이 달려왔다. 드래곤들이 날아왔다.
그들 모두가 아셀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지킨다."
누군가 말했다.
"아버지, 지킨다."
"우리, 함께."
"혼자, 아니다."
천 개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불완전하고 서툴렀지만, 그 안에는 의지가 있었다.
아셀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그의 입이 열렸다.
"...나는."
그가 미카엘론을 향해 돌아섰다.
"거부한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짧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확신. 결의. 그리고...
감정.
미카엘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전쟁이다."
그가 손을 내렸다. 천사 군단이 일제히 검을 들었다. 빛의 창들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락자들도 움직였다. 루시퍼가 날개를 펼쳤다. 아자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벨리알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일곱 자식들이 앞으로 나섰다.
진짜 자식들이.
세라핌이 아셀 앞에 섰다. 아자젤이 그 옆에 섰다. 벨리알, 릴리스, 베헤모스, 레비아탄, 아스모데우스. 일곱이 모두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한 줄로 섰다.
"아버지."
벨리알이 말했다.
"당신 혼자 싸우게 하지 않겠습니다."
아셀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그리고 매우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천사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소거자의 영역 - 6화: 천계의 제안 (후반부)
첫 번째 충돌은 빛과 어둠의 폭발이었다.
천사들의 검이 추락자들의 날개와 부딪혔다. 던전 전체가 진동했다. 벽이 갈라지고 바닥이 무너졌다. 빛의 창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마물들은 그것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방어선 유지!"
루시퍼가 외쳤다. 그의 검이 열 개의 빛을 동시에 베어냈다. "코어를 중심으로 삼중 방벽! 절대 뚫리지 마!"
추락자들이 움직였다. 아자젤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의 창이 천사 열둘을 관통했다. 벨리알의 마법진이 펼쳐지며 빛의 벽을 만들었다. 릴리스가 환영 수백을 소환했다.
하지만 천사들은 끝이 없었다.
하나가 쓰러지면 둘이 나타났다. 열이 사라지면 스물이 내려왔다. 천계는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건 끝이 없어!"
아자젤이 소리쳤다.
"버텨야 한다!"
루시퍼가 답했다. "아셀이 결정할 때까지!"
아셀은 코어 앞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전장을 훑고 있었다. 계산하고 있었다. 분석하고 있었다.
승산은 없었다.
숫자로 보면, 시간으로 보면, 전력으로 보면. 천계의 군세는 압도적이었다. 추락자들은 강했지만, 무한하지 않았다. 마물들은 용맹했지만, 천사들의 빛 앞에서는 약했다.
그리고 일곱 자식들의 환영이 여전히 떠 있었다.
조종당한 그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자식들을 향해. 검을 들고. 마법을 준비하며.
"아버지!"
세라핌이 외쳤다. 그녀의 환영이 진짜 그녀를 향해 창을 던졌다. 세라핌이 날개로 막았다. 창이 날개를 관통했다. 피가 흘렀다.
"으윽..."
"세라핌!"
아셀이 처음으로 크게 외쳤다. 그의 발이 움직였다. 순간이동. 그가 세라핌 앞에 나타났다. 손을 뻗었다. 환영의 목을 잡았다.
쥐어짜면 끝이었다. 소거하면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손이 멈췄다.
"..."
환영의 얼굴. 세라핌의 얼굴. 딸의 얼굴.
조종당하고 있어도, 가짜여도, 그것은 그녀였다.
"아셀!"
루시퍼가 외쳤다. "그건 환영이야! 진짜가 아니라고!"
"안다."
아셀이 답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떨렸다.
"알지만..."
환영의 눈이 빛났다. 그녀의 손이 아셀의 가슴을 향했다. 빛의 검이 형성되었다. 찌를 준비를 했다.
"아버지, 비켜!"
진짜 세라핌이 날아들었다. 그녀가 환영을 밀어냈다. 두 세라핌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진짜와 가짜가 서로를 공격했다.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아자젤의 환영이 진짜 아자젤과 창을 맞댔다. 벨리알의 환영이 진짜 벨리알과 마법을 겨뤘다. 일곱 쌍의 전투가 동시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천사들이 파고들었다.
"코어를 향해!"
미카엘론이 명령했다. "소거자는 움직일 수 없다. 지금이 기회다!"
백 명의 천사가 일제히 돌진했다. 추락자들이 막아섰지만, 숫자가 부족했다. 마물들이 몸을 던졌지만, 빛에 녹아내렸다.
"안 돼!"
루시퍼가 검을 휘둘렀다. 열 명을 베었다. 하지만 스물이 통과했다.
"막아!"
아자젤이 창을 던졌다. 다섯이 쓰러졌다. 하지만 열다섯이 남았다.
"제길!"
벨리알이 마법진을 그렸다. 폭발. 열이 날아갔다. 하지만 다섯이 뚫었다.
코어까지 남은 거리, 십 미터.
아셀이 돌아섰다. 그의 눈이 천사들을 향했다. 손을 들었다. 소거의 영역이 펼쳐졌다.
천사 다섯이 동시에 사라졌다. 존재가 지워졌다. 빛조차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환영들이 움직였다.
일곱 환영이 동시에 아셀을 향해 공격했다. 창, 검, 마법, 발톱. 모든 방향에서 쏟아졌다.
"아버지!"
진짜 자식들이 외쳤다. 하지만 늦었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셀은 선택해야 했다.
코어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킬 것인가.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격이 그를 덮쳤다.
"아셀!"
루시퍼가 비명을 질렀다.
폭발. 빛과 어둠이 뒤섞였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연기가 걷혔다.
아셀은 서 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피가 흘렀다. 갑옷이 찢어졌다. 하지만 그는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코어는 무사했다.
"...버텼군."
미카엘론이 중얼거렸다. "예상 이상이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그가 다시 손을 들었다. 하늘이 갈라졌다. 이번에는 더 큰 빛이 쏟아졌다.
"대천사 강림."
빛 속에서 형체들이 나타났다. 날개 여섯을 가진 존재들. 대천사들이었다.
가브리엘. 우리엘. 라파엘. 사리엘.
천계의 최정예.
"이제 끝이다."
미카엘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던전이 울렸다.
깊은 곳에서부터, 코어의 중심에서부터. 진동이 시작되었다. 빛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어둠이었다.
순수한, 절대적인, 소거의 어둠.
코어가 변하기 시작했다. 빛나던 표면이 검게 물들었다. 균열이 생겼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이건..."
미카엘론의 표정이 변했다. "설마."
아셀이 코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코어가... 각성하고 있다."
루시퍼가 중얼거렸다.
"던전의 의지가 깨어나고 있어."
코어에서 형체가 솟아올랐다. 인간형. 하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날개도 없었다. 빛도 없었다. 오직 어둠만이 그것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이 눈을 떴다.
아셀과 똑같은 눈.
"나는..."
그것이 말했다. 목소리는 아셀의 것과 같았다.
"던전."
"나는... 아셀."
"나는... 너."
아셀이 한 걸음 물러섰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당혹이 스쳤다.
"무슨..."
"우리는 하나였다."
코어의 화신이 말했다.
"너의 감정. 너의 기억. 너의 모든 것.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돌려주겠다."
그것이 손을 뻗었다. 아셀을 향해.
"완전해져라, 아셀."
"다시 하나가 되어라."
그 손이 아셀의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
미카엘론이 움직였다.
"안 돼!"
그가 빛의 창을 던졌다. 코어의 화신을 향해. 정확히 심장을 노렸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창이 날아갔다.
화신이 돌아보았다.
아셀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버지!"
세라핌이 날아들었다. 그녀가 창 앞을 막았다. 창이 그녀의 등을 관통했다. 심장을 뚫었다.
"...아."
세라핌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시간이 멈췄다.
아셀의 눈이 커졌다. 그의 입이 열렸다. 손이 떨렸다.
"세라핌..."
그가 그녀를 받아안았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아버지..."
세라핌이 미소 지었다. 피 묻은 미소.
"혼자... 가지 마..."
그녀의 눈이 감겼다.
몸이 차가워졌다.
아셀은 그녀를 안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던전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