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상환을 위한 살인퀘스트
주인공: 강도혁
바람이 세다.
한강대교 난간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11월 중순이면 이맘때쯤 살을 에는 추위가 와야 정상인데, 올해는 유난히 따뜻했다. 죽기에도 좋은 날씨라니. 웃긴 일이다.
나는 난간을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까만 강물이 출렁였다. 저 밑으로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순간적으로 아플까, 아니면 의식을 잃을 때까지 고통스러울까.
어차피 상관없지.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또 문자다. 확인 안 해도 안다. 사채업자 놈들이거나, 아니면 박민재 그 새끼거나.
손을 뻗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박민재: 도혁아ㅋㅋ 잘 지내? 난 잘 지내. 네 덕분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화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박민재. 5년 전 함께 사업을 시작한 동업자. 친구라고 믿었던 인간. 투자금을 빼돌리고 거래처를 통째로 가져간 배신자. 그 새끼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37억.
정확히는 37억 2,400만원. 은행 대출, 사채, 외상값, 미지급 임금까지 합친 금액. 갚을 방법이 없다. 아니, 애초에 갚을 생각도 없다.
휴대폰을 강물 쪽으로 던졌다. 작은 물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첨벙,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진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난간에 올라섰다. 발밑이 흔들렸다. 균형을 잡으려고 팔을 벌렸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었다.
'이러면 끝이다.'
간단하다. 그냥 손만 놓으면 된다. 중력이 알아서 나를 끌어내릴 것이다. 37억의 빚도, 박민재의 조롱도, 날 찾아다니는 사채업자들도 전부 사라진다.
손을 놓으려는 순간.
눈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청록색 빛. 반투명한 사각형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홀로그램처럼 보이지만, 더 선명했다. 마치 내 망막에 직접 투사된 것처럼.
나는 멈췄다.
뭐야, 이거.
창 안에 글자가 떠올랐다. 기계적이고 차가운 서체.
[채무 청산 시스템 활성화]
[사용자: 강도혁]
[총 채무액: 37억 2,400만원]
[첫 번째 타겟이 지정되었습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환각이다.
그래, 환각.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가 만들어낸 환상. 들어본 적 있다. 죽기 직전에 이상한 걸 본다는 사람들.
손을 다시 놓으려 했다.
창이 커졌다.
[경고: 시스템 활성화 후 72시간 이내 첫 번째 타겟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의 잔여 수명이 차감됩니다]
"뭔 개소리야."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창이 또 바뀌었다. 이번엔 사진이 떴다. 40대로 보이는 남자. 평범한 얼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회사원 같은 인상.
[타겟: 김성호 (42세)]
[직업: S전자 과장]
[거주지: 서울시 마포구 ○○동 123-45, 301호]
[범죄 내역: 아동 성범죄 7건 (미신고), 불법 촬영물 제작 및 유포 23건]
[위험도: ★★★★☆]
[타겟 제거 시 보상: 1억원]
[제한시간: 72시간]
심장이 뛰었다.
아니, 이건 환각치고는 너무 구체적이다.
사진 밑에 작은 글씨로 '증거 파일 열람 가능'이라고 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허공의 글씨를 건드렸다.
파일이 펼쳐졌다.
동영상. 사진. 채팅 기록.
3초 보고 고개를 돌렸다.
"으윽..."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위장이 뒤틀렸다. 난간을 붙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발이 미끄러졌다.
"씨발!"
반사적으로 난간을 움켜쥐었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난간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청록색 창은 여전히 떠 있었다.
[타겟까지의 거리: 약 870m]
[제한시간: 71시간 58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창을 뚫어지게 봤다.
"이게... 진짜야?"
대답은 없었다. 창은 그저 차갑게 정보만 표시할 뿐이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휴대폰은 이미 강물에 던졌다.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를 켰다. 손이 떨려서 불을 붙이는 데 세 번이나 실패했다.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니코틴이 폐를 채웠다. 조금 진정됐다.
'생각해보자.'
만약 이게 진짜라면.
저 새끼를 죽이면 1억을 준다?
37억 중 1억.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장 목을 조르고 있는 사채 이자는 갚을 수 있다. 최소한 한 달은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살인이잖아.'
나는 사업가다. 아니, 사업가였다. 망했지만. 어쨌든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다. 싸움도 학창시절 이후론 안 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라고?
창을 다시 봤다. 김성호의 사진이 떠 있었다. 평범한 얼굴. 웃고 있는 증명사진.
'아까 본 파일들...'
다시 구역질이 났다.
저런 새끼는 죽어 마땅하다. 아니, 죽어도 시원찮다.
하지만 내가? 직접?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어차피..."
중얼거렸다.
"죽으려고 했잖아."
그렇다. 5분 전까지만 해도 난 저 아래로 떨어질 생각이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지만 그것보다 사는 게 더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심장이 뛰고 있다. 손이 떨리고 있다. 담배 연기가 목구멍을 긁고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
"젠장."
담배를 난간 너머로 튕겼다. 불씨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졌다.
일어섰다. 다리에 힘을 줬다. 떨림이 멈췄다.
창을 봤다.
"어디 사는지 다시 보여줘."
창이 반응했다. 주소가 확대됐다. 지도가 나타났다. 내 카페— 아니, 예전에 내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가까운데."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발걸음을 옮겼다. 한강대교를 벗어나 도로로 내려왔다. 늦은 밤이라 차가 별로 없었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일단 확인이나 해보자.'
진짜 저 주소에 저 새끼가 사는지. 시스템이 보여준 정보가 맞는지.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선택지가 뭐가 있나. 죽거나, 죽이거나.
---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마포구에 도착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거리는 한산했다.
예전 카페가 있던 골목을 지나쳤다. 지금은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카페 도혁'이 있던 자리에 '24시 편의점'이라는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볼 것도 없다.
시스템이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 가로등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낡은 빌라가 줄지어 서 있었다.
123-45번지.
3층짜리 빌라. 외벽이 낡았다. 1층 현관문 옆에 우편함이 있었다.
다가가서 우편함을 확인했다. 301호. '김성호'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진짜 있네.'
위를 올려다봤다. 3층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커튼이 쳐져 있었지만, 안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왔다.
저 안에 저 새끼가 있다.
창이 다시 떴다.
[타겟과의 거리: 약 12m]
[제한시간: 68시간 32분]
나는 빌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 골목 모퉁이에 있는 자판기 옆에 섰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떻게 하지.'
죽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법은 안 알려줬다.
총? 없다. 칼? 있긴 한데 과도 하나뿐이다. 독극물? 어디서 구하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들키면 안 된다.'
시스템 설명에 '완벽한 범죄'라는 말은 없었지만, 당연히 그래야 한다. 경찰한테 잡히면 돈을 받아도 쓸 수가 없다.
담배를 빨면서 생각했다.
3일. 72시간.
계획을 세울 시간은 있다. 급할 것 없다.
'일단 관찰부터.'
저 새끼의 패턴을 파악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 동선, 습관. 빈틈을 찾아야 한다.
담배를 다 피우고 꺼냈다. 발로 비볐다.
빌라를 한 번 더 봤다. 3층 불빛은 여전했다.
돌아섰다. 골목을 빠져나왔다.
근처 PC방을 찾았다. 24시간 영업하는 곳.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비회원 1시간 결제. 주머니에 남은 돈이 얼마 안 됐지만, 어쩔 수 없다.
컴퓨터를 켰다. 포털사이트에 '김성호'를 검색했다. 너무 흔한 이름이라 수천 개가 나왔다.
'S전자 과장...'
회사 홈페이지를 찾았다. 임직원 검색. 김성호. 나왔다.
사진이 똑같았다. 시스템이 보여준 사진과 일치했다.
부서는 영업2팀. 전화번호까지 나와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다음은 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김성호로 검색했다. 몇 개 나왔지만, 프로필 사진으로 판단했을 때 본인은 아닌 것 같았다.
'SNS는 안 하나보네.'
조심스러운 새끼다.
다시 시스템을 봤다. 눈앞에 여전히 떠 있었다.
'증거 파일.'
아까는 3초 보고 껐지만, 이번엔 제대로 봐야 한다. 저 새끼를 죽일 이유를 확실히 해야 한다.
손을 뻗어 파일을 열었다.
동영상이 재생됐다.
10초.
30초.
1분.
마우스를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개새끼.'
이를 갈았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짐승도 저렇게는 안 한다.
동영상을 껐다. 다른 파일을 열었다. 채팅 기록. 다크웹으로 보이는 사이트. 거래 내역.
판매 금액: 150만원.
저 새끼는 저걸로 돈까지 벌었다.
PC방 헤드셋을 벗었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일어섰다.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얼굴을 박고 찬물을 틀었다. 물을 끼얹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울을 봤다.
축 처진 눈. 며칠 안 깎은 수염. 핏기 없는 얼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중얼거렸다.
거울 속 내가 대답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잖아.'
그렇다.
어차피 죽을 거였다. 한강대교 난간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런데 지금은 살 이유가 생겼다.
아니.
죽일 이유가 생겼다.
화장실을 나왔다.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껐다. PC방을 나섰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새벽 2시.
다시 빌라로 향했다. 골목 모퉁이 자판기 옆 자리. 아까 그 자리에 섰다.
3층 불빛이 꺼졌다.
'잔다.'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였다.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미행한다. 출근 시간, 퇴근 시간, 점심시간 동선. 전부 파악한다.
그리고.
'기회를 찾는다.'
담배 연기가 희미하게 퍼졌다. 가로등 빛에 연기가 일렁였다.
주머니에서 과도를 꺼냈다. 작은 칼. 날이 무디었다. 이걸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해야 한다.
1억.
돈이 필요해서? 아니다. 솔직히 1억으로 37억을 갚을 수는 없다.
그럼 왜?
과도를 주머니에 넣었다.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모르겠어.'
그냥.
하고 싶어서.
저 새끼가 죽어야 할 것 같아서.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담배를 버렸다. 발로 밟아 껐다.
돌아섰다. 골목을 빠져나왔다.
근처 찜질방을 찾았다. 입장료 1만원. 지갑에 남은 돈을 확인했다. 3만 2천원.
'이틀은 버티겠네.'
찜질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수면실로 갔다. 구석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청록색 창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제한시간: 67시간 18분]
숫자가 째깍째깍 줄어들고 있었다.
'내일.'
내일부터 시작이다.
---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몸이 뻐근했다. 찜질방 바닥은 따뜻했지만, 잠은 설쳤다.
씻고 나와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샀다. 1,500원. 지갑에 3만원 남았다.
김밥을 먹으면서 빌라로 향했다.
골목 모퉁이. 어제 그 자리. 자판기 옆에 섰다.
8시 10분.
3층 현관문이 열렸다.
김성호가 나왔다.
정장 차림이었다. 회사원 복장.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는 자판기 뒤로 몸을 숨겼다.
김성호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큰길로 향했다.
나도 따라갔다. 거리를 20미터쯤 유지했다.
그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나도 들어갔다. 개찰구를 통과할 돈이 없어서 무임승차용 비상문을 살짝 밀고 들어갔다. 역무원이 쳐다봤지만, 아침 출근 시간이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2호선 플랫폼. 김성호는 한쪽 끝에 섰다. 나는 반대편 끝에 섰다.
전동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밀려 들어갔다. 나도 탔다. 다른 칸이었다.
세 정거장을 갔다. 김성호가 내렸다. 나도 내렸다.
회사는 역에서 5분 거리였다. S전자 건물. 유리로 된 고층 빌딩.
김성호는 로비로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지켜봤다.
'출근 시간은 8시 반.'
담배를 꺼냈다. 건물 앞 흡연구역에서 피웠다.
청록색 창이 떴다.
[타겟과의 거리: 약 34m]
[제한시간: 58시간 41분]
'회사 안에선 못 죽여.'
당연한 얘기다. CCTV 천지고 사람도 많다.
퇴근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담배를 끄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 2,500원. 지갑에 2만 7천원 남았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S전자 건물이 보이는 자리.
커피를 홀짝였다. 쓰고 뜨거웠다.
'어떻게 죽이지.'
칼로? 목을 그으면 피가 많이 난다. 흔적이 남는다.
둔기로? 머리를 내리치면 한 방에 안 죽을 수도 있다. 비명을 지르면 끝이다.
목 졸라? 힘이 많이 든다. 저항하면 실패할 수도 있다.
'장소도 문제고.'
집에서? 침입 흔적이 남는다.
길에서? 목격자가 있을 수 있다.
인적 없는 곳으로 유인? 어떻게?
머리가 복잡했다.
커피를 다 마셨다.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흘렀다.
점심시간. 12시.
김성호가 나왔다. 동료 두 명과 함께였다.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지켜봤다.
30분 후 나왔다.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점심시간도 혼자가 아니네.'
오후 내내 기다렸다. 카페에서 쫓겨날까 봐 커피를 한 잔 더 시켰다. 2,500원. 지갑에 2만 4천원.
6시.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6시 20분.
김성호가 나왔다. 이번엔 혼자였다.
나도 일어났다. 뒤를 밟았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또 탔다. 세 정거장. 내렸다.
빌라로 돌아갔다.
'집에만 박혀 있네.'
골목 모퉁이에서 지켜봤다. 3층 불이 켜졌다.
밤 10시까지 기다렸다. 불은 계속 켜져 있었다.
'오늘은 안 나오나.'
돌아섰다. 찜질방으로 갔다. 1만원. 지갑에 1만 4천원.
---
이틀째.
똑같았다.
아침 8시 10분 출근. 점심은 동료들과. 저녁 6시 20분 퇴근. 집으로 직행.
'패턴이 똑같아.'
셋째 날.
아침은 똑같았다. 출근, 점심.
하지만 저녁이 달랐다.
6시 20분. 김성호가 나왔다.
그런데 지하철역으로 가지 않았다.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어?'
나는 재빨리 따라갔다.
그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10분쯤 걸었다.
주택가로 들어갔다. 골목이 좁아졌다.
'어디 가는 거야?'
심장이 빨라졌다.
그는 초등학교 앞에 멈췄다.
정문 건너편. 담배를 피우는 척하며 서 있었다.
하교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성호의 시선이 아이들을 따라갔다.
'씨발.'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혔다.
그는 30분 동안 서 있었다. 담배를 세 개비나 피웠다. 아이들을 계속 쳐다봤다.
한 여자아이가 혼자 걸어갔다. 분홍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김성호가 움직였다.
여자아이 뒤를 따라갔다.
'지금이다.'
나도 따라갔다. 거리를 좁혔다.
골목이 더 좁아졌다. 인적이 드물어졌다.
김성호는 여자아이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안 돼.'
나는 뛰었다.
김성호가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야!"
내가 소리쳤다.
김성호가 돌아봤다. 여자아이도 돌아봤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다.
"저기... 길 좀 물어봐도 될까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김성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여자아이는 무서워하는 표정이었다.
"빨리 가."
여자아이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이는 뛰어갔다.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김성호의 얼굴이 굳었다.
"뭐야, 당신?"
"길을 잃어서요."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처음 와봤어요."
김성호는 나를 한 번 더 훑어봤다. 그리고 돌아섰다.
"모르겠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걸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주머니 속 과도를 만졌다.
'지금?'
주위를 둘러봤다. 골목은 좁았다. CCTV는 안 보였다. 사람도 없었다.
'지금 하면...'
하지만 김성호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겁쟁이.'
스스로를 욕했다.
김성호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큰길로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씨발... 씨발..."
중얼거렸다.
청록색 창이 떴다.
[제한시간: 12시간 3분]
'내일 아침까지.'
일어섰다. 비틀거렸다. 담배를 꺼냈다. 손이 떨려서 불을 붙이는 데 실패했다.
세 번째 만에 성공했다.
연기를 들이마셨다. 폐가 타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야 돼.'
오늘 밤.
집에 침입? 아니다. 문을 어떻게 여나. 부수면 소리가 난다.
밖에서 기다렸다가 새벽에? 언제 나올지 모른다.
출근길에? 사람이 너무 많다.
'방법이 없잖아.'
담배를 세게 빨았다. 필터까지 타들어갔다. 손가락이 뜨거웠다. 버렸다.
빌라로 돌아갔다.
골목 모퉁이. 자판기 옆.
3층 불이 켜져 있었다.
'들어가 있네.'
시계를 봤다. 밤 9시.
밤새 기다릴까? 나올 리 없다. 내일 아침까지 저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럼 출근길에?
'안 돼. 사람이 너무 많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한시간: 10시간 37분]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실패하면?'
시스템 설명을 떠올렸다.
**[실패 시 패널티: 즉시 채무 변제 요구 및... ]**
그 뒤는 기억이 안 났다. 그때는 대충 봤다.
'설마 죽이려고 하진 않겠지.'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앉았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등을 벽에 기댔다.
'어차피...'
어차피 망한 인생이다.
37억. 갚을 수 없다.
1억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그럼 왜 하려고 했나.
'...모르겠어.'
눈을 감았다.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분홍색 가방 멘 여자아이.
김성호의 시선.
증거 파일 속 영상.
눈을 떴다.
'해야 돼.'
이유는 모르겠다. 돈 때문도 아니다.
그냥.
해야 할 것 같다.
일어섰다. 먼지를 털었다.
빌라를 봤다. 3층 불빛.
'들어간다.'
어떻게든 문을 연다. 안에서 죽인다.
소리 나지 않게. 깔끔하게.
과도를 꺼냈다. 날을 봤다. 무디었다.
'목을 그으면... 안 돼. 피가 너무 많이 나.'
목을 조른다? 힘이 딸린다.
'입을 막고 목을 조른다.'
그래. 그렇게 하자.
주머니를 뒤졌다. 장갑이 있었다. 면장갑. 카페 설거지할 때 쓰던 것.
'지문은 안 남기겠네.'
장갑을 꼈다.
빌라로 다가갔다. 현관문 앞에 섰다.
비밀번호 자물쇠였다.
'모르는데.'
문을 밀었다. 잠겨 있었다.
'어떻게 여나.'
주위를 둘러봤다. 1층 창문. 닫혀 있었다.
뒷문? 돌아가 봤다. 없었다.
'망했네.'
다시 현관문 앞으로 왔다.
인터폰을 봤다. 301호 버튼.
'누르면 나올까?'
아니다. 경계할 것이다.
'택배라고 하면?'
밤 10시에 택배? 이상하다.
'그냥 부숴?'
문을 걷어차면 열릴까? 소리가 너무 크다. 이웃이 신고한다.
'방법이 없잖아!'
주먹으로 문을 쳤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안에서.
중년 남자가 나왔다. 1층 주민인 것 같았다.
"뭐야, 왜 문을 때려?"
나는 얼어붙었다.
"아... 죄송합니다. 친구 집인데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몇 호?"
"301호요."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301호 김성호씨? 친구야?"
"네."
"전화하지 그래."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요."
남자는 미심쩍은 표情으로 나를 봤다. 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나갔다.
현관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지금이다!'
손을 뻗어 문을 잡았다.
남자는 이미 골목으로 사라졌다.
문을 밀었다. 열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계단을 올라갔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다.
2층. 3층.
301호 앞에 섰다.
문 너머에서 TV 소리가 들렸다. 뉴스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이 떨렸다. 과도를 꺼냈다. 칼날을 펼쳤다.
'노크한다. 문 열면 밀고 들어간다. 입 막고 목 조른다.'
간단하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손을 들었다. 문을 두드리려 했다.
그때.
안에서 소리가 났다.
"어? 진짜?"
김성호 목소리였다.
"오케이, 지금 나갈게."
전화 통화하는 것 같았다.
발소리. 가까워졌다.
현관문 쪽으로.
'나온다!'
나는 재빨리 계단 쪽으로 물러났다. 3층 복도 구석에 숨었다.
문이 열렸다.
김성호가 나왔다.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가방을 들고 있었다.
'밤 10시에 어딜 가?'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뒤따라갔다. 거리를 유지하며.
1층.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나도 나갔다.
김성호는 큰길로 향했다. 빠르게 걸었다.
택시를 잡았다. 탔다.
'이런.'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택시가 멀어졌다.
청록색 창이 떴다.
**[타겟과의 거리: 약 340m... 580m... 920m...]**
[제한시간: 8시간 12분]
거리가 빠르게 늘어났다.
'놓쳤다.'
주저앉았다. 인도 한복판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봤다.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
8시간.
내일 아침까지.
김성호가 어디 갔는지 모른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끝났네.'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
"그래봤자..."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는 거지."
일어섰다. 비틀거렸다.
어디로 갈까.
찜질방? 돈이 없다. 지갑에 4천원 남았다.
한강? 다시?
'그냥 여기서 자볼까.'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삼각김밥 하나 샀다. 2천원 남았다.
밖에 나와 먹었다. 맛이 없었다. 씹는 것도 귀찮았다.
억지로 삼켰다.
휴대폰이 없어서 시간을 모르겠다. 편의점 시계를 봤다. 밤 11시.
'7시간.'
빌라로 돌아갔다.
혹시 김성호가 돌아왔을까.
골목 모퉁이. 3층 불은 꺼져 있었다.
'없네.'
자판기에 기댔다. 바닥에 앉았다.
담배를 꺼냈다. 마지막 한 개비.
불을 붙였다. 천천히 빨았다.
연기가 폐를 채웠다. 내뱉었다.
하늘을 봤다. 별이 없었다. 서울 하늘은 항상 그렇다.
'망했네.'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엔진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택시 한 대가 골목 입구에 섰다.
문이 열렸다.
김성호가 내렸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는 비틀거렸다. 술 냄새가 여기까지 났다.
'취했네.'
택시가 떠났다.
김성호는 빌라로 걸어갔다.
나는 일어섰다. 소리 나지 않게.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두 번 실패했다. 세 번째에 성공했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뛰었다.
문을 잡았다. 열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김성호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나는 뒤따라갔다.
2층.
3층.
김성호는 301호 문을 열었다.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내가 밀었다.
문이 활짝 열렸다.
김성호가 돌아봤다.
"누구...?"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뭐야, 당신!"
김성호가 뒤로 물러났다.
나는 과도를 꺼냈다.
"시끄럽게 하지 마."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김성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돈... 돈 줄게. 얼마든지..."
"닥쳐."
한 걸음 다가갔다.
김성호는 뒤로 물러났다. 벽에 부딪혔다.
"제발... 제발..."
"넌 그 애들한테 제발이라고 했어?"
"뭐...?"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아니다. 핸드폰은 없다.
시스템을 봤다. 증거 파일.
"이거. 네가 한 짓."
김성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건... 그건..."
"변명하지 마."
다가갔다. 팔을 뻗었다.
김성호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입을 막았다. 세게.
그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올라탔다.
목을 조르려 했다.
그때.
김성호가 발버둥쳤다. 힘이 셌다.
나를 밀어냈다.
나는 옆으로 굴렀다.
김성호가 일어났다. 현관문으로 뛰었다.
'안 돼!'
나도 일어났다. 뛰었다.
김성호가 문을 열었다.
나는 그의 재킷을 잡았다. 뒤로 잡아당겼다.
김성호가 넘어졌다.
머리가 신발장 모서리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
김성호가 바닥에 쓰러졌다.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섰다.
"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다가가서 확인했다.
숨을 쉬고 있었다. 기절한 것뿐이었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많지는 않았다.
'지금이다.'
과도를 들었다.
손이 떨렸다.
김성호의 목을 봤다.
'그으면 끝이다.'
하지만.
칼날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라고!'
손에 힘을 줬다.
칼날이 내려갔다.
김성호의 목에 닿았다.
피부가 살짝 긋혔다. 피가 한 방울 맺혔다.
'더.'
더 세게 눌렀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성호야, 괜찮아? 소리가 나서—"
1층에서 봤던 중년 남자였다.
그가 나를 봤다.
칼을 든 나를.
바닥에 쓰러진 김성호를.
"뭐... 뭐야!"
남자가 소리쳤다.
나는 얼어붙었다.
"살인이야! 경찰! 누가 경찰 불러!"
남자가 복도로 뛰어나갔다.
나는 과도를 떨어뜨렸다.
'망했다.'
김성호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기절해 있었다.
청록색 창이 떴다.
[타겟 제거 실패]
[제한시간: 00시간 00분 00초]
[패널티 발동]
"씨발..."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여러 명.
"거기 서!"
나는 현관문으로 뛰었다.
복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4명. 5명.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중이었다.
"잡아!"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반대편으로 뛰었다. 비상계단.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계단을 내려갔다. 2층, 1층.
뒤돌아봤다. 두 명이 쫓아오고 있었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골목으로 뛰었다.
"거기 서! 도둑이야!"
뒤에서 외치는 소리.
큰길로 나왔다. 사람들이 쳐다봤다.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개찰구를 뛰어넘었다.
역무원이 소리쳤다. 무시했다.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전동차가 서 있었다. 문이 닫히려는 중이었다.
뛰어들었다.
문이 닫혔다.
전동차가 출발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까지 찼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수군거렸다.
손을 봤다. 장갑에 피가 묻어 있었다. 김성호의 피.
벗어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미친 사람 같았다.
청록색 창이 또 떴다.
[패널티: 채무 즉시 변제 요구]
[미이행 시 강제집행 개시]
[남은 시간: 24시간]
"24시간..."
중얼거렸다.
37억.
24시간 안에.
불가능하다.
전동차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앉아 있었다.
문이 닫혔다. 다시 출발했다.
'어디로 가지.'
경찰이 빌라에 도착했을 것이다. 김성호 진술을 들었을 것이다.
CCTV를 확인할 것이다. 내 얼굴이 찍혔을 것이다.
'끝났어.'
웃음이 나왔다.
"끝났네... 진짜로..."
옆 사람이 자리를 옮겼다.
전동차는 계속 달렸다.
종점까지 갔다. 내렸다.
역 밖으로 나왔다.
어디인지 몰랐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한적한 주택가였다. 가로등이 어두웠다.
걸었다. 방향도 모르고.
30분쯤 걸었을까.
공원이 나왔다. 작은 공원. 놀이터가 있었다.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봤다. 여전히 별이 없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담배가 없었다. 아까 마지막 한 개비를 피웠다.
"씨발."
욕이 터져 나왔다.
벤치에 누웠다. 차가웠다.
눈을 감았다.
'24시간 후면 뭐가 될까.'
강제집행.
뭘 빼앗아 가려나. 이미 아무것도 없는데.
장기?
웃음이 났다.
'그것도 괜찮네.'
어차피 쓸모없는 몸이다.
눈을 떴다.
놀이터 그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소리.
'아이들...'
분홍색 가방 멘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김성호가 쫓아갔던.
'최소한 그건 막았네.'
그게 위안이 될까.
안 됐다.
실패했다. 김성호는 살아 있다.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 곧 잡힐 것이다.
감옥에 가겠지.
37억은? 그대로다.
'아무것도 안 변했어.'
벤치에서 일어났다.
공원을 나왔다.
어디로 갈까.
자수?
아니면 도망?
도망쳐봤자 어디로.
돈도 없다. 지갑에 2천원.
걸었다.
큰길로 나왔다.
24시간 편의점이 보였다.
들어갔다.
ATM기가 있었다.
카드를 넣었다. 비밀번호를 눌렀다.
잔액조회.
잔액: 100,037,284원
숫자를 봤다.
다시 봤다.
"뭐?"
1억.
1억이 들어와 있었다.
"이게 무슨..."
청록색 창이 떠올랐다.
[타겟 제거 완료 확인]
[보상 지급 완료]
[다음 타겟 대기 중...]
"완료?"
김성호는 살아 있었다. 기절했을 뿐이다.
"살아 있었는데!"
창이 변했다.
[타겟 김성호: 사망 확인]
[사인: 두부외상으로 인한 뇌출혈]
[사망시각: 23:47]
손이 떨렸다.
"죽었다고...?"
신발장에 머리를 부딪혔을 때.
그게.
"내가... 죽인 거야?"
ATM 화면을 다시 봤다.
1억.
피로 번 돈.
구역질이 났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토했다.
위에서 아무것도 안 나왔다. 위액만 나왔다.
벽에 기댔다.
숨을 헐떡였다.
"죽였어... 내가..."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이 손으로.
청록색 창이 또 떴다.
[두 번째 타겟 지정 완료]
[이름: 박민재]
[나이: 41세]
[죄목: 횡령 23억원, 배임, 사기]
[보상금: 5억원]
[제한시간: 72시간]
사진이 떴다.
얼굴을 봤다.
아는 얼굴이었다.
"민재 형?"
박민재.
예전 사업 파트너.
같이 회사를 키웠던.
날 배신했던.
내 돈을 가져갔던.
핸드폰이 울렸다—
아니다.
핸드폰은 없다.
하지만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렸다.
주머니를 뒤졌다.
낡은 핸드폰이 있었다.
'이게 왜...?'
아까까진 없었다.
핸드폰을 켰다.
문자가 와 있었다.
**[박민재: 도혁아, 요즘 어떻게 지내? 밥이나 한번 먹자.]**
손이 멈췄다.
화면을 봤다.
박민재 얼굴.
시스템 창.
5억.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하지만 그 웃음은.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그래, 형님..."
중얼거렸다.
"밥 먹자."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박민재는 3일 후, 자신이 보낸 그 문자를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