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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준비

약 33분

사냥꾼의 준비

주인공: 강도혁

공유 오피스의 유리문을 밀었을 때, 도혁은 커피 냄새부터 맡았다.


5년 전과 똑같았다. 아니, 기계만 바뀌었을 뿐이다. 예전엔 캡슐 커피였는데 지금은 원두 머신이 놓여 있었다. 그 앞에서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두 손에 머그컵을 하나씩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책상마다 모니터가 두세 개씩 켜져 있었고, 화이트보드엔 'Q2 목표 달성!' 같은 문구가 형광펜으로 휘갈겨져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리셉션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물었다. 스물다섯쯤 됐을까.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아, 그냥 예전에 여기서 일했었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견학이세요?"


견학. 도혁은 피식 웃었다.


"뭐 그런 거죠."


"자리 비어 있으면 앉아 계셔도 돼요. 저쪽 창가 쪽은 비었어요."


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창가 자리. 5년 전 자기가 앉았던 곳이다. 민재는 그 옆에 앉았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책상 위엔 먼지만 얇게 쌓여 있었다.


앉지 않았다. 그냥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저기, 저 구석 책상에서 민재가 전화를 받으며 웃었었다. "응, 괜찮아. 이번 라운드는 확정이야. 걱정 마." 그때 도혁은 민재의 말을 믿었다. 투자자가 진짜 있는 줄 알았다. 계약서에도 도장을 찍었다. 법인 통장은 민재가 관리했다.


'어차피 다 사기였는데.'


옆 책상에선 두 명이 뭔가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 이번 IR 피칭 자료 이 정도면 될까?"


"오 괜찮은데? 근데 슬라이드 10장은 좀 많아. 7장으로 줄여."


"VC들 관심 보이면 바로 시리즈 A 들어가는 거지?"


"당연하지. 밸류 최소 100억은 받아야 돼."


도혁은 고개를 돌렸다. 저 눈빛. 5년 전 자기 눈이랑 똑같았다. 희망이라는 게 저렇게 생겼구나. 반짝반짝하고, 멍청하고, 쉽게 부서지는.


'그래봤자 망할 텐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시스템 알림이었다.


[타겟: 박민재 / 현재 위치: 강남구 논현동 '일미정' / 동행자: 정우진(29세, 스타트업 대표)]


도혁은 화면을 끄고 오피스를 나섰다. 리셉션 여자가 손을 흔들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


일미정은 코스 요리 8만 원부터 시작하는 곳이었다. 민재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비싸 보이지만 무리할 정도는 아닌, 상대방한테 '이 정도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주기 딱 좋은 가격대.


도혁은 맞은편 카페에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창가 자리. 일미정 입구가 정면으로 보였다.


오후 7시 12분. 민재가 도착했다.


회색 코트에 검은색 터틀넥. 머리는 뒤로 넘겼고 손목엔 시계가 반짝였다. 5년 전보다 살이 쪘다. 얼굴도 좀 둥글어졌다. 그래도 웃는 모습은 똑같았다. 입꼬리만 올리고 눈은 안 웃는 그 미소.


7시 19분. 정우진이 왔다.


남색 재킷에 청바지. 가방은 백팩이었다. 민재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악수를 청하자 민재가 두 손으로 맞잡았다. 우진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두 사람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도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었다.


'저 새끼가 또 시작하는구나.'


핸드폰을 꺼내 정우진을 검색했다. SNS는 공개 계정이었다. 최근 게시물엔 '드디어 투자 미팅!'이라는 문구와 함께 일미정 앞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댓글은 스무 개쯤.


"우진아 대박 나자!"

"믿고 있어!!"

"고생한 보람 있겠다 ㅠㅠ"


도혁은 화면을 끄고 창밖을 봤다. 레스토랑 내부는 안 보였다. 유리가 반투명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민재가 먼저 나왔다. 우진이 뒤따라 나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민재는 우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뭔가 말했다. 우진이 웃었다. 그 웃음이 5년 전 도혁 자신의 것과 똑같았다.


민재가 택시를 잡았다. 우진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택시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응, 방금 끝났어. 진짜 대박인 것 같아. 박 대표님이 투자 확정이라고 하셨어. 계약서도 다음 주에 쓴대. 응응, 나도 믿기지 않아. 엄마, 이번엔 진짜야. 진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기쁨과 안도가 뒤섞인 떨림.


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와 우진 쪽으로 걸어갔다. 우진은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응, 그래. 조금 이따 집 갈게. 밥은 먹고 가."


우진이 전화를 끊었다. 도혁은 그 옆을 지나쳤다. 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


도혁은 그냥 지나쳤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우진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타겟: 박민재 / 이동 중 / 예상 목적지: 자택(서초구 반포동)]


화면 아래 작은 글씨가 떴다.


[경고: 타겟 외 개입 시 패널티 부과]


도혁은 화면을 끄고 택시를 잡았다.


"반포동으로 가주세요."


---


민재의 집은 아파트 중층이었다. 34평형. 5년 전엔 오피스텔에 살았었는데 이사를 했구나. 도혁은 아파트 단지 입구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9시 47분. 민재의 집 불이 켜졌다. 거실 창문이었다. 커튼이 쳐져 있어서 안은 안 보였다.


10시 13분. 누군가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정우진이었다.


도혁은 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진은 민재의 동 앞에서 멈춰 서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통화를 했다. 짧았다. 끊고 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왜 여기 와?'


5분쯤 지났을 때 민재의 집 불이 꺼졌다. 거실 불만. 안방 쪽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10분.


15분.


20분.


우진이 나왔다.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 그 환한 미소는 없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걸음이 빨랐다. 단지를 빠져나가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 나 지금 좀 이상해. 박 대표님이 갑자기 계약 조건을 바꾸자고 하셨어. 지분을 더 달라고. 처음 말씀하신 거랑 달라. 응... 모르겠어. 일단 변호사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도혁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우진의 뒷모습을 쫓지 않았다. 대신 민재의 집을 올려다봤다.


안방 불이 꺼졌다.


'또 시작이구나.'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민재의 동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 자주 가는 식당, 만나는 사람들. 김성호 때처럼 패턴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손이 떨렸다.


아니, 떨리는 게 아니라 감각이 없었다. 타이핑을 하는데 손가락 끝이 무뎠다. 마치 장갑을 낀 것처럼.


'이게 뭐지.'


도혁은 손을 펴서 봤다. 아무 이상 없었다. 그냥 손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자기 손 같지 않았다.


김성호를 죽인 뒤부터였다. 밥을 먹어도 맛이 안 느껴지고,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았다. 거울을 보면 낯선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이미 살인자니까.'


메모를 마저 쓰고 일어섰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걸어갔다. 택시를 잡으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사장님?"


뒤돌아봤다. 윤서아였다.


검은색 패딩에 청바지. 머리는 묶지 않고 내려뜨렸다. 손엔 편의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도혁이 물었다. 서아는 봉지를 들어 보였다.


"저 근처 살아요. 사장님은요?"


"그냥 지나가다."


"거짓말."


서아가 한 걸음 다가왔다. 눈을 똑바로 봤다.


"사장님, 눈빛이 달라졌어요."


"뭐가."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아는 계속 그를 봤다.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뭔가 말하려다가 참는 것 같았다.


"...조심하세요."


"뭘."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서아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봉지를 다시 들고 걸어갔다.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봤다.


"사장님, 혹시 힘든 일 있으면 말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몰라요."


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 가봐."


서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혁은 그 자리에 서서 서아의 뒷모습을 봤다. 작고, 가벼웠다. 저런 애가 뭘 도와. 자기 인생도 버거울 텐데.


택시를 잡아 탔다.


"어디 가세요?"


"...그냥 직진이요."


기사가 이상하다는 듯 룸미러로 도혁을 봤지만 출발했다. 도혁은 창밖을 봤다. 불빛들이 흘러갔다. 간판, 신호등, 가로등. 다 똑같아 보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시스템이 아니라 일반 전화였다. 모르는 번호.


받지 않았다. 끊겼다. 다시 울렸다. 또 끊었다.


문자가 왔다.


[김성호 사건 관련하여 연락드립니다. 서초경찰서 형사과 이정민입니다. 회신 부탁드립니다.]


도혁은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심장이 빨라지지 않았다. 손에 땀이 나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느낌도 없었다.


'어차피 올 줄 알았어.'


택시가 한강대교를 건넜다. 강물이 검게 흘렀다. 도혁은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아침. 도혁은 카페에 앉아 민재의 SNS를 다시 열었다. 최근 게시물은 어제 올라온 것이었다.


"좋은 인연과 좋은 이야기 나눴습니다. 함께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사진엔 일미정 테이블 위 와인잔 두 개가 찍혀 있었다. 댓글은 열 개.


"대표님 멋져요!"

"역시 박 대표님!"

"저도 미팅 신청하고 싶어요 ㅎㅎ"


도혁은 댓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다 속는구나. 5년 전 자기처럼.


핸드폰을 내려놓고 커피를 마셨다. 쓰고 떫었다. 설탕을 안 넣었다.


'민재를 죽여도 또 다른 놈이 나타날 거야.'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민재를 없애면 끝일 줄 알았다. 복수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정우진 같은 애들은 계속 생겨날 거였다. 민재 같은 놈들도 마찬가지고.


'그럼 다 죽여?'


손이 또 떨렸다. 아니, 떨리는 게 아니라 감각이 사라지는 거였다. 컵을 쥐고 있는데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갔다.


핸드폰이 울렸다. 또 모르는 번호. 이번엔 받았다.


"여보세요."


"강도혁 씨 맞으시죠? 서초서 형사과 이정민입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30대 후반쯤 되는 것 같았다.


"네."


"김성호 씨 사건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지금요?"


"네. 간단한 질문 몇 개만 드릴게요. 김성호 씨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쯤이었나요?"


도혁은 천천히 대답했다.


"한 두 달 전쯤이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나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그냥 안부 묻는 정도였어요. 별 내용 없었어요."


"김 씨가 최근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얘기 들으셨나요?"


"...아뇨."


"혹시 김 씨 사망 전날 통화하신 적 있으세요?"


도혁은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없어요."


"알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여쭤볼 게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네."


전화가 끊겼다. 도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을 봤다. 떨리지 않았다. 땀도 안 났다.


'이미 끝난 거야.'


김성호를 죽인 순간부터 돌아갈 수 없었다. 민재를 죽이면 또 다른 놈을 죽이게 될 거였다. 시스템은 계속 타겟을 줄 거고, 도혁은 계속 죽일 거였다.


'어차피 이미 괴물이니까.'


카페 문이 열렸다. 정우진이 들어왔다.


도혁은 얼어붙었다. 우진은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카드를 긁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 켰다. 화면엔 계약서 파일이 떠 있었다. 우진은 한참을 그걸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진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충혈돼 있었다.


"...?"


도혁은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진이 기다렸다.


"...뭐."


그게 다였다. 도혁은 돌아서서 카페를 나갔다. 우진의 시선이 등에 꽂혔다.


밖은 추웠다. 바람이 불었다. 도혁은 걸었다. 목적지 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시스템이었다.


[타겟: 박민재 / 일정: 내일 오전 10시, 역삼동 '스타벅스 리저브' / 동행자: 미확인]


도혁은 화면을 끄고 계속 걸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건넜다. 도혁도 건넜다.


'민재를 죽이면 끝날까.'


대답은 없었다. 그냥 바람만 불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도혁은 멈춰 섰다.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뒤돌아봤다. 카페가 보였다. 우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왜 돌아봤지.'


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가는 노선이 아니었다. 그냥 온 전철이었다.


창밖으로 어둠이 흘렀다. 터널 벽면의 전선들, 광고판, 역 이름. 도혁은 그걸 보다가 눈을 감았다.


5년 전이 떠올랐다. 첫 투자 미팅 날. 민재가 악수를 청했을 때.


"도혁 씨, 우리 대박 냅시다."


그때 민재의 손은 따뜻했다. 악수가 끝나고 나서 도혁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씻고 싶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전철이 섰다. 사람들이 내렸다. 도혁도 내렸다. 어딘지 몰랐다. 역 이름을 보니 교대역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서초동이었다. 경찰서가 가까웠다. 도혁은 그쪽으로 걸었다. 왜 가는지 몰랐다. 그냥 발이 움직였다.


경찰서 앞에 도착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민원실이 보였다. 형사과는 3층이라고 안내판에 써 있었다.


'들어가면 끝이야.'


손이 주머니로 갔다. 장갑이 만져졌다. 김성호를 죽일 때 썼던 거. 빨지 못하고 계속 들고 다녔다.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했다.


'왜 버리지 못하지.'


핸드폰이 울렸다. 시스템이었다.


[경고: 자수 시도 감지 / 즉시 중단하십시오 / 경고 무시 시 패널티 부과]


도혁은 화면을 봤다. 글자가 빨갛게 깜빡였다.


[패널티 내용: 타겟 외 인물 1명 추가 지정 / 제한 시간 24시간]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겨우 잡았다.


'이게 뭐야.'


화면이 바뀌었다. 사진이 떴다.


윤서아였다.


[예비 타겟: 윤서아 / 패널티 발동 시 72시간 내 제거 필수]


도혁은 뒤로 물러섰다. 등이 가로등에 부딪혔다.


"미친..."


목소리가 나왔다. 떨렸다. 손도 떨렸다. 감각이 돌아왔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화면을 껐다. 켜졌다. 서아의 사진이 계속 떠 있었다.


'왜 서아야.'


대답은 없었다. 시스템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명령만 내렸다.


도혁은 경찰서에서 멀어졌다. 걸었다. 뛰었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벽에 기댔다. 숨이 찼다.


'진짜 괴물이 되는 거구나.'


핸드폰을 다시 켰다. 서아의 사진이 사라져 있었다. 원래 화면으로 돌아와 있었다.


[타겟: 박민재 / 남은 시간: 62시간 41분]


도혁은 핸드폰을 쥐었다. 던지고 싶었다. 부수고 싶었다. 근데 그러면 끝이었다. 시스템은 도혁을 놓아주지 않을 거였다.


'어차피 선택권 따윈 없었어.'


집으로 돌아갔다. 원룸 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민재를 죽일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김성호처럼 사고사로 위장해야 했다. 근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서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장님, 혹시 힘든 일 있으면 말해요."


도혁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9시. 도혁은 역삼동으로 향했다. 스타벅스 리저브는 큰 길가에 있었다. 2층 건물이었다. 유리창이 넓었다. 안이 다 보였다.


도혁은 맞은편 건물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창가 자리. 리저브가 정면으로 보였다.


9시 47분. 민재가 도착했다. 회색 코트에 검은 목도리. 손엔 서류 가방. 리저브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갔다.


10시 3분. 누군가 리저브로 들어갔다.


정우진이었다.


도혁은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주먹을 쥐었다.


'왜 또 우진이야.'


우진은 2층으로 올라갔다. 민재가 손을 들어 반겼다. 악수를 나눴다. 자리에 앉았다.


도혁은 그 모습을 봤다. 5년 전 자기 모습이었다. 희망에 찬 표정. 민재를 믿는 눈빛.


민재가 서류를 꺼냈다. 우진에게 보여줬다.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펜을 꺼냈다.


'사인하면 안 돼.'


도혁은 일어났다. 카페를 나갔다. 리저브로 뛰어갔다. 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민재와 우진이 앉아 있었다. 서류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우진의 손에 펜이 들려 있었다.


"잠깐."


도혁이 말했다. 민재와 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민재의 눈이 커졌다.


"...도혁이?"


목소리가 달랐다. 5년 전과. 더 낮았다. 더 차가웠다.


우진이 도혁을 봤다. 어제 카페에서 봤던 사람이었다.


"저기... 누구세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재를 봤다. 민재가 웃었다. 입만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야, 도혁아. 오랜만이네. 여긴 어쩐 일이야?"


"그 서류에 사인하지 마."


도혁이 우진에게 말했다. 우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박민재는 사기꾼이야. 그 계약서 사인하면 넌 끝이야."


민재의 표정이 굳었다. 웃음이 사라졌다.


"도혁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닥쳐."


도혁이 민재를 봤다.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진 씨, 이 사람 제 옛날 직원이었어요. 회사 망하고 나서 좀 이상해졌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거짓말."


도혁이 한 걸음 다가갔다. 민재가 물러섰다.


"우진 씨, 5년 전에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었어. 똑같은 서류에 사인했어. 그리고 3개월 뒤에 회사 날아갔어. 투자금은 한 푼도 못 받았어. 박민재는 증거 다 없앴어. 계약서에 함정 조항 넣어놨어."


우진이 서류를 내려다봤다. 민재가 손을 뻗어 서류를 가져갔다.


"도혁아, 네가 실패한 건 네 잘못이야. 나한테 책임 전가하지 마."


"내 잘못?"


도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민재가 뒤로 물러섰다.


"넌 처음부터 계획했잖아. 투자금 빼돌리고 회사 망하게 만들고. 그게 네 사업 방식이잖아."


"증거 있어?"


민재가 물었다. 웃고 있었다. 진짜로 웃고 있었다.


"없잖아. 너 지금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어."


도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갑이 만져졌다.


'여기서 죽여?'


손이 떨렸다. 아니, 이번엔 진짜 떨렸다. 분노 때문에.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일단 계약은 보류할게요. 변호사랑 상의 좀 해보고요."


민재가 우진의 팔을 잡았다.


"우진 씨, 이 사람 말 믿으면 안 돼요. 정신 나간 사람이에요."


우진이 민재의 손을 뿌리쳤다.


"손 떼세요."


민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면이 벗겨졌다. 짜증과 분노가 드러났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지금 뭘 포기하는지 알아?"


"알아요. 쓰레기 같은 사람이랑 일 안 하는 거요."


우진이 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도혁도 따라 내려갔다. 민재가 난간에 기대서 소리쳤다.


"도혁아! 너 죽고 싶어?"


도혁이 멈춰 섰다. 뒤돌아봤다. 민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차가웠다.


"너 요즘 이상한 짓 하고 다니지? 김성호 죽은 거 너랑 관련 있는 거 아니야?"


심장이 멎었다.


민재가 계단을 내려왔다. 도혁에게 다가왔다. 귓가에 속삭였다.


"경찰한테 제보할까? 네가 성호 죽였다고."


"...증거 없잖아."


"만들면 되지."


민재가 웃었다. 도혁의 어깨를 툭 쳤다.


"조용히 살아. 나한테 덤비지 말고."


민재가 리저브를 나갔다. 도혁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혔다.


---


밖으로 나왔다. 우진이 길 건너편에 서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도혁이 다가갔다.


"괜찮아?"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근데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신 차렸어요."


"앞으로 조심해."


"네. 그런데..."


우진이 담배를 끄고 도혁을 봤다.


"형은 왜 도와주신 거예요? 저 모르는 사람인데."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우진이 기다렸다.


"...그냥."


"그냥?"


"5년 전 내가 당했으니까. 너도 당하는 거 보기 싫었어."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명함 드릴게요. 나중에 밥이라도 사고 싶어요."


"됐어."


도혁이 돌아서려는데 우진이 손을 잡았다.


"형, 눈빛이 이상해요."


"...뭐가."


"마치...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눈이에요."


도혁은 손을 뿌리쳤다. 우진이 뒤로 물러섰다.


"신경 쓰지 마. 가봐."


우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도혁은 그 자리에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스템을 열었다.


[타겟: 박민재 / 남은 시간: 59시간 12분]


민재를 죽여야 했다. 72시간 안에. 안 그러면 서아가 타겟이 됐다.


'어떻게 죽이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김성호 때처럼 사고사로 위장해야 했다. 근데 민재는 조심스러웠다. 패턴이 일정하지 않았다. 혼자 다니지도 않았다.


도혁은 민재의 집으로 향했다. 반포동 아파트. 주차장에서 민재의 차를 찾았다. 벤츠 E클래스. 검은색.


차 밑을 들여다봤다. 브레이크 라인을 끊으면? 아니야. 요즘 차는 경고등이 뜬다. 들킬 거야.


보닛을 열어봤다. 잠겨 있었다. 문도 잠겨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주차장을 나와 아파트 주변을 돌았다. CCTV가 많았다. 입구, 후문, 놀이터, 산책로. 다 찍히는 구조였다.


'여기서는 안 돼.'


핸드폰이 울렸다. 이정민 형사였다. 받지 않았다. 끊겼다. 문자가 왔다.


[내일 오전 10시 서까지 출석 부탁드립니다. 김성호 씨 사건 관련 추가 조사가 필요합니다.]


도혁은 화면을 끄고 걸었다. 목적지 없이.


해가 졌다.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켜졌다. 도혁은 한강 둔치에 앉았다. 강물을 봤다.


'이대로 가면 나도 죽고 서아도 죽어.'


선택지는 두 개였다. 민재를 죽이거나, 자수하거나.


자수하면 서아가 타겟이 됐다. 시스템이 그랬다.


민재를 죽이면? 그 다음 타겟이 또 나타날 거였다. 끝이 없었다.


'애초에 출구 따윈 없었어.'


도혁은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갔다. 원룸 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책상 위에 칼이 있었다.


회사 다닐 때 쓰던 커터칼. 박스 뜯을 때 썼었다. 날이 녹슬어 있었다.


도혁은 칼을 집어 들었다. 손에 쥐었다. 가벼웠다.


'이걸로 민재를 찌르면?'


안 돼. 사고사로 위장 못 해. 살인으로 처리돼.


칼을 내려놓았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윤서아였다.


도혁은 벌떡 일어났다.


"너 왜 전화해."


"제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아, 예전에 드렸었나..."


"무슨 일이야."


"사장님, 요즘 진짜 이상하세요. 혹시 약 같은 거 하세요?"


"안 해."


"그럼 왜 그래요. 어제 밤에도 이상한 데서 보고... 오늘도 뉴스 보니까 역삼동에서 소란 있었다던데 혹시 사장님 아니에요?"


"아니야."


"거짓말. 사장님 목소리 들으면 알아요. 뭔가 숨기고 있는 거."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아가 한숨을 쉬었다.


"사장님, 저 걱정돼요. 진짜로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 없어요?"


"없어. 끊어."


"사장님!"


도혁은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침대에 던졌다.


서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걱정돼요.'


5년 동안 아무도 그런 말 안 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아무도.


도혁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8시. 도혁은 서초경찰서 앞에 서 있었다.


들어가야 했다. 이정민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면 끝이야.'


하지만 안 들어가면 의심받는다. 도망치는 것처럼 보인다.


도혁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민원실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갔다. 형사과 문을 열었다.


"강도혁 씨 맞으시죠?"


30대 후반 남자가 다가왔다. 키가 컸다. 180은 넘어 보였다.


"네."


"이정민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조사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 녹음기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앉으세요. 간단하게 몇 가지만 여쭤볼게요."


도혁은 앉았다. 이정민이 맞은편에 앉았다. 파일을 펼쳤다.


"김성호 씨와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죠?"


"두 달 전쯤이요."


"통화 내용은?"


"안부 정도요."


"김 씨가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몰랐어요."


이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일을 넘겼다.


"김 씨 통화 기록 보니까 사망 전날 밤 11시 47분에 강도혁 씨한테 전화했더라고요. 3분 12초 통화하셨던데."


심장이 멎었다.


"...그랬나요? 기억 안 나는데."


"기억 안 나세요?"


"술 먹고 있었어요. 그날."


"어디서요?"


"집에서요."


"혼자요?"


"네."


이정민이 펜을 돌렸다. 도혁을 봤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날 통화에서 무슨 얘기 나눴어요?"


"...기억 안 나요. 술 먹어서."


"김 씨가 돈 빌려달라고 했나요?"


"모르겠어요."


"강 씨, 거짓말하시는 거 같은데요."


도혁은 이정민을 봤다. 이정민이 웃었다. 웃음이 차가웠다.


"김성호 씨 사망 당일 오전 7시 23분. 김 씨 집 근처 CCTV에 강 씨 차량이 포착됐어요."


손에 땀이 났다.


"...그날 아침에 지나가다가."


"왜요?"


"산책하러요."


"차 타고 산책을요?"


"네."


이정민이 파일을 덮었다.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났다.


"강 씨,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은 참고인 조사지만 계속 이러시면 피의자로 전환될 수도 있어요."


도혁은 일어났다.


"더 할 말 없으면 가도 되죠?"


"...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근데 강 씨."


이정민이 문 앞을 막았다.


"도망가지 마세요. 그러면 더 의심받아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정민이 비켜섰다. 도혁은 조사실을 나갔다. 복도를 걸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밖으로 나왔다. 숨이 찼다. 손이 떨렸다.


핸드폰을 꺼냈다. 시스템을 열었다.


[타겟: 박민재 / 남은 시간: 43시간 04분] # 후반부 (계속)


도혁은 경찰서에서 멀어졌다. 걸었다.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았다.


'CCTV를 어떻게 알았지.'


김성호 집 근처를 지나간 건 맞았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냥 지나쳤을 뿐이었다. 아니, 잠깐 세웠나? 기억이 안 났다.


'이미 의심받고 있어.'


민재를 죽이면 바로 용의선상에 오른다. 김성호에 이어 또 아는 사람이 죽으면 우연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안 죽이면 서아가 죽는다.


도혁은 걸음을 멈췄다. 사거리였다. 신호등이 빨갛게 켜져 있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민재였다.


받았다.


"뭐."


"야, 강도혁. 우리 만나자."


"왜."


"할 얘기 있어. 오늘 저녁 7시. 일미정 앞으로 와."


"싫은데."


"안 오면 경찰한테 전화한다. 네가 성호 죽였다고."


전화가 끊겼다.


도혁은 핸드폰을 쥐었다. 화면이 금이 갈 것처럼 세게.


'이 새끼가.'


민재는 알고 있었다. 확실한 건 아니겠지만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미끼로 도혁을 부르는 거였다.


'가면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안 가면 정말 신고당할 것 같았다. 민재는 그런 놈이었다. 자기한테 손해가 되면 뭐든 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건넜다. 도혁도 건넜다.


---


오후 6시. 도혁은 집에서 준비를 했다.


장갑을 챙겼다. 커터칼도 챙겼다. 아니, 칼은 놔뒀다. 들고 가면 정신 나간 거였다.


대신 녹음기를 챙겼다. 핸드폰 녹음 앱을 켰다. 민재가 뭔 소리를 하는지 녹음해두면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증거? 누구한테?'


경찰한테 줄 수도 없고. 시스템한테 줄 수도 없고.


그냥 챙겼다. 이유는 몰랐다.


6시 40분. 집을 나섰다. 일미정은 강남역 근처였다. 지하철을 탔다.


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퇴근 시간이었다. 도혁은 구석에 섰다. 창밖을 봤다. 어둠 속으로 터널이 이어졌다.


'오늘 민재를 죽일 수 있을까.'


가능성을 따졌다. 일미정은 사람이 많다. CCTV도 많다. 증인도 많다. 불가능하다.


그럼 민재를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조용한 곳. 사람 없는 곳.


'어디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계획이 안 섰다. 김성호 때처럼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됐다.


전철이 섰다. 강남역이었다. 내렸다. 계단을 올라갔다.


밖은 화려했다. 네온사인, 간판, 사람들. 다들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도혁은 그 사이를 걸었다. 일미정이 보였다. 입구에 민재가 서 있었다.


혼자였다. 코트를 입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도혁이 다가갔다. 민재가 담배를 끄고 웃었다.


"왔네."


"할 말이 뭔데."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추워 죽겠네."


민재가 일미정 안으로 들어갔다. 도혁이 따라 들어갔다. 2층 룸이었다. 예약석이라고 팻말이 붙어 있었다.


문을 닫았다. 민재가 자리에 앉았다. 도혁은 맞은편에 앉았다.


"뭐 시킬래? 술?"


"됐어. 빨리 말해."


민재가 웃음을 거뒀다. 테이블에 팔을 올렸다.


"도혁아, 너 요즘 위험한 짓 하고 다니더라."


"무슨 소리야."


"김성호 죽은 거. 너 했지?"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재가 계속 말했다.


"성호 죽기 전날 밤에 너한테 전화했어. 나도 알아. 성호가 나한테도 전화했거든. 돈 빌려달라고. 나는 안 빌려줬지. 근데 너는? 만났지?"


"안 만났어."


"거짓말. 성호 집 근처 CCTV에 네 차 찍혔어. 경찰도 알고 있더라."


"그게 증거야?"


"아니지. 근데 의심은 충분하지."


민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도혁아, 너 왜 그랬어? 성호가 뭘 잘못했길래?"


"...넌 왜 궁금해."


"재밌잖아. 내가 망하게 만든 놈이 살인자가 됐다니. 이거 드라마야, 드라마."


도혁은 주먹을 쥐었다. 민재가 그걸 보고 웃었다.


"화내지 마. 나 경찰한테 안 말할게. 대신."


"대신?"


"나한테 일해. 너 같은 놈 필요하거든."


도혁은 민재를 봤다. 민재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우진이 같은 애들 있잖아. 순진한 놈들. 쉽게 속는 놈들. 근데 가끔 네 같은 놈이 나타나서 방해하거든. 그런 놈들 정리해줘. 너 어차피 살인자잖아. 한 명 죽이나 두 명 죽이나 똑같아."


"미쳤구나."


"미친 건 너지. 성호를 왜 죽였어? 복수? 그게 뭐가 달라져?"


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재가 손목을 잡았다.


"앉아. 아직 안 끝났어."


"손 떼."


"안 떼. 너 지금 선택해야 돼. 나한테 일하거나, 경찰서 가거나."


도혁은 민재의 손을 뿌리쳤다. 민재가 비틀거렸다.


"야!"


도혁은 문을 열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갔다. 민재가 뒤쫓아왔다.


"강도혁! 도망가지 마!"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쳐다봤다. 도혁은 골목으로 뛰었다. 민재가 따라왔다.


"야! 서!"


도혁은 뒤돌아봤다. 민재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너... 진짜... 죽고 싶냐?"


"너야말로."


도혁이 한 걸음 다가갔다. 민재가 뒤로 물러섰다. 벽에 부딪혔다.


"뭐... 뭐 하게?"


"5년 전에 물어볼 걸 지금 물어본다."


도혁은 민재의 멱살을 잡았다.


"왜 날 망하게 만들었어?"


"그게... 사업이잖아. 누군 망하고 누군 성공하고. 당연한 거 아니야?"


"사업? 넌 처음부터 사기칠 생각이었잖아."


"증거 있어?"


도혁은 민재를 밀었다. 민재가 바닥에 넘어졌다.


"이 새끼야... 너 지금 폭행했어. 신고한다?"


민재가 핸드폰을 꺼냈다. 도혁은 그걸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화면이 깨졌다.


"야!"


도혁은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냈다. 손에 꼈다. 민재가 그걸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너... 진짜 죽일 거야?"


"모르겠어."


도혁은 민재에게 다가갔다. 민재가 뒤로 물러섰다. 골목 끝이었다. 막다른 곳이었다.


"도혁아, 진정해. 우리 얘기로 풀자. 응?"


"이미 늦었어."


도혁은 민재의 목을 잡았다. 민재가 발버둥 쳤다.


"으윽... 놔... 놔!"


힘이 빠졌다. 민재의 몸이 축 늘어졌다. 도혁은 손을 놨다. 민재가 바닥에 쓰러졌다.


숨이 끊어졌다.


도혁은 그 자리에 서서 민재를 내려다봤다. 손이 떨렸다. 아니, 온몸이 떨렸다.


'죽였어.'


두 번째 살인이었다. 김성호 때보다 쉬웠다. 망설임이 없었다.


'이게 나야?'


핸드폰이 울렸다. 시스템이었다.


[타겟 제거 완료 / 보상 지급 예정]


화면이 바뀌었다.


[신규 타겟 지정 / 대상: 이정민 / 직업: 경찰 / 제한 시간: 72시간]


심장이 멎었다.


'경찰을?'


화면을 다시 봤다. 이정민 형사 사진이 떠 있었다. 주소, 근무지, 동선까지 다 나와 있었다.


[경고: 타겟 제거 실패 시 당신의 범죄 기록 전체 공개]


도혁은 주저앉았다. 민재의 시체 옆에.


'끝이 없구나.'


골목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도혁은 고개를 들었다.


윤서아가 서 있었다.


"...사장님?"


서아가 민재의 시체를 봤다.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도혁이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서아의 눈이 커졌다. 눈물이 흘렀다.


도혁은 서아를 놔줬다. 서아가 뒤로 물러섰다. 떨고 있었다.


"사장님... 뭐 한 거예요...?"


"보이는 대로야."


"왜...?"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아가 핸드폰을 꺼냈다. 도혁이 그걸 빼앗았다.


"신고하면 너도 죽어."


"...예?"


"시스템이 널 다음 타겟으로 지정해. 내가 안 죽이면 다른 방법으로 죽여."


서아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사장님, 정신 차려요. 우리 경찰서 가요. 제가 같이 갈게요."


"안 돼."


"왜요?"


"다음 타겟이 경찰이야."


서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혁은 서아의 핸드폰을 돌려

총 16,481자 · 약 33분

- 2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김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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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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