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의 시선
주인공: 강도혁
골목 바닥에 피가 번졌다.
도혁은 민재의 목에서 손을 떼며 뒷걸음질 쳤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두 번째.'
셋을 세는 게 이렇게 쉬워질 줄은 몰랐다.
"으윽..."
뒤에서 신음이 들렸다.
도혁이 고개를 돌렸다. 골목 입구에 여자가 서 있었다. 편의점 유니폼을 입은 채로. 손에 든 비닐봉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윤서아였다.
"사, 사장님...?"
서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민재의 시체와 도혁 사이를 오갔다.
도혁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어차피 믿지도 않을 텐데.
"조용히 해."
도혁이 서아에게 다가갔다. 서아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도혁의 손이 먼저 그녀의 입을 막았다.
"소리 지르면 우리 둘 다 끝이야."
서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도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봤다.
"내 말 듣고 있어?"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도혁이 천천히 손을 떼자 서아가 비틀거렸다. 뒤로 물러서려다 벽에 등을 부딪쳤다.
"왜... 왜 이런 짓을..."
"어차피 넌 이해 못 해."
도혁이 민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처리해야 했다.
'목격자도.'
머릿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도혁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사장님..."
서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저 사람... 죽었어요?"
"그래."
"사장님이...?"
"그래."
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이 새하얘졌다.
도혁은 서아를 봤다. 스물다섯. 알바로 학비 벌면서 간호학과 다니는 애. 가끔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르면 '사장님 오늘 안색 안 좋으세요'라며 비타민 음료를 건네던 애.
죽일 수 있을까.
손가락이 저렸다. 목을 조르는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됐어.'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차 가져올 테니까 여기서 움직이지 마."
"네...?"
"시체 처리 도와줘야 할 거야."
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쳤어요...?"
"그럴지도."
도혁이 골목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서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
차를 가져오는 데 10분이 걸렸다.
도혁은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었다. 서아는 여전히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민재의 시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도와줄 거야, 말 거야?"
도혁의 목소리가 건조했다.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충혈돼 있었다.
"...도와드릴게요."
"왜?"
"모르겠어요."
서아가 떨리는 다리로 걸어왔다. 민재의 발목을 잡으려다 손을 움츠렸다.
"처음이지?"
"...네."
"익숙해져."
도혁이 민재의 어깨를 들어 올렸다. 서아가 발목을 잡았다. 둘이 시체를 들어 트렁크까지 옮겼다.
무거웠다. 생각보다 훨씬.
트렁크에 시체를 밀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서아가 옆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괜찮아?"
"...아뇨."
도혁이 차 문을 열었다.
"타."
서아가 조수석에 올랐다. 안전벨트를 매는 손이 떨렸다.
도혁은 시동을 걸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자 서아가 입을 열었다.
"왜 이런 짓을 하세요?"
"어차피 넌 이해 못 해."
"...말해보세요."
도혁은 핸들을 꽉 쥐었다. 말해야 하나. 말해봤자 뭐가 달라질까.
"시스템."
"네?"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있어. 나한테만."
서아가 도혁을 쳐다봤다. 미친 사람 보는 눈빛이었다.
"빚을 청산해준대. 대신 사람을 죽이면."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겠지."
도혁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눈앞에 반투명 창이 떴다.
[TARGET 02: 박민재 - 제거 완료]
[남은 채무: ₩847,000,000]
[NEXT TARGET 로딩 중...]
도혁의 손이 핸들에서 미끄러졌다. 차가 휘청거렸다.
"사장님!"
서아가 소리쳤다. 도혁이 정신을 차리고 핸들을 바로잡았다.
"...미안."
"방금 뭐 본 거예요?"
"시스템."
도혁이 허공을 응시했다. 새로운 프로필이 떠올랐다.
[TARGET 03: 이정민]
[직업: 경찰청 감사관]
[죄목: 증거 조작 / 무고한 시민 3명 투옥]
[제한 시간: 72시간]
[경고: 목격자 처리 권장 / 방치 시 위험도 상승]
도혁의 입이 바짝 말랐다.
경찰.
"사장님...?"
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격자 처리 권장.'
시스템은 서아를 죽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핸드폰 줘봐."
"네?"
"핸드폰."
서아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건넸다. 도혁이 '이정민 경찰'을 검색했다.
기사가 떴다.
# Part 2: 전개
화면에 기사 제목이 떴다.
<경찰청 감사관 이정민, 내부 비리 조사 전담반 배속>
도혁의 손가락이 멈췄다.
"...뭐라고?"
서아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저 사람이 다음 타겟이에요?"
"닥쳐."
도혁이 기사를 내렸다. 이정민의 얼굴 사진이 나왔다. 40대 중반. 각진 턱. 날카로운 눈매.
기사 내용은 간단했다.
'부패 경찰 적발에 앞장서 온 이정민 감사관, 최근 3년간 12명의 비리 경찰 징계 이끌어내'
도혁의 목구멍이 조였다.
'증거 조작?'
시스템이 띄운 죄목과 정반대였다.
"사장님."
서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시스템이... 정말 악인만 지목하는 거 맞아요?"
도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핸드폰을 서아에게 돌려주고 액셀을 밟았다. 차가 속도를 냈다.
'두 명은 확실했어.'
첫 번째 타겟 조성훈. 보육원 운영하면서 후원금 착복한 놈. 뉴스에도 나왔던 사건이었다.
두 번째 박민재. 데이트 폭력으로 전 여친 병원 보낸 새끼. SNS에 증거 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다.
'근데 이정민은?'
도혁이 핸들을 꺾었다.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시체 버릴 곳."
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창밖을 봤다.
도혁은 백미러를 확인했다.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72시간.'
시간이 없었다. 이정민이 진짜 악인인지 확인해야 했다. 시스템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거지.'
도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핸들이 삐걱거렸다.
"사장님."
"뭐."
"저 사람 죽일 거예요?"
"...모르겠어."
서아가 도혁을 똑바로 봤다.
"거짓말."
"뭐?"
"이미 결정했잖아요. 안 죽이기로."
도혁이 웃었다. 비웃음에 가까웠다.
"넌 뭘 아는데."
"눈빛이요."
서아가 고개를 숙였다.
"아까 저 죽일 수도 있었잖아요. 근데 안 죽였어요."
"그래봤자 시간문제야."
"아뇨."
서아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사장님은 안 그럴 거예요."
도혁이 서아를 쳐다봤다. 애는 뭘 믿고 저러는 걸까.
"어리석은 소리."
"...그럴지도 모르죠."
차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이었다.
10분쯤 달렸을까. 도혁이 폐공장 앞에 차를 세웠다.
"내려."
둘이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를 열자 민재의 시체가 보였다.
서아가 고개를 돌렸다.
"못 보겠어요."
"익숙해지라니까."
도혁이 시체를 끌어냈다. 공장 안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서아가 뒤따라왔다.
공장 안은 녹슨 기계들로 가득했다. 도혁은 구석진 곳에 시체를 던졌다.
"이러면 되는 거예요?"
"당분간은."
도혁이 먼지를 털어냈다.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서아가 가방을 뒤졌다. 물티슈를 꺼내 도혁에게 건넬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도혁이 손을 닦았다. 피는 지워졌지만 감촉은 남아 있었다.
'세 번째도 이렇게 될까.'
공장을 나왔다. 차에 올라타려는데 서아가 말했다.
"사장님."
"왜."
"그 형사 만나러 가는 거죠?"
"어."
"저도 갈게요."
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야."
서아가 도혁의 눈을 똑바로 봤다.
"사장님 혼자 두면... 정말 죽일 것 같아요. 그 형사님을."
도혁이 코웃음 쳤다.
"네가 있으면 안 죽인다는 보장이라도 있어?"
"없어요. 근데 그래도."
서아가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같이 확인해요. 그 사람이 정말 악인인지."
도혁은 한참을 서 있다가 운전석에 올랐다.
"후회하지 마."
"안 해요."
시동을 걸었다. 다시 국도로 나왔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서아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정민 경찰 검색하면 기사가 많이 나와요."
"읽어봐."
서아가 화면을 스크롤했다.
"3년 전에 경찰청 감사실로 발령받았대요. 그 전엔 강력계였고."
"계속."
"비리 경찰 적발 건수가... 12건. 와."
서아가 감탄했다. 도혁은 표정이 없었다.
"악행 관련된 기사는?"
"...없어요."
"하나도?"
"네."
도혁이 이를 악물었다.
'시스템이 거짓말을 했어.'
왜? 무슨 목적으로?
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그 시스템... 정체가 뭘까요?"
"모르겠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어땠어요?"
도혁이 기억을 더듬었다.
3개월 전. 빚쟁이한테 쫓기던 밤. 골목에 쓰러져 있을 때 눈앞에 창이 떴었다.
[당신의 채무를 청산해드립니다]
[조건: 지정된 악인 제거]
[거부 시 당신의 과거 범죄 기록 전면 공개]
"협박이었어."
도혁이 중얼거렸다.
"과거 범죄 기록이요?"
"...사업 망하기 전에 회계 조작 좀 했었어. 들키면 징역감이야."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
"근데 이제는요?"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이제는 뭐냐고."
도혁이 서아를 쳐다봤다.
"이제는 선택할 수 있잖아요."
"무슨."
"안 죽이는 거요."
도혁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내 과거가 까발려져."
"그게 뭐 어때서요."
서아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 죽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어쩌면.
하지만 8억. 그 빚더미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아니야.'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변명이지. 그냥 무서운 거야.'
감옥이. 모든 걸 잃는 게.
차가 시내로 접어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에 반사됐다.
서아가 핸드폰을 내려놨다.
"사장님."
"또 뭐."
"내려주세요."
도혁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멈췄다.
"왜."
"저 여기까지만 갈게요."
서아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서워요. 솔직히."
"그래."
"근데 사장님도 무서우시잖아요."
도혁이 핸들을 쥔 손에 힘을 뺐다.
"...어."
"그럼 됐어요."
서아가 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들어왔다.
"연락하지 마세요. 저도 안 할게요."
"알았어."
서아가 차에서 내렸다. 문을 닫으려다 멈췄다.
"사장님."
"뭐."
"그 형사님한테 가지 마세요."
도혁이 고개를 돌렸다.
"왜."
"...죽을 것 같아서요. 사장님이."
서아가 문을 닫았다. 인도로 걸어갔다.
도혁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시동을 껐다.
'죽을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경찰을 죽인다? 미친 짓이지.
하지만 시스템은 72시간이라는 시간을 줬다. 실패하면—
눈앞에 창이 떴다.
[경고: 제한 시간 내 미이행 시 페널티 발동]
[페널티: 과거 범죄 기록 + 현재 살인 증거 경찰 제출]
도혁의 숨이 막혔다.
'둘 다 까발린다고?'
그럼 끝이었다. 무기징역감이었다.
"씨발..."
도혁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처음부터.
시동을 다시 걸었다. 액셀을 밟았다.
'이정민.'
경찰청 감사관. 비리 경찰 잡는 사람.
'증거 조작이라고 했지.'
시스템이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그래. 확인만 하자.'
죽이는 건 그다음 문제였다.
***
경찰청 주차장에 도착한 건 밤 11시였다.
차를 세우고 건물을 올려다봤다. 5층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감사실.'
도혁이 차에서 내렸다. 로비로 들어갔다.
당직 경찰이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민원."
"지금 시간에요?"
"급한 일이라서요."
당직이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5층 민원실 가세요."
엘리베이터를 탔다. 5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순간 눈앞에 창이 떴다.
[TARGET 03: 이정민 - 현재 위치 5층 감사실]
[권장 방법: 추락사 / 목격자 제로 / 성공률 89%]
도혁의 입이 바짝 말랐다.
'추락사?'
5층 창문에서 밀어버리라는 소리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형광등만 깜빡거렸다.
감사실 문이 보였다. 반쯤 열려 있었다.
도혁이 다가갔다. 안을 들여다봤다.
책상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40대 중반. 각진 턱.
이정민이었다.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도혁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이야.'
도혁이 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정민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민원인입니다."
"이 시간에?"
이정민이 시계를 봤다.
"내일 오세요. 지금은—"
"급해서요."
도혁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이정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뭐 하시는 겁니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뭘."
도혁이 책상에 다가갔다. 이정민이 일어섰다.
"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증거 조작."
도혁이 말했다.
"해본 적 있습니까?"
이정민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요?"
"무고한 사람 감옥 보낸 적."
"미쳤어요?"
이정민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손이 안으로 들어갔다.
도혁이 달려들었다.
이정민의 손목을 잡았다. 서랍 안에 전기충격기가 있었다.
"놔!"
이정민이 도혁을 밀쳤다. 힘이 셌다.
도혁이 뒤로 밀렸다. 벽에 등을 부딪혔다.
이정민이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꿈쩍 마."
"대답 안 하시네요."
도혁이 웃었다.
"그럼 한 거네. 증거 조작."
"무슨 개소리를—"
"3명."
도혁이 시스템 창을 봤다.
"무고한 사람 3명 감옥 보냈죠?"
이정민의 손이 멈췄다.
"...어떻게."
"그럼 진짜네."
도혁의 웃음이 사라졌다.
이정민이 전기충격기를 겨눴다.
"당신 누구야."
"그냥 민원인이요."
"거짓말."
이정민이 책상 위 전화기를 집으려 했다.
도혁이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재떨이가 이정민의 손등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