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6,869자

귀환자의 재활일지

주인공: 강서진

로비 천장의 조명이 너무 밝았다.

강서진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주머니 속 손을 꽉 쥐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5년 만에 밟는 지구의 공기는 달았다. 아니, 원래 이랬나. 케플론-7의 황 냄새에 익숙해져서 잊었던 걸까.

"와, 진짜 여기가 그 ARC 본부라니."

옆자리 신입이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스무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애였다. 서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초창기 영웅들 실물로 볼 수 있을까요? 한이준 팀장님 진짜 멋있던데."

'이준이가... 팀장?'

서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5년 전, 그 녀석은 작전 회의 때마다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긴장하면 단 게 당긴다고 했었지.

"저 분들 진짜 냉혹하다던데. 벡터 잡을 땐 표정도 안 변한대요."

냉혹하다고?

서진의 가슴이 조였다. 이준이가? 작전 끝나면 맥주 한 캔 들고 옥상에서 별 보자던 그 녀석이?

"인턴 여러분, 잠시 후 오리엔테이션 시작하겠습니다."

안내 직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일어서는 순간 시야가 흔들렸다. 벽을 짚었다.

"괜찮으세요?"

옆 신입이 물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이었다.

***

오리엔테이션실은 지하 3층이었다. 신입들이 줄지어 앉았다. 서진은 맨 뒷자리 구석에 몸을 숨겼다.

"ARC는 2029년, 다섯 명의 선구자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화면에 흑백 사진이 떴다. 젊은 얼굴들. 웃고 있는 다섯 명.

서진의 숨이 멎었다.

한이준. 최유라. 박민수. 정하은. 그리고... 자신.

'이 사진, 첫 작전 성공하고 찍은 거잖아.'

그때 이준이가 셀카봉 들고 설쳤다. 유라는 웃지 말라고 소리쳤고, 민수는 카메라 보는 척하며 딴청 피웠다. 하은이는 브이를 그렸다. 서진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었다.

"하지만 5년 전, 강서진 대원이 작전 중 실종되며..."

화면이 바뀌었다. 자신의 얼굴에 반투명 검은 띠가 쳐졌다. '전사 추정'이라는 글자.

옆 신입이 한숨 쉬었다.

"아깝다. 되게 젊으셨네."

서진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혔다.

'죽은 게 아니라 여기 있는데.'

"현재 ARC를 이끄는 네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화면이 또 바뀌었다.

한이준이 나왔다. 검은 전투복 차림. 표정이 없었다. 냉혹하게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 부하들이 고개 숙여 경례했다.

'...저게 이준이야?'

서진의 목이 메었다. 저 차갑게 굳은 얼굴. 저건 이준이가 아니었다. 아니, 이준이긴 한데... 다른 사람 같았다.

최유라가 등장했다. 하얀 실험복. 차갑게 데이터를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 "실험체 B-17, 사망 확인." 감정 하나 없는 음성이었다.

'유라 언니...'

박민수는 저격총을 들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 적이 쓰러졌다. 그는 총을 내리며 무표정하게 돌아섰다.

정하은은 기자회견장에 서 있었다. 완벽한 미소. 완벽한 말투. "시민 여러분,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서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아팠다. 뭔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다들... 이렇게 변한 거야?'

"저 분들 진짜 무섭다던데요."

앞자리 신입이 속삭였다.

"한이준 팀장님은 작년에 부하 하나 실수했다고 바로 해임시켰대요. 최유라 박사님은 실험 중에 절대 사적인 얘기 안 받는대요."

서진은 고개를 숙였다. 손이 떨렸다. 주머니에 넣어도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목이 간질거렸다. 기침이 올라왔다. 참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커헉—"

작게 기침했다. 입에 손을 댔다. 손바닥에 뭔가 묻었다. 재빨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았다.

붉은 얼룩이 번졌다.

'젠장...'

서진은 손수건을 구겨 쥐었다. 주변을 힐끗 봤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들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은 여기까지입니다. 각자 배정된 부서로 이동해주세요."

사람들이 일어났다. 서진도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벽을 짚고 걸었다.

복도가 길었다. 형광등 불빛이 깜빡였다. 신입들이 떠들며 지나갔다.

"문서정리실? 거긴 또 뭐 하는 데래?"

"잡일 부서래. 인턴은 다 거기서 시작한대."

서진은 그들을 따라 걸었다. 복도 끝이 보였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검은 정장 차림. 뒤따르는 부하들.

한이준이었다.

서진의 발이 멎었다.

'이준이...'

5년 만에 보는 얼굴. 더 날카로워졌다. 턱선이 각졌다. 눈빛이 차가웠다. 말하면서 걷고 있었다.

"3구역 순찰 강화하고. 야간 경계 인원 두 배로 늘려."

"알겠습니다."

부하가 대답했다. 이준은 서류를 넘기며 걸었다

# Part 2: 전개부

.

서진은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이준이 가까워졌다. 3미터. 2미터.

'고개 숙여. 그냥 지나가게.'

서진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 이준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딱딱. 규칙적인 리듬.

스쳐 지나갔다.

서진은 숨을 참았다. 이준의 향수 냄새가 맡아졌다. 5년 전과 같은 거였다. 민트 계열.

'...지나갔어.'

긴장이 풀리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이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서진의 등이 굳었다.

"인턴, 거기."

발소리가 다가왔다. 서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준이 서 있었다. 3걸음 떨어진 거리.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배지 제대로 안 달았어요. 규정 위반입니다."

서진은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인턴 배지가 비뚤어져 있었다. 손이 떨려서 제대로 못 채운 거였다.

"...죄송합니다."

서진은 배지를 고쳐 달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이준이 한 발 다가왔다.

"얼굴 좀 들어봐요."

"..."

"명령입니다."

서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준과 눈이 마주쳤다.

5년 만이었다.

이준의 눈동자는 여전히 갈색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는 사라져 있었다.

'...이준아.'

목구멍까지 이름이 올라왔다. 삼켰다.

이준이 서진의 얼굴을 찬찬히 봤다. 미간이 좁혀졌다.

"...어디서 봤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처음 뵙습니다."

서진의 목소리가 나왔다. 낮고 무뚝뚝하게. 일부러 더 쌀쌀맞게 만들었다.

이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걸리는 표정이었다.

"...그래요?"

"네."

이준은 몇 초간 서진을 응시했다. 서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의심받는다.

"됐어요. 가세요."

이준이 돌아섰다. 부하들을 데리고 걸어갔다.

서진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리가 풀렸다. 벽에 기댔다.

'...못 알아봤어.'

당연했다. 5년 전보다 10킬로는 빠졌다. 머리도 짧게 잘랐다. 목소리도 일부러 낮췄다.

그런데 왜.

가슴이 이렇게 아픈 걸까.

***

문서정리실은 3층 구석이었다.

문을 열자 먼지 냄새가 확 풍겼다. 오래된 서류 더미가 선반마다 쌓여 있었다.

"우와, 여기 진짜 창고네."

같이 배정받은 신입이 코를 막았다.

서진은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인턴들은 일단 2010년대 자료부터 디지털화 작업 시작하면 돼요."

선배 직원이 설명했다.

"끝나면 보고하고요. 점심시간은 12시. 질문 있어요?"

"없습니다."

서진이 대답했다. 선배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신입이 한숨 쉬었다.

"에이, 이런 거 하려고 ARC 들어온 건 아닌데."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선반으로 다가갔다. 박스를 하나 꺼냈다.

'2029년 작전 기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손이 멎었다.

2029년. 자신이 ARC에 들어온 해였다.

박스를 열었다. 서류 파일이 빼곡했다. 첫 장을 꺼냈다.

'제1차 벡터 조우 보고서 — 한이준, 강서진 외 3명'

서진의 손끝이 저렸다.

사진이 클립으로 꽂혀 있었다. 폐건물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다섯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준이가 웃고 있었다. 활짝.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유라 언니는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민수 오빠는 브이를 그렸다. 하은이는 카메라를 보며 윙크했다.

그리고 자신은.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준이가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이때는 좋았는데.'

서진은 사진을 내려놨다. 다음 장을 넘겼다.

작전 보고서였다. 이준의 필체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강서진 대원의 판단이 옳았음. 후퇴 명령 없었다면 전원 전사했을 것.'

서진은 문장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다음 작전부터 서진을 부팀장으로 추천함.'

눈가가 뜨거워졌다.

"야, 거기 2029년 자료는 나중에 해. 최신 것부터 하래."

신입이 소리쳤다. 서진은 파일을 덮었다. 박스를 다시 선반에 밀어 넣으려 했다.

그때 박스 안쪽에서 뭔가 떨어졌다.

얇은 수첩이었다.

서진은 그걸 주웠다. 낡은 검은 수첩. 표지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이준'

심장이 뛰었다.

펼쳤다.

일기였다. 이준의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2029년 4월 3일. 오늘 신입이 들어왔다. 강서진. 말수 적고 무뚝뚝한데 눈빛이 살아 있다. 얘 괜찮을 것 같다.'

서진은 숨을 참았다.

다음 장을 넘겼다.

'2029년 7월 18일. 서진이 오늘 작전에서 날 구했다. 벡터 놈이 뒤에서 쏠 뻔했는데 서진이 먼저 쏴 떨어뜨렸다. 고맙다고 했더니 '...뭐, 당연한 거죠' 그러더라. 쟤 왜 맨날 저렇게 쿨한 척해.'

입꼬리가 올라갔다.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또 넘겼다.

'2030년 1월 9일. 서진이가 오늘 웃었다. 유라가 실험실에서 폭죽 터뜨렸는데 서진이 피식 웃더라.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예쁘게 웃네.'

손이 떨렸다.

'예쁘게 웃네'라는 글자가 번졌다. 눈물이 떨어진 거였다.

서진은 재빨리 눈을 닦았다. 수첩을 덮으려 했다.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졌다.

'2030년 8월 15일. 서진이를 못 찾았다. 3개월째다. 수색팀은 포기하래. 나는 포기 안 한다. 절대. 서진아, 어디 있어. 살아만 있어줘.'

글씨가 흐트러져 있었다. 잉크가 번진 자국. 눈물인지 뭔지 모를 얼룩.

가슴이 무너졌다.

'이준아...'

"야, 뭐 봐?"

신입이 다가왔다. 서진은 황급히 수첩을 박스에 던져 넣었다. 선반을 닫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신입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너 괜찮아? 얼굴 창백한데."

"...괜찮아요."

서진은 돌아섰다.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을 쐬었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어도 소용없었다.

목이 간질거렸다. 기침이 올라왔다.

참았다. 이를 악물었다.

안 되겠다. 화장실 가야 한다.

"잠깐 다녀올게요."

서진은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를 걸었다. 시야가 흔들렸다.

화장실 문을 밀었다. 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갔다.

"커헉—"

기침이 터졌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뭔가 뜨거운 게 손바닥을 적셨다.

손을 봤다.

붉었다.

"젠장..."

서진은 휴지를 뽑았다. 입을 닦았다. 붉은 얼룩이 번졌다.

숨이 가빠졌다. 변기 뚜껑에 앉았다. 고개를 떨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약을 먹어야 했다. 가방에 넣어뒀다. 문서정리실에.

일어서려 했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벽을 짚었다. 천천히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왔다. 세면대에서 물을 틀었다. 손을 씻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조금만 버텨.'

서진은 물을 마셨다. 숨을 골랐다.

복도로 나왔다.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문서정리실로 돌아가려는데.

앞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최유라였다.

하얀 실험복 차림. 차가운 표정으로 태블릿을 보며 걸었다.

서진은 고개를 숙였다. 스쳐 지나가려 했다.

"..."

유라가 멈춰 섰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설마.'

"인턴?"

유라의 목소리였다. 차갑고 낮은.

서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유라가 서 있었다. 2미터 떨어진 거리. 눈을 가늘게 뜨고 서진을 보고 있었다.

"...네."

"어디 부서?"

"문서정리실입니다."

유라는 서진의 얼굴을 찬찬히 봤다. 미간이 좁혀졌다.

"...혹시."

말을 멈췄다. 뭔가 떠오른 표정이었다.

서진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뭔가요?"

최대한 무뚝뚝하게 물었다.

유라는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서진을 응시했다.

"...아니에요. 착각인 것 같네요."

돌아섰다. 걸어갔다.

서진은 숨을 내쉬었다. 다리가 풀렸다.

'위험해...'

문서정리실로 돌아왔다. 신입은 없었다. 먼저 점심 먹으러 간 모양이었다.

가방을 뒤졌다. 약통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뚜껑을 돌렸다. 알약 하나를 손바닥에 털어냈다.

입에 넣으려는 순간.

손이 미끄러졌다.

알약이 바닥에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

서진은 무릎을 꿇었다. 바닥을 더듬었다.

알약이 책상 밑으로 굴러갔다.

기어들어 가려는데.

누군가 먼저 주웠다.

검은 구두가 보였다. 정장 바지.

서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이준이 서 있었다.

손에 알약을 쥔 채로.

"..."

심장이 멎었다.

이준이 알약을 내려다봤다. 눈을 가늘게 떴다.

"케플론 억제제?"

차갑게 물었다.

서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준이 무릎을 굽혔다. 눈높이를 맞췄다.

"이거 일반인은 못 구하는 약이에요."

알약을 서진 앞에 내밀었다.

"누구세요? 정말로."

목소리가 낮아졌다.

서진은 알약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

손목이 드러났다.

소매가 걷힌 거였다.

이준의 눈이 커졌다.

서진의 손목에 난 흉터. 불규칙한 화상 자국. 케플론-7 특유의 문양.

"이거..."

이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진은 재빨리 손을 빼려 했다.

이준이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만."

손가락으로 흉터를 따라갔다. 숨이 거칠어졌다.

"이건... 케플론-7 노역 흔적이잖아."

고개를 들었다. 서진을 똑바로 봤다.

"당신... 거기 있었어요?"

서진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넘어져서 생긴 거예요."

거짓말이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총 6,869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김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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