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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주인은 퇴사하고 싶다 - 2화: 협상 테이블의 괴물

약 18분

심연의 주인은 퇴사하고 싶다 - 2화: 협상 테이블의 괴물

주인공: 강민준 / 아벨리우스

검끝이 목덜미에 닿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나만 빼고 모든 게 멈췄다.


한서진의 검은 내 피부 위에서 1밀리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얼어붙었다. 그의 표정도, 뒤에서 뭔가 외치던 발테온의 입도, 심지어 공기 중에 떠 있던 먼지까지.


'뭐, 뭐야 이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것 같은데,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있긴 한데...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때였다.


[룰 변경~ ♪]


허공에 핑크색 글씨가 떠올랐다. 동시에 눈앞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내 앞에 거대한 원형 테이블이 나타났다.


대리석인가? 표면이 매끄럽게 빛났다. 테이블 위에는 찻잔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예?"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전투는 재미없어요~ 협상이 훨씬 드라마틱하잖아요? ㅎㅎ]**


관찰자의 메시지가 또 떴다. 이번엔 작은 하트 이모티콘까지 붙어 있었다.


'미쳤나 이 새끼가.'


욕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지금 이 상황에서 관찰자한테 찍히면... 아니, 이미 충분히 찍힌 것 같긴 한데.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한서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내가 있던 자리를 비껴간 검끝이 바람을 가르며 휘익 소리를 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뭐지?"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당연하지. 1초 전까지 던전 복도였던 공간이 갑자기 고급 회의실로 바뀌었으니까.


"주, 주군!"


발테온이 테이블 반대편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잠깐. 언제 저기로 이동한 거야?


"앉아."


한서진이 차갑게 말했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당신이 한 짓이냐?"


"그, 그러니까..."


입이 바짝 말랐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아니라고? 근데 이 사람이 믿을까? 맞다고? 그럼 또 공격당하는 거 아냐?


한서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짐의 뜻은 이미 정해졌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내 입 좀 닥쳐라.


"앉아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어? 방금 내가 한 말 맞나?


목소리가 이상했다. 떨림이 사라지고, 묘하게 낮고 안정적인 톤으로 변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내 입을 빌려 말하는 것 같은 느낌.


'뭐야, 뭐야 이거.'


한서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협상? 지금 상황에서?"


"그렇다."


내 손이 테이블 위 찻잔을 집었다. 천천히, 우아하게. 이런 동작 해본 적 없는데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자네도 알 것이다. 여기서 싸우면 양쪽 다 손해라는 걸."


찻잔을 입에 댔다. 향긋한 허브 향이 코끝을 스쳤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대? 관찰자 그 새끼가?


한서진은 대답 대신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의 눈이 나를, 테이블을, 주변 공간을 빠르게 훑었다.


계산하는 거다. 이 상황의 의미를, 내 의도를, 탈출 경로를.


"...5분."


그가 입을 열었다.


"5분 안에 납득할 만한 제안을 못 하면, 이 테이블째로 베어버린다."


오, 오케이. 5분. 300초. 충분하지... 충분할 리가 있나!


'뭘 말해야 되는데? 협상이라고 해놓고 협상안이 어디 있어?'


패닉이 밀려왔다.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찻잔이 덜덜 흔들렸다.


그때, 뭔가가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차갑고, 날카롭고, 계산적인 무언가.


'던전 정복권. 그가 원하는 건 그거다.'


생각이 아니었다. 지식이었다.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한국 헌터 협회는 심연의 던전 공략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80층 이상은 진입조차 못 했다. 손실이 너무 크니까.'


맞아. 뉴스에서 봤다. 작년에 최정예 길드가 82층에서 전멸했었지.


'그에게 안전한 공략 루트를 제시하면 된다. 대신 우리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누구 생각이야 이게? 내 생각이 맞긴 한데... 이렇게 차분하게 정리된 적이 없는데?


"제안하지."


내 입이 다시 움직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안정적했다.


"자네는 던전 공략권을 원한다. 나는 불필요한 전투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거래가 성립한다."


한서진의 눈빛이 변했다. 경계에서 흥미로.


"계속해봐."


"80층부터 95층까지의 안전 루트를 제공하겠다. 각 층의 보스 패턴, 함정 위치, 최적 공략 시간까지."


"...믿을 수 있나?"


"믿지 못한다면 검증하면 된다. 80층 루트부터 시작하자. 일주일 내로 확인 가능할 것이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대신 조건이 있다. 96층 이상은 우리 영역이다. 침범하지 마라. 그리고..."


잠깐, 그리고? 그리고 뭐?


'말해. 영토 분할 협정이다.'


누가? 누가 말하라는 거야?


"...던전 내 자원 채굴권을 3:7로 나눈다. 자네 쪽이 7이다."


한서진의 눈썹이 올라갔다. "후하군."


"후한 게 아니다. 현실적이다."


내 손가락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규칙적인 리듬. 이것도 내가 한 거 맞나?


"지금 자네가 이곳에서 나를 죽인다 치자. 그럼 어떻게 되지?"


"..."


"던전 전체가 폭주한다. 주인을 잃은 마족들이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지상을 침공하겠지. 자네 혼자 막을 수 있나?"


한서진의 표情이 굳었다. 입술이 얇게 다물어졌다.


블러핑이었다. 내가... 아니, 아벨리우스가 죽으면 정말 그렇게 될까? 모른다. 하지만 한서진도 모른다. 그게 중요했다.


"반대로 내가 자네를 죽인다 치자."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아니, 시야가 변했다. 색감이 달라졌다. 모든 게 은빛 톤으로 물들었다.


'잠깐, 이거...'


"한국 헌터 협회는 보복을 선언할 것이다. 백야의 검성이 죽었는데 가만히 있겠나? 전면전이다. 그것도 원치 않는다."


한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군."


"그러니 앉아라."


명령이었다. 요청이 아니라.


한서진이 검을 거뒀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완전히 칼집에 넣지는 않았다. 언제든 뽑을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한 채,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발테온이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눈가가 촉촉해 보였다.


'주군의 위엄이... 역시... 역시 주군이시다...'


그의 생각이 들렸다. 어떻게? 모르겠다. 그냥 들렸다.


"구체적인 조건을 들어보지."


한서진이 팔짱을 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적어도 당장 공격할 기세는 아니었다.


"80층 루트 정보를 먼저 제공한다. 검증 후 만족스럽다면 단계적으로 상위층 정보를 공개하겠다."


"검증 기간은?"


"일주일. 충분하겠지?"


"...충분하다."


한서진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도 계산하고 있었다. 이 거래의 이득과 손실을.


"자원 배분은?"


"3:7. 단, 마족 고유 자원은 제외다. 마정석, 영혼석 같은 건 우리가 가져간다."


"비율이 너무 낮지 않나?"


"낮지 않다. 자네는 위험 부담 없이 안전하게 채굴할 수 있다. 그 가치를 계산하면 오히려 자네 쪽이 이득이다."


한서진이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이 나를 관찰했다. 표정을, 자세를, 호흡을.


"...당신, 변했군."


"응?"


"처음 봤을 때와 다르다. 목소리도, 눈빛도."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들켰나?'


아니, 뭘 들킨 거지? 내가 가짜라는 걸? 아니면...


거울처럼 반사되는 테이블 표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눈동자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당황스러웠다. 무서웠다. 내 얼굴이 맞긴 한데, 동시에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표정이 너무 차갑고, 눈빛이 너무 날카로웠다.


'내가... 변하고 있는 건가? 진짜로 아벨리우스가 되어가는 건가?'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변한 게 아니다. 원래 이랬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원래 이렇지 않았다. 이렇게 차갑게, 계산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원래 이게 진짜 나인 것처럼.


한서진이 고개를 가웃했다. "...그래?"


"그렇다."


대답하면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냐, 아니라고! 이거 나 아니야! 누가 내 몸 조종하는 거 같다고!'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완벽하게 통제된 목소리뿐이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한서진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눈빛이 예리해졌다.


"왜 굳이 협상을 하지? 당신 정도 힘이면 강제할 수도 있잖아."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발테온도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봤다.


'뭐라고 대답하지? 사실대로? 나 약해요, 무서워요, 제발 안 싸우고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절대 안 되지.


그때 또 그 차가운 생각이 스며들었다.


'대가를 제시해라. 공포를 심어라.'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입이 천천히 열렸다.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다. 테이블 위 찻잔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멈췄다. 주변 공기가 무거워졌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은빛 눈동자가 한서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 심연의 주인은 퇴사하고 싶다 - 2화: 협상 테이블의 괴물 (후반부)


한서진의 손이 검 손잡이로 향했다.


"대가?"


"그렇다."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내 입에서 나왔는데,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제발, 제발 그만 좀...'


속으로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손가락이 천천히 펼쳐졌고,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 찻잔에 담긴 차가 얼어붙었다. 아니, 얼음이 아니었다. 시간이 멈춘 거였다. 증기가 공중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보여주지. 왜 내가 강제하지 않는지."


발테온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한서진은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이마에 땀이 맺혔다.


내 시야가 다시 변했다. 세상이 겹쳐 보였다. 아니, 레이어가 보였다. 한서진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마나의 흐름이, 검에 깃든 의지가, 그의 심장박동까지 전부 보였다.


'이게... 이게 아벨리우스의 시야?'


무서웠다. 너무 선명했다. 너무 많이 보였다. 한서진이라는 인간의 모든 약점이 빨간 점으로 표시되어 보였다. 목, 심장, 단전, 영혼의 핵...


'죽일 수 있다.'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0.3초면 충분하다. 저 일곱 개의 약점 중 세 곳만 동시에 공격하면 백야의 검성이든 뭐든 재도 남지 않는다.


"당신..."


한서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묻어났다.


"진짜... 그 아벨리우스가 맞군."


"의심했나?"


"...아니."


거짓말이었다. 그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졌다.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패턴이었다.


'어떻게 알지? 내가 왜 이런 걸 알아?'


패닉이 밀려왔다. 내 머릿속에 없던 지식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간의 생체 반응 패턴, 마나 흐름 분석법, 전투 시뮬레이션 결과값...


'미친, 미친 거 아냐? 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차갑게 유지됐다.


"강제는 쉽다. 하지만 비효율적이지."


손을 천천히 내렸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찻잔의 김이 피어올랐다.


"공포로 지배하면 반드시 반란이 일어난다. 협력으로 엮으면 오래 간다. 나는 오래 살 예정이니까."


한서진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등이 땀으로 젖은 게 보였다.


"...현명한 선택이군."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다."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소였다. 차갑고, 계산적인 미소.


'웃지 마! 제발 웃지 마! 완전 악당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발테온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역시 주군이시다...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음에도 자비를 베푸시다니..."


'자비가 아니라고! 겁나서 그런 거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한서진이 자세를 바로 했다. "조건을 수락하겠다. 80층 루트 정보를 먼저 받고, 검증 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현명한 판단이다."


"단, 한 가지 추가 조건이 있다."


"말해보라."


"당신과 직접 통신할 수 있는 라인이 필요하다. 중간 전달자를 거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발테온이 버럭 소리쳤다. "무례하다! 주군과 직접 대화하겠다니, 감히...!"


"발테온."


내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발테온이 즉시 입을 다물었다.


"좋다. 직통 라인을 열어주지."


손가락을 튕겼다. 공간이 찢어지더니 작은 수정 구슬이 나타났다. 은빛으로 빛나는 구슬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이걸로 나를 부를 수 있다. 단, 남용하지 마라."


한서진이 구슬을 집어 들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 그의 손 안에서 구슬이 한 번 깜빡였다.


"...알겠다."


"그럼 80층 루트 정보다."


나는... 아니, 내 몸은 손을 뻗어 공중에 뭔가를 그렸다. 은빛 선이 그어지더니 복잡한 지도가 펼쳐졌다. 3차원 홀로그램처럼 떠 있었다.


"이 경로로 가라. 72시간 안에 도달 가능하다. 중간에 세 번의 함정이 있는데..."


설명이 술술 나왔다. 내가 아는 게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원래 없던 정보였다. 그런데 말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확신에 차서.


'이건 진짜 아벨리우스의 기억이야. 내 거 아니라고...'


한서진이 집중해서 들었다.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했다. 발테온은 옆에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명이 끝났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충분하다. 검증 후 연락하겠다."


한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완전히 칼집에 넣었다. 경계는 여전했지만, 적대감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 이만."


"기다리겠다."


한서진이 돌아섰다.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참, 하나만 더 묻겠다."


"뭔가?"


"당신... 정말로 인류를 멸망시킬 생각은 없는 건가?"


침묵이 흘렀다.


내 입이 열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 차가운 무언가가 대답을 주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없다고? 있다고? 모른다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벨리우스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천 년 전, 세상을 지배했던 기억. 인간도, 마족도 모두 장기판의 말처럼 다뤘던 기억.


'그때 난... 뭘 원했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은 있는데 감정이 없었다. 마치 남의 일기를 읽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 목소리로.


한서진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봤다. 발테온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모른다고?"


"그렇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한서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가봐라.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


명령이었다. 한서진이 뭔가 더 말하려다가 참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순간 힘이 쭉 빠졌다. 의자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떨렸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발테온이 황급히 다가왔다.


"그, 그래... 괜찮아..."


목소리가 떨렸다. 원래 내 목소리였다. 우유부단하고, 불안하고, 겁 많은 목소리.


"역시 인간과의 협상은 피곤하신가 봅니다. 제가 차를 새로 올리겠습..."


"발테온."


"예, 주군."


"나... 이상해. 뭔가 이상해."


발테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이 이상하십니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아까 그거, 내가 한 게 아니야. 누가 내 몸을 조종한 것처럼..."


"주군, 무슨 말씀을..."


그때였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차갑고, 낮은 목소리.


[깨어나고 있구나.]


"누, 누구야?!"


소리쳤다. 발테온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주군? 누구와 대화하시는 겁니까?"


[나다. 진짜 나.]


은빛 눈동자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비친 내 얼굴이 변했다.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안 돼... 안 돼!"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그 손조차 떨리지 않았다.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거부하지 마라. 우리는 하나다.]


"아니야! 난 강민준이야! 회사원이라고!"


[그것도 너다. 이것도 너다. 모두 너다.]


"말도 안 돼!"


[곧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내 기억이 아닌, 아벨리우스의 기억이.


전쟁. 피. 죽음. 지배. 배신. 고독.


그리고... 계획.


"계획? 무슨 계획?"


[때가 되면 알려주마.]


"지금 말해!"


[아직 이르다. 네 정신이 붕괴한다.]


그 순간 관찰자의 창이 떴다.


[시스템 메시지]

⚠️ 경고: 인격 융합률 43% 돌파

⚠️ 정신 안정도 위험 수치

⚠️ 권장 사항: 즉시 휴식


[관찰자의 속삭임]

"오우, 이거 재밌는데? 생각보다 빨리 각성하네?"


"닥쳐!"


소리쳤다. 발테온이 완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주군... 제가 치유사를 부르겠습니다!"


"필요 없어! 그냥... 그냥 나가 있어!"


"하지만...!"


"명령이야!"


발테온이 머뭇거리다가 절을 하고 물러났다. 문이 닫혔다.


혼자 남았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제발... 제발 그냥 사라져줘..."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섞이기 시작했다.]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네가 선택했으니까.]


"나 아무것도 선택 안 했어!"


[했다. 포탈에 들어갈 때. 살고 싶다고 바랐을 때.]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포탈 속에서 죽음을 앞두고 간절히 바랐던 순간.


'살고 싶다. 제발, 살려줘.'


그때 뭔가가 대답했었다.


'좋다. 대신 대가를 치러라.'


"설마... 그게 너였어?"


[그렇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나는... 나는 진짜로..."


[아벨리우스가 되어가고 있다. 천천히, 확실하게.]


"막을 수는 없어?"


[왜 막으려 하느냐? 힘이 있는데. 지식이 있는데.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데.]


"난 그런 거 원하지 않아!"


[거짓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도 원한다. 인정받고 싶어 한다. 무시당하지 않고 싶어 한다. 강해지고 싶어 한다.]


"...그건..."


[솔직해져라. 회사에서 무시당할 때, 상사에게 깨질 때, 넌 원했다. 저들을 짓밟을 힘을.]


"아니야..."


[있다. 인정해라. 그래야 완전해진다.]


눈물이 흘렀다. 은빛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


"난... 난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이미 늦었다.]


관찰자의 창이 다시 떴다.


[긴급 퀘스트 발생!]

제목: 진짜 네가 누구인지 알아내라

보상: ???

실패 시: 인격 소멸


[관찰자의 웃음소리]

"자, 이제 진짜 게임이 시작이야. 넌 강민준일까, 아벨리우스일까? 아니면..."


메시지가 깜빡이며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


"...둘 다일까?"

총 9,160자 · 약 18분

- 2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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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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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오.... 재밋네요

202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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