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거자의 영역 - 2화: 추락자 연합
주인공: 아셀
# 소거자의 영역 - 2화: 추락자 연합
던전의 입구가 열렸을 때, 아셀은 세라핌에게 말했다.
"누군가 온다."
세라핌은 날개를 접으며 고개를 들었다. 천계의 기운이 아니었다. 더 혼탁하고, 더 불안정한 무언가였다. 아셀은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섰다. 던전 입구는 여전히 폐허 한가운데 숨겨져 있었지만, 이제 그곳을 찾아오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문자는 소녀였다.
아니, 소녀의 형상을 한 무언가였다. 그녀는 던전 입구에서 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 흰 천사복은 피와 재로 얼룩져 있었고, 등에는 날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 검게 탄 흉터만 남아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봤어요... 봤어요... 일곱 개의 문이 열리고... 별들이 떨어지고..."
아셀이 다가서자 소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동공이 없었다. 눈 전체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당신... 당신이... 소거자..." 소녀가 손을 뻗었다. "이곳에서... 모든 게 시작돼요... 전쟁이... 전쟁이..."
아셀은 무릎을 꿇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순간, 소녀의 몸이 경련했다. 입에서 쏟아지던 예언들이 멈췄다. 은빛 눈이 천천히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갈색. 평범한 인간의 눈동자.
소녀가 처음으로 또렷한 눈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조용해졌어요... 머릿속이... 처음으로..."
"이름."
"엘리스... 엘리스예요..."
아셀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세라핌이 다가와 소녀를 부축했다.
"천계의 예언자인가." 세라핌이 물었다.
"...아니에요." 엘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예언을 통제할 수 없어서... 쫓겨났어요. 봐서는 안 될 것들을 봤다고... 천계의 종말을 봤다고..."
아셀은 던전 입구를 가리켰다.
"들어가라."
"...여기 있어도 돼요?"
"계약이 필요하다."
"계약이요?"
"던전의 일부가 되는 것. 대신 보호를 제공한다."
엘리스는 아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감정이 없는 얼굴. 하지만 그 손은 여전히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따뜻했다.
"...좋아요."
던전이 그녀를 받아들였다. 입구의 문양이 빛나며 엘리스의 이마에 작은 각인이 새겨졌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세라핌이 아셀을 돌아보았다.
"주인님, 이것은 위험합니다. 천계가 추락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군."
"더 많은 자들이 올 것입니다."
"이해했다."
세라핌은 한숨을 쉬었다. 주인의 짧은 대답들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
이틀 뒤, 두 번째 방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전사였다. 갑옷은 박살 나 있었고, 한쪽 팔은 어깨부터 잘려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걸어왔다.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며, 그래도 걸어왔다.
"소거자가 여기 있다고 들었다."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천계를 배신했다. 명령을 거부했다." 전사가 웃었다. "민간인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그래서 날개를 잘렸다."
"이름."
"타론."
"들어오지 않겠는가."
타론은 고개를 저었다.
"조건이 있다."
"말하라."
"싸움을 걸겠다. 네가 날 이기면 들어가겠다."
아셀은 잠시 침묵했다.
"이유."
"강한 놈 아래에만 있는다. 규칙이다."
"거절한다."
타론이 주먹을 쥐었다. 잘린 팔 쪽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거절은 없다."
그가 돌진했다.
세라핌이 앞을 막아섰지만 타론의 주먹이 그녀의 방어를 뚫었다. 세라핌이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타론은 멈추지 않았다. 던전 내부로 뛰어들며 기둥을 부쉈다. 돌 조각들이 쏟아졌다.
"약해! 이게 소거자의 던전이라고?"
아셀이 계단을 내려왔다. 타론이 다시 돌진했다. 주먹이 아셀의 얼굴을 향했다.
아셀이 손을 들었다.
"되돌림."
타론의 움직임이 역행했다. 돌진하던 몸이 거꾸로 밀려나 원래 위치로 되돌아갔다. 타론이 바닥에 쓰러졌다. 몸이 떨렸다. 시간이 역행하는 감각은 존재 자체를 뒤흔들었다.
아셀이 그 앞에 섰다.
"싸우고 싶으면 천계와 싸워라."
타론이 피를 토하며 웃었다.
"...좋아. 졌다. 인정한다."
"계약."
"...알았다."
던전이 타론을 받아들였다. 각인이 새겨지자 그의 잘린 팔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라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던전의 힘이 그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세라핌이 일어서며 말했다.
"주인님, 천계가 눈치챌 것입니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던전 깊숙한 곳으로 걸어 내려갔다. 마물들이 그를 맞이했다. 작은 슬라임 하나가 그의 발목에 달라붙었다.
"...미안하다."
아셀이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본인도 몰랐다.
---
일주일이 지나자 추락자는 일곱 명이 되었다.
자비를 베푼 집행자. 통제할 수 없는 치유사. 명령을 거부한 정찰병. 그들은 모두 천계에서 쫓겨난 자들이었다. 그리고 모두 아셀의 던전에 계약으로 묶였다.
던전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방들이 생겨났다. 추락자들이 머물 공간, 훈련할 장소, 쉴 수 있는 영역. 아셀은 그들과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했다.
"식량은 충분한가."
"그렇습니다."
"부족하면 말하라."
그뿐이었다.
하지만 추락자들은 알았다.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천계도, 하계도 아닌 제3의 영역. 아무도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 곳.
엘리스가 아셀에게 물었다.
"왜 우릴 받아들이세요?"
"필요해서."
"뭐가 필요한데요?"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
그날 밤, 천계의 군대가 왔다.
하늘이 갈라지며 황금빛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선두에는 대천사 미카엘론이 서 있었다. 여섯 쌍의 날개, 빛나는 창, 심판의 눈빛.
"소거자 아셀." 미카엘론의 목소리가 땅을 울렸다. "추락자들을 내놓아라. 천계의 명령이다."
아셨이 던전 입구에 섰다. 뒤에는 세라핌과 추락자들이 있었다.
"거절한다."
"네게 선택권은 없다."
미카엘론이 창을 들었다. 창끝에서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봉인 마법. 던전을 통째로 얼려버릴 힘.
"던전을 파괴하지는 않겠다. 균열이 생기니까. 하지만 봉인은 가능하다. 너와 추락자들을 영원히 가둬두겠다."
빛이 폭발했다.
하지만 그 순간, 던전이 반응했다. 아셀의 힘이 아니었다. 던전 자체가, 계약으로 묶인 추락자들의 힘이, 엘리스의 예언이, 타론의 분노가,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졌다.
봉인 마법이 역류했다.
황금빛 천사들이 하나둘 얼음 조각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미카엘론이 경악하며 날개를 펼쳤다.
"후퇴! 전군 후퇴!"
천사들이 하늘로 도망쳤다. 미카엘론이 아셀을 노려보았다.
"이건... 불가능해..."
아셀이 던전 입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처음으로 감정이 스쳤다.
분노가 아니었다. 슬픔도 아니었다.
그저 결의였다.
# 소거자의 영역 - 2화: 추락자 연합 (후반부)
천사들이 사라진 하늘에는 황금빛 깃털만이 흩날렸다. 아셀은 그것들이 바닥에 닿기 전에 재로 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천계의 힘은 이곳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주인님." 세라핌이 다가왔다. "던전이... 변했습니다."
아셀은 고개를 돌렸다. 던전 입구의 돌문에 새로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천계의 문양도, 하계의 문양도 아닌 것. 일곱 개의 별이 하나의 원을 이루는 형태.
"추락자들의 각인이 합쳐진 겁니다." 엘리스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예언의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던전이 독립 영역으로 인정받았어요. 천계도, 하계도 간섭할 수 없는."
타론이 새로 생긴 팔을 움직이며 웃었다.
"재밌는데.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는 거 아냐?"
"전쟁은 없다." 아셀이 말했다.
"뭐?"
"지킨다. 그뿐이다."
타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계가 가만 안 있을 텐데?"
"알고 있다."
"그럼?"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던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추락자들이 그를 따랐다.
---
던전의 중심부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기존의 어둡고 좁은 통로 대신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고, 벽면에는 일곱 개의 문이 생겨나 있었다. 각 문마다 추락자 한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치유사 출신의 추락자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문을 만졌다. "내 영역?"
"그렇다." 아셀이 말했다. "각자의 공간. 침범 불가."
"왜 이렇게 해주시는 겁니까?" 집행자 출신이 물었다. "우린 천계의 낙오자들입니다. 쓸모도 없는."
"쓸모는 내가 판단한다."
"하지만—"
"필요하다." 아셀이 그의 말을 잘랐다. "너희가."
침묵이 흘렀다. 추락자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천계에서 쫓겨난 자들. 명령을 거부하고, 자비를 베풀고, 통제를 벗어난 자들. 그들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 오염원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엘리스가 아셀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뭘 원하는 거예요?"
"모르겠다."
"거짓말."
아셀이 그녀를 봤다. 엘리스의 눈에서 예언의 빛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천계의 통제에서 벗어나자 그녀의 능력도 변한 것이다.
"예언이 안 보여요." 엘리스가 말했다. "처음이에요. 미래가 안 보이는 게."
"좋은 것 아닌가."
"무서워요."
"왜."
"미래를 모르면...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셀은 잠시 침묵했다.
"지금을 믿어라."
"...그게 뭔데요?"
"모르겠다."
엘리스가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
그날 밤, 아셀은 던전 최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마물들이 모여 있었다. 슬라임, 고블린, 스켈레톤. 던전의 원래 주민들.
작은 슬라임이 그의 발목에 달라붙었다. 아셀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미안하다."
그가 중얼거렸다. 슬라임이 부르르 떨었다.
"뭐가 미안한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론이었다. 그가 계단을 내려와 아셀 옆에 섰다.
"혼자 사과하는 버릇 있더라. 누구한테 하는 거야?"
"모르겠다."
"거짓말."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타론이 슬라임을 쳐다봤다.
"천계에 있을 때." 타론이 말했다. "민간인 학살 명령을 받았어.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태우라고."
"..."
"거부했지. 그래서 날개가 잘렸어." 타론이 웃었다. "근데 알아? 그 마을엔 네 던전 출신 마물들이 숨어 있었대. 천계는 그걸 알고 있었어."
아셀의 손이 멈췄다.
"뭐라고?"
"네 던전에서 도망친 마물들. 인간 마을에 숨어 살고 있었지. 천계는 그걸 핑계로 마을을 지우려 했어." 타론이 아셀을 봤다. "넌 몰랐겠지. 네 마물들이 도망쳤다는 것도."
"...왜 도망쳤나."
"모르겠어. 근데 천계는 알아. 네 던전에 뭔가 있다는 걸."
아셀이 슬라임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뭐가 있는데."
"그걸 나보고 물어?" 타론이 어깨를 으쓱했다. "넌 소거자잖아. 존재를 지우는 놈. 근데 왜 마물들한테는 이름을 붙여줘? 왜 사과해?"
"..."
"뭔가 지웠어. 중요한 걸." 타론이 단언했다. "그것도 네 의지로."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동요가 스쳤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 찾아야지."
"왜."
"안 찾으면 천계가 이용할 거야. 네 약점으로."
그때였다.
던전 전체가 흔들렸다. 경보음이 울렸다. 세라핌의 목소리가 정신에 직접 전달되었다.
[주인님! 침입자입니다!]
아셀과 타론이 동시에 위를 봤다. 던전 입구 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천계의 것도, 하계의 것도 아닌.
추락자의 것이었다.
---
광장에 도착했을 때, 새로운 추락자가 서 있었다. 아니, 서 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었다. 온몸이 붕대로 감긴 형태.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냐." 아셀이 물었다.
붕대 추락자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는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었다.
"기록자. 천계 제3서고의."
세라핌이 경악했다.
"제3서고라면... 금서 보관소!"
"그렇다." 기록자가 말했다. "모든 지워진 것들의 기록. 내가 관리했다."
"왜 왔나." 아셀이 물었다.
"너를 보러."
"이유."
기록자가 손을 들었다. 공중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천계 문자도, 하계 문자도 아닌 것. 더 오래된, 원초의 문자.
"네가 지운 것." 기록자가 말했다. "기록되어 있다."
아셀의 표정이 굳었다.
"뭘 지웠는데." 타론이 물었다.
기록자가 아셀만을 봤다.
"네 이름."
"...뭐?"
"아셀은 네 진짜 이름이 아니다." 기록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넌 스스로를 지웠다. 소거자가 되기 전의 네 자신을."
던전이 조용해졌다. 추락자들이 모두 아셀을 봤다.
아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왜 그랬나." 엘리스가 물었다.
기록자가 공중의 문자를 가리켰다.
"그는 천계의 최초 소거자가 아니었다. 그 전에..." 기록자가 멈췄다. "그는 창조자였다."
"뭐?" 타론이 소리쳤다.
"던전을 만드는 자. 생명을 창조하는 자." 기록자가 아셀을 봤다. "하지만 그가 만든 것들이 천계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래서 천계는 그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무슨 선택." 세라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지우거나." 기록자가 말했다. "자신을 지우거나."
침묵.
"그는 둘 다 선택했다." 기록자가 계속했다. "자신이 만든 것들을 지우고, 자신도 지웠다. 창조자로서의 자신을. 그리고 소거자가 되었다."
아셀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이 떨렸다.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할 수 없다. 네가 지웠으니까." 기록자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기록은 남아 있다. 제3서고에."
"왜 말하는 거야." 타론이 기록자를 노려봤다. "천계 스파이냐?"
"아니다." 기록자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추락자다. 금서를 읽었다는 이유로."
"그럼 왜."
"그가 알아야 한다." 기록자가 아셀을 봤다. "천계가 이제 움직일 것이다. 네 과거를 무기로."
"무슨 소리야." 엘리스가 물었다.
기록자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가 만들었던 것들.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뭐?"
"일부가 살아남았다. 하계 깊은 곳에 봉인되어." 기록자가 말했다. "그리고 천계는 그것들을 찾았다."
"뭘 찾았는데!"
"네 자식들을."
던전이 얼어붙었다.
아셀의 눈이 흔들렸다. 처음 보는 표정. 공포도, 분노도 아닌. 뭔가 더 깊은 것.
"자식이라니..." 세라핌이 중얼거렸다.
"창조자는 만든 것들을 자식이라 불렀다." 기록자가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수백 명을 만들었다. 던전의 주민으로. 마물로. 동료로."
"그걸 다 지웠다고?" 타론이 경악했다.
"천계의 명령이었다."
아셀이 무릎을 꿇었다. 던전이 그와 함께 흔들렸다. 추락자들이 균형을 잃었다.
"주인님!" 세라핌이 달려갔다.
"...미안하다." 아셀이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는 계속 반복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이제 알았다.
지워진 자식들에게.
기록자가 말했다.
"천계는 그들을 되살릴 것이다. 네 힘으로."
"뭐?" 엘리스가 소리쳤다.
"소거자는 지울 수 있다. 그렇다면..." 기록자가 말했다. "되돌릴 수도 있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처음 보는 감정.
"되돌릴 수 있나."
"그렇다. 하지만—"
"방법을 말해라."
기록자가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대가가 필요하다."
"뭐든 치른다."
"네 존재를 반쯤 지워야 한다. 소거자로서의 힘을 포기하고."
"상관없다."
"그럼 천계가 널 죽일 것이다."
"상관없다!"
아셀이 소리쳤다. 던전이 요동쳤다. 추락자들이 벽에 부딪혔다.
"그들을 되돌려라. 내가 지운 것들을. 내 자식들을!"
기록자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법을 알려주는 것뿐이다. 실행은 네가 해야 한다."
"그럼 말해라."
"하계로 가라. 봉인된 곳으로." 기록자가 손을 들었다. 공중에 지도가 떠올랐다. "거기 네 첫 번째 자식이 잠들어 있다."
아셀이 지도를 봤다. 하계 최심부. 마왕도 가지 않는 영역.
"얼마나 걸리나."
"한 달."
"빠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 기록자가 멈췄다. "천계도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
타론이 검을 뽑았다.
"그럼 경쟁이네. 누가 먼저 도착하나."
"경쟁이 아니다." 기록자가 차갑게 말했다. "천계는 네 자식을 되살리는 게 아니다. 무기로 만들 것이다. 너를 죽이기 위한."
아셀이 일어섰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대신 결의만이 남았다.
"간다."
"주인님!" 세라핌이 외쳤다. "던전을 비우시면—"
"너희가 지켜라."
"하지만!"
"명령이다."
아셀이 걸어갔다. 던전 출구를 향해. 추락자들이 그를 봤다.
엘리스가 앞을 막아섰다.
"혼자 가실 건가요?"
"그렇다."
"안 돼요."
"왜."
"당신은..." 엘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