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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거자의 영역

약 19분

소거자의 영역

주인공: 아셀

# 소거자의 영역


던전 코어의 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아셀은 벽에 기댄 채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흔적도, 상처도, 증거도. 십 분 전까지 그 자리에 있던 존재가 지워진 것처럼.


"이상하군."


그의 목소리는 던전 복도에 흡수됐다. 대답할 자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던 모험가도, 그가 휘두르던 검도, 그가 지르던 비명도 사라졌다.


아셀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감각은 평소와 같았다. 다만 기억 속 장면이 선명했다. 남자가 검을 들어 올렸다. F급 모험가 배지가 햇빛에 반짝였다. 던전 코어를 노리는 눈빛. 아셀은 손을 뻗었고, 그저 원했다. 저것이 없기를.


그러자 남자의 몸에서 빛이 번졌다. 상처가 아니었다. 치유도 아니었다. 존재가 거슬러 올라갔다. 검을 든 손이 먼저 투명해졌다. 팔이, 어깨가, 얼굴이 희미해졌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엔 빛의 입자만 남았고, 그마저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되돌림."


아셀은 그렇게 이름 붙였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몰랐다. 다만 현상을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셀은 고개를 돌렸다. 작은 고블린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녹색 피부에 큰 귀, 손에는 나뭇가지로 만든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주인님."


고블린이 고개를 숙였다.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릭."


"침입자는요?"


"없다."


그릭은 주변을 둘러봤다. 피 한 방울, 천 조각 하나 없는 복도. 고블린의 눈이 커졌으나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식사 준비됐어요. 오늘은 버섯 스튜."


"그렇군."


아셀은 벽에서 몸을 떼고 걷기 시작했다. 그릭이 옆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던전의 통로는 규칙적이었다. 아셀이 설계한 대로. 불필요한 장식은 없었고, 함정도 최소한이었다. 침입자를 죽이는 것보다 돌려보내는 게 효율적이었다.


"오늘 새 마물 왔어요."


그릭이 말했다.


"종류는."


"슬라임. 아주 작은 거. 이름 지어줘야 해요."


아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색은."


"파란색이요."


"미스트."


그릭이 지팡이를 흔들었다. 기뻐하는 제스처였다.


"좋은 이름이에요. 미스트 좋아할 거예요."


중앙 홀에 도착했다.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 중심에는 던전 코어가 떠 있었다. 푸른빛을 내뿜는 수정체. 아셀의 존재와 연결된 핵심. 그 주변으로 마물들이 모여 있었다. 고블린 여섯, 슬라임 셋, 코볼트 둘, 그리고 구석에 웅크린 어린 와이번.


"주인님 오셨다!"


코볼트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아셀은 그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코볼트가 눈을 감고 만족스럽게 낑낑거렸다.


"밥 먹어요, 주인님."


다른 고블린이 나무 그릇을 내밀었다. 아셀은 받아들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스튜는 뜨겁고 짭짤했다. 버섯의 식감이 씹혔다. 나쁘지 않았다.


마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대화 소리가 낮게 오갔다. 오늘 던전 위층에서 발견한 풀 이야기, 새로 온 슬라임이 얼마나 귀여운지, 내일 코어 청소는 누가 할 차례인지. 일상적인 소음.


아셀은 그릇을 내려놓고 코어를 바라봤다. 빛이 일정한 리듬으로 깜박였다. 자신의 심장 박동과 같은 속도. 천계에서 추락한 지 삼 년. 이 코어와 융합한 지 이 년. 던전주가 된 지 일 년 반.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다. 천계의 규칙, 질서, 역할. 무언가를 어겼고, 심판받았고, 떨어졌다. 하계의 땅에 부딪혔을 때 신성이 뒤틀렸다. 날개는 재가 됐고, 빛은 꺼졌다. 남은 건 텅 빈 감각과 이상한 능력뿐.


던전 코어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폐허가 된 탑 지하. 주인 없는 수정체. 손을 댔을 때 융합이 시작됐다. 고통은 없었다. 다만 존재의 형태가 바뀌는 느낌. 천계의 존재에서 던전주로.


"주인님."


그릭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작은 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오늘 침입자, 무슨 일 있었어요?"


"제거했다."


"죽인 거예요?"


"아니다."


그릭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셀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되돌렸다."


"...무슨 뜻이에요?"


"존재하지 않게 했다."


그릭의 큰 눈이 더 커졌다.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질문이 떠오르는 듯했으나 내뱉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알았어요. 주인님이 하는 일은 다 이유가 있으니까."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릭이 다른 고블린들에게로 돌아갔다. 마물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평화로운 소음.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던전 입구에 다섯 명이 나타났다.


아셀은 코어를 통해 그들을 감지했다. 모험가들. 장비가 제법 좋았다. C급 이상. 던전 상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곳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주인님."


그릭이 급히 달려왔다.


"침입자들이요. 많아요."


"알고 있다."


아셀은 일어섰다. 마물들이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숨어라."


"하지만—"


"명령이다."


마물들은 주저하다가 하나둘 통로 깊숙이 사라졌다. 어린 와이번이 마지막까지 남아 아셀을 바라봤다. 아셀은 그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괜찮다. 루나."


와이번이 낑낑거리며 날개를 접고 물러났다.


아셀은 혼자 중앙 홀에 남았다. 코어의 빛만이 그를 비췄다. 침입자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갑옷 소리, 무기 부딪히는 소리, 긴장한 숨소리.


그들이 홀에 들어섰다.


선두는 중년 남자. 은색 갑옷에 큰 검. 얼굴에 흉터 하나. 뒤따르는 건 여자 마법사, 젊은 궁수, 쌍검 든 도적, 방패 든 전사. 전형적인 파티 구성.


남자가 아셀을 봤다. 눈이 좁아졌다.


"던전주인가."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코어를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주지."


"거절한다."


남자가 검을 뽑았다.


"그럼 죽어라."


그가 달려들었다. 빠른 움직임. 검이 아셨의 목을 향했다. 아셀은 한 발 옆으로 비켰다. 검이 허공을 갈랐다. 남자가 몸을 돌려 다시 베어왔다. 이번엔 막지 않았다. 검날이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렀다.


"마법사!"


남자가 외쳤다. 뒤에서 마법진이 펼쳐졌다. 화염구가 날아왔다. 아셀은 손을 들었다.


"되돌린다."


화염구가 공중에서 멈췄다. 그리고 거꾸로 날아가 마법사에게 되돌아갔다. 마법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화염구는 벽에 부딪혀 터졌다.


"뭐야, 저거!"


궁수가 화살을 쐈다. 세 발. 아셀은 움직이지 않았다. 화살이 가까워졌을 때 다시 손을 들었다.


"되돌린다."


화살이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궁수에게 되돌아갔다. 궁수가 황급히 몸을 숙였다. 화살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자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엔 더 빠르고 강했다. 검이 연속으로 아셀을 향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셀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했다. 네 번째 공격이 왔을 때, 그는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이해했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네 능력을."


아셀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남자의 손목에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검을 놓으려 했으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빛이 팔로, 어깨로 번졌다.


"이게 뭐야! 떼어내!"


남자가 소리쳤다. 동료들이 달려들었다. 도적이 쌍검을 휘둘렀다. 아셀은 남자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남자의 오른팔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치유 마법!"


전사가 외쳤다. 마법사가 황급히 주문을 외웠다. 녹색 빛이 남자를 감쌌다. 하지만 투명화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빨라졌다.


"안 돼... 안 돼!"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팔이 사라졌다. 어깨가 사라졌다. 몸통이 희미해졌다. 마지막엔 얼굴만 남았고, 그의 눈에 공포가 가득했다.


"살려줘..."


그 목소리도 사라졌다. 빛의 입자만 남았고, 그마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침묵이 흘렀다.


네 명의 모험가가 얼어붙은 채 아셀을 바라봤다. 마법사의 손이 떨렸다. 궁수가 뒷걸음질쳤다. 도적이 검을 떨어뜨렸다. 전사만이 방패를 들고 있었으나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셀은 그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돌아가라."


목소리는 평온했다.


"다음엔 되돌린다."


네 명이 동시에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갑옷 소리, 무기 소리, 거친 숨소리. 그들은 던전 입구로 사라졌다.


아셀은 혼자 남았다. 코어의 빛이 여전히 그를 비췄다.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떨림은 없었다. 감정도 없었다. 다만 기억만 선명했다. 남자의 마지막 표정. 공포와 절망.


"...미안하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사라진 남자에게인지, 자신에게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인지.


발소리가 들렸다. 마물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그릭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하지만 그날 밤, 던전 상인이 찾아왔다. 검은 로브를 입은 여자. 얼굴은 가려져 있었다.


"소문 들었어요. 되돌림이라고."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계가 관심 가질 겁니다. 조심하세요, 던전주님."


여자가 사라졌다. 아셀은 코어를 바라봤다. 빛이 조금 더 빠르게 깜박이고 있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 소거자의 영역 (후반부)


던전 상인이 떠난 뒤, 아셀은 코어 앞에 앉았다. 빛의 맥박이 불규칙했다. 평소보다 빠르고, 때로는 느렸다. 마치 경고하듯.


그릭이 물을 가져왔다. 아셀은 받지 않았다.


"필요 없다."


"하지만..."


"물러가라."


그릭이 조용히 물러났다. 아셀은 홀로 남아 코어를 응시했다. 빛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형체 없는 그림자. 아니, 기억.


추락하던 그날이 떠올랐다. 천계의 흰 기둥들, 심판의 목소리, 떨어지는 감각. 그리고 이 던전 코어와 융합되던 순간의 고통.


"주인님."


루나가 날아왔다. 어린 와이번은 아셀의 어깨에 앉아 낑낑거렸다.


"너도 자야 한다."


와이번이 고개를 저었다. 아셀은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살아있었다. 그는 문득 남자가 사라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온기가 식어가던 느낌.


"...미안하다."


루나가 그를 바라봤다. 아셀은 눈을 감았다.


사흘이 지났다.


새로운 침입자는 없었다. 던전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했다. 마물들조차 불안해하며 중얼거렸다. 그릭이 정찰을 나갔다가 돌아왔다.


"주인님,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몇 명."


"셀 수 없을 정도로."


아셀이 일어났다. 그릭이 뒤따랐다. 그들은 던전 입구 근처까지 이동했다. 벽에 새긴 감시 마법진을 통해 밖을 볼 수 있었다.


수백 명이었다.


갑옷 입은 군인들, 로브 입은 마법사들, 십자가를 든 성직자들. 그 중앙에 금빛 갑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젊었으나 눈빛은 오래되었다.


"천계군."


아셀이 중얼거렸다.


그릭이 떨었다.


"천계가... 직접?"


"그렇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금빛 갑옷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도 던전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아셀을 보는 것처럼.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마법으로 증폭되어 던전 안까지 울려 퍼졌다.


"추락자 아셀. 천계 제7심판정의 이름으로 명한다. 즉시 항복하고 코어를 포기하라. 그러면 재심의 기회를 주겠다."


침묵.


"거부할 경우, 던전과 그 안의 모든 존재를 소거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마물들이 웅성거렸다. 그릭이 아셀을 바라봤다. 루나가 낑낑거렸다. 아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답하라, 아셀."


"거절한다."


아셀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또렷했다. 마법 없이도 밖까지 전달되었다. 금빛 남자의 눈이 좁아졌다.


"그럼 죽어라."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직자들이 주문을 외웠다. 던전 입구에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정화의 빛. 던전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천계의 금지 마법.


"모두 코어 홀로."


아셀이 명령했다. 마물들이 황급히 움직였다. 그릭이 외쳤다.


"서두르세요!"


복도를 달렸다. 천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벽에 금이 갔다. 빛이 균열 사이로 스며들었다. 정화의 빛. 닿는 것마다 분해했다.


한 마물이 뒤처졌다. 늙은 고블린. 다리를 절었다. 빛이 그에게 다가왔다. 아셀이 돌아서서 고블린을 안아 들었다.


"주인님!"


그릭이 소리쳤다. 아셀은 뛰었다. 빛이 발뒤꿈치를 스쳤다. 구두가 분해되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코어 홀에 도착했을 때, 마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아셀은 고블린을 내려놓았다. 고블린이 울먹였다.


"미안합니다, 주인님..."


"괜찮다."


코어의 빛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던전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돌이 떨어졌다. 그릭이 방패로 막았다.


"주인님, 이대로는..."


"안다."


아셀이 코어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아니, 뜨거웠다. 둘 다였다. 코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소리 없는 목소리로.


'융합하라.'


"거절한다."


'그럼 모두 죽는다.'


"그래도."


'왜.'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물들을 바라봤다. 그릭, 루나, 늙은 고블린, 다른 모두. 떨고 있었으나 그를 믿는 눈빛이었다.


"...이해했다."


그는 코어를 움켜쥐었다. 빛이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고통이 밀려왔다. 뼈가 녹는 것 같았다. 의식이 흐려졌다.


'완전히 융합하라. 그럼 힘을 얻는다.'


"조건이 있다."


'말하라.'


"마물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승낙한다.'


빛이 폭발했다. 아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코어가 그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심장이 멈췄다. 아니, 새로운 심장으로 교체되었다. 던전 자체가 그의 심장이 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느꼈다. 던전의 모든 복도, 모든 방, 모든 균열. 그리고 밖의 군대. 수백 명의 심장박동, 마법의 흐름, 살의.


눈을 떴다.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빛 자체였다. 그는 천천히 내려왔다. 발이 바닥에 닿았을 때, 던전의 흔들림이 멈췄다.


마물들이 숨을 죽였다.


"물러나라."


아셀의 목소리가 변했다. 여러 겹으로 울렸다. 인간의 것과, 던전의 것이 섞였다.


그릭이 마물들을 이끌고 통로로 물러났다. 루나만 남으려 했으나 아셀이 고개를 저었다.


"너도."


와이번이 울며 날아갔다.


아셀은 홀로 중앙에 섰다. 그는 손을 들었다. 던전 전체가 반응했다. 벽이 재생되었다. 균열이 메워졌다. 정화의 빛이 밀려났다.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성직자들이 주문을 잃었다. 마법진이 역류했다. 빛이 그들을 향해 되돌아갔다.


"불가능..."


한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금빛 갑옷의 남자가 검을 뽑았다.


"전군, 돌격!"


군대가 던전으로 쇄도했다. 수백 명이 입구로 밀려들었다. 복도를 채웠다. 함성이 울렸다.


아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던전의 모든 통로가 그의 의식 속에 펼쳐졌다. 침입자들의 위치가 보였다.


"되돌린다."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던전 전체가 들었다.


복도가 뒤틀렸다. 침입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길이 거꾸로 흘렀다. 앞으로 달리던 그들이 뒤로 밀려났다. 시간이 역행했다. 아니, 공간이 역행했다.


군인들이 던전 밖으로 토해졌다. 마치 던전이 그들을 거부하듯. 수백 명이 입구 앞에 나뒹굴었다. 갑옷이 찌그러졌다. 뼈가 부러졌다.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금빛 남자만 서 있었다. 그는 던전을 노려봤다.


"천계의 힘을 거역하는가."


아셀이 입구에 나타났다. 빛의 형체로. 더 이상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반은 인간, 반은 던전. 경계의 존재.


"거역한다."


둘이 마주 섰다. 침묵이 흘렀다. 바람도 멈췄다.


금빛 남자가 검을 들었다. 검에서 신성이 폭발했다. 천계의 순수한 힘. 모든 것을 정화하는 빛.


"그럼 소거되어라."


그가 베어왔다. 검이 아셀의 목을 향했다. 빛의 궤적이 공기를 갈랐다.


아셀은 손을 들었다.


"되돌린다."


검이 멈췄다. 공중에서. 신성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금빛 남자의 눈이 커졌다.


"이럴 수가..."


빛이 검으로, 팔로, 몸으로 되돌아갔다. 남자가 비틀거렸다. 갑옷이 금이 갔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네놈... 대체..."


아셀이 그를 내려다봤다. 감정 없는 눈으로.


"이해했다. 천계가 원하는 것을."


"...무엇을."


"나를."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아셀의 눈에 무언가가 일렁였다. 기억. 오래된 기억.


"천계는 되돌림을 두려워한다. 질서의 역행을. 그래서 나를 추락시켰다."


"...그렇다."


남자가 피를 토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나는 더 강해졌다."


"그래서... 죽여야 한다..."


아셀은 고개를 저었다.


"죽일 수 없다. 이미 나는 던전이다. 던전을 죽이면 균열이 생긴다. 천계와 하계 사이의."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그렇다."


아셀이 던전으로 돌아섰다. 그의 뒤에서 금빛 남자가 쓰러졌다. 군대가 그를 부축했다. 모두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셀은 코어 홀로 돌아왔다. 마물들이 조심스럽게 나타났다. 그릭이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 이기셨습니까?"


"아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루나가 날아와 그의 어깨에 앉으려 했으나, 빛의 형체를 통과했다. 와이번이 당황해서 낑낑거렸다. 아셀은 손을 뻗었다. 손이 실체화되었다. 그는 루나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하지만 그의 눈은 멀리 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던전 상인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로브를 벗고 있었다. 젊은 여자의 얼굴. 하지만 눈은 늙었다.


"완전 융합했군요."


"그렇다."


"후회하지 않습니까?"


"..."


아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가 미소 지었다.


"천계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이번엔 심판정이 아니라..."


"안다."


"그래도 싸우시겠습니까?"


아셀은 코어를, 아니 자신의 심장을 바라봤다. 빛이 고동쳤다. 마물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던전의 모든 생명이 느껴졌다.


"선택권이 없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 드리죠."


그녀가 작은 수정을 건넸다. 검은색. 아셀이 받았다.


"뭔가."


"통신 수정입니다. 당신과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추락자들. 던전주가 된 천계의 버림받은 자들."


아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몇 명."


"일곱. 당신을 포함하면 여덟."


"왜 말하는가."


"연합이 필요하니까요. 천계가 움직이기 전에."


여자가 사라졌다. 아셀은 수정을 바라봤다. 그 안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다른 누군가의 숨결.


그는 수정을 쥐었다. 따뜻했다.


"...동료."


낯선 단어였다.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하지만 그는 반복했다.


"동료."


그날 밤, 천계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열두 명의 심판관이 모였다. 그 중앙에 흰 옥좌. 거기 앉은 존재는 얼굴이 없었다. 빛 자체였다.


"아셀이 완전 융합했다."


한 심판관이 보고했다.


"제7군이 패배했습니다."


"예상했다."


옥좌의 존재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러 겹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천벌입니까?"


"그렇다."


심판관들이 술렁였다.

총 9,259자 · 약 19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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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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