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3분 · 총 6,741자

섬의 간수

주인공: 레이첼 강

헬기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후려쳤다.

레이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검은 바위가 뒤엉킨 섬. 녹슨 철조망이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고, 중앙의 콘크리트 건물은 페인트가 벗겨져 흉측했다. 멀리서 쇠망치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둔탁한.

"블랙 록입니다."

조종사가 헤드셋 너머로 말했다. 레이첼은 대답 대신 안전벨트를 풀었다.

헬기가 착륙장에 내려앉자 문이 열렸다. 소금기 섞인 바람이 폐를 찔렀다. 그녀는 가방을 들고 내렸다. 발밑의 콘크리트는 금이 가 있었고, 착륙장 끝엔 누군가 서 있었다.

"레이첼 강 교정관?"

남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40대쯤. 얼굴엔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맞습니다."

"마크 최. 부소장."

그는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육군 헌병 출신이라며?"

"전역한 지 2년 됐습니다."

"그래서 여길 지원했다고?"

레이첬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크는 코웃음을 쳤다.

"3개월이야. 당신네들 평균 근무 기간."

"저는 다릅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마크가 돌아서며 걷기 시작했다. 레이첼은 그를 따라갔다. 착륙장에서 막사까지는 비포장 길이었다. 자갈이 군화 밑에서 으스러졌다.

"규칙은 간단해. 첫째, 수감자한테 등 돌리지 마. 둘째, 해 지면 막사 밖 나가지 마. 셋째..."

마크가 멈춰 서서 그녀를 똑바로 봤다.

"진혁한테 관심 받지 마."

"진혁?"

"47번. 여기 짱이야. 공식적으론 아니지만."

레이첼은 가방 끈을 고쳐 쥐었다.

"규정에 따르면 수감자 간 위계질서는..."

"규정?"

마크가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여긴 규정 따윈 없어. 법무부도 모르는 곳인데 무슨 규정. 살아남는 게 규정이야."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레이첼은 입술을 깨물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막사 안은 어두웠다. 전등이 깜빡거렸다.

"전기는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만 들어와. 발전기 기름 아껴야 하거든."

마크가 복도 끝 방문을 열었다.

"당신 방. 침대, 책상, 사물함. 샤워실은 복도 끝. 온수는... 뭐, 기대 안 하는 게 좋아."

레이첼은 방 안을 둘러봤다. 2평도 안 되는 공간. 창문엔 철창이 박혀 있었다.

"점호는 오후 5시. 식사는 6시. 야간 순찰은 교대로 돌아가는데..."

"저도 서겠습니다."

"첫날부턴 무리야."

"규정에..."

"규정 좀 그만해."

마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여긴 교도소 아냐. 그냥... 쓰레기장이야. 법무부가 치우기 귀찮은 쓰레기 버려두는 곳."

그는 문을 닫고 나갔다. 레이첼은 가방을 침대에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 불꽃이 어둠을 핥았다.

연기를 들이마시자 폐가 조여들었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20년 교도관으로 일하다 수감자에게 목이 찔려 죽은. 그녀는 눈을 감았다.

'여기선 달라. 내가 바꿀 수 있어.'

하지만 손은 계속 떨렸다.

---

오후 3시. 레이첼은 마크를 따라 채석장으로 향했다.

"순찰은 하루 두 번. 오전 10시, 오후 3시. 수감자들 노역 감독하고 이상 없나 확인하는 거야."

"무기는요?"

"전기봉. 총은 본토에서 허가 안 내줘. 탈출 시도 막으려고."

마크가 허리춤에 찬 봉을 툭 쳤다.

"근데 솔직히 이것도 별 소용없어. 진혁이 덤비면 우린 다 죽어."

"그럼 왜 가만..."

"걔가 안 덤비니까. 아직은."

채석장이 보였다. 거대한 구덩이처럼 파인 땅. 수감자들이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쇠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레이첼은 걸음을 멈췄다.

한 남자가 상의를 벗고 서 있었다. 등 전체를 뒤덮은 문신. 용인지 뱀인지 모를 검은 그림.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문신도 꿈틀거렸다. 그는 망치를 들어 바위를 내리쳤다.

쾅.

돌이 쪼개졌다. 땀이 그의 옆구리를 타고 흘렀다.

"47번. 진혁."

마크가 속삭였다.

"쳐다보지 마."

하지만 레이첼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진혁이 망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검은 눈동자. 감정이 없었다. 아니, 있긴 했다. 호기심 같은 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레이첼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목덜미가 뜨거웠다.

"가자."

마크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

저녁 5시. 점호 시간.

수감자들이 막사 앞 공터에 모였다. 아니, 모였다기보단 그냥 서성이고 있었다. 누군 담배를 피우고, 누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정렬 같은 건 없었다.

레이첼은 명부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정렬."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첼은 명부를 든 손에 힘을 줬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렬하라고 했습니다."

한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문 채 웃었다. 다른 놈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마크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레이첼, 그냥..."

"규정에 따르면 점호 시 수감자는 번호순으로 정렬해야 합니다."

그녀는 마크를 보지 않고 수감자들을 응시했다.

"10초 드리겠습니다."

누군가 킥킥거렸다.

"교정관님, 여긴 규정 같은 거..."

"하나."

레이첼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둘."

그녀는 허리춤의 전기봉을 빼들었다. 손잡이를 돌리자 파란 불꽃이 튀었다.

"셋."

수감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첼은 명부를 마크에게 넘기고 앞으로 걸어갔다.

"넷."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 앞에 섰다. 40대. 목에 칼자국 흉터.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꼬맹이가 용감하..."

레이첼이 전기봉을 그의 옆구리에 밀어넣었다.

찌지직.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몸이 경련했다. 담배가 입에서 떨어져 흙바닥을 굴렀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다섯."

레이첼은 전기봉을 들어 올렸다. 파란 불꽃이 석양빛에 섞였다.

"1번부터 47번까지. 번호순으로 정렬. 지금 당장."

수감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디게, 하지만 움직였다. 누군가 쓰러진 남자를 끌어 일으켰다. 줄이 만들어졌다. 엉성했지만 일단 줄은 줄이었다.

레이첼은 전기봉을 허리에 꽂고 명부를 받아들었다.

"1번."

"여기요."

"2번."

"예."

그녀는 한 명씩 확인하며 걸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얼굴엔 드러내지 않았다. 손이 떨렸지만 명부를 꽉 쥐었다.

'아빠는 이렇게 하지 않았어. 그래서 죽었어.'

"45번."

"..."

대답이 없었다. 레이첼이 고개를 들었다. 키 큰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30대 초반. 얼굴은... 아름다웠다. 말이 안 되게. 흉악범 같지 않게.

"이름."

"서준."

목소리는 차갑고 낮았다.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 허공을 응시했다.

"45번, 서준. 확인."

레이첼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46번."

"여기."

"47번."

침묵.

그녀는 줄 끝을 봤다. 진혁이 서 있었다. 아직도 상의를 입지 않은 채. 땀이 마르지 않아 피부가 빛났다.

"47번."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아까와 같은 눈. 감정 없는, 하지만 뭔가 있는.

"진혁."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줄에서 벗어났다.

"복귀."

레이첼의 손이 다시 전기봉으로 향했다.

"지금 복귀하십시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또 한 걸음.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2미터. 1미터.

"경고합니다."

그녀는 전기봉을 뽑았다. 파란 불꽃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진혁이 웃었다.

"용감하네."

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전기봉을 낚아챘다. 레이첼이 빼앗기지 않으려 손잡이를 비틀었지만 그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전기봉이 그녀 손에서 떨어져 흙바닥에 굴렀다.

마크가 달려왔다.

"진혁! 이 새끼야!"

진혁은 마크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레이첼만 봤다. 그의 얼굴이 그녀 눈앞까지 다가왔다.

"교정관님."

그가 속삭였다.

"여긴 당신이 알던 곳이 아냐."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스쳤다. 거칠고 뜨거운 손가락. 레이첼은 숨이 막혔다. 몸이 얼어붙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밌을 것 같아."

진혁이 물러났다. 전기봉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마치 장난감을 돌려주듯.

"다음엔 더 세게 눌러. 안 그럼 소용없어."

그는 돌아서서 줄로 돌아갔다. 제자리에 섰다. 다른 수감자들은 숨도 안 쉬는 것 같았다.

레이첼은 전기봉을 받아들었다. 손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명부를 다시 펼쳤다.

"점호 끝."

목소리가 갈라졌다.

"해산."

수감자들이 흩어졌다. 마크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괜찮아?"

레이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혁의 뒷모습을 봤다. 그가 채석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등의 문신이 석양빛에 일렁였다.

턱에 그의 손가락 감촉이 남아 있었다.

---

밤 10시.

레이첼은 막사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보고서를 쓰려 했지만 한 줄도 못 썼다. 펜을 쥔 손이 계속 떨렸다.

'뭐가 문제야.'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폐가 따가웠다.

창밖은 어두웠다. 전등이 깜빡거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레이첼은 고개를 들었다.

빗소리였다. 섬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보고서는 포기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전등이 깜빡이다 꺼졌다.

자정이었다.

어둠 속에서 레이첼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진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손가락이 턱을 스치던 감촉.

'재밌을 것 같아.'

무슨 뜻이었을까.

빗소리가 거세졌다. 천둥이 울렸다. 레이첼은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창문으로 갔다. 철창 너머로 채석장이 보였다. 번개가 치자 순간 풍경이 드러났다.

누군가 서 있었다.

채석장 한가운데. 빗속에.

레이첼은 숨을 멈췄다. 다시 번개가 쳤다. 이번엔 확실히 봤다. 상의를 벗은 남자. 등의 문신.

진혁이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빗속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친놈.'

레이첼은 창문에서 물러났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눈꺼풀 뒤에 남아 있었다.

비에 젖은 피부. 흘러내리는 빗물. 움직이지 않는 등.

그녀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

아침 6시.

레이첼은 샤워실로 향했다. 복도는 조용했다. 다른 교정관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샤워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타일 바닥이 축축했다. 그녀는 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찬물이 쏟아졌다.

"씨..."

레이첼은 이를 악물고 머리를 감았다. 물이 등을 타고 흘렀다. 차가웠지만 정신은 맑아졌다.

'오늘은 달라. 통제할 수 있어.'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옷을 입고 머리를 묶었다. 거울을 봤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졌다.

"괜찮아."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샤워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진혁이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레이첼의 발이 멈췄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찍 일어나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레이첼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하지만 표정은 굳혔다.

"비켜요."

"왜?"

"규정상 수감자는..."

"규정."

진혁이 웃었다.

"교정관님은 그 말 참 좋아하시네."

그가 벽에서 떨어져 한 걸음 다가왔다. 레이첼은 뒤로 물러났다. 등이 벽에 닿았다.

"비키라고 했습니다."

"아직 안 비킬래."

또 한 걸음.

거리가 좁혀졌다. 1미터도 안 됐다. 그의 체취가 코끝에 닿았다. 비누 냄새와 땀 냄새.

"왜요?"

레이첼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전기봉. 하지만 진혁이 먼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부드럽게. 아프지 않게.

"아직은 누르지 마."

그가 속삭였다.

"재미는 이제부터니까."

레이첼의 입술이 말랐다. 그의 손이 뜨거웠다. 손목을 감싼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쓰다듬듯.

"뭐가... 재밌다는 거죠."

"당신."

진혁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숨결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어제 전기봉 눌렀을 때. 손 떨리는 거 봤어."

레이첼은 숨을 참았다.

"무섭지?"

"아니요."

"거짓말."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손목 안쪽을 눌렀다. 맥박이 뛰는 곳.

"여기 보면 알아. 심장 미친 듯이 뛰잖아."

레이첼은 손을 빼려 했지만 그의 힘은 단단했다. 아프진 않았다. 그냥 놓아주지 않았다.

"놓으세요."

"싫은데."

"경고합니다."

"뭘? 또 전기봉 쓸 거야?"

진혁이 웃었다.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어제처럼. 하지만 이번엔 더 오래.

"해봐. 여기. 목에 대고 눌러봐."

"..."

"왜 안 해? 무서워?"

레이첼의 손이 떨렸다. 전기봉을 쥐었지만 빼지 못했다.

'왜 안 돼.'

진혁의 눈이 그녀를 파고들었다. 검은 눈동자.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아니, 읽혔다. 호기심. 장난기. 그리고...

뭔가 더 어두운 것.

"재밌어."

그가 속삭였다.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봐."

"무슨..."

"겉으론 강한 척하는데 속은 엉망이잖아."

그의 엄지가 그녀의 입술 아래를 스쳤다.

"어제 밤 창문으로 날 봤지?"

레이첼의 눈이 커졌다.

"빗속에 서 있는 거. 봤어, 안 봤어?"

"..."

"대답 안 해도 알아. 당신 얼굴에 다 써 있어."

진혁이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가슴이 그녀의 가슴에 닿을 듯 말 듯.

"궁금하지? 내가 왜 거기 서 있었는지."

레이첼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손이 턱을 붙잡고 있어 멀리 돌릴 수 없었다.

"안 궁금해요."

"또 거짓말."

총 6,741자 · 약 13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박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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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로맨스#스릴러#범죄#심리
박지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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