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타인
주인공: 한태양
펜트하우스 욕실 거울 앞에 선 순간, 한태양은 숨이 막혔다.
거울 속 남자가 낯설었다.
아니, 분명 자기 얼굴이었다. 같은 눈, 같은 코, 같은 입술. 하지만 뭔가 달랐다. 눈꼬리 각도가 미묘하게 높아 보였고, 입술 선이 평소보다 얇았다. 착각일까. 태양은 눈을 감았다 떴다. 거울 속 남자도 똑같이 눈을 깜빡였다.
'이게... 나야?'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차갑고 매끄러운 피부. 고깃집에서 기름 튀던 날 생긴 턱 밑 흉터도 사라져 있었다. 아니, 흉터만이 아니었다. 왼쪽 귀 뒤에 있던 점도 없었다. 이마의 잔주름도 깨끗했다.
"오빠?"
서연의 목소리에 태양은 화들짝 뒤를 돌았다.
"어, 응. 씻고 있었어."
"손 좀 보여줘."
서연이 다가왔다. 태양은 본능적으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왜? 손 왜 숨겨?"
"아니, 그냥."
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태양의 팔을 붙잡아 손을 끌어냈다. 태양의 손등을 보던 서연의 입술이 떨렸다.
"그 흉터... 어디 갔어?"
태양은 대답할 수 없었다. 고깃집 화상 흉터. 서연이 처음 만난 날, 그녀가 약국에서 연고를 사다 발라주며 울었던 그 흉터. 8년간 함께했던 증거가 연기처럼 사라져 있었다.
"레, 레이저로 지웠어."
"언제?"
"이번 주에. 깜빡했네."
거짓말이었다. 태양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왜 말 안 했어? 나한테는."
"미안. 서프라이즈 하려고."
서연은 한참 동안 태양의 손을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오빠, 뭔가 달라졌어."
"응? 뭐가?"
"잘 모르겠어. 그냥... 느낌이."
서연은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은 알았다. 그녀의 눈빛이 전과 다르다는 걸.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눈이었다.
***
진실은 달랐다.
경매장. 어제 밤 그곳에서 태양은 3년을 입찰하려 했다. 손목의 카운트다운이 72:00:00에서 36:00:00으로 떨어지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숫자가 마이너스로 넘어갔다.
-00:00:01
-00:00:02
-00:00:03
그때부터였다. 손등의 화상 흉터가 연기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태양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턱 밑 흉터도 사라졌다. 귀 뒤의 점도 지워졌다.
브로커가 웃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첫 거래의 부작용이군요."
"이, 이게 뭐예요?"
"대가의 일부입니다. 시간을 팔면 기억도 함께 팔리죠. 당신 몸에 새겨진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흉터, 점, 주름. 모두 과거의 증거니까요."
태양은 거울을 봤다. 경매장 벽면의 거대한 거울. 거기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완벽했다. 마치 포토샵으로 보정한 것처럼.
"저... 제가 맞나요?"
"물론입니다. 한태양 씨. 다만 조금 더 나은 버전일 뿐이죠."
브로커는 명함을 건넸다.
"거울을 너무 자주 보지 마세요. 볼수록 빨라집니다."
"뭐가요?"
"변화가요."
***
서연은 노트를 펼쳤다.
10월 15일: 커피에 설탕 3스푼 넣음 (원래 2스푼)
10월 16일: 왼손으로 포크 잡음 (원래 오른손잡이)
10월 17일: 내 이름 부를 때 억양 이상함
10월 18일: 손등 흉터 사라짐
그녀의 손이 떨렸다. 펜을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펜을 주우려다 멈췄다.
'미쳤나. 내가 왜 이러고 있어.'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점점 커졌다. 태양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거실에서 태양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화 통화 중인 것 같았다. 서연은 문틈으로 그를 훔쳐봤다.
"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양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거실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눈 주위를, 코를, 입술을. 마치 처음 보는 얼굴인 것처럼.
서연은 숨을 죽였다.
태양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서연과 눈이 마주쳤다. 태양이 웃었다. 평소와 똑같은 미소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미소 짓는 각도가, 눈이 휘어지는 정도가.
"왜 그래? 배고파?"
"아니. 그냥."
서연은 방으로 돌아와 노트에 한 줄을 더 적었다.
10월 19일: 웃는 방식이 달라짐. 눈이 덜 휘어짐.
***
한밤중, 태양은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봐야 했다. 확인해야 했다. 브로커는 거울을 보지 말라고 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천을 걷어냈다.
거울 속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자기 얼굴이었다. 분명히. 하지만 어제보다 더 달라져 있었다. 이마가 더 넓어 보였다. 눈썹이 더 진했다.
# Part 2/3: 전개
눈썹이 더 진했다.
태양은 손끝으로 눈썹을 문질렀다. 평소보다 굵고 거칠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제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거울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태양은 숨이 멎었다. 거울 속으로 뒤를 돌아보니, 브로커가 욕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언제 들어왔을까. 현관문 잠그는 소리도 못 들었다.
"어떻게...?"
"VIP 고객에게는 특별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24시간 케어."
브로커가 웃었다. 태양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이거 멈출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어떻게요?"
"거래를 중단하시면 됩니다."
태양은 입술을 깨물었다. 중단. 그럼 서연의 치료비는? 이미 입금된 3억은?
"이미 쓴 돈은 어떻게 되는데요?"
"반환됩니다. 동시에 당신이 판 시간도 돌려받죠."
브로커가 한 걸음 다가왔다.
"대신 서연 씨의 계좌에서 3억이 증발합니다. 병원비 미납으로 처리되고, 치료는 즉각 중단되겠죠."
태양의 손이 세면대를 움켜쥐었다. 도자기가 삐걱거렸다.
"그럴 순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브로커가 명함을 꺼냈다. 검은색 명함. 전에 받았던 것과 달랐다.
"다음 경매는 내일 자정입니다. 이번엔 특별 품목이 나옵니다."
"특별 품목이요?"
"다른 사람의 형상."
태양은 고개를 들었다. 브로커가 거울을 가리켰다.
"당신은 지금 과거를 잃고 있습니다. 흉터, 점, 주름. 모두 기억의 증거죠. 하지만 형상을 사면 다릅니다. 원하는 사람의 얼굴, 목소리, 습관까지 가질 수 있어요."
"왜 제가 그걸...?"
"서연 씨가 사랑했던 한태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
태양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브로커는 명함을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돌아섰다.
"생각해보세요. 시간은 내일 자정까지."
문이 닫혔다. 태양은 다시 거울을 봤다. 낯선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연이가 사랑했던 나.'
손이 떨렸다. 명함을 집어 들었다. 뒷면에 주소가 적혀 있었다.
***
아침 식탁.
서연이 토스트를 입에 물고 태양을 쳐다봤다. 태양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설탕 세 스푼.
"오빠."
"응?"
"설탕 왜 세 스푼 넣어?"
태양의 손이 멈췄다. 컵을 내려놓았다.
"원래 세 스푼 넣었는데?"
"아니. 두 스푼이었어."
"그래? 기억이 안 나네."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트를 펼쳤다. 10월 20일. 설탕 스푼 개수 잊음.
"뭐 적어?"
"일기."
"일기에 뭐라고 쓰는데?"
서연은 노트를 덮었다. 태양을 똑바로 쳐다봤다.
"오빠, 솔직하게 말해줘. 성형했어?"
태양은 숨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거짓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럼 왜 얼굴이 달라진 거야?"
"달라지지 않았어."
"거짓말하지 마."
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한 달 전 찍은 태양의 사진. 고깃집에서 서연이 몰래 찍은 것.
"이게 오빠야. 한 달 전."
사진 속 태양은 웃고 있었다. 눈꼬리가 처져 있었고, 입술이 두툼했다. 턱 밑에 작은 흉터가 보였다.
서연이 핸드폰을 태양 얼굴 옆에 갖다 댔다. 비교했다.
"다르잖아.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태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빠,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지?"
"...아니야."
"거짓말."
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스트를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쾅 닫혔다.
태양은 핸드폰 화면을 봤다. 한 달 전 자기 얼굴. 익숙한 얼굴. 8년간 거울로 봐온 얼굴.
'이게 나였어.'
지금은 아니었다.
***
오후 3시.
태양은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다. 서연의 주치의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복도 끝 대형 거울 앞을 지날 때, 발이 멈췄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가 또 달라져 있었다.
코가 더 높았다. 턱선이 더 각졌다. 이마 헤어라인이 뒤로 밀려나 있었다.
'이건... 누구야.'
뒤에서 간호사가 지나갔다. 태양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는 사람인가 싶은 표정. 하지만 곧 지나쳤다.
태양은 손목을 확인했다. 숫자가 떠올랐다.
-12:34:27
마이너스였다.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주치의실 문을 열었다.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태양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시죠?"
"한태양입니다. 이서연 환자 보호자."
의사는 차트를 확인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요. 그런데..."
"네?"
"목소리가 좀 다르신 것 같은데요. 감기라도 걸리셨나요?"
태양은 자기 목소리를 들어봤다. 평소보다 낮았다. 쉰 것도 아닌데 톤이 달라져 있었다.
"예. 감기 기운이 좀."
"그러시군요."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그나저나 보호자분 신분증 확인 좀 할게요."
의사가 손을 내밀었다.
태양은 지갑을 꺼냈다. 신분증을 빼는데 손이 떨렸다. 사진 속 자기 얼굴이 낯설었다. 아니, 지금 얼굴이 더 낯설었다.
의사가 신분증을 받아 들었다. 태양을 번갈아 쳐다봤다. 3초, 5초, 10초.
"...본인 맞으시죠?"
"네."
"사진이랑 좀 다르네요."
"살이 빠져서요."
의사는 신분증을 돌려줬다. 의심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
밤 11시 40분.
태양은 경매장 앞에 서 있었다. 낡은 건물 지하. 브로커가 준 검은 명함에 적힌 주소였다.
계단을 내려갔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열자 냉기가 얼굴을 때렸다.
경매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한 사람만 앉아 있었다.
레이디 V.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 없는 가면 너머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태양 씨. 기다렸어요."
"저만 온 건가요?"
"이번 경매는 초대제예요. 당신만을 위한 자리죠."
무대 위에 조명이 켜졌다. 유리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뭔가 떠 있었다. 형체가 없는 안개 같은 것.
레이디 V가 손뼉을 쳤다.
"오늘의 품목. 형상 복원권. 시작가 10년."
태양의 숨이 막혔다.
"10년이요?"
"과거의 당신으로 돌아가고 싶으시다면요. 서연 씨가 사랑했던 얼굴, 목소리, 습관. 모두 되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10년은..."
"아니면 이대로 계속 변하시겠어요? 내일이면 서연 씨도 당신을 못 알아볼 겁니다."
태양은 손목을 봤다. 숫자가 떠올랐다.
-18:52:09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마이너스가 깊어질수록 변화도 빨라졌다.
"시간은 1분. 결정하세요."
레이디 V가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태양은 유리관을 봤다. 안개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저걸 사면 돌아갈 수 있을까. 서연이 사랑했던 한태양으로.
'하지만 10년이면...'
서른다섯 살이 마흔다섯이 된다. 서연과 함께할 시간이 10년 줄어든다.
"30초."
레이디 V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태양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거래합니다."
"현명한 선택이에요."
레이디 V가 버튼을 눌렀다. 유리관이 열리면서 안개가 흘러나왔다. 태양을 향해 다가왔다. 코를 타고 들어왔다.
숨이 막혔다. 폐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그때, 뒤에서 문이 열렸다.
"오빠!"
서연이었다.
태양은 돌아봤다. 서연이 경매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오빠, 여기서 뭐 해?"
"서연아, 너 왜..."
"핸드폰 위치 추적했어. 오빠 요즘 이상해서."
서연이 무대를 봤다. 유리관, 레이디 V, 그리고 태양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안개.
"이게 뭐야?"
레이디 V가 웃었다. 가면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방해꾼이 왔네요. 하지만 늦었어요. 거래는 이미 성립됐으니까."
서연이 태양에게 달려왔다. 손을 뻗었다. 태양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안개가 서연을 밀어냈다.
"으윽!"
서연이 바닥에 넘어졌다. 태양이 손을 뻗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안개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서연아!"
"오빠, 손 줘!"
서연이 일어나 다시 달려왔다. 이번엔 안개를 뚫고 들어왔다. 태양의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
서연의 눈이 커졌다.
"...누구세요?"
태양의 심장이 멎었다.
"서연아, 나야. 태양이."
"아니에요. 당신 내가 아는 사람 아니에요."
서연이 손을 놓았다. 뒷걸음질 쳤다. 눈에 공포가 가득했다.
"서연아, 제발. 나야. 한태양이라고."
"거짓말하지 마세요!"
서연이 소리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태양은 무대 옆 거울을 봤다. 거기 비친 사람은 완전히 낯선 남자였다. 눈동자 색깔도, 코 높이도, 입술 두께도 전부 달랐다.
'이게... 나?'
손을 들어봤다. 거울 속 남자도 손을 들었다. 같은 타이밍.
레이디 V가 박수를 쳤다.
"축하합니다. 형상 복원 완료. 이제 당신은 과거의 한태양입니다."
"뭐가... 뭐가 복원된 거예요?"
태양이 소리쳤다. 레이디 V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연을 가리켰다.
"물어보세요. 그녀에게."
태양은 서연을 봤다. 서연은 여전히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서연아, 나 좀 봐. 제발."
"...오빠 목소리는 맞는데."
서연의 입술이 떨렸다.
"목소리만 오빠야.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태양은 손목을 봤다. 숫자가 다시 떠올랐다.
[경고: 타인 인식률 47%]
레이디 V가 속삭였다.
"임계점은 50%예요. 그 이상 넘어가면 존재가 소멸하기 시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