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약 14분 · 총 7,120자

서연의 각성

주인공: 한태양

복도 끝에서 형광등이 깜빡였다.

태양은 벽을 짚고 한 발씩 내딛었다.

"저기요."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어깨가 손끝을 스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간호사는 멈추지 않았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태양의 손이 허공을 휘젓는 동안 그녀는 그대로 걸어갔다. 구두 소리만 복도에 울렸다.

'이건... 뭐지?'

태양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다섯 손가락이 떨렸다.

손금은 그대로였다. 왼쪽 검지 두 번째 마디에 있는 작은 흉터도 그대로였다. 중학교 때 서연이랑 놀다 베인 자리. 그날 서연이 울면서 약 발라줬던 기억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저, 잠깐만요!"

다른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지나갔다.

태양이 그녀 앞을 막아섰다.

간호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통증은 없었다. 온기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바람이 몸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뿐이었다.

태양은 뒤를 돌아봤다.

간호사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뒤도 안 돌아봤다.

'나... 사라지고 있는 거야?'

숨이 막혔다.

아니, 숨을 쉬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이 없었다.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태양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형광등 아래 거울이 있었다.

거울 속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아..."

태양의 입이 열렸다.

거울 속 남자도 똑같이 입을 열었다.

손을 들었다. 거울 속 남자도 손을 들었다. 태양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광대뼈, 턱선, 눈두덩. 모든 게 낯설었다.

이건 내 얼굴이 아니야.

"이게... 내가 맞아?"

목소리조차 달랐다. 더 낮고, 더 쉰 목소리. 태양은 거울에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그 안에 아무도 없었다.

'한태양'이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었다.

"안 돼."

태양은 거울을 주먹으로 쳤다.

유리가 금이 가지 않았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주먹이 거울을 그대로 통과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무릎이 꺾였다.

타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나오지 않았다. 눈물샘마저 사라진 걸까.

'서연아...'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서연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병실 침대에 누워 있을까. 아니면 또 거울을 보고 있을까. 자기 얼굴이 점점 변하는 걸 보면서 울고 있을까.

'내가 뭘 한 거야.'

태양은 바닥에 손을 짚었다.

차가운 타일.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사라지고 있는데도 촉각은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복도 끝에서 비명이 들렸다.

여자 목소리.

태양의 머리가 번쩍 들렸다.

'서연이?'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가 흔들렸다. 아니, 태양의 시야가 흔들렸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그래도 뛰었다.

307호.

서연의 병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서연아!"

태양이 문을 밀쳤다.

병실 안은 어두웠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침대 옆 거울 앞에 서연이 서 있었다.

그녀의 등이 보였다.

병원복 너머로 가느다란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서연아, 괜찮아?"

태양이 다가갔다.

서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태양의 발이 멈췄다.

서연의 눈이... 이상했다.

눈동자가 떨렸다. 아니, 떨리는 게 아니었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깜빡이고 있었다. 왼쪽 눈은 위를 보고, 오른쪽 눈은 아래를 봤다. 동공이 갈라졌다 합쳐졌다 반복했다.

"나는..."

서연의 입이 열렸다.

목소리가 겹쳤다.

노인의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나는 이순자예요."

"배고파, 엄마."

"회사 가야 하는데."

"오늘 결혼기념일인데."

수십 개의 문장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서연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아아악!"

비명.

태양이 달려들었다.

"서연아! 나야, 태양이야!"

서연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 속에서 수천 개의 시선이 태양을 봤다.

"누구세요?"

서연의 목소리였다.

진짜 서연의 목소리.

하지만 그 눈빛은 서연이 아니었다.

"왜... 여기 있어요?"

태양의 손이 풀렸다.

"나... 태양이야. 한태양."

"태양?"

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누군데요?"

심장이 얼어붙었다.

아니, 심장이 있긴 한 걸까. 태양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무것도 뛰지 않았다.

"나... 너 살리려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연이 거울을 봤다.

거울 속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 코, 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마치 물감을 쏟아놓은 것처럼.

"거울이... 이상해."

# Part 2/3: 전개

서연의 손가락이 거울 표면을 더듬었다.

"여기... 누가 있어요."

태양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아, 진정해. 거울은—"

"손 치워요!"

서연이 팔을 뿌리쳤다.

태양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서연의 팔을 스쳐 지나간 건지, 잡았던 건지조차 구분이 안 됐다.

'촉각도 사라지는 거야?'

서연이 거울에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나 좀 도와줘요. 제발."

거울 속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태양이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에는 서연만 비쳤다. 물감처럼 흘러내린 얼굴. 눈동자가 흩어졌다 모였다 반복했다.

그런데 서연의 뒤편,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사람 형체.

태양이 뒤를 돌아봤다.

병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다시 거울을 봤다.

형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 거울 속에서만 존재하는 남자.

"서연아, 뒤로 물러서."

태양이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

손이 서연의 어깨를 관통했다.

탁—

뒤에서 소리가 났다.

병실 문이 열렸다.

양복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태양 씨."

남자가 웃었다.

거울 속 남자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태양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당신... 누구야."

"브로커예요. 거래 중개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남자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구두 소리가 또렷했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타일이 울렸다.

'이 사람은... 실체가 있어.'

"오래 기다리셨죠. 결과 확인하러 왔습니다."

브로커가 서연을 봤다.

서연은 여전히 거울만 보고 있었다. 브로커가 들어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저 애는 왜 저래요."

태양의 목소리가 떨렸다.

"결과물이니까요."

브로커가 태블릿을 꺼냈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 내렸다.

"한서연 씨에게 수혈된 시간. 총 2,847명 분량. 각각 3개월에서 60년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시간엔 기억이 담겨요. 당연하잖아요?"

브로커가 태블릿을 태양에게 내밀었다.

화면에 숫자들이 빼곡했다.

이름, 나이, 수혈된 시간량.

김영희, 67세, 5년.

박준호, 34세, 8개월.

이순자, 81세, 12년.

끝없이 스크롤이 내려갔다.

"이 사람들이... 다 서연이 안에?"

"정확합니다."

브로커가 태블릿을 거뒀다.

"한서연 씨는 이제 2,847명의 합성체예요. 그들의 기억, 감정, 습관, 트라우마까지 전부 물려받았죠."

서연이 갑자기 웃었다.

노인의 웃음소리였다.

"호호호, 손주가 보고 싶네."

이어서 아이의 목소리.

"엄마 어디 갔어? 무서워."

남자의 목소리.

"야근 또 해야 돼. 미치겠네."

태양이 서연에게 다가갔다.

"서연아, 나 좀 봐. 제발."

서연의 눈동자가 태양을 스쳤다.

1초.

그리고 다시 거울로.

'날 못 보는 거야. 아니면... 안 보는 거야?'

"한태양 씨도 비슷한 상태입니다."

브로커가 말했다.

"거래 대가로 당신의 존재성을 지불했으니까요. 지금 당신의 존재 지수는 23%예요. 임계점 50% 아래로 떨어지면 완전 소멸입니다."

태양이 브로커를 노려봤다.

"처음엔 그런 말 안 했잖아."

"설명서 안 읽으셨죠? 계약서 7페이지 3항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거래자는 대가 지불 시 존재성 감소 위험을 인지하며—'"

"닥쳐!"

태양이 브로커의 멱살을 잡았다.

손이 양복을 움켜쥐었다.

'잡혔어.'

처음으로 뭔가를 제대로 잡았다.

브로커는 웃고 있었다.

"화내봤자 소용없어요. 규칙은 규칙이니까."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태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거짓말."

"진짜예요. 시간 경매장의 거래는 절대불가역이에요. 한 번 지불한 건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브로커가 태양의 손을 떼어냈다.

힘이 셌다. 태양이 버티려 했지만 손목이 꺾였다.

"대신 다른 방법은 있죠."

브로커가 서연을 봤다.

"한서연 씨가 시스템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뭐?"

"경매장 운영자. 지금까지는 저희가 중개만 했지만, 운영자 자리는 비어 있어요. 그 자리에 앉으면 모든 거래 기록에 접근할 수 있고, 규칙을 일부 수정할 수도 있죠."

태양의 눈이 커졌다.

"그럼 서연이를 원래대로—"

"가능할 수도 있어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브로커가 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검은 종이에 은색 글씨.

"한서연 씨가 이 계약서에 서명하면 운영자가 됩니다. 대신 그 순간부터 그녀는 인간이 아니에요. 경매장의 일부가 되는 거죠."

"그게 무슨..."

"감정, 기억, 욕망. 전부 시스템에 귀속됩니다. 한서연이라는 개인은 사라지고, 그저 거래를 집행하는 존재만 남아요."

태양의 입술이 떨렸다.

"그럼 의미가 없잖아."

"한태양 씨는 살릴 수 있어요. 운영자 권한으로 당신의 존재성을 회복시키는 건 가능하니까."

브로커가 계약서를 들었다.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안 돼."

태양이 브로커 앞을 막아섰다.

서연이 거울에서 고개를 돌렸다. 처음으로 브로커를 봤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다시 겹쳤다.

할머니, 아이, 남자, 여자. 수십 개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브로커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에요, 서연 씨."

"도와줘요?"

서연의 눈동자가 흩어졌다 모였다.

"전 지금...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알게 해드릴게요."

브로커가 한 걸음 다가갔다.

태양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손이 양복을 스쳐 지나갔다.

'젠장.'

"비키세요, 한태양 씨. 당신은 이미 23%밖에 안 남았어요. 곧 아무것도 못 합니다."

브로커가 서연 앞에 섰다.

계약서를 펼쳤다.

은색 글씨가 희미하게 빛났다.

"이걸 읽어보세요. 당신의 혼란이 끝납니다."

서연이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눈동자가 글씨를 따라 움직였다.

"운영자... 권한?"

"맞아요. 당신이 주인이 되는 거예요. 더 이상 누군가의 기억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돼요."

서연의 손이 떨렸다.

계약서 쪽으로.

태양이 그녀 앞으로 뛰어들었다.

"서연아! 그거 사기야!"

서연이 태양을 봤다.

눈동자 속에서 수백 개의 시선이 교차했다.

"당신... 누구예요?"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니, 심장이 있긴 한 걸까.

"나... 태양이야. 한태양."

"한태양?"

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자꾸 그 이름을 말하죠?"

태양의 입술이 말랐다.

"나 너 살리려고... 내 존재 다 줬어. 기억 안 나?"

"기억..."

서연의 눈이 흔들렸다.

"제 기억이... 너무 많아요."

그녀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누가 저고, 누가 다른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머릿속에서 계속 싸워요. 나가라고, 내 몸이라고..."

"그만!"

태양이 소리쳤다.

서연이 움찔했다.

처음으로 태양을 똑바로 봤다.

"왜... 우세요?"

태양의 뺨에 뭔가 흘렀다.

손으로 만졌다.

젖어 있었다.

'눈물이 나와?'

사라지고 있는데 눈물은 남아 있었다.

"나... 너 때문에 울어."

태양이 떨리는 손을 뻗었다.

서연의 뺨을 향해.

손끝이 그녀의 피부에 닿았다.

'닿았어.'

촉감이 느껴졌다.

따뜻했다.

"서연아, 나 여기 있어. 보이지 않아도 있어."

서연의 눈동자가 멈췄다.

수백 개로 흩어졌던 시선이 하나로 모였다.

"태양... 오빠?"

목소리가 맑아졌다.

진짜 서연의 목소리.

태양의 가슴이 뛰었다.

'기억했어!'

"그래, 나야. 서연아."

서연의 손이 태양의 손을 덮었다.

"오빠... 왜 이렇게 차가워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빠 손이... 안 느껴져요."

태양이 손에 힘을 줬다.

하지만 손가락이 서연의 뺨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한태양 씨, 시간 없어요."

브로커가 계약서를 서연 앞에 들이댔다.

"지금 서명하지 않으면 당신 둘 다 끝입니다. 한태양은 소멸하고, 서연 씨는 2,847개의 인격에게 잠식당해요."

서연이 계약서를 봤다.

다시 태양을 봤다.

"오빠를... 살릴 수 있어요?"

"서연아, 안 돼. 그거 하면 넌—"

"살릴 수 있냐고요!"

서연이 브로커에게 소리쳤다.

브로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영자 권한으로 가능합니다. 한태양의 존재성을 100%로 회복시킬 수 있어요."

서연이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집어들었다.

"서연아!"

태양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손이 스쳐 지나갔다.

"제발... 하지 마. 나 없어도 돼. 너만 살아 있으면—"

"오빠는 바보예요."

서연이 웃었다.

눈물 흘리면서.

"항상 혼자 다 짊어지려고만 하잖아요. 이번엔 제가 할게요."

"안 돼! 그럼 넌 사라져!"

"괜찮아요."

서연이 계약서를 펼쳤다.

브로커가 펜을 내밀었다.

검은 펜.

잉크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서연이 펜을 받아 들었다.

"서연아, 제발..."

태양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연이 계약서에 펜 끝을 댔다.

그 순간.

거울이 깨졌다.

병실 벽에 걸린 거울이 산산조각 났다.

파편이 바닥에 흩어졌다.

거울 조각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또 다른 서연.

병원복이 아니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눈동자는 하나였다.

흔들리지 않았다.

"계약서에 서명하지 마."

거울 속 서연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차가웠다.

진짜 서연이 펜을 든 채 얼어붙었다.

"너... 누구야?"

"너야."

거울 속 서연이 다가왔다.

구두 소리가 또렷했다.

"정확히는, 네가 될 존재. 운영자로 각성한 후의 너."

브로커가 뒤로 물러섰다.

"이건... 규정 위반입니다. 미래의 자아는 개입할 수 없어요."

"규정?"

거울 속 서연이 웃었다.

총 7,120자 · 약 14분

- 4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마리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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