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6,893자

당신이 날 버린 그날, 나는 돌아왔다

주인공: 서이안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동안, 나는 그의 얼굴을 봤다.

강민혁.

웃고 있었다.

아니, 웃음이 아니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건 맞지만, 그건 안도에 가까웠다.

'드디어 끝났다는 표정이었어.'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계단을 따라 펼쳐졌다. 목이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 것인지 다른 사람 것인지 구분이 안 됐다.

"네가 날 이용했다는 걸 알았어."

그의 목소리가 천장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이용? 뭘?

묻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피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시야가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본 건 계단 위에 서 있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하얀 블라우스, 단정한 포니테일. 웃고 있었다.

'윤서하.'

민혁의 비서.

그녀가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마치 인사처럼.

눈을 떴다.

천장이 낯설었다. 아니, 익숙했다.

3년 전 내 방이었다.

이안은 벌떡 일어나 손을 펼쳤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손톱 밑이 욱신거렸다. 무의식중에 물어뜯은 흔적이 선명했다.

'돌아왔어.'

거울 속 얼굴은 스물넷이었다. 결혼식 당일보다 3년 젊었다. 턱선이 더 부드럽고, 눈가에 주름이 없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날짜를 확인했다.

2021년 5월 14일.

오늘은 호텔 로비에서 강민혁을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피해야 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된다. 약혼도, 결혼도, 죽음도 없다.

간단했다.

이안은 옷장을 열었다. 검은색 원피스를 꺼냈다. 전생에서 입었던 그 옷. 민혁이 "예쁘네요"라고 했던.

집어 던졌다.

대신 회색 블레이저를 걸쳤다. 단추를 채우는 손이 떨렸다. 심호흡을 세 번 했다.

거울 속 나를 봤다.

'괜찮아. 이번엔 다르게 할 수 있어.'

손톱을 물어뜯으려다 멈췄다. 주먹을 쥐었다.

파티장은 샴페인과 향수 냄새로 가득했다.

이안은 구석에 서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아버지는 중년 사업가들과 웃고 있었다. 저쪽 끝에서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강민혁.

검은 수트, 넓은 어깨.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전생에서 본 그 미소.

'가짜야.'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민혁이 다가왔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민혁입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전생과 똑같았다.

이안은 그를 보지 않았다. 시선을 창밖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그렇군요."

민혁이 잠시 멈칫했다. 웃음이 살짝 흔들렸다.

"서이안 씨, 맞으시죠? 아버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상관없어요."

이안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민혁의 손이 그녀의 팔을 스쳤다. 이안은 몸을 움츠렸다. 반사적으로 한 발 물러났다.

민혁이 눈을 크게 떴다.

"죄송합니다. 그냥…"

"괜찮아요."

이안은 그의 눈을 보지 않고 지나쳤다. 뒤에서 민혁의 시선이 느껴졌다. 등이 따갑게 타올랐다.

'보지 마.'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복도는 조용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피가 났다.

'잘했어. 이제 끝이야.'

그날 밤, 민혁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제가 실례를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인사드려도 될까요?"**

이안은 읽고 지웠다.

답장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문자가 왔다.

"오늘 날씨가 좋네요. 산책 어떠세요?"

"커피 한잔 괜찮으실까요?"

"혹시 제가 뭘 잘못했나요?"

이안은 번호를 차단했다.

일주일 후, 아버지가 전화했다.

"민혁이가 너한테 관심 있나 보더라. 괜찮은 애야. 한번 만나봐라."

"싫어요."

"왜? 뭐가 문제야?"

"그냥요."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넌 언제나 그 모양이구나. 혼자 살 거야?"

"네."

전화를 끊었다.

이안은 창밖을 봤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나갔다.

고양이는 젖어 있었다.

이안은 무릎을 꿇었다. 우산을 고양이 위로 기울였다.

"춥지?"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고양이가 고개를 들었다. 노란 눈이 그녀를 봤다.

"조금만 기다려."

편의점에서 참치캔을 샀다. 돌아와서 뚜껑을 따고 바닥에 놓았다.

고양이가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더니 먹기 시작했다.

이안은 우산을 든 채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봤다. 빗소리만 들렸다.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 혼자.'

고양이가 다 먹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이안은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만지면 도망가겠지.'

고양이가 먼저 그녀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이안은 웃었다.

처음으로.

이틀 후, 이안은 카페에 갔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그녀가 보였다.

윤서하.

하얀 블라우스, 단정한 포니테일. 전생과 똑같았다.

이안은 문 앞에서 멈췄다. 손이 떨렸다. 주먹을 쥐었다.

'들어가야 해.'

서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혼자였다. 민혁은 보이지 않았다.

이안은 숨을 들이마시고 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어머, 언니!"

서하가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전생에서 계단 위에서 했던 그 동작.

이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앉으세요. 오랜만이에요."

서하의 목소리는 밝았다. 웃고 있었다.

이안은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등받이에 기대지 않았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게.

"언니, 커피 드릴까요? 제가 살게요."

"아니요."

서하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금방 돌아왔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오빠한테 들었어요. 연락이 안 된다고."

"상관없어요."

"언니, 오빠가 많이 속상해하시던데…"

"그렇군요."

서하가 컵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언니, 혹시 오빠한테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거 아니에요?"

이안은 그녀를 봤다. 서하의 눈은 맑았다. 투명하게 빛났다.

'거짓말쟁이.'

"오해 없어요."

"그럼 왜 피하세요? 오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언니한테 딱 맞는…"

"관심 없어요."

서하의 입이 다물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안은 일어섰다.

"먼저 갈게요."

"언니."

서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언니, 후회하실 거예요."

이안이 멈췄다.

"오빠 같은 사람 다시 못 만나요. 언니 혼자 살 건가요? 평생?"

이안은 돌아보지 않았다. 문을 밀고 나갔다.

밖은 추웠다.

이안은 골목 모퉁이에서 멈춰 섰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벽에 기댔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피가 났다. 맛이 쓰고 비렸다.

'잘했어. 잘한 거야.'

핸드폰이 울렸다.

민혁이었다.

**"서하가 언니를 만났다고 하더군요. 괜찮으세요?"**

이안은 문자를 읽고 지우려다 멈췄다.

'서하가 먼저 보고했어.'

전생에서도 그랬다. 서하는 항상 민혁에게 먼저 말했다. 이안의 행동, 이안의 말투, 이안의 표정까지.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

핸드폰을 쥔 손이 떨렸다.

또 문자가 왔다.

"서하 말로는 언니가 많이 예민해 보이셨다는데,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 있을까요?"

이안은 답장을 쳤다.

"필요 없어요."

전송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다.

'답장하면 대화가 이어져.'

지웠다.

차단 목록에 다시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내렸다.

이안은 우산 없이 걸었다. 옷이 젖었다.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었다.

길고양이가 처마 밑에 있었다. 지난번 그 아이였다.

이안은 무릎을 꿇었다.

"또 만났네."

고양이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울지 않았다. 그냥 봤다.

"나도 혼자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고양이가 다가와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비볐다.

이안은 그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젖은 털이 손에 닿았다.

눈물이 났다.

닦지 않았다. 어차피 빗물과 구분이 안 됐다.

"괜찮아. 우리 괜찮아."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 곁에 있었다.

이틀 후, 아버지가 집에 왔다.

"이안아, 나 좀 보자."

서재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팔짱을 꼈다.

"민혁이 아버지한테 연락 왔다. 네가 연락을 안 받는다던데."

"네."

"왜?"

"관심 없어요."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이안아, 넌 스물일곱이야. 언제까지 혼자 살 거야?"

"평생이요."

"그게 말이 돼?"

"네."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회사 생각 안 해? 민혁이네 그룹이랑 손잡으면 우리 얼마나 커지는데!"

이안은 아버지를 봤다.

"그게 중요해요?"

"당연하지! 넌 외동딸이야. 네가 책임져야지."

"전 책임지고 싶지 않아요."

"뭐?"

"아버지 회사예요. 제 인생 아니고요."

아버지가 책상을 쳤다. 쿵 소리가 울렸다.

"네 이름으로 된 주식이 얼만데!"

"돌려드릴게요."

"이안아!"

이안은 돌아섰다.

"전 나가 살게요. 따로."

문을 닫았다. 뒤에서 아버지의 고함이 들렸다.

귀를 막았다.

짐을 쌌다.

많지 않았다. 옷 몇 벌, 책 몇 권. 노트북.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왔다.

어머니가 계단에 서 있었다.

"어디 가니?"

"밖에 나가 살게요."

"왜?"

"답답해요. 여기."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봤다. 눈빛이 차가웠다.

"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넌 항상 그랬잖니."

이안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사과는 됐어. 그냥 가."

이안은 문을 열고 나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원룸은 좁았다.

이안은 짐을 풀고 바닥에 앉았다.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창문이 없었다. 형광등 불빛만 있었다.

이안은 벽에 등을 기댔다.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이제 시작이야.'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지 않았다.

다시 울렸다. 또 받지 않았다.

문자가 왔다.

**"서이안 씨, 저 강민혁입니다. 번호 바꿨어요. 한 번만 통화 가능할까요?"**

이안은 핸드폰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이 깜빡였다.

'끈질겨.'

일어나서 커튼을 쳤다. 방이 더 어두워졌다.

숨이 막혔다.

사흘째,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심야 시간대였다. 손님이 별로 없었다.

이안은 카운터에 앉아 재고를 정리했다. 손이 차가웠다. 난방이 약했다.

문이 열렸다. 종이 울렸다.

민혁이었다.

이안의 손이 멈췄다.

민혁은 그녀를 봤다. 놀란 것 같았다. 아니, 놀란 척인가.

"여기서 일하세요?"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코드를 찍었다. 삑 소리만 났다.

민혁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손에 캔커피를 들고 있었다.

"이거요."

이안은 받아서 계산했다.

"천오백 원이요."

목소리가 평평했다.

민혁이 카드를 내밀었다. 손이 그녀 손에 닿았다.

이안은 움찔했다. 카드를 떨어뜨렸다.

민혁이 주웠다.

"죄송해요. 제가…"

"괜찮아요."

이안은 카드를 받아 결제했다. 영수증을 건넸다.

민혁은 받지 않았다. 그녀를 봤다.

"서이안 씨."

"손님, 뒤에 분 기다리세요."

뒤엔 아무도 없었다.

민혁이 작게 웃었다. 쓸쓸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나갔다.

문이 닫혔다.

이안은 손톱을 물어뜯으려다 멈췄다. 주먹을 쥐었다.

'왜 여길 알았지?'

소름이 돋았다.

다음 날, 퇴근길에 민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캔커피를 들고.

이안은 걸음을 멈췄다. 돌아가려 했다.

"서이안 씨."

민혁이 일어났다.

"잠깐만요. 5분만."

"싫어요."

"제발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안은 그를 봤다. 민혁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수염이 자라 있었다.

'연기겠지.'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민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싶어요. 왜 절 피하세요?"

"몰라요."

"거짓말이에요."

이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민혁이 다시 말했다.

"이안 씨는 이유 없이 사람을 피하는 분이 아니에요. 뭔가 있어요. 제가… 전생에서 뭘 했나요?"

세상이 멈췄다.

이안은 그를 똑바로 봤다.

민혁이 웃고 있었다. 떨리는 웃음이었다.

"놀랐죠? 저도 기억해요. 돌아왔어요. 당신처럼."

이안의 입술이 말랐다.

"거짓말."

"아니에요."

민혁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은팔찌였다.

"이거, 제가 당신 생일에 드렸던 거예요. 전생에서. 당신이 계단에서 떨어지기 한 달 전."

이안은 그 팔찌를 봤다.

기억났다.

민혁이 웃으며 건넸던 것. '별거 아니에요. 그냥 생각나서.' 그날 밤 서하가 전화했었다. '언니, 오빠가 언니한테 선물 줬대요? 부러워.'

"어떻게…"

"저도 죽었어요. 당신 장례식 다음 날. 교통사고였어요."

민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눈 떴을 땐 1년 전이었어요. 당신 만나기 전. 그래서 이번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을 지킬 수 있다고."

이안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전생에서 날…"

"안 죽였어요."

민혁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안은 뿌리치지 못했다.

"이안 씨, 당신 죽인 건 제가 아니에요. 서하예요."

"거짓말…"

"아니에요. 그날 저도 거기 있었어요. 계단 아래에. 서하가 당신을 밀었어요. 전 막으려 했지만 늦었어요."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손을 빼려 했다.

민혁이 놓지 않았다.

"믿어주세요. 이번엔 제가 지킬게요. 서하한테서."

"손 놔요."

"이안 씨."

"놔요!"

이안이 소리쳤다. 민혁의 손이 풀렸다.

이안은 뒤로 물러났다. 숨이 거칠어졌다.

"당신이 날 죽였어요. 당신 눈을 봤어요. 웃고 있었어요. 안도하고 있었다고요."

민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뭐예요?"

"당신이… 살아났다고 생각했어요. 떨어졌는데 눈을 뜨셨으니까. 그래서 안도했어요. 근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당신 눈이… 감겨버렸어요."

이안은 입을 다물었다.

민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믿기 힘들죠. 저도 알아요. 근데 서하 조심하세요. 그 애 이번에도 똑같이 움직이고 있어요. 당신한테 접근하고, 저한테 보고하고…"

"그만해요."

"이안 씨."

"듣고 싶지 않아요!"

이안은 돌아섰다. 뛰었다.

민혁이 뒤에서 불렀다. 따라오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땐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총 6,893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아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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