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약 14분 · 총 7,060자

배신자의 조건

주인공: 강태민

서연의 손이 태민의 팔을 붙잡았다.

"아직이요."

목소리가 낮았다. 태민은 유적 앞에서 멈춰 섰다. 손끝이 문의 표면에 닿기 직전이었다.

"왜."

"당신을 위한 거예요."

'또 그런 식이군.'

태민은 서연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떨림이 전해졌다.

"뭐가 나를 위한 건데."

"지금은 말 못 해요."

"거짓말은 안 하잖아, 나."

말끝이 흐려졌다. 태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게 싫었다. 거짓말할 수 있었다면 적당히 둘러대고 넘어갔을 텐데.

"알아요. 그래서 더 말 못 하는 거예요."

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두려움이 보였다. 아니,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결의 같은 게 섞여 있었다.

'뭘 숨기는 거지.'

태민은 한 발 물러섰다. 서연의 손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그럼 언제 말할 건데."

"조금만 기다려요. 진우 오빠가 오면..."

말이 끊겼다.

숲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여럿이었다.

서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벌써."

"뭐가."

"추격대요."

서연이 태민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엔 힘이 달랐다. 끌려가듯 유적 뒤편으로 움직였다.

"잠깐, 추격대가 뭔데..."

"조용히 해요."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쳤다. 시야가 흔들렸다. 서연은 멈추지 않았다. 유적 뒤편, 무너진 돌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좁았다.

어둠 속에서 서연의 숨소리만 들렸다.

"여긴."

"은신처예요. 진우 오빠가 만들어둔 곳."

태민의 눈이 어둠에 적응했다. 작은 공간이었다. 벽면에 방수포가 깔려 있었다. 구석에 배낭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물자도 있어요. 최소 이틀은 버틸 수 있어요."

"이틀을 왜 버텨."

서연이 대답하지 않았다.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를 찾는 모양이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여기 흔적 있습니다."

남자 목소리였다. 젊었다. 군인 같은 말투였다.

"주변 수색. 반경 50미터."

"예."

발소리가 흩어졌다.

태민은 숨을 죽였다. 서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양피지였다.

"이거."

서연이 속삭였다. 양피지를 펼쳤다. 빛이 없어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태민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 밝기를 최소로 낮췄다. 희미한 빛이 양피지를 비췄다.

글자가 보였다.

「진실의 문 접촉자 경고문」

문에 손을 댄 자는 시스템의 주목을 받는다.

72시간 내에 선택이 강요된다.

거부 시 40살 너프가 즉시 발동된다.

선택 대상: 타인에게 너프 전가 가능.

조건: 대상자의 동의 불필요.

태민의 손이 멈췄다.

'뭐야, 이게.'

글자를 다시 읽었다. 틀리지 않았다. 40살 너프 앞당김. 전가 시스템.

"나... 문에 손 댔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언제."

"아까. 유적 앞에서."

태민은 기억을 더듬었다. 손끝이 문의 표면에 닿기 직전. 서연이 막았다. 그 전에.

'아니, 그보다 전에.'

진우의 집에서였다. 첫 번째 양피지를 읽을 때. 진우가 건넨 사진 속 문양. 그걸 확대하려고 화면을 만졌을 때.

"사진도 접촉으로 인정되나."

"네. 진우 오빠가 확인했어요. 디지털 이미지도 마찬가지래요."

"그럼 나 이미..."

말이 끊겼다. 72시간. 지금이 며칠째인지 계산이 안 됐다.

"언제부터."

"어제 저녁 7시쯤이요."

태민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지금 시각 오후 9시 14분. 26시간이 지났다.

'46시간 남았네.'

손끝이 차가워졌다. 40살 너프. 인지 능력이나 신체 기능 중 하나를 잃는다. 기억력, 시력, 청력, 운동 능력.

"그래서 막으려고 했던 거예요. 문에 직접 닿으면 카운트다운이 빨라진다고 했거든요."

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얼마나."

"반으로 줄어요. 36시간으로."

태민은 양피지를 다시 봤다. 선택 대상. 타인에게 너프 전가 가능.

"누구한테든 떠넘길 수 있다는 거네."

"그렇죠."

"동의도 필요 없고."

"네."

태민은 서연을 봤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한테 이걸 보여준 이유가 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짓말할 수 없으니까. 물어보면 대답해야 하니까.

"왜 이걸 내게."

"알아야 하니까요."

"뭘."

"선택의 무게를요."

밖에서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2구역 이상 없습니다."

"3구역 수색 중."

"은신처 가능성 있는 곳 체크해."

서연이 몸을 움츠렸다. 태민은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거짓말할 수 있었다면.'

과거가 스쳤다. 20살 생일. 너프를 받던 날. 거짓말하는 능력을 잃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래 거짓말 안 하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달랐다.

# Part 2/3: 전개

하지만 달랐다.

거짓말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위험을 피하는 것도, 그냥 평범하게 대화하는 것조차 거짓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말을 돌리게 됐지.'

직접 답하지 않기. 애매하게 흐리기. 그게 태민이 찾은 방법이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여기."

누군가 돌담 앞에 섰다. 그림자가 틈 사이로 비쳤다.

서연의 손이 태민의 입을 막았다. 따뜻했다. 떨림이 전해졌다.

"안쪽 확인했습니까."

"무너진 돌담뿐입니다. 사람이 들어갈 공간은..."

말이 끊겼다.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잠깐. 이거."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돌을 치우는 소리가 났다.

서연이 배낭을 뒤졌다. 뭔가를 꺼내 태민의 손에 쥐여줬다.

작은 유리병이었다. 액체가 들어 있었다.

"뭐야, 이게."

속삭임조차 위험했다. 서연이 태민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연막탄이요. 던지고 뛰어요."

"어디로."

"유적 반대편. 계곡 쪽."

"너는."

"전 여기 남아요."

태민은 서연을 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빛이 보였다.

'왜 남는데.'

물을 수가 없었다. 대답이 두려웠다.

돌 치우는 소리가 멈췄다.

"이상하네. 최근에 누가 다녀간 흔적이..."

"후퇴하세요!"

갑자기 고함이 터졌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뭡니까."

"함정일 수 있습니다. 일단 거리 확보 후..."

폭발음이 울렸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가까웠다. 땅이 흔들렸다.

"매복이다!"

"2시 방향, 발포!"

총성이 터졌다.

서연이 태민을 밀쳤다. 힘이 세지 않았는데 태민은 뒤로 넘어졌다. 방수포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뒤편에 구멍이 있었다.

"기어가요. 10미터 직진하면 계곡이에요."

"너도."

"안 돼요. 둘이 뛰면 들켜요."

서연이 유리병을 뺏었다. 뚜껑을 땄다. 밖으로 던졌다.

하얀 연기가 퍼졌다.

"지금!"

태민은 망설였다. 서연의 손이 그를 밀었다. 구멍 속으로.

좁았다. 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무릎이 돌에 부딪혔다. 아팠다.

뒤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요! 여기 있어요!"

'뭐야.'

태민은 멈췄다. 돌아보려 했다. 하지만 구멍이 너무 좁았다.

"강태민이요! 제가 숨겨뒀어요!"

서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추격대를 부르는 소리였다.

"확인했습니다. 여성 1명."

"남자는."

"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막 방향 추적 중."

발소리가 멀어졌다.

태민은 계속 기어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배신이야, 이건.'

손끝이 젖었다. 땅이 축축했다. 계곡이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구멍이 끝났다.

밖으로 나왔다. 숲이었다. 나무 사이로 물소리가 들렸다.

태민은 일어섰다. 뒤를 봤다. 유적이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켰다. 메시지였다.

[시스템 알림]

진실의 문 접촉 72시간 경과 중

남은 시간: 42시간 17분

선택 대기 중

아래에 버튼이 두 개 있었다.

[전가 대상 선택하기]

[거부 (40살 너프 즉시 발동)]

태민의 손이 떨렸다. 첫 번째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었다.

[전가 가능 대상 목록]

**1. 박서연 (관계: 협력자 / 거리: 127m)**

**2. 최진우 (관계: 정보 제공자 / 거리: 8.4km)**

**3. 미상 (관계: 추적자 / 거리: 89m)**

세 명이었다.

태민은 첫 번째 이름을 봤다. 박서연. 127미터. 아직 가까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를 팔았는데도.'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누르면 끝이었다. 서연이 대신 너프를 받는다. 동의 없이.

물소리가 가까워졌다.

태민은 계곡 쪽으로 걸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쳤다. 신경 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서연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여기 있어요.' 추격대를 부른 목소리.

하지만 이상했다.

'나를 팔려면 진작 팔았겠지.'

진우의 집에서. 유적으로 오는 길에서. 기회는 많았다.

굳이 은신처까지 데려온 이유가 뭘까.

계곡이 보였다.

물이 흘렀다. 깊지 않았다.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태민은 물가에 앉았다. 스마트폰을 다시 켰다.

목록이 그대로 있었다. 박서연. 최진우. 미상.

'미상은 누구지.'

추적자라고 했다. 89미터. 추격대 중 한 명일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태민은 돌아봤다.

남자였다. 검은 전투복을 입었다. 총을 들지 않았다. 양손을 들어 보였다.

"쏘지 않아요."

목소리가 차분했다. 젊지 않았다. 40대쯤.

"누구."

"추격대 아니에요."

"그럼 뭔데."

"관찰자요."

남자가 한 발 다가왔다. 태민은 물러섰다. 발이 물에 닿았다.

"멈춰."

"알겠어요."

남자가 멈췄다. 손을 내렸다.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관찰자?"

태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운영진이요. 너프 발동을 감시하는."

"그럼 넌 뭘 원하는데."

"선택을 지켜보러 왔어요."

남자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태민과 똑같은 스마트폰이었다.

"당신 화면이요. 실시간으로 공유되거든요."

화면을 돌려 보였다. 전가 대상 목록이 떠 있었다. 박서연. 최진우. 미상.

"미상이 너야?"

"아니요."

남자가 웃었다. 차가운 웃음이었다.

"전 목록에 안 떠요. 시스템 밖 사람이니까."

"그럼 미상은."

"박서연의 언니요."

태민의 손이 멈췄다.

'언니?'

서연은 혼자라고 했다. 가족이 없다고.

"거짓말."

"아니에요. 확인해보세요. 89미터. 지금쯤 유적 안에 있을 거예요."

남자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박서연이 당신을 판 이유도 그거예요. 언니를 살리려고."

"무슨 소리야."

"언니도 72시간 카운트다운 중이거든요. 남은 시간 4시간. 서연이가 대신 전가받기로 했어요."

태민은 뒤로 물러섰다. 발목까지 물이 찼다.

'그래서 양피지를 보여준 거야?'

서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선택의 무게를 알아야 하니까요.'

"그럼 나보고 서연한테 떠넘기라는 거네."

"선택은 자유예요."

"자유? 동의도 없이?"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스템 룰이에요. 전 그냥 전달만."

총성이 들렸다.

멀지 않았다. 유적 방향이었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시작됐네요."

"뭐가."

"언니 쪽 카운트다운이요. 4시간 남았다고 했죠. 거부하면 즉시 발동이에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

"서연이가 대신 받으려면 당신이 서연에게 전가해야 해요. 그래야 서연이 다시 언니한테 넘기거든요."

태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 → 서연 → 언니. 연쇄 전가?'

"그게 가능해?"

"룰에 없는 건 가능한 거예요."

남자가 돌아섰다.

"30분 드릴게요. 그때까지 선택 안 하면 당신 카운트다운도 끝나요."

"잠깐."

"뭐요."

"서연은 알아? 내가 전가할 수 있다는 거."

남자가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당연하죠. 그래서 당신한테 양피지 보여준 거예요."

발소리가 멀어졌다.

태민은 주저앉았다. 물이 허벅지까지 찼다. 차가웠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메시지였다.

[시스템 알림]

2차 선택 강요 발동

남은 시간: 28분 43초

거부 시 양측 모두 너프 발동

아래에 새 버튼이 생겼다.

[박서연에게 전가 (연쇄 가능)]

태민은 화면을 껐다. 손이 떨렸다.

'뭐야, 이거.'

서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추격대를 부를 때의 목소리. 떨리던 손.

'나를 판 게 아니라 시간을 번 거였어?'

양피지를 보여준 것도. 은신처로 데려온 것도. 전부 이 순간을 위해서.

물소리가 커졌다.

태민은 일어섰다. 계곡을 건넜다. 반대편 숲으로 들어갔다.

뛰었다.

유적 방향이었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왜 돌아가는 거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피가 났다. 신경 쓰지 않았다.

유적이 보였다.

돌담이 무너져 있었다. 은신처가 드러나 있었다.

서연이 없었다.

"서연!"

소리쳤다. 대답이 없었다.

발자국이 보였다. 여럿이었다. 질질 끌린 흔적도 있었다.

'데려갔어.'

태민은 흔적을 따라 뛰었다.

100미터쯤 갔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제발."

서연이었다.

"안 돼. 네가 받을 순 없어."

다른 여자 목소리였다. 서연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태민은 나무 뒤에 숨었다.

공터였다.

서연이 무릎 꿇고 있었다. 앞에 여자가 서 있었다. 서연과 닮았다. 언니였다.

"시간 없어. 2분 남았어."

언니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화면이 붉게 빛났다.

"전가받아. 어차피 태민 씨가 너한테 넘길 거야."

"아니에요. 안 넘길 수도 있어요."

"넘긴대. 내가 확인했어."

언니가 서연의 어깨를 잡았다.

"넌 살아야 해. 엄마 약속했잖아."

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흘렀다.

"언니가 더 필요해요. 전..."

"닥쳐!"

언니가 소리쳤다. 손이 떨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떴다.

1:37

태민은 자기 스마트폰을 꺼냈다.

전가 대상 목록이 떠 있었다. 박서연. 버튼을 누르면 끝이었다.

'누르면 서연이 받아. 서연이 언니한테 넘겨. 언니가 너프 받아.'

손가락이 화면 위에 올라갔다.

"태민 씨!"

서연이 소리쳤다. 태민을 본 모양이었다.

언니가 돌아봤다. 눈이 마주쳤다.

"당신이."

"죄송해요."

태민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근데 전 못 눌러요. 이거."

서연의 눈이 커졌다.

"뭐?"

"거짓말 못 하잖아요, 전. 그래서...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언니가 다가왔다. 빨랐다.

총 7,060자 · 약 14분

- 2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예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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