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약 14분 · 총 6,985자

잃어버린 거짓말

주인공: 강태민

계단 난간이 차가웠다.

강태민은 손끝으로 녹슨 철재를 짚으며 한 층씩 올라갔다. 23번가 폐건물. 삼 년 전 화재로 폐쇄된 이후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가로등 불빛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의 회색 눈동자가 계단 위를 향했다.

'미친 짓이지, 뭐.'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세 시간 전 받은 메시지였다.

—당신의 다음 너프는 감정 인식입니다. 막고 싶다면 23번가 폐건물로 오세요.

태민은 화면을 껐다.

"사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왔네."

말끝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그는 항상 그랬다. 확신이 있어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스무 살 이후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진실만 말해야 하니까, 차라리 말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4층 복도에 발을 들이자 바람이 불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태민은 재킷 깃을 세우고 복도 끝을 바라봤다.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이 하나 보였다.

"거기 누구 있어요?"

대답은 없었다.

태민이 몇 걸음 다가서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방 안에는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늦었네요."

여자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녀는 창가에 기댄 채 태민을 바라봤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박서연이에요. 반가워요, 강태민 씨."

"...어떻게 내 이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

서연이 손가락으로 방 안쪽을 가리켰다. 낡은 책상 위에 노트북이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수십 개의 그래프와 숫자가 빼곡했다.

태민은 한 발짝 물러섰다.

"메시지 보낸 사람이 당신이야?"

"맞아요."

"왜?"

"당신이 필요하니까요."

서연이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태민의 이름이 목록 맨 위에 떠 있었다. 이름 옆에는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강태민 / 20세 너프: 거짓말 능력 상실 / 예측 너프(40세): 감정 인식 능력 상실 / 확률 97.3%

"이게 뭐야."

"너프 예측 시스템이에요."

서연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수천 명의 이름이 지나갔다. 각자의 나이, 잃은 능력, 다음에 잃을 능력이 적혀 있었다.

"이게 가능해?"

"십오 년 동안 데이터를 모았어요. 잠 안 자니까 시간은 많거든요."

태민은 그녀를 다시 봤다. 눈동자에 핏줄이 가득했다. 스무 살에 수면 능력을 잃었다는 뜻이었다.

"근데 왜 나한테."

"당신은 거짓말을 못 하잖아요."

서연이 노트북을 닫았다.

"그래서 믿을 수 있어요. 당신이 이걸 보고 뭐라고 하든, 그게 진심일 테니까."

태민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서연이 창가로 다가갔다. 깨진 유리 틈으로 밤바람이 불어왔다.

"너프는 무작위가 아니에요."

"...뭐?"

"누군가 우리를 선별하고 있어요."

태민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통계를 봐요. 특정 직업군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너프를 받아요. 예술가들은 색 인식을, 군인들은 촉각을, 변호사들은 거짓말 능력을 잃죠."

"우연일 수도 있잖아."

"97.3%가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서연이 돌아섰다. 그녀의 눈빛이 태민을 관통했다.

"당신은 스무 살 때 뭐 했어요?"

"...법대 다녔어."

"그것 봐요. 거짓말 못 하는 변호사. 얼마나 완벽한 조합이에요?"

태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녀 말이 맞았으니까.

"정부는 이미 알고 있어요."

서연이 노트북을 다시 켰다. 화면에 문서 하나가 떴다. 정부 로고가 상단에 박혀 있었다.

"너프 적응 프로그램. 겉으로는 시민 지원 사업이지만, 실제로는 감시 시스템이에요. 누가 너프를 받아들이는지, 누가 저항하는지 추적하죠."

"증거는?"

"여기."

서연이 파일을 열었다. 수백 장의 사진이 나타났다. 정부 건물, 비밀 회의실, 그리고 낯선 얼굴들.

"이 사람들은 너프 패턴 연구팀이에요.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부서죠. 하지만 삼 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어요."

태민은 사진 하나를 확대했다. 회의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서연이 보여준 것과 똑같은 형태였다.

"이거 어떻게 구했어."

"물어보지 마요. 대답 안 할 거니까."

서연이 노트북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

"지금 중요한 건 당신이 믿느냐 안 믿느냐예요."

태민은 창밖을 봤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이 깜빡였다.

"믿는다고 치자. 그래서?"

"같이 가요."

"어디로."

"북쪽 유적지. 거기 너프 이전 시대 문서가 남아 있어요."

태민은 고개를 저었다.

"유적지는 정부 통제 구역이잖아. 들어가면 체포돼."

"그래서 당신이 필요한 거예요."

서연이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그녀 얼굴에 감정이 스쳤다.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 함

# Part 2/3: 전개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줘."

태민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서연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적지 입구에 검증 장치가 있어요."

서연이 가방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흑백 사진이었다. 거대한 석조 문이 찍혀 있었다.

"이게 뭔데."

"진실의 문. 거짓말하는 사람은 통과할 수 없어요."

태민은 사진을 받아 들었다. 문 표면에 무언가 새겨져 있었다. 글자는 아니었다. 기호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했다.

"이런 게 실제로 작동해?"

"작동하죠. 세 달 전에 확인했으니까."

서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같이 간 사람이 둘 있었어요. 한 명은 통과했고, 한 명은..."

그녀가 말을 멈췄다.

태민은 사진을 돌려줬다.

"한 명은 뭐?"

"재가 됐어요."

방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태민은 창가로 걸어갔다. 깨진 유리 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아래쪽 골목에서 차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갔다.

'이상하네.'

새벽 세 시에 이 동네를 지나갈 차가 있을 리 없었다.

"서연."

"왜요?"

"우리 추적당하는 거 아냐?"

서연이 창가로 달려왔다. 그녀는 차를 보자마자 노트북을 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나가요. 지금."

"뭐야, 진짜 추적이었어?"

"질문은 나중에."

서연이 태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복도로 나서자 계단 아래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었다.

"위로."

서연이 반대편 계단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문을 열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태민은 난간 너머를 내려다봤다. 검은 차 세 대가 건물을 포위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정부 요원이에요."

서연이 난간에서 물러났다.

"여기서 못 나가면 끝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

"저쪽."

서연이 옆 건물을 가리켰다. 두 건물 사이 간격은 약 삼 미터였다.

태민은 고개를 저었다.

"미쳤어? 떨어지면 죽어."

"안 떨어지면 되죠."

서연이 뒤로 물러서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난간을 딛고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잠깐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 옥상에 착지했다.

"빨리요!"

서연이 손짓했다.

태민은 난간을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이건 진짜 미친 짓이지, 뭐...'

뒤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남자 목소리였다.

태민은 돌아보지 않았다. 뒤로 물러섰다가 전력으로 달렸다. 난간을 밟는 순간 온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발끝이 반대편 난간에 닿았다.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렸다. 서연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태민이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뒤쪽 건물에서 요원 하나가 난간에 섰다. 그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무전기에 대고 뭔가 말했다.

"움직여요."

서연이 태민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3층쯤 내려왔을 때 아래쪽에서 또 발소리가 들렸다.

"막혔어."

태민이 멈춰 섰다.

서연은 복도 쪽을 살폈다. 깨진 창문 하나가 보였다.

"저기로."

"또 뛰어내리자고?"

"아니요. 저 안으로."

서연이 창문을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태민도 따라 들어갔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오래된 사무실이었다. 책상과 의자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

서연이 구석으로 갔다. 바닥에 환풍구 덮개가 있었다.

"여기요."

"설마 저기로 들어가자는 거야?"

"다른 방법 있어요?"

서연이 덮개를 열었다. 좁은 통로가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먼저 들어가요."

태민은 한숨을 쉬고 환풍구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서연이 뒤따라왔다.

좁은 통로 안은 어둡고 답답했다. 태민은 팔꿈치로 몸을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까지 가야 돼?"

"일층 주차장까지요."

"얼마나 남았는데."

"한 이십 미터?"

태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십 분쯤 기어가자 앞쪽에 빛이 보였다. 환풍구 출구였다. 태민이 덮개를 밀어냈다. 주차장이었다. 낡은 차 몇 대가 방치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환풍구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저 차."

서연이 구석에 세워진 검은색 세단을 가리켰다.

"설마 저거 네 차야?"

"아니요. 친구 거."

서연이 차 문을 열었다. 시동이 걸려 있었다.

"친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렇게 말했죠."

태민이 조수석에 탔다. 서연이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출구 쪽에 요원 한 명이 서 있었지만 차를 세우지 않았다. 그냥 지나쳤다.

"왜 안 막아?"

"모르죠. 일부러 보낸 걸 수도 있고."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차는 도심을 벗어나 북쪽으로 달렸다. 가로등이 사라지고 어둠만 남았다.

태민은 창밖을 봤다.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친구 얘기 좀 하자."

"무슨?"

"차 준 친구. 이름이 뭐야."

서연이 핸들을 꺾었다.

"진우요."

"진우가 왜 우릴 도와줘?"

"같은 목적이니까요."

태민은 그녀를 봤다. 서연의 눈에 피로가 가득했다. 십오 년 동안 잠을 못 잤다는 게 새삼 실감났다.

"목적이 뭔데."

"너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요."

차가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차체가 덜컹거렸다.

"그게 가능해?"

"유적지 문서에 답이 있을 거예요."

서연이 속도를 줄였다. 앞쪽에 검문소가 보였다. 차단기가 내려와 있었다.

"정부 검문소예요."

"돌아가자."

"늦었어요."

뒤쪽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왔다. 검은 차 두 대였다.

서연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멈췄다.

검문소에서 경비원 하나가 걸어왔다. 손에 전등을 들고 있었다.

"창문 내리세요."

서연이 창문을 내렸다.

경비원이 안을 들여다봤다. 전등 빛이 태민 얼굴을 비췄다.

"신분증."

태민이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을 꺼내려는데 서연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필요 없어요."

경비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고요?"

"우린 통과할 거예요. 당신이 막을 수 없으니까."

경비원이 허리춤에 찬 무전기를 잡았다.

그 순간 뒤쪽 차에서 누군가 내렸다.

진우였다.

"늦어서 미안."

진우가 경비원에게 다가갔다.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

"통행 허가증이요. 확인해보세요."

경비원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

"이거... 진짜네요."

"그럼 가도 되죠?"

경비원이 차단기를 올렸다.

서연이 액셀을 밟았다. 차가 검문소를 지나쳤다.

"진우는?"

"알아서 빠져나올 거예요."

태민은 백미러를 봤다. 진우가 경비원과 얘기하고 있었다. 뒤쪽 차 두 대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저 서류는 뭐였어."

"위조 문서요."

"들키면 어쩌려고."

"안 들켜요. 진우는 거짓말 천재니까."

태민은 입을 다물었다.

차는 산길을 올라갔다. 이십 분쯤 달리자 앞쪽에 철조망이 나타났다. 녹슨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출입 금지 구역. 위반 시 처벌.

서연이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요."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서연이 가방을 메고 철조망 쪽으로 갔다. 끊어진 부분이 있었다.

"누가 잘라놨네."

"진우가 미리 준비했어요."

서연이 철조망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민도 따라 들어갔다.

숲속은 고요했다. 바람 소리만 들렸다.

서연이 손전등을 켰다. 빛이 나무 사이를 비췄다.

"얼마나 가야 돼?"

"한 삼십 분?"

두 사람은 숲길을 걸었다.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태민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십 퍼센트 남았다.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여기 통신 안 돼?"

"유적지 주변은 전파 차단 구역이에요."

"왜?"

"정부가 막아놨죠. 뭔가 숨기려고."

서연이 멈춰 섰다.

앞쪽에 거대한 석조 건물이 나타났다.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문 표면에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진실의 문이에요."

서연이 손전등을 문에 비췄다. 기호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태민은 문에 다가갔다. 표면을 만지려는데 서연이 그의 손을 잡았다.

"아직이요."

"왜?"

"준비가 필요해요."

서연이 가방에서 양피지 문서를 꺼냈다. 낡은 종이였다. 가장자리가 찢어져 있었다.

"진우가 훔쳐온 거예요. 삼 개월 전에."

태민이 문서를 받아 들었다. 글씨는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맨 아래 한 줄은 한글로 번역되어 있었다.

—너프는 저주가 아니라 선택이다. 60년을 견딘 자만이 진실을 마주할 자격을 얻는다.

"이게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서연이 말을 멈췄다.

태민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어? 신호가 없었는데.'

화면을 봤다. 메시지가 하나 떠 있었다.

발신자는 '관리자'였다.

내용은 짧았다.

—강태민, 당신의 40살 너프가 앞당겨집니다. 72시간 후.

태민의 손이 떨렸다.

"이게 뭐야..."

서연이 화면을 봤다.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누가 보낸 거예요?"

"모르겠어."

태민이 발신 번호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번호는 표시되지 않았다.

"72시간 후면..."

"감정 인식 능력을 잃는다는 거죠."

서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태민은 그녀를 봤다. 서연의 눈빛이 변했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서연?"

"미안해요."

서연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건... 당신을 위한 거예요."

"무슨 소리야."

태민이 다가가려 했다. 서연이 손을 들었다.

총 6,985자 · 약 14분

- 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예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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