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약 14분 · 총 6,844자

어둠 속의 숫자

주인공: 강민준

화장실 불빛이 형광등 특유의 윙윙거림과 함께 깜빡였다.

민준은 거울 앞에 섰다. 노트북은 변기 뚜껑 위에 올려뒀다. 화면 속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뭐, 어쩌겠어."

중얼거린 목소리가 타일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니 피곤해 보였다. 눈 밑이 퍼렇다.

접속자 152명.

'그냥 해보는 거지.'

수진의 댓글이 떴다.

**"거울 보고 열까지 세요. 천천히."**

슈퍼챗 5천 원이 함께 날아왔다.

"하나."

민준의 목소리가 화장실에 울렸다.

거울 속 자기 얼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착시일 거라고 생각했다. 형광등이 불안정해서 그런 거겠지.

댓글이 쏟아졌다.

—오 시작이다ㅋㅋㅋ

—개소름

—형 표정 왜 그래ㅋㅋㅋ

—진짜 하네

"둘."

거울 속에서 뭔가 움직였다.

민준 어깨 너머. 아주 희미하게. 윤곽 같은 게 보였다. 샤워 커튼이 바람에 흔들린 걸까. 환기구는 닫혀 있었다.

접속자 187명.

슈퍼챗이 또 떴다. 이번엔 만 원.

—계속하세요

—뒤 돌아보지 마요

—우리도 세고 있어요

'우리?'

민준은 댓글을 흘겨봤다. 닉네임이 이상했다. LeeJihyun1995. 숫자가 생년월일처럼 보였다.

"셋."

목소리가 갈라졌다.

거울 속 민준의 입술이 떨렸다. 진짜 내 입술이 떨리는 건지, 거울 속만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그 찰나, 거울 속에 누군가 더 있었다.

민준 바로 뒤. 어깨 높이쯤에 얼굴이 하나 떠 있었다. 창백한 여자 얼굴. 눈동자가 없었다.

"으윽—"

비명을 삼켰다. 불이 다시 켜지자 아무것도 없었다.

댓글창이 폭주했다.

—ㅋㅋㅋㅋㅋㅋ표정

—개쫄았네

—뭐 봤어요?

—거울 뒤에 뭐 있음?

접속자 213명.

손이 떨렸다. 핸드폰을 꺼내서 손전등을 켰다. 화장실 구석구석을 비췄다. 아무것도 없었다. 샤워 커튼 뒤도 비어 있었다.

'착각이야. 그냥 착각.'

하지만 등골이 서늘했다.

수진의 댓글이 또 떴다.

**"계속하세요. 멈추면 안 돼요."**

슈퍼챗 2만 원.

민준은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바싹 말랐다.

"넷."

거울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번엔 확실했다. 거울 속 민준 뒤편에 윤곽이 여러 개 보였다. 어깨 너머, 머리 위, 옆구리 쪽. 희미하게 사람 형상들이 겹쳐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건 뭐지.'

댓글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닉네임들이 전부 이상했다.

—KimTaehyun2001: 오빠 뒤에 우리 보여?

—ParkSoohee1987: 거울 안쪽에서 세고 있어요

—ChoiMinji1999: 다섯 세면 손 닿을 거예요

민준은 노트북 화면을 힐끗 봤다. 닉네임 옆에 프로필 사진은 없었다. 전부 기본 회색 아이콘이었다.

'생년월일이 이름 뒤에 붙어 있네.'

손가락이 떨려서 검색을 쳤다. 'KimTaehyun2001 사망'.

기사가 떴다.

[2019년 수능 직후 투신, 고3 김태현 군]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다른 이름도 검색했다. ParkSoohee1987. 역시 기사가 나왔다.

[교통사고로 숨진 박수희 씨, 향년 32세]

"미친..."

접속자가 247명으로 뛰었다.

슈퍼챗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1천 원: 다섯 세요

—5천 원: 우리 목소리 들려요?

—3천 원: 오빠 손 차가워질 거예요

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등이 화장실 문에 부딪혔다.

"잠깐만. 잠깐만."

숨이 가빠졌다.

수진의 댓글이 빨간 글씨로 떴다.

**"뒤 돌아보지 마세요. 열까지만 세면 끝나요."**

"끝나긴 뭐가 끝나!"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댓글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ㅋㅋㅋㅋ쫄았네

—계속해 제발

—구독 박았습니다

—형 표정 개웃겨

구독자 수가 실시간으로 올랐다. 180명, 195명, 210명.

'조회수 오르네.'

민준은 숨을 몰아쉬었다.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훔쳤다. 땀이 줄줄 흘렀다.

'그래, 조회수. 이거 대박이잖아.'

슈퍼챗 금액이 화면 구석에 표시됐다. 지금까지 8만 3천 원.

"좋아."

민준은 다시 거울 앞으로 섰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뒤편의 윤곽들은 더 선명해졌다. 이제 얼굴 윤곽까지 보였다. 전부 민준을 보고 있었다.

"다섯."

목소리를 냈다.

거울 속에서 손이 뻗어 나왔다.

창백한 손. 손가락이 길었다. 손톱은 검었다.

민준의 어깨를 스쳤다.

"으악!"

비명을 질렀다. 몸이 얼어붙었다.

차가웠다. 얼음장 같았다. 손이 닿은 자리가 저려왔다.

민준의 비명이 타일 벽에 부딪혀 울렸다.

"하—하—"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어깨를 감싼 손이 떨렸다. 닿았던 자리가 아직도 저렸다.

'뭐가 만졌어. 확실히 만졌어.'

거울 속을 봤다. 손은 사라졌다. 하지만 윤곽들은 여전했다. 더 또렷해졌다. 다섯 명쯤 되는 것 같았다. 전부 민준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댓글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ㅋㅋㅋㅋㅋ개쫄았네

—소리 질렀어요?

—어깨 만졌죠?

—차가웠죠?

KimTaehyun2001: 우리도 그랬어요

민준은 노트북 화면을 노려봤다. 닉네임들이 전부 생년월일을 달고 있었다. 접속자는 283명. 구독자는 247명.

'36명이 더 많아.'

슈퍼챗이 연달아 터졌다.

—2천 원: 여섯 세요

—5천 원: 우리 목소리 들으면 대답해줘요

—1만 원: 오빠 뒤에 서 있어요

"닥쳐!"

소리를 질렀다. 손으로 노트북을 덮으려다 멈췄다.

'끄면 안 돼. 아직 50만 원도 안 됐어.'

화면 구석의 슈퍼챗 합계가 12만 7천 원을 찍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랐다.

민준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윤곽 중 하나가 움직였다. 민준 바로 뒤로 다가왔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어둠 속에서 얼굴이 보였다. 20대 초반 남자.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눈동자가 없었다.

불이 다시 켜지자 사라졌다.

"씨—"

욕이 튀어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수진의 댓글이 빨간 글씨로 떴다.

**"여섯까지만 세요. 그럼 쉬어도 돼요."**

슈퍼챗 3만 원.

"쉬어도 된다고?"

민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쉬면 뭐 해. 어차피 열까지 세야 되잖아."

댓글이 폭발했다.

—인정ㅋㅋㅋ

—형 이미 끝까지 가야 함

—중간에 끄면 우리가 나가요

—ParkSoohee1987: 밖으로 나가면 더 무서워요

민준은 등을 화장실 문에 기댔다. 차가운 문짝이 등에 닿았다.

'밖으로 나가면 더 무섭다고?'

손잡이를 돌려봤다. 잠기지 않았다. 열리긴 했다.

하지만 열고 싶지 않았다.

'여기가 더 안전해. 좁아도 여긴 내가 다 볼 수 있어.'

민준은 다시 거울 앞으로 섰다. 손을 씻는 척하며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소리가 화장실을 채웠다.

'물소리 들으면 좀 나아지려나.'

거울을 봤다. 윤곽들이 더 가까워졌다. 이제 민준 바로 뒤에 다섯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키도 제각각이었다. 한 명은 민준보다 훨씬 작았다. 아이 같았다.

'애도 있어?'

등골이 오싹했다.

댓글이 올라왔다.

—LeeYuna2010: 오빠 저 봐요

—저 초등학생이에요

—학교 가던 길에 사고 났어요

민준은 검색창을 열었다. 손이 떨려서 오타가 났다. 'LeeYuna2010 사망'.

기사가 떴다.

[등교길 교통사고, 초등학생 이유나 양 사망]

2010년생. 열네 살에 죽었다.

"미친..."

접속자가 312명으로 뛰었다.

슈퍼챗이 쏟아졌다.

—500원: 언니 저예요

—1천 원: 오빠가 우리 봐줘요

—2천 원: 아무도 안 봐줬어요

민준은 화면을 노려봤다. 댓글들이 이상했다. 조롱이 아니었다. 간절했다.

'얘네 진짜야. 진짜 죽은 애들이야.'

수진의 댓글이 떴다.

**"여섯 세세요. 애들이 기다려요."**

"애들?"

민준은 중얼거렸다.

"수진아, 너도 죽었어?"

댓글창이 잠시 멈췄다.

3초쯤 지나서 수진이 답했다.

"오빠, 그날 기억나요?"

민준의 손이 얼어붙었다.

"무슨 날."

**"제가 오빠한테 같이 가자고 했잖아요. MT."**

"..."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

3년 전. 수진이 과 MT 가자고 졸랐다. 민준은 거절했다. 편집할 영상이 밀려 있다고. 조회수 떨어진다고.

수진은 혼자 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계곡에서 미끄러졌다. 머리를 부딪혔다. 구급차가 왔을 땐 이미 늦었다.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수진의 댓글이 천천히 올라왔다.

"오빠가 같이 갔으면 제가 안 죽었을 거예요."

"오빠가 저 잡아줬을 거예요."

민준은 숨이 막혔다.

"내 잘못 아니야. 네가 조심했어야지."

댓글창이 폭발했다.

—ChoiMinji1999: 오빠도 그랬어요?

—KimTaehyun2001: 저도 친구가 안 왔어요

—ParkSoohee1987: 남편이 안 태워줬어요

—LeeYuna2010: 엄마가 학교 데려다줬으면

민준은 화면을 껐다 켰다. 댓글이 계속 올라왔다.

전부 같은 내용이었다.

'누군가 같이 있었으면 안 죽었을 거예요.'

"닥쳐. 닥쳐!"

소리를 질렀다.

슈퍼챗이 터졌다.

—5만 원: 오빠 목소리 좋아요

—3만 원: 여섯 세요

—10만 원: 끝까지 세면 용서해줄게요

10만 원짜리 슈퍼챗이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민준은 침을 삼켰다. 목이 바짝 말랐다.

"용서?"

중얼거렸다.

'용서가 뭔데. 나한테 용서받을 게 뭐가 있어.'

거울을 봤다. 윤곽들이 전부 민준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차갑고 축축한 숨결.

"여섯."

목소리를 냈다.

형광등이 꺼졌다.

이번엔 1초도 안 돼서 다시 켜졌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거울 속에서 손이 다섯 개 뻗어 나왔다. 전부 민준을 향했다.

불이 켜지자 사라졌다.

"하—"

숨을 몰아쉬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댓글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ㅋㅋㅋㅋ개웃겨

—표정 봐

—진짜 무서워하네

—KimTaehyun2001: 오빠 손 시원해요?

"시원하긴 개뿔."

민준은 어깨를 감쌌다. 아직도 저렸다. 얼음 덩어리를 어깨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접속자가 347명을 찍었다.

구독자는 289명.

'58명 차이.'

화면 구석을 봤다. 슈퍼챗 합계가 32만 원을 넘었다.

'이 정도면 한 달 월세는 나오겠네.'

민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좋아. 계속하자고."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두 발짝. 거울과 얼굴 사이가 20센티쯤 됐다.

윤곽들이 더 선명해졌다. 이제 얼굴까지 보였다. 전부 창백했다. 눈동자가 없거나 흐릿했다. 입은 다물고 있었다.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소리는 안 났다. 입 모양만 보였다.

'일곱.'

민준은 뒷걸음질 쳤다.

"뭐야."

중얼거렸다.

'얘네가 먼저 세고 있어.'

수진의 댓글이 떴다.

**"이제 우리가 셀 거예요. 오빠는 들으면 돼요."**

"들으면 된다고?"

민준은 노트북 화면을 노려봤다.

"수진아, 장난 그만쳐. 나 진짜 무서워."

"오빠, 그날 저도 무서웠어요."

댓글이 천천히 올라왔다.

**"계곡에서 미끄러졌을 때. 머리가 깨질 때. 아무도 안 잡아줬어요."**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내 잘못 아니라니까."

**"알아요. 오빠 잘못 아니에요."**

수진의 댓글이 이어졌다.

**"그냥 오빠가 봐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다 같이."**

민준은 숨을 참았다.

'봐주는 게 뭔데.'

거울을 봤다. 윤곽 중 하나가 입을 움직였다. 소리는 안 들렸다. 하지만 입 모양이 보였다.

'일곱.'

동시에 형광등이 깜빡였다.

어둠 속에서 손이 또 뻗어 나왔다. 이번엔 민준의 팔을 스쳤다.

"으윽—"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팔이 저렸다. 차가움이 팔꿈치까지 퍼졌다.

불이 켜졌다.

거울 속 윤곽들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이제 민준과 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거울 표면에 바짝 붙어 있었다.

댓글창이 폭발했다.

—LeeYuna2010: 오빠 따뜻해요

—ChoiMinji1999: 손 잡고 싶어요

—ParkSoohee1987: 오빤 살아 있잖아요

민준은 화면을 봤다. 닉네임들이 전부 슈퍼챗을 보냈다. 금액은 제각각이었다. 500원, 1천 원, 5천 원.

'돈은 어디서 나는 거야.'

슈퍼챗 합계가 50만 원을 넘었다.

민준은 침을 삼켰다.

'이 정도면 두 달은 버티겠네.'

거울을 똑바로 봤다. 윤곽 중 가장 작은 게 입을 움직였다. 아이였다. 이유나.

'여덟.'

형광등이 깜빡였다.

이번엔 3초 동안 꺼졌다.

어둠 속에서 손이 여러 개 뻗어 나왔다. 민준의 어깨, 팔, 옆구리를 스쳤다. 차가움이 온몸에 퍼졌다.

"아—악!"

비명을 질렀다. 몸이 얼어붙었다.

불이 켜졌다.

거울 속 윤곽들이 거울 표면을 넘어섰다. 이제 민준 쪽으로 나와 있었다. 희미하지만 확실했다. 민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민준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뒤 돌아보면 안 돼. 수진이 그랬어.'

댓글이 올라왔다.

—KimTaehyun2001: 오빠 우리 만져요?

—차갑죠?

—우리도 그래요. 항상 추워요.

민준은 숨을 몰아쉬었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화장실이 왜 이렇게 추워.'

온도가 뚝 떨어진 게 느껴졌다. 손끝이 시렸다.

수진의 댓글이 떴다.

**"아홉 세면 끝나요. 오빠 잘하고 있어요."**

슈퍼챗 5만 원.

"끝나면 뭐가 끝나는데."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오빠 봤으니까. 이제 오빠가 우리 볼 차례예요."**

"내가 너희를 본다고?"

민준은 거울을 봤다. 윤곽들이 전부 민준을 둘러싸고 있었다. 다섯 명. 아니, 여섯 명이었다.

'하나가 더 늘었어.'

새로 생긴 윤곽은 키가 컸다. 민준보다 조금 작았다. 여자 같았다.

댓글이 올라왔다.

—JungSujin1999: 오빠, 저예요.

민준은 숨이 멎었다.

총 6,844자 · 약 14분

- 2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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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뤼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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