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그림자
주인공: 최한결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한결 씨!"
서진의 목소리가 멀었다. 아니, 들리긴 했다. 그냥 귀찮았다.
최한결은 벽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이 흔들렸다. 아니, 게이트가 흔들리는 거였다.
'또 이러네.'
C급 게이트치고는 내부 구조가 불안정했다. 입구에서 1킬로도 안 들어왔는데 공간이 삐걱거렸다. 벽이 숨 쉬듯 부풀었다 꺼졌다.
"출혈이 심해요. 지혈부터 할게요."
서진이 응급 키트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한결은 그 손을 봤다.
"...괜찮아."
"괜찮긴요! 귀에서 피가!"
"익숙해."
서진의 손이 멈췄다.
한결은 눈을 감았다. 7년 전에도 이랬다. 게이트가 무너질 때 제일 먼저 오는 건 청각 교란이었다. 귀에서 피가 나고, 평형감각이 사라지고, 그다음엔—
쿵.
바닥이 흔들렸다.
"뭐, 뭐예요?"
서진이 벽을 붙잡았다. 상태창이 허공에 떴다. 빨간 경고창이었다.
[경고: 공간 붕괴 감지]
[출구 좌표 손실]
[재구성 진행 중 - 예상 시간 불명]
"출구가 사라졌어요."
서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결은 눈을 떴다. 상태창을 봤다. 본부 통신은 끊겼다. 좌표는 깨졌다. 출구는 없었다.
"...그렇네."
"그렇긴요! 어떡해요, 이거!"
서진이 단말기를 흔들었다. 화면이 깜빡이다 꺼졌다.
한결은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가 휘청였다. 벽을 짚었다.
"깊이 들어가."
"예?"
"출구 사라졌으면 새로 생길 때까지 기다려. 여기 있으면 깔려."
천장에 금이 갔다. 돌가루가 떨어졌다.
서진이 한결의 팔을 잡았다.
"혼자 못 걸으시잖아요."
"...놔."
"안 놔요."
한결은 서진을 봤다. 스물다섯. F급. 6개월 차 신입.
'왜 이런 애들은 맨날 고집이 세.'
"가자."
한결이 먼저 걸었다. 서진이 옆에 붙었다.
통로는 좁았다. 벽이 숨 쉬듯 꿈틀거렸다. 한결은 손으로 벽을 짚으며 걸었다. 차가웠다. 축축했다. 뭔가 끈적했다.
"이쪽 벽, 이상해요."
서진이 손전등을 비췄다.
벽면에 검은 얼룩이 번졌다. 핏자국 같았다. 아니, 그보다 진했다. 기름 같기도 하고.
한결은 손을 떼지 않았다.
"...계속 가."
"근데 이거—"
"보지 마."
서진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통로가 점점 좁아졌다. 천장이 낮아졌다. 한결은 고개를 숙였다.
'7년 전에도 이랬지.'
공간이 뒤틀릴 때 게이트는 기억을 토해낸다. 과거에 있던 것들이 다시 나타난다. 건물, 물건, 시체.
한결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통로 끝에 문이 있었다.
낡았다. 녹슬었다. 손잡이가 없었다.
서진이 문을 밀었다. 안 열렸다.
"잠긴 것 같아요."
한결은 문을 봤다. 표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글이었다. 희미했다.
[7-04 기록 보관소]
서진이 숨을 삼켰다.
"...7년 전 건축 양식이에요."
"알아."
"그럼 여긴—"
"열어."
한결이 어깨로 문을 밀었다.
끼익.
문이 열렸다.
내부는 어두웠다. 서진이 손전등을 켰다.
방 안은 좁았다. 3평쯤. 벽에 녹슨 단말기가 걸려 있었다. 바닥엔 부서진 기록 장치들이 흩어져 있었다.
서진이 안으로 들어갔다. 한결은 문 앞에 섰다.
"이거... 옛날 헌터 길드 단말기예요."
서진이 단말기를 만졌다. 화면이 깜빡였다.
"작동해요!"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이 단말기를 두드렸다. 화면에 메뉴가 떴다. 파일 목록이 나타났다.
[작전 기록 7-04]
[참여 인원: 8명]
[등급: A급 게이트]
[책임자: 최한결]
서진의 손이 멈췄다.
"...한결 씨."
한결은 벽을 보고 있었다.
"이거, 한결 씨 파일이에요."
"...그래."
"7년 전 거예요?"
"그래."
서진이 한결을 봤다. 한결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재생할게요."
"하지 마."
"왜요?"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지직—
스피커에서 소음이 흘러나왔다. 그다음 목소리가 들렸다.
"7-04 작전 시작. 책임자 최한결, A급 헌터. 팀원 7명 전원 A급. 게이트 진입 완료."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차분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한결의 목소리였다.
서진이 한결을 봤다. 한결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녹음이 계속됐다.
"내부 구조 확인 중. 공간 안정. 몬스터 반응 없음. 예상보다 순조로워."
지직—
"잠깐, 뭐야 이거. 상태창이 깜빡여. 시스템 오류인가?"
다른 남자 목소리였다. 불안했다.
"진정해. 일시적 교란이야. 곧 복구될 거야."
젊은 한결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지직—
"한결아, 이거 이상해. 출구 좌표가—"
여자 목소리였다. 떨렸다.
쿵.
녹음 속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 과거의 그림자 (Part 2/3: 전개)
쾅!
녹음 속에서 두 번째 폭발음이 터졌다.
"출구가 막혔어! 한결아, 상태창이 거짓말하고 있어!"
여자 목소리가 비명처럼 쏟아졌다.
서진이 단말기를 붙잡았다. 손끝이 떨렸다.
"거짓말이라니, 무슨—"
"닥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남자 목소리가 외쳤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지직—
"한결, 네 상태창 봐. A급이라고 떠 있지? 근데 네 체력은 지금 D급도 안 돼."
침착한 남자 목소리였다. 떨림이 섞였다.
"시스템이... 우릴 속이고 있어."
쿵.
녹음이 흔들렸다. 비명이 터졌다. 여러 명이었다.
"안 돼, 안 돼, 이건—"
지직—
소음이 커졌다. 목소리가 끊겼다.
서진이 뒤를 돌아봤다.
한결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등을 보이고.
"한결 씨."
대답이 없었다.
"이게... 뭐예요."
한결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서진이 한 걸음 다가섰다.
"7년 전에 뭐가 있었어요?"
"...꺼."
"예?"
"녹음 꺼."
서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단말기를 봤다. 재생 버튼 옆에 정지 버튼이 깜빡였다.
'눌러야 하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직—
녹음이 다시 이어졌다.
"최한결! 대답해! 살아 있어?"
젊은 한결의 목소리였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여기."
희미한 대답이 들렸다. 여자였다.
"괜찮아?"
"...다리가. 안 움직여."
쿵.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놔! 이거 치워야 돼!"
"안 돼, 손대지 마! 건드리면 전부 무너져!"
목소리들이 겹쳤다. 패닉이었다.
서진이 한결을 봤다. 그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었다.
"한결 씨, 이거—"
"듣지 마."
한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거 처음이야.'
지직—
"한결아, 미안해. 내가... 내가 판단을 잘못했어."
남자 목소리가 흐느꼈다.
"시스템 믿었어. 상태창 믿었어. 그게... 그게 잘못이었어."
쿵.
더 큰 폭발음이 터졌다.
비명이 끊겼다.
정적이 흘렀다.
서진이 숨을 참았다.
지직—
"...한결아."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였다. 숨이 끊어져 가고 있었다.
"너만... 살아."
"그러지 마."
젊은 한결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그러지 마. 나도 같이—"
"안 돼. 넌... 예외야. 시스템이 널... 다르게 봐."
"무슨 소리야."
"너만... 진실을 볼 수 있어. 그러니까..."
목소리가 끊겼다.
지직—
녹음이 멈췄다.
서진이 단말기를 내려다봤다. 화면이 꺼졌다.
방 안이 조용했다.
한결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진이 입을 열었다.
"...예외요?"
한결이 천천히 돌아섰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은 감겨 있었다.
"나가자."
"대체 뭐가—"
"나가."
한결이 눈을 떴다.
서진이 숨을 멈췄다.
'저 눈.'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한결이 문 쪽으로 걸었다. 서진을 스쳐 지나갔다.
"기다려요."
서진이 그의 팔을 잡았다.
한결이 멈췄다.
"설명해 줘요. 예외가 뭐예요? 시스템이 거짓말한다는 게 뭐예요?"
"...몰라도 돼."
"알아야 해요! 지금 우리 출구도 없고, 공간도 붕괴되고 있고—"
쿵.
바닥이 흔들렸다.
서진이 비틀거렸다. 한결이 그녀를 붙잡았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졌다.
"...가야 해."
한결이 서진을 끌었다. 문 밖으로.
통로가 변해 있었다.
벽이 갈라졌다. 틈 사이로 검은 액체가 흘렀다. 바닥에 고였다.
서진이 그걸 피해 걸었다.
"이게 뭐예요?"
"과거."
"예?"
"게이트가 무너질 때 나오는 거야. 7년 전 잔해."
한결이 벽을 짚었다. 손에 검은 액체가 묻었다. 차갑고 끈적했다.
'또 이 느낌.'
과거가 스며들었다. 손끝으로. 팔로. 가슴으로.
"한결 씨, 손 치워요!"
서진이 한결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한결이 손을 뗐다. 손바닥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서진이 물티슈를 꺼내 닦아줬다.
"이거 독성 있을 수도 있어요."
"...괜찮아."
"괜찮긴요!"
서진이 한결의 손을 붙잡았다. 따뜻했다.
한결이 그 손을 봤다.
'왜 이런 애들은.'
"놔."
"안 놔요. 또 만지잖아요."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검은 액체가 점점 많아졌다. 바닥 전체가 젖었다.
서진이 발을 헛디뎠다.
"조심—"
한결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서진이 한결 품에 부딪혔다. 심장 소리가 들렸다. 빨랐다.
"...괜찮아?"
"네."
서진이 물러섰다. 얼굴이 붉었다.
한결은 앞을 봤다.
통로 끝에 빛이 보였다. 푸른빛이었다.
"저게 뭐예요?"
서진이 손전등을 껐다.
# 과거의 그림자 (Part 3/3: 위기-결말부)
푸른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한결이 걸음을 멈췄다.
"왜요?"
서진이 물었다.
"...이상해."
"뭐가요?"
"빛."
한결이 고개를 기울였다.
푸른빛이 맥박처럼 깜빡였다. 느렸다. 규칙적이었다.
'살아 있어.'
서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게이트 코어일 수도 있어요."
"아니야."
"왜요?"
"코어는 하얗게 빛나."
한결이 서진을 뒤로 밀었다. 자신이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통로가 끝났다.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서진이 숨을 삼켰다.
방이었다. 10평쯤. 천장이 높았다. 벽은 매끄러웠다. 금이 없었다.
'7년 전 건축이 아니야.'
중앙에 뭔가 있었다.
푸른빛이 거기서 나왔다.
한결이 다가갔다.
구체였다.
주먹만 했다. 표면이 갈라져 있었다. 틈 사이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서진이 옆에 섰다.
"이게... 코어예요?"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구체 주변에 뭔가 흩어져 있었다.
뼈였다.
서진이 비명을 참았다.
"이건..."
한결이 무릎을 꿇었다.
뼈는 일곱 구였다.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구체를 중심으로.
한결이 손을 뻗었다. 가장 가까운 두개골을 집었다.
작았다. 여자였다.
두개골 뒤편에 금이 가 있었다. 무딘 충격이었다.
'이렇게 죽었구나.'
서진이 한결을 봤다. 그의 손이 떨렸다.
"...한결 씨."
대답이 없었다.
"이 사람들이..."
"내 팀이야."
한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진이 입을 다물었다.
한결이 두개골을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원래 자리에.
그가 일어섰다.
구체를 봤다.
푸른빛이 더 빠르게 깜빡였다.
지직—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구체 위로 뭔가 떠올랐다.
홀로그램이었다.
희미했다. 떨렸다. 사람 형상이었다.
남자였다. 30대쯤. 얼굴이 흐릿했다.
입이 움직였다.
"최한결."
목소리가 울렸다. 기계음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서진이 뒤로 물러섰다.
한결은 움직이지 않았다.
홀로그램이 계속 말했다.
"당신이 여기 온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야."
한결이 물었다.
"7년 전, 당신 팀을 이곳으로 보낸 사람입니다."
서진이 숨을 멈췄다.
한결의 주먹이 쥐어졌다.
"왜."
"시험이었습니다."
"뭐?"
"시스템의 한계를 시험하는. 당신은... 유일한 성공작이었습니다."
홀로그램이 희미하게 웃었다.
한결이 한 걸음 다가섰다.
"무슨 소리야."
"당신은 시스템의 오류가 아닙니다, 최한결. 예외입니다."
"예외?"
"시스템이 보여주는 정보와 진실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한결이 멈췄다.
홀로그램이 구체를 가리켰다.
"이 코어는 7년 전 게이트의 잔해입니다. 당신 팀원들이 죽은 순간을 기록하고 있죠."
서진이 한결을 봤다.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왜 이런 걸."
"당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홀로그램이 손을 뻗었다.
쿵.
구체가 갈라졌다.
빛이 터져 나왔다.
서진이 눈을 가렸다.
한결은 눈을 뜨고 있었다.
빛 속에서 영상이 펼쳐졌다.
7년 전이었다.
무너지는 게이트 안. 비명. 피. 쓰러지는 사람들.
젊은 한결이 보였다. 칼을 들고 있었다. 피투성이였다.
그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 있었다.
[등급: A]
[체력: 98%]
[마나: 100%]
하지만 그 아래 또 다른 글자가 겹쳐 보였다.
[진실: 등급 F / 체력 12% / 마나 고갈]
두 개의 정보가 동시에 보였다.
서진이 숨을 삼켰다.
"저건..."
"시스템은 거짓말을 합니다."
홀로그램이 말했다.
"헌터들에게 보여주는 정보는 조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최한결, 당신만은 둘 다 볼 수 있었죠."
영상 속 젊은 한결이 비틀거렸다. 무릎을 꿇었다.
팀원들이 쓰러졌다. 하나씩.
그들의 상태창은 멀쩡했다. 체력도, 마나도.
하지만 몸은 무너졌다.
쿵.
영상이 끊겼다.
한결이 눈을 감았다.
홀로그램이 다가왔다.
"당신은 살아남았습니다. 진실을 봤기 때문에."
"...닥쳐."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결이 눈을 떴다.
홀로그램이 손을 들었다.
지직—
공중에 글자가 떠올랐다.
한결의 눈앞에만 보이는 글자였다.
서진은 보지 못했다.
한결의 눈이 커졌다.
"이건..."
"새로운 시스템입니다."
홀로그램이 웃었다.
"당신만 접속할 수 있는."
글자가 펼쳐졌다. 상태창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였다.
[접속자: 최한결]
[권한: 관리자]
[기능: 진실 열람 / 시스템 수정 / ??????????]
한결이 뒤로 물러섰다.
"이게 무슨..."
"당신은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홀로그램이 말했다.
"시스템을 믿고 살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보고 싸울 것인가."
서진이 한결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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