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
주인공: 최한결
게이트 안쪽 공기는 늘 달랐다.
최한결은 균열 앞에 서서 코를 킁거렸다. 쇳내.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부패 냄새. 입 안에 쓴맛이 돌았다.
"한결 씨, 뭐 하세요?"
강서진이 뒤돌아봤다. 스물넷. 얼굴엔 여드름 자국도 아직 남아 있는 애송이. 눈앞에 떠 있는 반투명 상태창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웃고 있었다.
"냄새 맡는 중."
"냄새요? 여긴 C급 게이트인데요. 상태창 보세요. 위험도 1.2. 거의 안전 구역이에요."
한결은 대답 안 했다.
서진 뒤로 팀원 셋이 더 보였다. 죄다 B급 이상. 장비는 최신형. 상태창에 표시되는 몬스터 위치 추적기까지 차고 있었다.
'시스템 믿는 애들.'
한결은 허리춤에 찬 낡은 단검을 만졌다. 칼날엔 녹이 슬었고 손잡이는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길드에서 지급한 장비는 진작에 팔아서 술값으로 썼다.
"들어갑니다!"
서진이 선두로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결은 한 박자 늦게 따라 들어갔다. 발밑으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시야가 흐려지더니 이내 어둠 속에 던져졌다.
***
게이트 내부는 폐허였다.
무너진 건물, 갈라진 도로, 녹슨 차량들. 30년 전 게이트가 처음 열렸을 때 집어삼켜진 도시의 잔해.
"상태창 확인!"
서진이 외쳤다. 팀원들이 일제히 허공을 응시했다. 반투명 창에 초록색 글씨가 떴다.
[주변 몬스터: 0마리]
[위험도: 1.2]
[권장 이동 경로: 북쪽 12시 방향]
"봤죠? 깨끗해요. 이번 임무 30분 컷 가능할 듯."
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결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폐에 차가운 기운이 내려앉았다. 아니, 차갑다기보단... 무거웠다. 뭔가 섞여 있었다.
'피 냄새.'
오래된 피가 아니었다. 신선했다. 몇 시간 안 된.
"서진."
"네?"
"여기 뭔가 있어."
"상태창엔 아무것도 안 뜨는데요?"
서진이 피식 웃었다. 옆에 선 팀원도 어깨를 들썩였다.
"F급이 뭘 안다고."
속삭임이 들렸다.
한결은 고개를 돌렸다. 젊은 남자 헌터가 입을 가렸지만 늦었다. 눈빛이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래.'
한결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를 켜려다 말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냄새를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일단 북쪽으로 가요. 상태창 따라가면 돼요."
서진이 앞장섰다.
한결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발밑 아스팔트가 미세하게 떨렸다. 진동. 규칙적이지 않았다.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지하.'
한결은 걸음을 멈췄다. 쪼그려 앉아 손바닥을 바닥에 댔다.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느렸다. 무거웠다. 큰 놈.
"한결 씨, 또 뭐 하세요?"
서진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돌아봤다.
"...가지 마."
"예?"
"북쪽 가지 마."
"왜요? 상태창이 안전하다는데."
한결은 일어섰다. 무릎이 욱신거렸다. 5년 전 부상 후유증. 진통제 먹을 시간을 놓쳤다.
"시스템 믿지 마."
"에이, 또 그 얘기예요? F급 주제에."
젊은 남자 헌터가 비웃었다.
한결은 그를 쳐다봤다. 눈빛만으로. 남자의 웃음이 굳었다.
"...뭐, 뭐야."
"너 이름."
"왜요."
"물어보는 거야."
"...민준이요."
"민준아."
한결이 한 걸음 다가섰다. 민준이 뒤로 물러났다.
"넌 지금 숫자만 보고 있어. 공기 안 보이지? 땅 떨림 안 느껴지지?"
"그,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상태창이 다 알려주는데."
"그래서 죽는 거야."
한결은 돌아섰다. 서진을 봤다.
"난 여기 남는다. 너희끼리 가."
"...진짜 예민하시네."
서진이 한숨 쉬었다.
"좋아요. 혼자 계세요. 우린 임무 완수하고 올게요."
***
서진의 팀이 북쪽으로 사라졌다.
한결은 폐차 그늘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 이번엔 불을 붙였다. 연기가 천천히 올라갔다. 바람이 없었다. 공기가 멈춰 있었다.
'...이상해.'
게이트 안은 늘 바람이 불었다. 차원 균열 때문에 기압 차이가 생겼으니까. 근데 지금은 고요했다.
뭔가 숨죽이고 있었다.
한결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일어섰다. 북쪽을 봤다. 서진 팀이 사라진 방향. 10분쯤 지났을까.
비명이 들렸다.
짧았다. 끊어졌다.
한결은 담배를 뱉었다. 단검을 뽑았다. 낡은 칼날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시작이네.'
그는 달렸다.
***
북쪽 광장은 아비규환이었다.
민준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비명은 안 나왔다. 기절한 듯했다.
서진과 나머지 팀원 둘이 뒤로 물러서 있었다. 눈앞엔 상태창이 떠 있었다. 빨간 경고문이 깜빡였다.
# 감각의 제국 (Part 2/3)
한결이 광장에 들어섰을 때 공기가 무너졌다.
아니, 무너진 게 아니라 짓눌렸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 사방에서 조여들었다.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 숨이 얕아졌다.
'A급.'
서진이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상태창이 오류예요! 계속 깜빡이고—"
"입 다물어."
한결이 낮게 말했다.
서진의 입이 멈췄다. 나머지 팀원 둘도 얼어붙었다. 모두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태창에 떠오른 빨간 글자를.
[오류: 대상 측정 불가]
[경고: 즉시 철수 권장]
[위험도: —]
한결은 상태창 따위 보지 않았다. 그냥 느꼈다.
그림자가 움직였다.
***
건물 잔해 뒤에서 무언가 스며 나왔다.
형체가 없었다. 검은 연기 같기도 하고, 액체 같기도 했다. 바닥을 기어오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를 뚫고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쉐도우 스토커.'
A급 변이종. 빛을 먹고 산다. 그림자 속에선 무적. 상태창으로 위치 추적이 안 된다.
한결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뺐다. 긴장하면 근육이 굳는다. 굳으면 느려진다.
"뛰어."
"예?"
"지금 뛰라고."
서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림자가 튀었다.
소리 없었다. 바람도 없었다. 그냥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서진 앞에 나타났다.
한결이 먼저 움직였다.
발을 찍었다. 바닥이 갈라졌다. 몸을 던졌다. 서진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림자의 촉수가 스쳐 지나갔다. 귓가에 차가운 감촉.
피가 흘렀다.
한결은 바닥에 구르며 단검을 휘둘렀다. 허공. 그림자는 이미 사라졌다.
'빠르네.'
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프지 않았다. 아드레날린 때문. 나중에 아플 거였다.
서진이 바닥에 주저앉아 떨고 있었다.
"저, 저게 뭐예요?"
"A급."
"거짓말… 상태창엔 C급이라고…"
"시스템은 틀려. 자주."
한결이 일어섰다. 무릎이 삐걱거렸다. 진통제. 먹었어야 했는데.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위에서.
한결은 고개도 안 들었다. 공기 흐름으로 알았다.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 차갑고 무거운.
옆으로 굴렀다.
촉수가 바닥을 찍었다. 아스팔트가 움푹 패였다. 금이 사방으로 퍼졌다.
'힘도 세.'
한결은 일어서며 단검을 던졌다. 그림자 중심부를 향해. 칼날이 회전하며 날아갔다.
스르륵.
관통했다. 아니, 관통한 게 아니라 빠져나갔다. 그림자는 실체가 없었다.
'...역시.'
한결은 이를 악물었다. 빛이 필요했다. 그림자는 어둠 속에선 죽지 않는다.
"불 켜!"
한결이 소리쳤다.
서진이 멍하니 쳐다봤다.
"상태창 말고 장비! 조명탄 쏴!"
"아, 아!"
서진이 허리춤을 더듬었다. 손이 떨려서 제대로 안 잡혔다. 조명탄 발사기를 꺼내다 떨어뜨렸다.
그림자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민준을 향해.
***
한결은 달렸다.
무릎이 비명을 질렀다. 5년 전 부상 부위. 인대가 찢어지는 느낌. 개의치 않았다.
그림자가 민준의 목을 감쌌다.
한결이 몸을 날렸다. 어깨로 민준을 들이받았다. 둘이 함께 굴렀다. 그림자의 촉수가 허공을 갈랐다.
민준이 신음했다.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으으… 다리가…"
"입 다물고 기어. 저리로."
한결이 건물 잔해를 가리켰다. 민준이 이빨을 악물고 팔꿈치로 기어갔다.
그림자가 한결을 향했다.
'좋아.'
한결은 단검도 없이 맨손으로 섰다. 눈을 감았다. 시각 정보를 지웠다. 그림자는 어차피 보이지 않는다.
냄새.
쇳내. 부패한 살. 그리고 뭔가 더 있었다. 전기 타는 냄새. 차원 균열에서 나는 특유의.
'핵이 있어.'
모든 A급 변이종엔 핵이 있다. 에너지 중심. 그걸 부수면 죽는다. 문제는 위치.
한결은 숨을 멈췄다. 심장 소리만 들렸다. 쿵. 쿵. 느렸다. 진정됐다.
공기가 일렁였다.
왼쪽.
한결이 몸을 숙였다. 촉수가 머리 위를 스쳤다. 동시에 오른손을 뻗었다. 그림자 속으로. 손이 차가운 액체 같은 걸 뚫고 들어갔다.
뭔가 딱딱한 게 만져졌다.
'핵.'
한결이 움켜쥐었다. 그림자가 경련했다. 촉수들이 사방으로 휘둘렀다. 한결의 옆구리를 찍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
"크윽—"
한결은 놓지 않았다. 손에 힘을 줬다. 핵이 삐걱거렸다.
그림자가 비명을 질렀다.
소리 없는 비명. 공기가 찢어졌다. 한결의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핵이 갈라졌다.
그 순간 빛이 터졌다.
***
조명탄이었다.
서진이 쏜 거였다. 하얀 섬광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림자가 비틀거렸다. 형체가 흐려졌다. 빛 속에선 실체를 유지 못 하는 모양이었다.
# 감각의 제국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한결은 핵을 부수지 않았다.
손을 뺐다. 그림자가 조명탄 빛 속에서 몸부림쳤다. 형체가 녹아내렸다. 촉수들이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렸다.
'아직.'
한결은 바닥에 무릎을 짚었다. 옆구리에서 피가 흘렀다. 갈비뼈 두 대. 부러졌다. 숨 쉴 때마다 찔렸다.
"한결 씨!"
서진이 달려왔다.
"괜찮아요? 지금 치료—"
"가만 있어."
한결이 손을 들어 막았다. 시선은 그림자에 고정한 채.
조명탄 빛이 약해지고 있었다. 30초. 아니, 20초쯤 남았을까.
그림자가 다시 뭉쳐졌다.
'...이상해.'
핵을 쥐었을 때 느낌. 너무 작았다. A급 변이종치곤.
한결은 천천히 일어섰다. 무릎이 휘청거렸다. 서진이 부축하려 했지만 뿌리쳤다.
"저리 가 있어."
"하지만—"
"지금."
한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서진이 입을 다물고 물러섰다.
그림자가 완전히 재생됐다.
아니, 재생이 아니었다.
'커졌어.'
두 배. 아니, 세 배쯤. 촉수 개수도 늘었다. 여덟 개에서 열두 개로.
한결은 이를 악물었다.
'미끼였나.'
작은 핵은 가짜. 진짜는 따로 있다.
조명탄 빛이 깜빡였다. 5초.
그림자가 움직였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라 전부를 향해. 촉수 열두 개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한결은 달렸다. 서진을 향해. 어깨로 밀어냈다. 촉수 하나를 피했다. 두 번째가 허벅지를 뚫었다.
"윽—"
비명은 안 나왔다. 이빨로 혀를 깨물었다. 피 맛이 입안에 퍼졌다.
조명탄이 꺼졌다.
***
어둠이 쏟아졌다.
그림자가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형체도 없이. 공기 자체가 적이었다.
한결은 숨을 참았다. 시각을 지웠다. 청각도 지웠다. 오직 촉각만.
피부로 느꼈다.
왼쪽에서 압력. 한결이 고개를 숙였다. 촉수가 귀를 스쳤다.
오른쪽 발목. 차가운 감촉. 한결이 뛰어올랐다. 촉수가 바닥을 휩쓸었다.
뒤에서 바람. 한결이 몸을 비틀었다. 촉수가 옆구리를 긁었다. 살이 찢어졌다.
'너무 많아.'
한결은 바닥에 착지하며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출혈. 많이 났다.
"한결 씨!"
민준의 목소리. 건물 잔해 뒤에서.
"조명탄 하나 더 있어요! 던질까요?"
"던지지 마."
한결이 낮게 말했다.
"예?"
"빛 켜면 우리 위치 드러나. 어둠 속이 나아."
"미쳤어요? 저것들은 어둠 속에서—"
"닥쳐."
한결은 눈을 감았다. 심장 소리. 쿵. 쿵. 너무 빨랐다. 진정해야 했다.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폐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옆구리 통증이 멀어졌다.
냄새.
쇳내. 부패. 전기.
'어디?'
한결은 코를 벌름거렸다. 냄새를 따라갔다. 북쪽. 아니, 북동쪽. 건물 잔해 뒤.
'거기.'
진짜 핵.
한결은 단검을 주웠다. 바닥에 떨어진 걸. 손잡이가 피로 미끄러웠다. 옷자락에 문질렀다.
그림자가 다시 덮쳤다.
한결은 피하지 않았다.
맞았다.
촉수가 어깨를 뚫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 한결은 비명 대신 웃었다.
"...걸렸어."
촉수를 움켜쥐었다. 차갑고 미끈했다. 손에 힘을 줬다. 놓지 않았다.
그림자가 당겼다. 한결의 몸이 끌려갔다. 바닥에 질질 끌렸다.
'좋아.'
북동쪽으로. 건물 잔해 쪽으로.
한결은 단검을 쥔 손을 뻗었다. 어둠 속으로. 냄새가 가장 진한 곳으로.
칼끝이 뭔가 단단한 걸 찔렀다.
그림자가 얼어붙었다.
한결은 단검을 깊이 박았다. 손잡이까지.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빛이 새어 나왔다.
***
핵에서 나온 빛이었다.
푸른빛. 차원 균열과 같은 색. 그림자의 몸 안쪽에서 퍼져나왔다.
형체가 드러났다.
인간형. 아니, 인간이었던 것. 뼈와 살이 뒤섞인 형태. 가슴 한가운데 푸른 구슬이 박혀 있었다. 한결의 단검이 그걸 반쯤 쪼갰다.
그림자가 비명을 질렀다.
이번엔 소리가 났다. 귀를 찢는 금속음. 한결의 고막이 터졌다. 피가 귓구멍에서 흘렀다.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한결은 단검을 비틀었다. 핵이 완전히 갈라졌다.
그림자가 무너졌다. 연기처럼 흩어졌다. 촉수들이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렸다.
한결은 바닥에 쓰러졌다.
***
얼마나 지났을까.
누가 한결을 흔들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안 들렸다. 귀가 먹었으니까.
서진이었다. 눈물 범벅. 입 모양으로 읽었다.
'살아 있어요?'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었다. 목 근육이 말을 안 들었다.
서진이 뭔가 더 말했다. 읽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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