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약 14분 · 총 6,967자

굴욕의 무게

주인공: 이준혁

판자가 기울어지는 순간, 이준혁의 발이 허공을 휘저었다.

"으윽—!"

몸이 뒤로 젖혀지면서 등이 먼저 바닥과 부딪혔다. 폐에서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2미터짜리 판자가 천천히 기울어지며 떨어졌다.

쾅!

판자가 그의 가슴과 배를 덮쳤다. 갈비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린 것 같았다. 온몸의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판자 틈으로 보이는 천장의 형광등이 흔들렸다. 아니, 흔들리는 건 그의 시야였다.

"으으..."

신음만 겨우 새어 나왔다. 오른팔이 판자 아래 깔려 있었다. 어깨에서 손끝까지, 마치 불에 달군 쇠막대를 박아 넣은 것 같은 통증이 퍼졌다.

'또, 또 다쳤어...'

3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지역 예선 결승전. 마지막 세트 듀스. 높게 뜬 토스를 올리려다 상대 선수와 공중에서 부딪혔다. 떨어지면서 오른쪽 어깨부터 바닥에 박혔고, 그게 끝이었다.

"선생님!"

민지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폐가 눌려서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헛바람만 새어 나왔다.

"헐, 대박..."

다른 목소리였다. 서연이었다.

"진짜 깔렸네."

"언니, 우리 어떡해?"

"일단 내려가야 되는데..."

'...뭐?'

이준혁의 눈이 커졌다. 판자 틈으로 보이는 2층 난간에 여학생 셋이 매달려 있었다. 민지, 서연, 그리고 1학년 수비수 한예린.

"선생님한테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미쳤어? 나 무서워."

"그럼 어떻게 내려가는데."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도와달라는 말은 없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내려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나, 나 여기...'

말을 해야 했다. 판자를 치워달라고,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 때문에 공기가 조금씩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 저기 봐. 판자 끝에 발 디디면 되겠다."

예린의 목소리였다.

"어, 진짜?"

발소리가 들렸다. 판자 위를 걷는 소리. 그리고—

쿵.

무게가 더해졌다.

"으윽!"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오른팔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목으로 통증이 번졌다. 눈앞이 하얘졌다.

"어? 선생님 소리 안 들려?"

"몰라, 기절한 거 아냐?"

"에이, 괜찮겠지. 어른인데."

쿵. 쿵.

또 발소리. 두 명이 더 판자 위로 올라갔다.

"야, 조심해. 흔들려."

"언니가 먼저 내려가."

"알았어, 잠깐만."

이준혁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의식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아, 안 돼...'

정신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이거 봐. 선생님 표정."

"뭐?"

"폰 꺼내 봐. 찍어야 되는데."

"진짜? 지금?"

"응. 이거 대박인데."

찰칵.

셔터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동영상 녹화 시작음.

"ㅋㅋㅋ 선생님 개웃겨. 판자 밑에서 벌레처럼—"

"서연아!"

민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폰 꺼. 지금 당장."

"왜? 재밌잖아."

"재밌긴 뭐가 재밌어. 선생님 다쳤다고!"

"에이, 좀만. 애들한테 보내야 되는데."

"야!"

민지가 판자에서 뛰어내렸다. 쿵 소리와 함께 무게가 조금 줄었다. 이준혁의 폐로 공기가 조금 더 들어왔다.

"...하아..."

숨을 헐떡였다. 눈을 떴다. 천장의 형광등이 다시 보였다. 흐릿하게.

위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폰 내놨으라고!"

"싫어. 언니가 뭔데."

"서연아, 제발—"

"이미 보냈는데? ㅋㅋ 단톡방에."

"...뭐?"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혁은 판자 틈으로 하늘을 봤다. 체육관 천장에 난 작은 창문 너머로 구름이 흘러갔다. 느리게.

'...집에 가고 싶다.'

그때, 체육관 문이 벌컥 열렸다.

"야, 거기 누구야!"

굵은 목소리. 박철수 관리인이었다.

"뭐 하는 거야 2층에서! 위험하다고 몇 번을 말했어!"

"아, 아저씨!"

민지가 소리쳤다.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판자 밑에 깔렸어요!"

"...뭐?"

박철수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뛰는 소리. 그리고 판자 옆에 멈춰 섰다.

"이런 미친..."

박철수가 판자를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위에 여학생 둘이 아직 매달려 있었다.

"야! 너희 당장 내려와!"

"네, 네!"

서연과 예린이 황급히 판자에서 뛰어내렸다. 쿵쿵 소리와 함께 무게가 확 줄었다.

박철수가 판자를 들어 올렸다.

"으윽..."

이준혁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지자 폐로 공기가 밀려들었다. 너무 급격하게.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민지가 다가왔다.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괜찮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준혁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오른팔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깨에서 손끝까지 감각이 없었다.

'또, 또야...'

박철수가 그의 팔을 잡았다.

"천천히. 천천히 일어나 봐."

"네, 네..."

몸을 일으키려는데 시야가 빙글 돌았다. 무릎에 힘이 안 들어갔다.

"선생님!"

민지가 반대편에서 부축했다. 작은 손이 그의 허리를 감쌌다. 체육관 바닥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보건실 가야겠어."

박철수가 중얼거렸다.

"아니, 병원이 낫겠다. 어깨 봐. 저거 빠진 거 아냐?"

"저, 저기..."

이준혁이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그냥 좀 쉬면..."

"쉬긴. 얼굴이 새파래서."

박철수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민지가 옆에서 떠받쳤다. 둘이 양쪽에서 부축하자 겨우 걸을 수 있었다.

체육관 문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세 걸음 걷는데 숨이 찼다. 갈비뼈가 부러진 건 아닐까. 숨 쉴 때마다 옆구리가 찌릿했다.

"선생님."

민지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응?"

"제가,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힘이 없었다.

뒤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우리도 가야 되는 거 아냐?"

"닥쳐."

"왜?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지금 그게 중요해?"

민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생님 다쳤잖아! 네가 영상 찍어서—"

"야, 나만 찍은 거 아니거든? 예린이도 찍었어."

"그게 지금 문젠가!"

고함이 체육관에 울렸다. 이준혁의 어깨가 움찔했다. 박철수가 그를 더 세게 붙잡았다.

"야, 애들아."

박철수가 뒤를 돌아봤다.

"너희 지금 교무실 가서 담임한테 보고해. 알았지?"

"...네."

예린이 작게 대답했다.

"서연이 너도."

"...왜요."

"왜긴. 네가 찍었잖아."

"찍으면 어때서요. 재밌는데."

"...뭐?"

박철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 진짜로요. 선생님이 판자 밑에 깔려 있는데 표정이 완전—"

"서연아!"

민지가 소리쳤다.

"그만해!"

"왜? 사실이잖아. 언니도 봤잖아. 완전 벌레 같았어."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이준혁의 발이 멈췄다. 박철수와 민지가 그를 붙잡고 있었지만 걸음을 멈췄다.

'벌레.'

귓가에서 윙 소리가 났다. 3년 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들었던 소리. 복도에서 들려오던 코치의 목소리.

'저 정도 부상으로 포기하다니. 근성이 없어.'

'세터가 멘탈이 저 모양이면 팀 전체가 무너지는 거야.'

'차라리 잘됐어. 저런 애 없는 게 나아.'

"선생님?"

민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선생님,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가 없었다. 오른팔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등으로 통증이 번졌다. 온몸이 떨렸다.

"...가자."

박철수가 그를 이끌었다.

체육관 문을 나섰다. 복도에 햇빛이 들어왔다. 눈이 부셨다. 창문 너머로 운동장이 보였다. 텅 비어 있었다.

보건실까지는 복도 끝이었다. 30미터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풀렸다.

"선생님, 조금만 더요."

민지가 그를 떠받쳤다. 작은 손이 그의 허리를 감쌌다. 힘이 있었다. 배구를 오래 한 손이었다.

'이 애 언니가 누구더라...'

아까 서미현이 한 말이 떠올랐다.

'걸 언니 기억나?'

기억났다. 강민아. 10년 전 여자 배구부 주장. 자신이 남자 배구부에 있을 때 같이 훈련했던 선배였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더라.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다가왔다. 교사였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어머, 이 선생님?"

그가 멈춰 섰다.

"무슨 일이에요?"

"체육관에서 사고가 났어요."

박철수가 대답했다.

"2층 판자가 무너져서."

"세상에..."

여교사가 이준혁에게 다가왔다. 얼굴을 들여다봤다.

"병원 가야겠어요. 제가 차 가져올게요."

"아, 아닙니다."

이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그냥 좀 쉬면..."

"쉬긴요. 어깨 좀 보세요. 각도가 이상한데."

여교사가 그의 오른쪽 어깨를 가리켰다. 이준혁이 내려다봤다.

어깨가 처져 있었다. 팔이 축 늘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

탈구였다. 3년 전에도 이랬다. 응급실에서 의사가 팔을 잡아당겨서 다시 끼웠었다. 그때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났다.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병원은 안 갑니다."

이준혁이 여교사의 손을 뿌리쳤다. 오른팔이 흔들렸다. 통증이 번졌지만 참았다.

"이 선생님, 지금 어깨가—"

"괜찮다고요."

목소리가 나왔다. 떨리지 않았다. 자신도 놀랐다.

박철수가 그를 붙잡았다.

"선생님, 무리하지 마세요."

"손 놔주세요."

"...뭐?"

"놔달라고요."

박철수의 손이 풀렸다. 민지도 한 발 물러섰다.

이준혁은 벽에 기댔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버텼다. 오른팔을 왼손으로 받쳤다. 어깨에서 피가 빠지는 느낌이었다.

'3년 전이랑 똑같아.'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서미현이 걸어왔다.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

"이 선생님."

그가 멈춰 섰다.

"교무실로 오시죠. 사고 보고서 작성해야 해요."

"...지금요?"

"네. 지금이요."

서미현의 눈빛이 차가웠다. 이준혁은 그 눈을 봤다. 10년 전에도 본 눈이었다.

'넌 항상 그래. 도망가기 바쁘지.'

복도가 기울었다. 아니, 자신이 기울고 있었다. 벽을 짚은 손에 힘을 뺐다.

"보고서는 나중에—"

"나중은 없어요."

서미현이 한 발 다가섰다.

"학부모한테 연락 가기 전에 처리해야죠. 안 그러면 선생님 책임 문제로 번져요."

"제, 제 책임이요?"

"당연하죠. 수업 시간에 학생들 방치했잖아요."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복도에 울렸다. 민지가 움찔했다.

이준혁의 입술이 떨렸다.

"저는, 저는 그냥..."

"그냥 뭐예요?"

서미현이 물었다.

"그냥 숨고 싶었다? 10년 전처럼?"

"...!"

숨이 막혔다. 가슴이 조여들었다. 시야가 좁아졌다.

민지가 끼어들었다.

"선생님은 잘못 없어요!"

"강민지."

서미현이 그를 돌아봤다.

"넌 교무실 가서 담임 선생님 만나. 알았지?"

"하지만—"

"가."

한 단어였다. 하지만 민지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는 이준혁을 한 번 보더니 복도를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박철수와 여교사도 물러섰다. 복도에 서미현과 이준혁만 남았다.

"따라오세요."

서미현이 돌아섰다. 이준혁은 벽에서 몸을 떼었다. 다리가 풀렸지만 걸었다.

교무실까지 20미터. 문이 열렸다. 책상 너댓 개가 보였다. 텅 비어 있었다.

서미현이 자기 책상으로 갔다. 서류를 내려놨다. 그리고 옆 책상을 가리켰다.

"거기 앉으세요."

이준혁의 책상이었다.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한 장 있었다.

사표 용지.

"...이건."

"아까 제가 놔뒀어요."

서미현이 의자를 빼냈다.

"앉으세요. 어차피 쓸 거잖아요."

이준혁은 앉지 않았다. 사표를 봤다. 흰 종이. 빈칸이 많았다.

'벌써 도망가려고?'

서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10년 전처럼 또 도망칠 거예요?"

"...전 도망간 적 없습니다."

"없어요?"

서미현이 웃었다. 차가운 웃음이었다.

"그럼 뭐죠? 졸업식 전날 갑자기 사라진 건?"

"그건..."

"배구부 애들이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일주일 동안.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씹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졸업식 날 혼자 왔죠. 상 받으러. 최우수 세터 상."

이준혁의 손이 떨렸다.

"그, 그때는..."

"그때는 뭐예요? 어깨 다쳐서? 그래서 애들한테 말도 안 하고 사라진 거예요?"

대답할 수 없었다. 목이 막혔다.

서미현이 창밖을 봤다. 체육관이 보였다.

"네가 여기 온 이유 알아요?"

"...?"

"내가 추천했거든요."

이준혁이 그를 봤다. 서미현은 창을 보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한테. 이준혁이라는 애가 있다고. 배구 좀 한다고. 애들 가르치기 딱 좋다고."

"왜... 왜 저를..."

"네가 이 학교에서 끝내지 못한 일이 있잖아."

서미현이 돌아봤다.

"10년 전에. 전국체전 본선 진출. 기억나요?"

기억났다. 마지막 경기. 5세트 듀스. 자신의 토스가 빗나간 순간.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었다. 민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괜찮으시려나..."

"모르겠어. 얼굴이 진짜 안 좋았는데."

"내 잘못인가..."

목소리가 멀어졌다.

서미현이 책상에 기댔다.

"그 애들, 네가 10년 전에 버린 후배들의 동생들이야."

"...네?"

"특히 강민지."

서미현의 눈빛이 변했다.

"걔 언니 기억나요? 강민아."

이준혁의 얼굴이 하얘졌다.

강민아. 여자 배구부 주장. 자신이 사라진 다음 날 체육관 옥상에서—

"그만해요."

이준혁이 말했다.

"...뭐?"

"그만하라고요!"

소리쳤다. 교무실에 울렸다. 복도까지 들렸을 것이다.

서미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봤다.

이준혁의 다리가 풀렸다. 의자에 주저앉았다. 사표 용지가 눈앞에 있었다.

"...쓰세요."

서미현이 말했다.

"그게 편하잖아요. 선생님은."

"저는..."

"아니면 끝까지 해봐요. 이번엔."

총 6,967자 · 약 14분

- 2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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