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밧줄
주인공: 이준혁
체육관 바닥에 코피가 떨어졌다.
"네가 감히 내 토스에 불만을 가져?"
강민지의 손이 1학년 후배 서연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서연의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언니, 저는 그냥..."
"그냥? 리시브 하나 제대로 못 올리면서 내 토스가 낮다고?"
민지의 목소리가 체육관 천장까지 울렸다.
이준혁은 체육관 입구에 서 있었다. 손에 든 출석부가 미세하게 떨렸다.
'저기... 저걸 말려야 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민지가 서연을 밀쳤다. 서연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코를 감쌌다. 붉은 액체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일어나. 훈련 안 끝났어."
다른 선수들은 네트 너머에서 구경만 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이준혁의 목구멍이 말랐다.
"저기... 그게..."
목소리가 나오긴 했다. 하지만 개미만큼 작았다.
민지가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차가웠다.
"선생님?"
"그만... 좀..."
"뭐라고요? 잘 안 들리는데요."
민지가 한 발짝 다가왔다. 이준혁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출석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선생님은 가만히 계세요. 이건 우리 팀 일이니까."
민지가 돌아서서 서연을 내려다봤다.
"30분 동안 리시브 연습. 백 개 못 채우면 오늘 못 가."
서연이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났다. 코피가 유니폼에 번졌다.
이준혁은 안경을 벗어 닦았다. 핑계였다. 그냥 눈을 마주치기 싫었다.
'10년 전에도 이랬지.'
기억이 떠올랐다.
고3 여름. 지역 예선 결승전. 자신이 올린 토스가 너무 앞쪽으로 떨어졌고, 주장이 무리하게 스파이크를 치다가 네트에 어깨를 부딪혔다. 뚝, 하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돌았다.
'네 탓이야, 이준혁.'
그날 주장이 했던 말.
'네가 제대로 토스만 올렸어도.'
이준혁은 안경을 다시 썼다. 시야가 선명해졌지만 현실은 흐릿했다.
민지가 서연에게 공을 던졌다. 서연이 비틀거리며 받아냈다.
"다시."
공이 날아왔다. 서연의 팔이 떨렸다.
이준혁은 체육관 구석으로 걸어갔다. 선수들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난 여기 있어도 없는 사람이니까.'
창고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먼지 냄새가 풍겼다.
뭔가 눈에 걸렸다.
2층 창고 선반 위에 낡은 밧줄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 나무판자가 쌓여 있었다.
'이게... 아직 남아 있었네.'
10년 전, 남자 배구부가 쓰던 근력 훈련 도구였다. 판자 위에 여러 명이 올라서면, 2층에서 밧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이준혁은 판자를 끌어냈다. 먼지가 확 날렸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손이 또 떨렸다. 판자 모서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선생님, 뭐 하세요?"
민지의 목소리였다. 차갑고 날카로웠다.
이준혁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판자만 내려다봤다.
"저기... 이걸..."
"이걸요?"
민지가 다가와 판자를 발로 툭 쳤다.
"이게 뭔데요?"
"그게... 옛날에... 근력 훈련..."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민지가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근력 훈련이요? 우리가 역도 선수예요?"
다른 선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서연만 멀리서 코를 닦고 있었다.
이준혁은 밧줄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이걸... 들어올려보세요."
"뭐?"
민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판자 위에... 올라서면... 제가..."
"그게 벌칙이에요?"
민지가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재밌네. 선생님이 우릴 들어올린다고요?"
"저기... 그게 아니라..."
"좋아요. 해보죠."
민지가 손뼉을 쳤다.
"다들 판자 위로. 6명 다."
선수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킥킥 웃었다.
"언니, 진짜 올라가요?"
"왜, 무서워? 어차피 선생님이 못 들어올릴 텐데."
민지가 제일 먼저 판자 위에 올라섰다. 다른 선수들이 따라 올라갔다.
서연만 망설였다.
"너도 올라와. 빠지면 훈련 두 배야."
서연이 판자 끝에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6명의 무게가 판자를 눌렀다.
이준혁은 2층 계단을 올라갔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밧줄이 눈앞에 있었다. 굵고 거칠었다. 손바닥이 벌써 따가웠다.
"선생님, 준비됐어요?"
민지의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이준혁은 밧줄을 잡았다. 손이 미친 듯이 떨렸다.
'안 돼. 이러면 힘을 못 써.'
심호흡을 했다. 소용없었다.
"자, 시작하세요!"
민지가 외쳤다. 선수들이 웃었다.
이준혁은 밧줄을 당겼다.
판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6명이면 평균 60kg씩만 잡아도 360kg. 거기에 판자 무게까지 합치면 400kg은 넘었다.
'손이... 떨려서...'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판자가 3cm 떨어졌다.
민지가 웃음을 멈췄다.
"뭐야, 진짜 올라가는 거야?"
이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밧줄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어깨에서 뜨거운 게 번졌다. 10년 전 찢어진 인대가 비명을 질렀다.
5cm.
서연이 판자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발을 옮겼다.
"언니, 이거 진짜 위험한 것 같은데..."
"닥쳐. 넌 가만히 있어."
민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이준혁은 눈을 감았다. 밧줄만 느껴졌다. 거친 섬유가 살갗을 긁어냈다.
10cm.
"미친, 저 깡마른 게 어떻게..."
누군가 중얼거렸다.
이준혁의 입술이 터졌다. 피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이건... 내가 아니야.'
손이 떨리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15cm.
판자가 흔들렸다. 선수 하나가 비명을 삼켰다.
"선생님, 그만하세요!"
서연의 목소리였다. 떨리고 있었다.
이준혁은 눈을 떴다. 시야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안경이 땀으로 흐려졌다.
20cm.
"이봐요, 진짜 위험하다고요!"
다른 선수가 소리쳤다.
민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판자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무릎을 굽혔다.
'저 눈빛... 뭐야.'
이준혁을 올려다보는 민지의 시선이 흔들렸다.
이준혁의 어깨에서 뚝 소리가 났다.
통증이 팔 전체를 타고 내려왔다. 손가락 끝까지 저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25cm.
"선생님!"
서연이 울먹였다.
판자 위 선수들이 서로를 붙잡았다. 중심을 잃으면 떨어질 높이였다.
이준혁은 밧줄을 다시 당겼다.
30cm.
삐걱.
밧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민지가 위를 올려다봤다. 밧줄의 한 가닥이 풀어지고 있었다.
"미친, 저거 끊어지는 거 아냐?"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이준혁은 밧줄을 놓지 않았다.
'아직... 안 돼.'
35cm.
판자가 기울었다. 한쪽 끝이 먼저 올라가고 있었다.
"으악!"
서연이 미끄러졌다. 민지가 손을 뻗어 서연의 팔을 붙잡았다.
"놓지 마!"
민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준혁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40cm.
밧줄의 두 번째 가닥이 풀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발 그만하세요!"
서연이 울고 있었다.
이준혁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밧줄만 보였다.
'네 탓이야, 이준혁.'
10년 전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네가 제대로만 했어도.'
45cm.
판자가 완전히 기울었다. 선수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민지가 서연을 끌어안았다. 다른 선수들도 서로를 붙잡았다.
"이거 진짜 죽는 거 아냐?"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50cm.
이준혁의 손바닥이 찢어졌다. 밧줄이 붉게 물들었다.
삐걱. 삐걱.
밧줄이 비명을 질렀다.
민지가 이준혁을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이 보였다. 땀과 피로 범벅이 된 얼굴.
하지만 눈빛은 달랐다.
'저건... 10년 전...'
민지의 머릿속에 기억이 스쳤다.
초등학교 6학년. 성광여고 체육관에서 본 남자 배구부 경기.
세터가 토스를 올릴 때의 눈빛.
완벽한 궤도를 그리던 공.
'이준혁 선배...'
그때 그 세터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55cm.
밧줄의 세 번째 가닥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두 가닥만 남았다.
"선생님!"
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이준혁은 밧줄을 더 당겼다.
어깨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통증이 뇌를 관통했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다.
60cm.
판자 위 선수들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공포가 체육관을 채웠다.
민지만 이준혁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 우리를 들어올리는 게 아니야.'
이준혁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직..."
목소리가 갈라졌다.
"안 돼..."
65cm.
밧줄의 네 번째 가닥이 풀어졌다.
이제 한 가닥만 남았다.
민지의 눈이 커졌다.
"선생님, 이제 그만—"
말이 끝나기 전에 이준혁이 밧줄을 확 당겼다.
70cm.
판자가 공중에 떠올랐다.
선수들의 비명이 천장까지 울렸다.
마지막 가닥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뚝. 뚝. 뚝.
섬유가 하나씩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준혁은 밧줄을 놓지 않았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2층 바닥에 붉은 점들이 번졌다.
민지가 판자 위에서 소리쳤다.
"왜 이러는 거예요!"
이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민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너희가..."
목소리가 나왔다. 떨리지 않았다.
"떨어지면 안 되니까."
민지의 입이 벌어졌다.
마지막 가닥이 반쯤 끊어진 상태에서 멈췄다.
판자가 70cm 높이에서 흔들렸다.
선수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
이준혁은 밧줄을 잡은 채 서 있었다.
판자가 흔들렸다.
선수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굳어 있었다.
이준혁의 손에서 피가 밧줄을 타고 흘러내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75cm.
마지막 가닥이 삐걱거렸다.
민지가 밧줄을 올려다봤다. 섬유가 하나씩 풀어지고 있었다.
"미친..."
누군가 중얼거렸다.
이준혁은 밧줄을 더 당겼다. 어깨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땀인지 피인지 구분이 안 됐다.
80cm.
"선생님!"
서연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그만하세요, 제발!"
이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안경이 땀에 젖어 미끄러졌다.
판자가 또 기울었다. 선수 하나가 비명을 삼켰다.
민지가 서연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움직이지 마. 아무도."
목소리가 떨렸다.
85cm.
뚝.
마지막 가닥의 절반이 끊어졌다.
판자가 휙 기울었다. 선수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으악!"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이준혁이 밧줄을 확 당겼다. 판자가 다시 수평을 찾았다.
하지만 손바닥이 터졌다. 피부가 벗겨지면서 밧줄에 살점이 묻었다.
'아직... 안 돼...'
90cm.
민지가 이준혁을 똑바로 봤다.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저 사람... 죽을 수도 있어.'
민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선생님, 우리 내려갈게요."
민지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아직."
이준혁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안 돼."
민지의 눈이 커졌다.
"왜요? 왜 안 되는데요!"
이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밧줄만 보고 있었다.
'네 탓이야, 이준혁.'
10년 전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네가 제대로만 했어도.'
95cm.
마지막 가닥이 실 한 올만 남기고 끊어졌다.
선수들이 숨을 멈췄다.
체육관이 고요해졌다. 밧줄이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준혁의 손이 떨렸다. 처음으로.
'이제... 끝이야.'
밧줄이 미끄러졌다.
"안 돼!"
민지가 소리쳤다.
이준혁이 밧줄을 다시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완전히 찢어졌다.
뼈가 밧줄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1m.
판자가 그 높이에서 멈췄다.
선수들이 서로를 보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민지가 이준혁의 손을 봤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2층 바닥에 붉은 웅덩이가 생겼다.
"선생님..."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이렇게까지..."
이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민지는 그 눈빛을 알았다. 10년 전 체육관에서 본 세터의 눈빛.
완벽한 토스를 올리기 직전의 눈빛.
"너희를..."
이준혁의 입술이 움직였다.
"떨어뜨리면... 안 되니까."
민지의 눈에서 뭔가 뜨거운 게 흘러내렸다.
뚝.
마지막 실 한 올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이준혁은 밧줄을 놓지 않았다.
어깨에서 뚝 소리가 났다. 인대가 완전히 끊어진 소리였다.
팔이 늘어졌다. 힘이 빠졌다.
판자가 흔들렸다.
"으악!"
선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민지가 판자 끝을 붙잡았다.
"다들 가만히 있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준혁은 왼손으로 밧줄을 다시 잡았다. 오른팔은 축 늘어져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1.1m.
밧줄의 마지막 실이 반쯤 끊어졌다.
이제 몇 초 남지 않았다.
민지가 이준혁을 올려다봤다.
"선생님, 그만해요."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이준혁이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괜찮지... 않아."
말이 또박또박 나왔다.
"너희가... 다치면..."
목소리가 끊어졌다.
"내가... 또..."
1.2m.
마지막 실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늘어났다.
선수들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공포가 체육관을 채웠다.
민지만 이준혁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은... 우리를 끌어올리는 게 아니야.'
이준혁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눈빛만 살아 있었다.
'자기 자신을 끌어올리고 있어.'
뚝.
마지막 실이 끊어졌다.
판자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악!"
비명이 터졌다.
그 순간.
이준혁이 밧줄을 놓았다.
몸을 앞으로 던졌다.
2층 난간을 넘어 아래로 떨어지는 판자를 향해.
민지의 눈이 커졌다.
"선생님!"
이준혁의 손이 판자 끝을 잡았다.
몸이 공중에 매달렸다.
"미친..."
누군가 중얼거렸다.
판자가 이준혁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었다. 선수들이 반대편으로 쏠렸다.
"움직이지 마!"
민지가 소리쳤다.
이준혁이 판자에 매달린 채 선수들을 올려다봤다.
"내려와."
목소리가 나왔다. 떨리지 않았다.
"한 명씩... 천천히."
민지가 판자 위에서 움직였다.
"언니, 안 돼!"
서연이 소리쳤다.
"움직이면 떨어져!"
민지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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