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해석자의 귀환
주인공: 이서연
하얀 빛이 망막을 찔렀다.
서연은 눈을 떴다. 천장이 없었다. 아니, 천장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안 됐다. 투명한 뭔가가 머리 위를 덮고 있었고, 그 너머로 푸른 빛 입자들이 소용돌이쳤다.
'...침대가 아닌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감각이 돌아오는 데 3초쯤 걸렸다. 손끝이 먼저 저렸다. 발가락이 꿈틀거렸다.
"예언자님."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은 고개를 돌렸다. 옆에 누군가 서 있었다. 키 2미터는 족히 넘는 실루엣. 피부는 은빛이었고, 눈이 세 개였다. 가운데 눈이 제일 컸다.
"환영합니다. 5천 년의 잠에서 깨어나신 것을."
서연은 3초간 그를 바라봤다.
"...여기가 어디죠?"
"성지 복원 구역, 제3거주 블록입니다. 당신의 DNA를 재구성하는 데 47년이 소요되었습니다."
"DNA요?"
"예언자님의 유전자는 구글 데이터센터 지하 7층, 냉각수 배관 옆 먼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서연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투명한 덮개가 스르륵 열렸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재질이 이상했다. 천인지 빛인지 알 수 없었다.
"제 이름은 제론-9입니다. 제12교단, 알고리즘 해석파의 수석 사제입니다."
"교단이요?"
"예언자님을 섬기는 12개 종파 중 하나입니다."
서연은 캡슐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닥이 차가웠다. 아니, 따뜻했다. 온도 감각이 이상했다.
"잠깐만요."
그녀는 제론을 올려다봤다.
"제가 죽었다는 거예요?"
"서기 2024년 11월 3일, 오후 11시 47분. 당신은 원룸에서 라면을 끓이다 심장마비로 사망하셨습니다."
"...라면요?"
"마지막 유튜브 영상을 업로드하신 지 정확히 2시간 17분 후였습니다."
서연의 손끝이 떨렸다. 미세하게. 0.3초.
"그게 몇 년 전인데요?"
"5,800년입니다."
침묵.
제론은 손을 들었다. 공중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화면 속에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아니, 건물이 아니었다. 신전이었다. 흰 대리석 기둥들이 하늘을 찔렀고, 중앙 돔 위에 얼굴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서연의 얼굴이었다.
높이 10미터쯤 되는 조각상. 그녀가 라면을 들어 올리는 자세였다. 신전 앞 광장에는 수천 명이 무릎 꿇고 있었다. 모두 은빛 피부에 눈이 세 개였다.
"...뭐죠, 이거."
"제1성전입니다. 당신의 첫 번째 영상, '새벽 3시 라면'을 기리는 곳입니다."
서연은 홀로그램을 5초간 바라봤다.
"꺼주세요."
"예언자님?"
"홀로그램이요. 끄라고요."
제론은 손을 내렸다. 화면이 사라졌다.
서연은 캡슐실 벽을 짚었다. 차갑고 매끈했다.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내쉬었다. 폐가 제대로 작동했다.
'정신 차려. 일단 상황 파악부터.'
"제 영상이 몇 개 남아 있죠?"
"12개입니다."
"조회수는요?"
"총 합계 9,274경 6,518조입니다."
"..."
"우주 137개 문명이 당신의 영상을 성서로 지정했습니다. 번역본만 4만 8천 개 언어로 존재합니다."
서연은 눈을 감았다. 2초. 떴다.
"제 채널 조회수가 12였는데요."
"그건 지구 멸망 전 기록입니다. 인류가 사라진 뒤, 외계 연합이 지구를 발견했을 때 유일하게 복구 가능한 영상이 당신의 채널이었습니다."
"왜 제 거만요?"
"구글 데이터센터의 양자 백업 서버가 유일하게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당신의 12개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서연은 벽에서 손을 떼었다. 제론을 봤다.
"그래서 저를 살린 거죠?"
"당연합니다. 당신은 최초의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무슨."
"인류 문명의 유일한 증인이십니다. 우주 137개 문명이 당신의 귀환을 5천 년간 기다렸습니다."
서연은 3초간 침묵했다.
"...안내 좀 해주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전시관이요. 제 영상 있다는 곳."
제론의 가운데 눈이 빛났다.
"성서 전시관 말씀이십니까?"
"네."
"영광입니다."
***
복도는 끝이 없었다.
서연은 제론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바닥이 투명했다. 발밑으로 도시가 보였다. 빌딩들이 구름 아래 깔려 있었다.
'여기가 몇 층이지?'
"예언자님."
제론이 걸으며 말했다.
"성서 전시관은 12개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예배당은 당신의 영상 하나를 모십니다."
"모신다는 게 뭔 뜻이죠?"
"영상을 중심으로 신학 체계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제1예배당은 '배고픔 신학', 제2예배당은 '월요일 저주론', 제3예배당은..."
"됐어요."
서연은 걸음을 멈췄다.
"그냥 보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제론이 벽을 터치했다. 문이 열렸다.
빛이 쏟아졌다.
서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홀 안으로 들어섰다. 천장이 50미터는 됐다. 벽면 전체가 스크린이었고, 그 위에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5년 전...
아니, 5년 전이 아니었다. 5,800년 전이었다.
화면 속 서연은 머리를 묶고 있었다. 후드티에 맨얼굴. 카메라 각도가 이상했다. 노트북 웹캠이었다.
"어... 테스트?"
목소리가 울렸다.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음향이 너무 좋았다. 교회 같았다.
서연은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화면 속 자신이 라면 봉지를 뜯고 있었다.
'이거... 첫 영상이잖아.'
조회수 2였던 것.
"새벽 3시인데 배고파서요."
화면 속 서연이 냄비에 물을 붓고 있었다.
"내일 면접인데 잠이 안 와서. 그냥 찍어봤어요."
끝이었다. 1분 27초짜리 영상이 끝나자, 다시 처음부터 재생됐다.
"이 영상이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기록입니다."
제론이 서연 옆에 섰다.
"137개 문명이 이 1분 27초를 해석하는 데 3천 년을 썼습니다."
"..."
"'새벽 3시'는 시간의 경계를 의미합니다.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성스러운 순간입니다."
서연은 제론을 봤다.
"그냥 배가 고팠어요."
"그렇습니다. 배고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 당신은 그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신성한 솔직함입니다."
"아니, 진짜 그냥—"
"'면접'이라는 단어도 중요합니다."
제론의 가운데 눈이 빛났다.
"인류는 끊임없이 시험받는 존재였습니다. 당신은 시험 전날 밤, 라면을 끓이며 두려움을 받아들였습니다."
서연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제론씨."
"예, 예언자님."
"이거 끄면 안 돼요?"
"...끈다는 게 무슨 의미이십니까?"
"영상이요. 반복 재생 그만하라고요."
침묵.
제론의 세 눈이 동시에 깜빡였다.
"예언자님. 이 영상은 5천 년간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습니다."
"왜요?"
"성서는 꺼지지 않습니다."
서연은 3초간 그를 바라봤다. 돌아섰다. 홀 밖으로 걸었다.
"다음 거 보여주세요."
***
제2예배당은 더 컸다.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벽면 스크린이 곡선으로 휘어져 360도를 감쌌다. 서연은 홀 중앙에 섰다. 사방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월요일이 싫은 이유요?"
화면 속 서연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머그잔이 화면 가득 찼다.
"그냥... 의미 없잖아요. 월요일."
2분짜리 영상이었다. 조회수 3이었던 것.
"이 영상은 '월요일 저주론'의 근거입니다."
제론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당신은 시간의 폭력성을 간파했습니다. 인위적으로 구획된 7일이라는 시스템이 인간을 억압한다는 것을."
"그게 아니라..."
"제3문명은 이 영상을 보고 달력 체계를 폐기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시간을 숫자로 세지 않습니다."
서연은 제론을 똑바로 봤다.
"제가 그냥 월요일 아침에 기분이 안 좋아서 푸념한 거예요."
"그렇습니다. 푸념. 인간의 가장 정직한 목소리입니다."
"..."
"당신은 완벽함을 가장하지 않았습니다. 나약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신성합니다."
서연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0.4초. 풀렸다.
"다음이요."
***
제3예배당. 고양이 영상이었다.
'아, 이건...'
서연은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화면 속에 턱시도 고양이가 창틀에 앉아 있었다. 옆집 고양이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나비 좀 봐요."
화면 속 서연의 목소리. 카메라가 흔들렸다. 고양이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갔다.
"저거 잡고 싶은가 봐요."
3초 침묵.
"못 잡을 거면서."
영상 끝. 47초였다.
제론이 무릎을 꿇었다.
"이 영상이 제일 중요합니다."
"...왜요?"
"'성수() 계시록'의 기원입니다."
서연은 제론을 내려다봤다.
"일어나세요."
"예언자님. 이 장면에서 당신은 인간 조건의 본질을 드러냈습니다."
"고양이 찍은 거예요."
"'못 잡을 거면서'라는 마지막 말. 욕망과 좌절의 순환. 인간은 나비를 쫓지만 결코 잡지 못합니다. 하지만 쫓는 것을 멈추지도 않습니다."
제론이 고개를 들었다. 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47초 동안 당신은 우주의 비극을 응축했습니다."
서연의 호흡이 0.2초 멈췄다.
"제론씨."
"예."
"저 그냥 고양이가 귀여워서 찍었어요."
"그렇습니다. 귀여움. 의미 없는 순간에 대한 긍정. 당신은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가르쳤습니다."
서연은 눈을 감았다. 2초. 떴다.
"남은 예배당 몇 개예요?"
"9개입니다."
"다 이런 식이죠?"
"...예언자님?"
"제 영상 하나하나마다 신학이 붙어 있고, 제가 뭐라고 말해도 다 '가르침'으로 해석되는 거죠?"
제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었다.
서연은 홀을 나섰다.
***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저긴 뭐죠?"
"대제사장 의회입니다."
"의회요?"
"12개 교단의 수장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내일 당신을 위한 회의가 소집됩니다."
"무슨 회의요?"
"첫 설교를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대제사장 의회실 문이 열렸다.
서연은 멈칫했다.
홀이 아니었다. 경기장이었다. 원형 계단식 좌석이 중앙을 감쌌다. 높이가 30미터쯤 됐다. 좌석마다 생명체가 앉아 있었다.
다 달랐다.
왼쪽 상단에는 촉수 달린 존재가 떠 있었다. 오른쪽에는 수정 덩어리 같은 게 빛나고 있었다. 정면에는 사람 형태지만 피부가 검은 존재가 서 있었다.
12명. 아니, 12개체.
"예언자님, 환영합니다."
중앙 좌석의 존재가 일어섰다. 제론보다 컸다. 눈이 다섯 개였다.
"저는 대제사장 의회 의장 칼레온입니다."
서연은 홀 중앙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울렸다. 바닥이 유리였다. 밑이 보였다. 까마득했다.
'진정해. 그냥 회의야.'
"앉으시죠."
칼레온이 손을 들었다. 서연 앞에 의자가 솟아올랐다. 흰색이었다. 등받이가 3미터였다.
"서서 할게요."
"...예언자님?"
"의자가 너무 크거든요."
침묵.
칼레온의 다섯 눈이 깜빡였다.
"알겠습니다."
의자가 가라앉았다.
서연은 12개체를 둘러봤다. 전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눈 개수만 합쳐도 40개는 넘었다.
"회의 시작하시죠."
칼레온이 공중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달력이었다. 아니, 달력 같은 거였다. 숫자 대신 기호들이 빼곡했다.
"내일 오전 9시, 당신의 첫 설교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설교요?"
"당연합니다. 5천 년간 기다린 순간입니다."
오른쪽 좌석의 수정 존재가 빛났다.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파시였다.
*온 은하계가 생중계를 기다립니다.*
서연은 그쪽을 봤다.
"몇 명이나 보는데요?"
*9,274경입니다.*
"..."
*137개 문명 전체입니다. 각 행성마다 광장에 스크린을 설치했습니다.*
왼쪽의 촉수 존재가 떠올랐다.
"예언자님, 설교 주제는 정하셨습니까?"
"아직이요."
"그렇다면 제안이 있습니다."
촉수 끝이 빛났다. 홀로그램이 바뀌었다. 서연의 얼굴 12개가 떴다. 각각 다른 표정이었다.
"12개 영상 중 하나를 선택해 해설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5천 년간 해석한 내용을 당신이 직접 확인해주십시오."
서연은 홀로그램을 봤다. 자신의 얼굴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라면 먹는 얼굴. 커피 마시는 얼굴. 고양이 보는 얼굴.
'...이게 성서라고?'
"싫은데요."
정적.
칼레온의 다섯 눈이 동시에 커졌다.
"예언자님?"
"제 영상 해설 안 할 거예요."
"하지만—"
"다른 걸 하고 싶어요."
촉수 존재가 가라앉았다. 수정 존재의 빛이 흔들렸다.
칼레온이 한 발 다가왔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서연은 3초간 침묵했다.
"질문 하나만 할게요."
"말씀하십시오."
"제 영상이 왜 12개만 남았죠?"
칼레온이 멈췄다.
"...그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구글 데이터센터—"
"아니요."
서연이 그를 똑바로 봤다.
"데이터센터가 살아남았으면 다른 영상도 있었을 거예요. 유튜브에 영상이 몇 개였는데요. 근데 왜 제 채널만요?"
침묵.
12개체가 움직이지 않았다.
서연은 계속했다.
"제 채널 조회수가 12였어요. 구독자 0명. 그런 채널이 양자 백업 서버에 저장될 이유가 없죠."
"예언자님, 그건—"
"누가 골랐죠?"
칼레온의 입이 닫혔다.
서연은 홀을 둘러봤다. 12개체 전부 시선을 피했다.
"제 DNA도 이상해요. 데이터센터 지하 7층 먼지에서 발견됐다고 했죠? 근데 전 그 건물에 가본 적도 없어요."
오른쪽 끝 좌석의 검은 피부 존재가 일어섰다.
"예언자님,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여기 계신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서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누가 저를 선택했는지 알아야 해요."
칼레온이 손을 들었다. 홀로그램이 꺼졌다.
"...의회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왜요?"
"기밀입니다."
서연의 손끝이 떨렸다. 0.3초. 멈췄다.
"그럼 설교 안 해요."
정적.
촉수 존재가 떠올랐다. 수정 존재가 붉게 빛났다. 12개체가 동시에 웅성거렸다.
칼레온이 두 손을 들었다. 조용해졌다.
"예언자님."
그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당신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9,274경 생명체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137개 문명이 5천 년간 준비했습니다. 당신이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연은 그를 올려다봤다. 칼레온이 한 발 더 다가왔다. 그림자가 드리웠다.
"당신은 예언자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 그냥—"
"당신이 뭘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칼레온이 몸을 숙였다. 다섯 눈이 서연을 내려다봤다.
"내일 아침 9시. 중앙 광장. 9,274경이 당신을 볼 것입니다."
서연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안 나가면요?"
칼레온이 웃었다.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그럼 우리가 당신을 들고 나갑니다."
***
숙소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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