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약 14분 · 총 7,034자

예언의 댓가

주인공: 강민준

공이 날아왔다.

민준은 몸을 날렸다. 손끝이 공에 닿는 순간, 잔디가 얼굴을 스쳤다.

"미친!"

누군가 소리쳤다. 민준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막았네.'

당연했다. 박준혁의 슛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왼쪽 상단. 각도 30도. 힘은 70퍼센트. 발목이 불안정하니까 궤도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28살 민준이 기억하는 2010년 4월의 준혁은 그런 선수였다.

"야, 강민준! 일어나!"

감독의 호통에 민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테이핑 사이로 뭔가 축축한 게 느껴졌다.

'피 나나.'

별로 놀랍지 않았다. 어차피 이 몸은 16살이고, 28살의 기억을 따라가려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뭐야, 진짜?"

준혁이 공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민준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준혁의 발목을 봤다.

왼쪽.

살짝 삐끗한 각도로 서 있었다. 준혁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6일 후.'

2010년 4월 2일. 박준혁, 왼쪽 발목 인대 파열. 3개월 결장.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간다!"

준혁이 공을 몰고 달려왔다. 민준은 골대 앞에 섰다.

'또 왼쪽 상단이겠지.'

준혁의 발목은 불안정했다. 오른발로 차면 궤도가 흔들린다는 걸 본인은 모를 거다.

슛이 날아왔다.

민준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손끝이 공을 쳤다. 공은 골대를 벗어나 날아갔다.

"헐, 또?"

"미쳤네, 진짜."

팀원들이 웅성거렸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혁이 이를 갈았다.

"뭐야, 씨…."

욕을 삼킨 준혁은 공을 다시 집어 들었다. 민준은 그의 발목을 또 봤다.

'조심해.'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을 리 없었다.

---

연습이 끝났다.

민준은 벤치에 앉아 테이핑을 풀었다. 손목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망했네.'

별로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픈 건 맞는데 익숙했다. 28살 때도 이랬으니까.

"야, 괜찮아?"

후배 하나가 다가왔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형, 오늘 진짜 미쳤어요. 준혁이 형 슛을 세 개나 막다니."

"어차피 막을 수 있는 거였어."

"에이, 겸손 떨지 마요."

후배가 웃으며 돌아갔다.

민준은 손목을 내려다봤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겸손이 아닌데.'

진짜로 알고 있었으니까. 준혁의 슛 패턴, 발목 상태, 심지어 부상 날짜까지.

'근데 이게 맞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아는 건 좋다. 실수를 피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으니까.

근데 그게 누군가를 이용하는 거라면?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몰라. 일단 이기는 게 먼저야.'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뭔가 찝찝한 게 남았다.

---

탈의실로 돌아가는 길에 준혁을 마주쳤다.

준혁은 민준을 보자 표정을 굳혔다.

"뭐야, 자꾸 쳐다보는 거?"

"응?"

"아까부터. 자꾸 내 발 쳐다보잖아."

민준은 잠시 멈췄다.

'들켰나.'

아니, 눈치챈 건 아닐 거다. 그냥 불편한 거겠지.

"조심해."

"뭐?"

"발목."

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뭔 개소리야?"

"발목 조심하라고."

"신경 끄세요."

준혁이 민준을 지나쳐 갔다. 민준은 그 뒷모습을 봤다.

왼쪽 발. 살짝 절뚝이는 게 보였다.

'본인은 모르겠지.'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6일 후면 알겠지.'

---

그날 밤, 민준은 잠들지 못했다.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막을 수 있어.'

준혁의 부상.

민준은 날짜도 알고, 어떻게 다칠지도 알고 있었다.

'말하면 될까?'

아니, 말해도 믿을까?

'야, 너 6일 후에 발목 나간다. 조심해.'

그럼 준혁이 뭐라고 할까?

'미쳤어?'

당연히 그럴 거다.

민준은 이불을 걷어찼다.

'그럼 어떻게 해?'

말해도 안 믿고, 안 말하면 다친다.

근데 다치는 게 나쁜 건가?

'아니지.'

준혁은 다쳐도 돌아온다. 3개월 후면 복귀하고, 결국 K리그 득점왕이 된다.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

민준은 손목의 테이핑을 뜯었다.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근데 왜 찝찝하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래를 아는 건 좋은 거다. 실수를 피하고, 이길 수 있으니까.

근데 그게 누군가를 이용하는 거라면?

'모르겠어.'

민준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

다음 날 연습.

민준은 골대 앞에 섰다. 준혁이 공을 몰고 달려왔다.

'또 왼쪽 상단.'

민준은 알고 있었다. 준혁의 발목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슛이 날아왔다.

민준은 움직였다. 손끝이 공을 쳤다.

"또야?!"

팀원들이 소리쳤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혁이 공을 내려놨다.

"야."

민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너 진짜 뭐야?"

"응?"

"슛 막는 거. 어떻게 아는 거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도 없었다.

'말해봤자 안 믿어.'

준혁이 한 발짝 다가왔다.

"예측하는 거야, 아니면 찍는 거야?"

"둘 다 아니야."

"그럼 뭔데?"

민준은 준혁의 발목을 또 봤다. 왼쪽. 각도가 어제보다 더 틀어져 있었다.

'5일 남았네.'

준혁이 민준의 시선을 따라갔다.

"왜 자꾸 내 발을 봐?"

"아무것도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뭔데?"

민준은 입을 다물었다. 준혁이 코웃음을 쳤다.

"쫄았네. 그래, 니가 잘하는 건 인정해. 근데—"

준혁이 민준의 어깨를 툭 쳤다.

"—그것도 오늘까지야."

---

연습이 끝나고 민준은 골대 앞에 남았다.

혼자.

손목을 풀었다. 테이핑 아래로 피가 번져 있었다.

'이상하네.'

28살 때는 이 정도로 안 다쳤는데.

아니, 다쳤나? 기억이 흐릿했다.

민준은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관절이 뻐근했다.

'몸이 따라오질 않아.'

16살 몸에 28살 기억을 우겨넣으니까 이런 거겠지.

"강민준!"

감독이 불렀다.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손목 괜찮아?"

"네."

"거짓말하지 마. 피 나잖아."

민준은 손을 뒤로 숨겼다.

"괜찮습니다."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다음 주 예선이야. 네가 서야 해."

"알고 있습니다."

"정우성은 복귀 못 해. 넌 우리 팀 유일한 골키퍼야."

"네."

감독이 민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버텨. 이기기만 하면 돼."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이 돌아갔다.

'이기기만 하면.'

그 말이 귓가에 남았다.

---

저녁 무렵, 민준은 보건실에 갔다.

양호 선생님은 없었다. 민준은 소독약을 꺼내 손목에 발랐다.

따가웠다.

'참을 만하네.'

테이핑을 새로 감았다. 손목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문이 열렸다.

"누구야?"

돌아보니 준혁이었다.

민준은 테이핑을 손에 쥔 채 멈췄다.

"왜 여기 와?"

"나도 소독약 좀."

준혁이 무릎을 가리켰다. 찰과상이 있었다.

민준은 소독약을 건넸다. 준혁이 받아 들고 바르기 시작했다.

"아까 말인데."

준혁이 소독약을 바르며 말했다.

"내 슛. 어떻게 막는 거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 안 할 거야?"

"말해도 안 믿을걸."

준혁이 웃었다.

"그래? 그럼 안 물어볼게."

준혁이 소독약을 내려놨다. 민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근데 하나만 물어볼게."

"뭔데?"

"넌 날 무시하는 거야, 아니면 이용하는 거야?"

민준은 멈췄다.

"...무슨 소리야?"

"내 슛을 다 막잖아. 근데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

준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뭘 잘못하는지 알면서도 안 알려주는 거지?"

민준은 입을 다물었다.

준혁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알겠어."

준혁이 돌아섰다. 문을 열려다 멈췄다.

"근데 말이야."

준혁이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너도 언젠간 막히는 날이 올 거야. 그때 누가 도와줄까?"

문이 닫혔다.

민준은 보건실에 혼자 남았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이용하는 거냐고?'

민준은 손목을 내려다봤다.

테이핑 사이로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

'모르겠어.'

---

그날 밤, 민준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손목이 아팠다.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4일 남았네.'

2010년 4월 2일.

박준혁의 왼쪽 발목 인대 파열.

민준은 그날을 기억했다.

연습 경기 중이었다. 준혁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왼발로 슛을 쐈다.

착지하면서 발목이 꺾였다.

비명.

들것.

그리고 3개월 결장.

'막을 수 있을까?'

민준은 눈을 감았다.

막을 수 있다. 그날 준혁에게 슛을 쏘지 말라고 하면 된다.

아니면 감독한테 말하거나.

근데 그럼?

'준혁은 안 다치겠지.'

그럼 좋은 거 아닌가?

민준은 이불을 걷어찼다.

'좋은 게 아니야.'

준혁이 안 다치면, 민준의 자리는 사라진다.

정우성이 복귀하면 민준은 다시 벤치로 간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지.'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근데 그게 맞나?'

누군가의 부상을 이용해서 자리를 지키는 게 맞냐고?

민준은 손목을 만졌다. 테이핑이 축축했다.

'이미 이용하고 있잖아.'

준혁의 슛 패턴. 발목 상태. 부상 날짜.

다 알면서 막고, 다 알면서 말 안 하고.

'그게 이용하는 거 아니면 뭐야?'

민준은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천장이 보였다.

'모르겠어.'

---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일찍 학교에 갔다.

운동장에 아무도 없었다.

민준은 골대 앞에 섰다.

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던졌다.

손끝이 공을 쳤다.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4월 2일 아침.

민준은 골대 앞에 섰다.

'오늘이네.'

손목이 욱신거렸다. 테이핑을 세 겹 감았는데도.

준혁이 공을 몰고 들어왔다.

"오늘은 못 막을걸?"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혁의 왼발을 봤다. 각도가 어제보다 더 틀어져 있었다.

'착지할 때 꺾인다.'

슛이 날아왔다.

민준은 움직였다. 손끝이 공을 쳤다.

"또?!"

준혁이 소리쳤다. 민준은 공을 주웠다.

'마지막이야.'

---

오후 연습 경기.

민준은 골대 앞에 섰다. 손목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버텨야 해.'

준혁이 공을 잡았다.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왼발로 쏜다.'

민준은 알고 있었다. 슛 궤도도, 착지 각도도.

준혁의 발이 올라갔다.

'막아야 해.'

아니.

'막으면 안 돼.'

민준의 손이 멈췄다.

'막으면 다친다.'

준혁의 왼발이 공을 찼다. 공이 날아왔다.

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골대 안으로 공이 들어갔다.

"뭐야?!"

팀원들이 소리쳤다. 민준은 공을 주웠다.

준혁이 착지했다.

발목이 꺾였다.

"으악!"

준혁이 비명을 질렀다. 왼쪽 발목을 잡고 쓰러졌다.

팀원들이 달려갔다. 감독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민준은 골대 앞에 멈춰 섰다.

준혁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이를 악물고 발목을 감싸 쥐었다.

'내가...'

민준의 손이 떨렸다. 장갑 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막았으면 안 다쳤을까?'

아니야.

'막아도 다쳤어.'

슛을 막든 안 막든, 준혁의 착지 각도는 똑같았다.

'그럼 상관없잖아.'

민준은 손목을 만졌다. 테이핑이 젖어 있었다.

'근데 왜 이래?'

---

준혁이 들것에 실렸다.

민준은 그 뒷모습을 봤다. 들것이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알고 있었어.'

날짜도, 장소도, 부상 부위도.

'근데 말 안 했어.'

아니, 말해도 소용없었을 거야.

'그럼 괜찮은 거 아냐?'

민준은 눈을 감았다.

괜찮을 리 없었다.

"강민준!"

감독이 불렀다.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왜 안 막았어?"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집중 안 한 거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준혁이 없으면 예선 힘들어. 알지?"

"네."

"다음엔 제대로 해."

감독이 돌아갔다.

민준은 골대 앞에 혼자 남았다.

'제대로?'

뭐가 제대로인지 모르겠어.

---

저녁, 보건실.

민준은 테이핑을 풀었다. 손목에서 피가 흘렀다.

'왜 안 멈춰?'

28살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니, 기억이 안 나.

민준은 소독약을 발랐다. 따가웠다.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었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었다. 민준은 문을 닫았다.

다시 손목을 감쌌다. 테이핑이 금방 붉게 물들었다.

'이상해.'

민준은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관절이 뻐근했다.

'16살 몸이 버티질 못하나?'

아니면.

'회귀한 게 문제인가?'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돼.'

그냥 무리한 거야.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민준은 테이핑을 끝까지 감았다.

---

그날 밤, 민준은 잠들지 못했다.

천장을 봤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준혁은 3개월 후에 돌아와.'

알고 있어. 복귀하고, K리그 득점왕 되고.

'그럼 난?'

정우성이 복귀하면 민준은 벤치로 간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지.'

민준은 이불을 당겼다.

'근데 왜 이렇게 찝찝해?'

누군가가 속삭였다.

"넌 알고 있었잖아."

민준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다음은 누구야?"

목소리가 또 들렸다.

민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 안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정우성? 아니면 감독?"

민준은 귀를 막았다.

"닥쳐."

목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네가 알고 있는 미래는 몇 개야?"

"몇 명이 다쳐?"

"몇 명이 죽어?"

민준은 침대 끝에 앉았다. 손목을 만졌다.

테이핑 사이로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

'미래를 아는 건...'

축복이 아니야.

'저주야.'

---

다음 날 아침.

민준은 학교에 갔다. 복도에서 소문이 들렸다.

"준혁이 3개월 결장이래."

"인대 파열."

"예선 망했네."

민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운동장에 도착했다. 감독이 팀원들을 모아놨다.

"준혁이 없다. 근데 예선은 해야 해."

감독이 민준을 봤다.

"민준이가 버텨줘야 해. 알지?"

"네."

"정우성은 복귀 못 해. 넌 우리 팀 유일한 골키퍼야."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한 골키퍼.'

그 말이 귓가에 남았다.

---

연습이 시작됐다.

민준은 골대 앞에 섰다. 공이 날아왔다.

막았다.

또 날아왔다.

막았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테이핑이 풀렸다.

'버텨야 해.'

공이 또 날아왔다.

민준은 뛰어올랐다. 손끝이 공을 쳤다.

착지하면서 손목이 꺾였다.

총 7,034자 · 약 14분

- 2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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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회귀#딜레마#성장
케뤼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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