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약 14분 · 총 7,109자

시스템 없이 살아남기

주인공: 서유진

휴대폰이 진동했다.

강민혁.

유진은 화면을 본 채로 멈춰 섰다. 새벽 두 시. 이 시간에 투자자가 문자를 보낸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다. 미친놈이거나, 진심이거나.

'3일 안에 실제 매출 100만원 달성하면 투자 검토하겠습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검토. 검토라고 했다. 확정도 아니고.

"그래서 뭐?"

중얼거렸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스스로도 들렸다.

유진은 휴대폰을 탁자에 내려놓고 수첩을 펼쳤다. 빈 페이지가 눈을 찔렀다. 펜을 쥐었다. 고객 리스트. 가능성 있는 곳. 뭐라도 적어야 했다.

'카페—'

펜 끝이 멈췄다.

어디? 어느 카페? 사장 이름은? 연락처는?

아무것도 없었다.

알파였다면.

'퀘스트: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카페 '블루문' 사장 설득하기. 보상: 첫 매출 달성.'

이런 식이었을 거다. 친절하게. 정확하게.

유진은 수첩을 덮었다. 손이 떨렸다.

"시스템 없이도 할 수 있어."

말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카운트다운 60시간.

유진은 명함 100장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새로 뽑은 거였다. '서유진 대표 / AI 기반 맞춤 솔루션 / 첫 달 무료 체험'. 그럴싸했다. 종이 위에선.

첫 번째는 역 앞 카페였다.

"안녕하세요, 저희 서비스 소개 좀—"

"필요 없어요."

사장은 고개도 안 들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닦고 있었다.

"아직 말도 안 했는데요?"

"명함 보면 알아요. 다들 똑같거든요."

유진은 명함을 도로 집어넣었다. 턱이 굳었다.

'똑같다고?'

두 번째는 편의점이었다.

"사장님, 혹시 재고 관리 솔루션—"

"본사에서 다 해줘요. 저희는 안 돼요."

점원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더 기분 나빴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지금은 괜찮아요."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검토해볼게요."

검토. 또 검토.

유진은 건물 계단에 주저앉았다. 명함 뭉치가 손에서 흘러내렸다. 93장 남았다. 7장 나눠줬다. 0원 벌었다.

'알파.'

속으로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퀘스트 하나만. 힌트만이라도.'

침묵.

목구멍이 조였다. 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무릎에 이마를 댔다.

"왜 이렇게 어렵냐고."

중얼거렸다. 누가 들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편의점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유진은 일어섰다. 다리가 저렸다. 털고 들어갔다. 캔커피 하나 집었다. 천원짜리. 요즘 이것도 천이백원이던가.

계산대 앞에 섰다.

"어, 언니."

알바생이었다. 지수. 스무살쯤 돼 보이는 애였다. 유진은 이 편의점을 자주 왔다. 집이 근처라서.

"또 그거예요? 언니 매일 그것만 사가시네."

지수가 웃으며 바코드를 찍었다.

유진은 카드를 내밀었다.

"루틴이라서."

"루틴?"

"응.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거 사면 안정감 들잖아."

지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언니, 그거 팔아보지 그래요?"

유진은 멈칫했다.

"뭐?"

"루틴이요. 언니처럼 매일 똑같은 거 사고 싶은 사람 많잖아요. 저도 그런데. 근데 뭘 사야 할지 모르겠을 때 있거든요. 누가 추천해주면 좋은데."

지수는 천원짜리 커피를 봉투에 넣으며 말했다.

"언니가 매일 이거 사는 이유 있잖아요. 그거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유진은 캔을 받아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루틴을 판다.

'매일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사는 이유'를 파는 거라면.

지수가 손을 흔들었다.

"언니? 괜찮아요?"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수야."

"네?"

"너 천재야?"

지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웃었다.

유진은 편의점을 나와 골목 끝까지 뛰었다.

숨이 찼다. 심장이 두드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려움이 아니라 뭔가 잡힌 느낌이었다.

수첩을 펼쳤다. 이번엔 펜이 멈추지 않았다.

'루틴 추천 서비스. 타겟: 선택장애 있는 2030. 방식: 큐레이션. 한 달에 딱 하나씩 추천.'

적으면서 생각했다. 커피만이 아니다. 샴푸, 치약, 양말, 볼펜. 사람들은 매일 쓰는 것들조차 고르기 귀찮아한다.

'그럼 내가 대신 골라주면?'

유진은 멈췄다.

"잠깐."

이건 AI 필요 없다. 설문 몇 개 받고, 직접 써본 것 중에 괜찮은 거 추천하면 된다. 시스템 없이 할 수 있다.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하지만 이번엔 떨림이 아니었다. 긴장이었다.

유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스토리에 올렸다.

'매일 같은 거 사는 사람 손🙋 댓글로 뭔지 알려주셈. 내가 더 나은 거 추천해줄게. 무료.'

올리고 나서 화면을 내렸다. 반응이 올까?

10초.

30초.

1분.

진동이 왔다.

댓글 하나.

'저요. 매일 편의점 도시락 먹어요.

# Part 2/3: 전개

댓글은 계속 달렸다.

'저는 매일 같은 립밤 사요. 근데 맨날 잃어버려요.'

'편의점 삼각김밥. 참치마요. 5년째.'

'출근길 아아. 근데 요즘 너무 비쌈.'

유진은 화면을 내리다가 멈췄다. 댓글이 열세 개였다. 3분 만에.

"이게 된다고?"

중얼거렸지만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참치마요 드시는 분—CU 브랜드 거 먹어보셨어요? 편의점 중에 제일 싸고 맛도 비슷해요. 한 달이면 5천원 절약됨.'

올리고 나서 숨을 들이켰다. 반응이 올까?

30초.

하트가 떴다. 답글이 달렸다.

'오 대박. 몰랐는데 내일 사봐야지.'

유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곧 표정이 굳었다.

'근데 이걸로 어떻게 돈을 받지?'

무료로 추천해주는 건 쉽다. 문제는 매출이었다. 100만원. 카운트다운은 55시간 남았다.

유진은 수첩을 펼쳤다. 펜을 쥐었다. 이번엔 숫자를 적었다.

'목표 100만원. 1인당 5만원이면 20명. 1만원이면 100명.'

펜 끝이 멈췄다.

100명. 사흘 안에.

"미쳤나."

말했지만 지울 수는 없었다. 숫자는 거기 있었다.

유진은 새벽 세 시까지 답글을 달았다.

열여덟 개 댓글에 하나하나 추천을 달았다. 립밤은 올리브영 자체 브랜드, 아아는 메가커피 앱 쿠폰 조합, 볼펜은 파일럿 0.38mm. 직접 써본 것만 추천했다.

마지막 답글을 달고 나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목이 뻐근했다.

'그래서 뭐?'

속으로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매출은 여전히 0원이었다.

유진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갈아야 하는데 자꾸 미뤘다.

"알파."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지금 보고 있어?"

침묵.

"재밌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유진은 입을 다물었다. 눈을 감았다.

'시스템 없이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스스로에게 말했다. 확신은 없었다.

아침 여덟 시.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유진은 소파에서 눈을 떴다. 목이 뻐근했다.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DM이 와 있었다.

'언니, 어제 추천해주신 거 진짜 좋았어요. 근데 저 매일 뭐 사야 할지 고민하는 게 너무 귀찮거든요. 한 달에 한 번 리스트로 받을 수 있어요? 돈 낼게요.'

유진은 화면을 멈춘 채로 앉아 있었다.

돈 낼게요.

다섯 글자.

손가락이 떨렸다. 답장을 쳤다.

'얼마까지 가능하세요?'

보내고 나서 숨을 참았다.

1분.

답장이 왔다.

'한 달에 2만원 정도요?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유진은 계산했다. 2만원. 50명이면 100만원이었다.

'50명.'

중얼거렸다. 사흘 안에. 가능할까?

답장을 보냈다.

'가능해요. 첫 달 결제하시면 바로 리스트 보내드릴게요. 계좌 알려드릴게요.'

보내고 나서 멈칫했다.

'잠깐.'

계좌를 알려줬다. 기업 계좌도 아니고 개인 계좌였다. 사업자등록증도 없었다. 이게 되나?

휴대폰이 진동했다.

'입금했어요!'

유진은 은행 앱을 켰다. 새로고침을 눌렀다.

+20,000원.

숨이 멎었다.

첫 매출이었다.

카운트다운 48시간.

유진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펼쳤다. 스프레드시트를 켰다.

'루틴 구독 서비스. 월 2만원. 목표 50명. 현재 1명. 매출 2만원.'

적고 나니까 초라했다. 하지만 0원은 아니었다.

유진은 인스타그램을 켰다. 스토리를 올렸다.

'매일 고민하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루틴 구독 서비스 시작합니다. 한 달에 2만원. 매일 쓰는 것들 추천해드려요. 첫 10명 선착순 1만원 할인.'

올리고 나서 화면을 내렸다. 반응이 올까?

5분.

DM이 왔다.

'저요! 신청할게요.'

유진은 답장을 보냈다.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1분 뒤에 입금 알림이 왔다.

+10,000원.

두 번째 매출이었다.

유진은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두드렸다. 이번엔 떨림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된다.'

중얼거렸다. 손이 키보드로 갔다.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Day 1: 아침—메가커피 앱 쿠폰 / 점심—편의점 CU 도시락 / 저녁—…'

적다가 멈췄다.

'이거 매일 바꿔야 하나?'

손가락이 멈췄다. 유진은 화면을 내렸다.

'한 달 30일. 매일 3개씩이면 90개 아이템.'

계산하고 나니까 어지러웠다.

"알파였으면."

중얼거렸다. 말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아니야. 나 혼자 할 수 있어.'

손을 올렸다. 다시 키보드를 쳤다.

오후 두 시.

유진은 여섯 번째 입금 알림을 받았다.

매출 12만원.

목표의 12%였다. 카운트다운은 43시간 남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혁이었다.

"네."

목소리가 떨렸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유진 대표님. 내일 오전 미팅 가능하세요?"

"…네. 가능합니다."

"좋아요.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좋아요. 그럼 내일 오전 열 시에 뵙겠습니다. 참, 한 가지만 더요."

강민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투자 검토하려면 사업자등록증이랑 통장 사본 필요한데요. 준비 가능하세요?"

유진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사업자등록증.

없었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

전화가 끊겼다.

유진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사업자등록증은 최소 이틀 걸려.'

카운트다운은 43시간이었다.

유진은 노트북을 덮었다. 카페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차가웠다. 11월이었다. 코트를 여미고 걸었다.

'일단 매출부터.'

중얼거렸다. 12만원. 목표까지 88만원 남았다.

휴대폰을 꺼냈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DM이 스물세 개 와 있었다.

'언니 저도 신청할게요!'

'결제 어떻게 해요?'

'한 달에 2만원 맞죠?'

유진은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계좌번호를 복사해서 붙여넣었다.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렸다.

열 분 뒤.

입금 알림이 연달아 왔다.

+10,000원

+20,000원

+10,000원

+20,000원

유진은 은행 앱을 켰다. 새로고침을 눌렀다.

잔액: 340,000원.

34만원.

목표의 34%였다.

"조금만 더."

말하고 나서 멈췄다. 목소리가 떨렸다.

카운트다운 36시간.

유진은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불을 켰다.

토끼 인형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유진은 인형을 집어들었다. 무릎에 올렸다.

"근데 말이야. 나 진짜 할 수 있는 거 맞아?"

인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은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알파."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너 지금 어디 있어?"

침묵.

"재밌냐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유진은 인형을 내려놓았다.

노트북을 펼쳤다. 스프레드시트를 켰다.

'현재 매출 34만원. 목표 100만원. 남은 시간 36시간.'

적고 나니까 숨이 막혔다.

66만원.

36시간.

"미쳤나."

말했지만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광고를 돌리기로 했다.

'타겟: 2030 여성. 관심사: 미니멀 라이프, 루틴, 자기계발. 예산: 5만원.'

설정하고 나서 결제 버튼을 눌렀다.

-50,000원.

잔액이 줄었다. 유진은 화면을 내렸다.

'이것도 안 되면?'

생각하고 나서 지웠다.

카운트다운 24시간.

유진은 눈을 떴다. 시계를 봤다. 오전 아홉 시였다.

강민혁과의 미팅까지 한 시간 남았다.

휴대폰을 켰다. 은행 앱을 열었다.

잔액: 720,000원.

72만원.

밤새 입금이 들어왔다. 광고 효과였다.

유진은 숨을 들이켰다. 28만원 남았다.

'되겠는데?'

속으로 말했다. 확신은 없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거울을 봤다. 다크서클이 눈 밑까지 내려왔다.

"망했네."

중얼거리고 나서 립스틱을 발랐다. 빨간색. 자주 안 쓰는 색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카페.

강민혁이 앉아 있었다. 노트북 앞에서 뭔가 적고 있었다.

"왔습니다."

유진이 말했다. 강민혁이 고개를 들었다.

"앉으세요."

유진은 앉았다.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사업자등록증이요. 어제 급하게 냈어요."

거짓말이었다. 사업자등록증은 없었다. 대신 개인사업자 신청 영수증을 출력했다.

강민혁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눈을 내렸다.

"...신청 영수증이네요?"

"네. 등록증은 이틀 뒤에 나와요."

"그럼 통장 사본은요?"

유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은행 앱 화면을 보여줬다.

잔액: 720,000원.

강민혁이 화면을 봤다. 표정이 굳었다.

"...이게 전부예요?"

"아직 사흘밖에 안 됐는데요."

유진은 웃었다. 웃음이 떨렸다.

강민혁은 노트북을 닫았다.

"서유진 대표님."

"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 정도 매출로는 투자 검토가 어렵습니다."

유진은 숨을 멈췄다.

"최소 월 500만원은 돼야 저희가 관심을 가질 수 있어요. 지금은 72만원이잖아요. 한 달로 환산하면..."

"720만원이요."

유진이 끊었다.

강민혁이 눈을 들었다.

"...네?"

"사흘에 72만원이면 한 달에 720만원이에요. 계산 못 하세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강민혁은 웃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죠. 초반 반짝 매출이랑 지속 가능한 매출은 다릅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일단은 지켜보겠습니다. 한 달 뒤에 다시 연락 주세요."

강민혁이 일어섰다.

유진은 앉아 있었다. 손이 떨렸다.

"앉으세요."

유진이 말했다.

강민혁이 멈췄다.

"...네?"

"앉으라고요."

유진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펼쳤다. 스프레드시트를 켰다.

"보세요. 구독자 36명. 평균 객단가 2만원. 해지율 0%. 3일 만에요."

화면을 돌렸다.

강민혁이 화면을 봤다. 표정이 변했다.

"...해지율이 0%?"

"네.

총 7,109자 · 약 14분

- 3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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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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