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약 14분 · 총 6,941자

예언서의 모순

주인공: 한로로

불길이 삼켜버린 양피지에서 검은 재가 우수수 떨어졌다.

로로는 멍하니 손을 펼쳐봤다. 손바닥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예언서 3권이 사라진 건 방금 전인데, 기억이 뿌옇게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뭘 한 거지?'

바닥이 흔들렸다.

아니, 바닥만이 아니었다. 보관소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금이 갔다. 대리석 기둥이 갈라지는 소리가 귓가를 찢었다.

"이게 무슨...!"

세리온의 목소리였다. 그는 벽에 손을 짚으며 균형을 잡았다. 칼자루를 움켜쥔 손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로로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진짜로 불태워버린 거구나.'

예언서가 사라진 자리에서 새까만 균열이 번져나갔다. 공기가 찢어지듯 갈라지며 보랏빛 빛이 새어 나왔다. 균열은 천천히 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천장까지 뻗어갔다.

"한로로!"

세리온이 칼을 빼들었다. 검 끝이 로로의 목을 겨냥했다.

"네가 한 짓이지?"

"어... 그러니까."

로로는 멍한 표정으로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검은 재가 손가락 사이로 흩날렸다.

"불이 막 붙었거든요. 제가 뭘 어쩌려고 한 건 아니고..."

"거짓말!"

세리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예언서를 태웠어. 너 때문에 이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로로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보랏빛 빛이 새어 나오는 틈 사이로 뭔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별? 아니면 다른 세계?

'근데 왜 무너지는 거지?'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상상했던 건데... 예언서가 사라지면 세계가 흔들린다는 설정이었나?"

"뭐?"

세리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칼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요. 제가 옛날에 막 상상으로 쓴 얘기가 있었는데..."

로로는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예언서에 적힌 내용이 자기 상상이었다는 건 이미 확인했지만, 예언서가 불타는 장면까지 자기가 상상했던 건지는 기억이 안 났다.

'썼나? 안 썼나?'

엘리스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

"세리온 경."

"물러서시오, 엘리스 님."

세리온이 칼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이자는 파괴자요. 예언서가 사라진 지금, 증거는 충분해."

"증거라뇨?"

엘리스가 고개를 가웃했다. 그녀는 천천히 세리온 앞으로 다가갔다.

"예언서 3권이 불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한로로 양이 파괴자라는 증거가 되나요?"

"보관소가 무너지고 있소!"

세리온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예언서가 사라지자마자 이 난리가 났어. 이게 우연이겠소?"

"우연은 아니겠죠."

엘리스가 균열이 번진 벽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나요? 예언서가 불탄 게 원인이고, 보관소가 무너진 게 결과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그럼 뭐란 말이오?"

"반대일 수도 있잖아요."

엘리스가 천천히 말했다.

"보관소가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예언서가 불탄 거라면요?"

세리온의 눈이 흔들렸다.

"...무슨 소리요?"

"예언서는 미래를 기록한 책입니다. 하지만 기록된 미래가 바뀌면 어떻게 되죠?"

엘리스가 로로를 돌아봤다.

"예언서 3권에는 '파괴자는 7일 후 죽는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한로로 양은 지금 살아 있죠. 예언이 빗나간 겁니다."

"그건..."

세리온이 말을 잇지 못했다. 칼끝이 조금씩 내려갔다.

"예언이 틀렸다면, 예언서의 힘이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보관소가 무너지기 시작한 거고요."

엘리스가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러니 한로로 양을 죽인다고 해서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요. 오히려 진짜 원인을 놓치게 될 뿐이죠."

세리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그럼... 어쩌자는 거요?"

"24시간만 주세요."

엘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예언서 1권과 2권을 조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로로 양이 정말 파괴자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24시간이라..."

세리온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균열은 계속 번져가고 있었지만, 속도는 조금 느려진 것 같았다.

"보관소가 버틸 수 있을까요?"

"버텨야죠."

엘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한로로 양을 죽이면, 우린 영영 진실을 알 수 없게 될 겁니다."

세리온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칼을 집어넣었다. 그는 로로를 노려봤다.

"좋아. 24시간만 기다리지."

그는 로로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하지만 넌 지하 감옥에 가둔다. 도망칠 생각은 말고."

"아, 네..."

로로는 멍하니 끌려갔다.

# Part 2/3: 전개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끝이 없었다.

로로는 세리온에게 팔을 잡힌 채 비틀거리며 내려갔다. 계단 하나하나가 차갑고 미끄러웠다. 벽에 붙은 횃불이 바람도 없는데 흔들렸다.

'왜 흔들리지?'

로로가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는 사이, 세리온이 그녀를 거칠게 밀어넣었다.

"들어가."

철창문이 삐걱거리며 닫혔다. 자물쇠가 걸리는 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로로는 감옥 안을 둘러봤다. 좁은 방 안에는 썩은 짚더미와 물통 하나. 창문도 없었다. 벽에서 습기가 배어 나왔다.

"24시간 후에 다시 온다."

세리온이 등을 돌렸다. 그의 망토가 휘날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로로는 짚더미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바닥을 펼쳐봤다. 예언서를 태웠던 손에서 아직도 재 냄새가 났다.

'내가 진짜 불을 붙인 건가?'

기억이 흐릿했다. 양피지를 만진 순간,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게 자기 의지였는지 아니면 뭔가 다른 힘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로로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상상했던 건데..."

중얼거리다가 말을 멈췄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예언서 3권이 불타면 세계가 흔들린다. 그 설정을 내가 썼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났다. 예언서가 불타는 장면은 상상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불이 붙었을까?

로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 모르겠다."

그때였다.

철창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로로는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로로는 철창 앞으로 다가갔다.

"세리온 씨?"

"아니."

낯선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횃불 빛에 비친 얼굴은 어린아이였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로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누구세요?"

로로가 물었다.

소년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낡은 열쇠였다.

"이거."

소년이 열쇠를 철창 사이로 밀어 넣었다.

"도망가세요."

"어?"

로로는 멍하니 열쇠를 내려다봤다.

"왜요?"

"빨리요."

소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로로를 봤다.

"시간이 없어요. 세리온 경이 돌아오기 전에 나가야 해요."

"아니, 그게..."

로로는 열쇠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쇠붙이가 손바닥에 닿았다.

"누가 보낸 거예요?"

"리엔 오빠요."

소년이 작게 말했다.

"오빠가 부탁했어요. 한로로 양을 꺼내달라고."

로로의 눈이 커졌다.

"리엔이?"

"네. 오빠는 지금 왕궁 도서관에 있어요. 뭔가 찾고 있대요."

소년이 철창을 흔들었다.

"빨리 나와요. 여기 있으면 죽을 거예요."

로로는 열쇠를 쥔 채 망설였다.

'도망가면 안 되는데.'

엘리스가 24시간을 달라고 했다. 예언서 1권과 2권을 조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만약 지금 도망가면 그 기회가 사라진다.

"미안한데요."

로로가 열쇠를 도로 내밀었다.

"전 안 갈래요."

소년의 얼굴이 굳었다.

"왜요?"

"도망가면 진실을 못 밝혀요. 계속 쫓기기만 할 거고."

로로는 열쇠를 철창 밖으로 밀어냈다.

"리엔한테 전해줘요. 걱정 말라고."

소년은 열쇠를 받아들지 않았다. 그는 로로를 빤히 쳐다봤다.

"정말 안 나갈 거예요?"

"네."

"바보예요."

소년이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 있으면 내일 죽는데."

"그래도요."

로로는 짚더미로 돌아가 앉았다.

"전 진실이 궁금해요. 왜 제 상상이 예언서에 적혀 있는지, 누가 제 상상을 훔쳐갔는지."

소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열쇠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알았어요."

그는 돌아서려다가 멈췄다.

"근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예언서 3권이 불탄 건 정말 당신 때문이에요?"

로로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모르겠어요. 제가 불을 붙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네요."

소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언서는 스스로 불타지 않거든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태우지 않으면요."

"그래요?"

"네. 예언서는 마법으로 보호되어 있어요. 물에도 안 젖고 불에도 안 타요."

소년이 철창을 잡았다.

"그런데 당신이 만지자마자 불이 붙었다는 건..."

"뭔데요?"

"예언서가 스스로 타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에요."

로로의 눈이 커졌다.

"책이 스스로?"

"네. 예언서는 살아 있거든요."

소년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로로는 멍하니 자기 손을 바라봤다.

'예언서가 살아 있다고?'

그녀는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까만 재가 손가락 틈으로 흘러내렸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로로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똑.

똑.

'예언서가 살아 있다.'

소년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책이 스스로 타기로 결정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아, 모르겠다..."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철창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로로는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횃불 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엘리스가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손에는 낡은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엘리스 씨?"

로로가 일어섰다.

엘리스는 대답 없이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 뒤로 세리온이 따라왔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문 열어."

엘리스가 말했다.

세리온은 망설이다가 열쇠를 꺼냈다. 철창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엘리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로로를 똑바로 쳐다봤다.

"한로로 양."

"네?"

"당신이 태운 건 3권이 아니었어요."

로로의 눈이 커졌다.

"무슨 소리예요?"

엘리스는 가방을 열었다. 안에서 낡은 양피지 뭉치가 나왔다. 가장자리가 그을린 채로.

"이게 진짜 예언서 3권이에요."

로로는 양피지를 내려다봤다. 분명 자기가 태운 책과 똑같이 생겼는데.

"그럼 제가 태운 건..."

"복제본이었어요."

엘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누군가 미리 바꿔치기한 거죠. 당신이 오기 전에."

세리온이 벽에 기댄 채 팔짱을 꼈다.

"누가 왜 그런 짓을?"

"그건 나도 몰라요."

엘리스가 양피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빼곡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진짜 3권이 살아남았는데도 보관소는 무너지고 있어요."

로로는 양피지를 들여다봤다.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파괴자는...'

그 순간이었다.

양피지에서 보랏빛 빛이 새어 나왔다. 로로는 깜짝 놀라 손을 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빛이 그녀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차갑고 따가운 감촉이 팔을 타고 번졌다.

"으윽!"

로로가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빛이 사라졌다. 대신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넌 파괴자가 아니야.'

로로는 숨을 헐떡였다.

"방금... 뭐였어요?"

엘리스가 로로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목소리가 들렸어요."

로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언서가 말을 걸었어요. 제가 파괴자가 아니래요."

세리온의 눈빛이 흔들렸다.

"예언서가 직접?"

"네."

로로는 양피지를 다시 봤다. 글씨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잉크가 증발하는 것처럼.

엘리스가 황급히 양피지를 챙겼다.

"이건... 예언서가 스스로 지워지고 있어요."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엘리스가 가방에서 다른 양피지를 꺼냈다.

"이건 1권이에요. 아직 멀쩡하죠. 하지만 2권은..."

그녀가 말을 멈췄다.

세리온이 다가왔다.

"2권은 어떻게 됐소?"

"사라졌어요."

엘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보관소에 가보니 2권만 없었어요. 누군가 가져간 거예요."

로로는 멍하니 서 있었다.

'1권은 있고, 2권은 없고, 3권은 복제본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뭔가 이상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예언서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상상했던 건데..."

로로가 중얼거렸다.

엘리스가 돌아봤다.

"뭘요?"

"아니, 제가 옛날에 쓴 얘기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예언서가 세 권인데, 사실은 네 권이었다는..."

로로는 말을 멈췄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엘리스의 얼굴이 굳었다.

"네 권?"

"네. 0권이 있다는 설정이었어요. 모든 예언의 시작이 적힌..."

로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엘리스가 가방을 뒤졌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설마..."

가방 밑바닥에서 뭔가 나왔다. 아주 작고 낡은 양피지. 다른 것들과는 달리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엘리스가 그걸 펼쳤다.

세리온이 횃불을 가까이 들었다.

양피지에는 단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예언서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기록한다.'

로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엘리스가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를 뒤집었다. 뒷면에 작은 글씨가 더 있었다.

'작성일: 성력 947년 3월 12일.'

세리온이 숨을 들이켰다.

"947년이라면..."

"한로로 양이 태어나기 30년 전이에요."

엘리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로로는 양피지를 빤히 쳐다봤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내가 태어나기 30년 전에 이미 이 예언이 있었다고?'

그 순간, 감옥 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댕.

댕.

댕.

세리온이 창백한 얼굴로 돌아봤다.

"처형 준비 종이다."

총 6,941자 · 약 14분

- 3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박설 (a life story of a Cat)

Powered by NtoTOON

다음 화 읽기 · 4화
#판타지#미스터리#시간역설#추리

이 작품처럼 나도 만들기

아이디어 한 줄이면 AI가 웹소설을 써드려요 · 가입하면 4컷 웹툰 4편 무료

나도 만들기

댓글 0

로그인하고 댓글 달기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