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마신교의 정체: 민준을 아는 자
주인공: 강민준
북소리가 멈췄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더 가까워졌다.
민준은 화련의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바들바들 떨었다. 마을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적어도 열 명은 넘어 보였다.
'아 진짜,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야.'
현무 장로가 검을 빼들었다. 진무혁과 마천룡도 양 옆으로 펼쳐서더니 전투 태세를 갖췄다.
"혈마신교 정찰대다. 수는 열다섯."
마천룡이 낮게 말했다.
화련이 민준의 손을 꽉 잡았다.
"사부님, 제 뒤에 계세요."
"아... 그게..."
민준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침을 삼키려 했지만 목이 메어서 소리만 났다.
'제발 그냥 지나가. 제발.'
하지만 세상은 민준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가 마을 광장으로 들어섰다. 얼굴에 붉은 문양을 새긴 자들. 손에 든 무기에서 피 냄새가 났다.
아니, 진짜 피 냄새였다.
민준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건... 게임이 아니잖아.'
정찰대 선두에 선 남자가 입을 열었다.
"화산파 개자식들. 여기까지 쫓아왔구만."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차가웠다.
현무 장로가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혈마신교 잡것들이 감히 이곳에."
긴장감이 팽팽했다.
민준은 화련 뒤로 더 몸을 숨겼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시선은 바닥만 향했다.
그런데.
정찰대 중 한 명이 민준을 봤다.
정확히는, 민준의 얼굴을.
"어?"
그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민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뭐야, 왜 날 봐.'
남자가 손가락으로 민준을 가리켰다.
"당신... 그때 그 쓰레기통 남자?"
민준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끝났다.'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진무혁이 눈을 가늘게 떴고, 마천룡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무 장로가 물었다.
"혈영, 네가 아는 자인가?"
혈영이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 달 전쯤... 본거지 뒷골목 쓰레기통에서 봤습니다. 이 남자가 쓰레기를 뒤지면서 '이게 뭐야, 먹을 게 하나도 없잖아'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죠."
민준은 그 순간을 기억했다.
첫날. 배가 고파서 미칠 것 같았던 그날.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썩은 빵 조각 하나를 찾아서 울면서 먹었던 기억.
'아 제발.'
하지만 화산파의 반응은 달랐다.
진무혁이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께서... 적진 깊숙이 잠행하셨단 말입니까?"
화련도 눈을 반짝였다.
"역시 사부님! 혈마신교 본거지까지 들어가셨던 거군요!"
마천룡이 혀를 찼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척하며 정보를 수집하셨다... 대단하십니다."
민준은 입을 떡 벌렸다.
'뭐? 아니, 진짜로 굶어서 그런 건데?'
현무 장로가 민준을 바라봤다. 눈빛에 존경이 가득했다.
"그럼 혈마신교 본거지 구조를 알고 계시단 말이오?"
민준의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게..."
"말씀하시지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도움은 무슨, 나 진짜 모르는데.'
혈영이 끼어들었다.
"아니, 잠깐만요. 그냥 굶주린 거지 같았는데..."
마천룡이 검을 빼들었다.
"입 닥쳐."
혈영의 목에 검끝이 닿았다. 혈영이 움찔했다.
현무 장로가 다시 물었다.
"강 고수, 본거지 구조를 아십니까?"
민준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
"저기... 그게..."
"괜찮소. 천천히 말씀하시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민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거짓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진실을 말해야 하나?
그런데 입에서 나온 건 엉뚱한 말이었다.
"...기억이 좀 흐릿해서요."
현무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지. 적진에 잠입했으면 긴장했을 테니."
화련이 종이와 붓을 꺼냈다.
"사부님, 그려주세요. 기억나는 대로요."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받았다.
'뭘 그려. 나 거기 구조 모르는데.'
하지만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휙휙.
그냥 대충 그렸다. 네모 몇 개 그리고, 선 몇 개 긋고.
'이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붓을 내려놓았다.
현무 장로가 그 그림을 집어 들었다. 눈이 커졌다.
"이건..."
진무혁이 옆에서 봤다.
"본거지 중앙 광장과 혈전각의 배치가 정확합니다."
마천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신교 정보망에서 흘러나온 자료와 일치하는군요."
민준은 귀를 의심했다.
'뭐? 일치한다고?'
화련이 감탄했다.
"사부님, 정말 대단하세요!"
민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왜 맞는 거야? 나 그냥 아무렇게나 그렸는데!'
현무 장로가 혈영을 쳐다봤다.
"이 자를 생포하라. 더 캐물어야 할 게 있다."
진무혁과 마천룡이 혈영을 붙잡았다.
혈영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자 민준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아, 저 사람 나 알잖아. 진짜 알잖아고.'
손끝이 저렸다. 숨이 막혔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현무 장로가 다가왔다.
"강 고수, 고생이 많으셨소."
"아... 네. 그게..."
민준은 고개를 더 숙였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은 저절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화련이 민준의 팔을 살짝 잡았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저기... 그냥... 좀..."
대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진무혁이 혈영을 밧줄로 묶으며 물었다.
"본거지에 얼마나 있었습니까?"
혈영이 발버둥쳤다.
"아니, 진짜 오해예요! 저 사람 그냥 거지였다니까요!"
마천룡이 혈영의 뒤통수를 탁 쳤다.
"입 닥치라고 했지."
혈영이 신음했다. 민준은 그 광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미안... 근데 나도 어쩔 수가 없어.'
현무 장로가 지도를 다시 펼쳤다.
"이 구조대로라면 혈전각 뒤편으로 침투할 수 있겠군."
진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정면 돌파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화련이 민준을 올려다봤다.
"사부님,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아셨어요?"
민준의 입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
"그게... 게임에서..."
"네?"
"아, 아니. 그냥... 기억나는 대로요."
화련이 눈을 반짝였다.
"역시 사부님은 겸손하세요."
민준은 속으로 울었다.
'겸손이 아니라 진짜 모른다고.'
현무 장로가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이제 혈마신교 본대가 올 것이오. 준비하시오."
마천룡이 검을 들었다.
"본대라면 최소 삼십 명. 우리만으론 버티기 힘듭니다."
"알고 있네."
현무 장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민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삼십 명? 미쳤어?'
화련이 민준의 손을 꽉 잡았다.
"사부님, 제가 지켜드릴게요."
"아... 응..."
민준은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였다.
땅이 울렸다.
쿵. 쿵. 쿵.
발소리. 아니, 발소리라기엔 너무 무거웠다.
민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이건 또 뭐야.'
마을 입구 쪽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다가 민준은 포기했다.
'너무 많아.'
현무 장로가 검을 뽑았다.
"혈마신교 본대다. 진형을 갖춰라."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민준은 그 틈에서 몸을 더 웅크렸다.
'나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본대 선두에 선 자가 입을 열었다.
"화산파 개자식들. 우리 정찰대를 건드렸다면서?"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현무 장로가 대답했다.
"혈마신교 잡것들이 먼저 쳐들어왔지."
"크크크."
그 남자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소름 끼쳤다.
민준은 화련 뒤로 더 몸을 숨겼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제발 나 좀 안 보고 지나가.'
하지만 세상은 또 민준의 기도를 씹어 먹었다.
본대 중 한 명이 민준을 가리켰다.
"저기 저 남자."
민준의 심장이 멎었다.
"뭐?"
"저 남자... 본거지 식당에서 설거지하던 놈 아니에요?"
민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끝났다.'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진무혁이 눈을 크게 떴다.
"설거지까지 하셨단 말입니까?"
화련이 감탄했다.
"사부님... 그렇게까지 깊이 잠입하셨다니..."
마천룡이 혀를 찼다.
"설거지를 하며 적의 동태를 살폈다... 대단하십니다."
민준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진짜 굶어서 밥 얻어먹으려고 한 건데?'
그 남자가 다시 말했다.
"아니, 그냥 접시 깨먹고 쫓겨난 놈인데..."
현무 장로가 끼어들었다.
"접시를 깨는 척하며 정보를 빼돌렸겠지."
"네?"
"혈마신교 놈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안다네."
민준은 속으로 절규했다.
'모르긴 뭘 알아! 나도 모르는데!'
혈영이 옆에서 소리쳤다.
"진짜 아니라니까요! 저 사람 진짜 거지였어요!"
마천룡이 혈영의 입을 막았다.
"시끄러워."
본대 선두의 남자가 검을 뽑았다.
"뭐가 됐든, 다 죽이면 그만이지."
그 순간 민준의 뒤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강 고수."
민준이 고개를 돌렸다. 현무 장로였다.
"본거지 내부에 약점이 있소?"
"예? 아... 그게..."
"알고 계시다면 말씀해 주시오. 우리가 살 길이오."
민준의 입이 바짝 말랐다.
'약점?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입에서 나온 건 또 엉뚱한 말이었다.
"...소금."
"뭐?"
"소금이요."
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이었다. 머릿속에서 게임 지식이 튀어나왔다.
"혈마신교는... 혈기를 다루잖아요. 그런데 소금은... 정화 효과가..."
현무 장로의 눈이 커졌다.
# 혈마신교의 정체: 민준을 아는 자 (Part 3/3)
현무 장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소금이라... 어디서?"
민준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식당이요. 부엌 뒤쪽에... 자루로 쌓여 있었어요."
'아 진짜 왜 이런 말이 나와.'
화련이 끼어들었다.
"사부님, 그럼 그걸로 뭘 하면 되죠?"
"저기... 그냥..."
말끝을 흐렸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
본대 선두의 남자가 비웃었다.
"소금? 크크, 미신 따위를 믿나?"
현무 장로가 검을 들어 올렸다.
"미신이든 뭐든, 시도는 해봐야지."
진무혁이 뒤로 물러섰다.
"제가 마을 부엌을 뒤지겠습니다."
"서둘러라."
진무혁이 사라졌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울었다.
'아, 진짜 소금 같은 게 통할 리가 없는데.'
본대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키가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재미없는 짓은 그만두고, 죽어라."
검이 번쩍였다.
마천룡이 막아섰다. 칼날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넌 내가 상대한다."
"크크, 화산파 검술? 별거 아니던데."
두 사람이 엉켰다. 검이 허공을 갈랐고, 땅이 패였다.
민준은 그 광경을 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다리가 풀렸다.
'나 여기 있으면 죽어.'
화련이 민준의 앞을 막아섰다.
"사부님, 제 뒤에 계세요."
"아... 응."
고개를 끄덕였다.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본대의 다른 남자가 다가왔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했다.
"너희 중 누가 우리 정찰대를 죽였지?"
현무 장로가 대답했다.
"내가 죽였다."
"거짓말. 네 검엔 피 한 방울 안 묻었어."
흉터 남자의 시선이 민준에게 꽂혔다.
민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저... 저기요..."
"너냐?"
"아니... 전... 그냥..."
화련이 검을 뽑았다.
"사부님을 건드리지 마!"
흉터 남자가 웃었다.
"사부? 저 겁쟁이가?"
칼이 날아왔다. 화련이 막았지만 뒤로 밀렸다.
민준은 그 틈에 옆으로 피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도망쳐야 해.'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화련이 쓰러지면 자기도 끝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진무혁이 돌아왔다. 손에 자루를 들고 있었다.
"소금 가져왔습니다!"
현무 장로가 받아 들었다.
"이걸로 뭘 하면 되오?"
시선이 민준에게 쏠렸다.
민준의 입이 바짝 말랐다.
"그게... 뿌리면..."
"뿌린다고?"
"네... 그냥... 던지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고개는 더 숙여졌다.
현무 장로가 자루를 열었다. 소금이 쏟아졌다.
흉터 남자가 비웃었다.
"미쳤나? 소금 따위로..."
현무 장로가 소금을 휘둘렀다. 하얀 가루가 허공에 흩날렸다.
소금이 흉터 남자의 얼굴에 닿았다.
"으악!"
비명이 터졌다.
민준의 눈이 커졌다.
'뭐? 진짜 통해?'
흉터 남자의 피부가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게 무슨..."
본대 선두의 남자가 소리쳤다.
"물러서라! 저 소금은 정화염이 깃들어 있다!"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소금을 집어 들었다.
민준은 그 광경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정화염? 뭐? 게임에서도 그런 거 없었는데.'
화련이 소금을 뿌렸다. 본대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마천룡이 검을 휘둘렀다. 상대의 가슴에 소금이 묻은 칼날이 박혔다.
"크아아!"
본대가 뒤로 물러났다.
현무 장로가 외쳤다.
"밀어붙여라!"
화산파가 앞으로 나아갔다. 소금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민준은 그 틈에서 벽에 등을 기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게 뭐야. 왜 소금이 통하는 거야.'
본대 선두의 남자가 검을 거두었다.
"후퇴한다."
"대주님!"
"지금은 물러서야 한다. 저 소금은... 예상 밖이다."
본대가 뒤로 물러났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현무 장로가 검을 내렸다.
"이겼다."
화산파 제자들이 환호했다.
민준은 그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이 떨렸다.
'이긴 게 아니라 그냥 운이 좋았던 거잖아.'
화련이 달려왔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응...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
진무혁이 다가왔다.
"사부님, 소금에 정화염이 깃들어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그냥... 게임에서..."
"게임?"
"아니, 그게 아니라..."
말끝을 흐렸다. 대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현무 장로가 민준 앞에 섰다.
"강 고수, 당신 덕분에 살았소."
"아니... 저는..."
"겸손하지 마시오.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 것이오."
민준은 고개를 더 숙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때 혈영이 소리쳤다.
"아니, 진짜 저 사람 거지였다니까요! 본거지에서 설거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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