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약 14분 · 총 7,040자

장로의 함정 질문

주인공: 강민준

화련의 비명이 마을을 가르는 순간, 민준의 다리가 풀렸다.

"으윽!"

검은 피가 화련의 어깨를 타고 흘렀다. 마천룡의 마장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였다.

'아, 진짜 죽는구나. 나도 곧.'

민준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두 걸음, 세 걸음. 어느새 등 뒤에 벽이 닿았다.

"크크큭. 화산의 검이 이리 무디다니."

마천룡이 입꼬리를 올렸다. 핏기 없는 얼굴에 붉은 눈동자만 이글거렸다.

진무혁이 화련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세웠다.

"사형, 물러서시오!"

"나, 괜찮아..."

화련이 이를 악물었지만 검을 쥔 손이 떨렸다. 상처에서 검은 기운이 번져 올라오고 있었다.

'마독이다.'

민준은 웹소설에서 본 설정이 떠올랐다. 마교의 독은 내공으로 정화해야 하는데, 화련은 지금 그럴 여유가 없어 보였다.

"모두 물러서라."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광장을 눌렀다.

현무 장로였다.

백발에 주름진 얼굴이지만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장로가 한 걸음 내딛자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천룡조차 웃음을 거두고 경계했다.

"화산의 현무 장로. 60년 전 혈마대전 때 우리 교주님의 팔을 끊었다는 그 노인네로군."

"그때 목을 베지 못한 게 한이로다."

현무 장로의 손이 검 손잡이에 닿았다. 그 순간 민준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저, 저 할아버지 진짜 강한 거 아냐?'

하지만 장로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민준만 알아챈 변화였다.

'...설마 부상? 아니면 나이 때문에?'

마천룡도 눈치챘는지 비웃음을 흘렸다.

"늙으셨군요. 예전 같으면 벌써 베었을 텐데."

"시끄럽다!"

진무혁이 검을 휘둘렀지만 마천룡은 가볍게 피했다.

"오늘은 이쯤 해두지. 어차피..."

마천룡의 시선이 민준에게 꽂혔다.

"저 가짜 고수가 얼마나 버티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테니까."

핏빛 잔상을 남기며 마천룡이 사라졌다. 마교 무사들도 그림자처럼 물러났다.

침묵이 흘렀다.

민준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벽에 붙어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강 고수."

현무 장로가 돌아섰다.

민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예, 예?"

"라면 봉지 비급으로 마을에 결계를 쳐 주시오."

"...네?"

뭔 소리야, 이 할아버지가.

민준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현무 장로의 눈빛은 진지했다.

"혈마신교의 마기가 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소. 그대의 비급이라면 막을 수 있지 않겠소?"

"저, 저기... 그게..."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결계? 나보고 결계를 치라고? 라면 봉지로?'

진무혁이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장로님, 저자는 수상합니다. 아직 제대로 된 무공 하나 보여준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다른 화산파 제자들도 수군거렸다.

민준은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거 진짜 들킨 거 아냐? 아, 망했다. 진짜 망했어.'

"강 고수."

현무 장로가 한 걸음 다가왔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벽이었다.

"소금."

"...예?"

"아까 중얼거리지 않았소? 소금을 뿌리면 귀신이 물러간다고."

민준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헐, 그거 들었어? 혼잣말이었는데?'

"그, 그건 그냥... 옛날 미신 같은..."

"미신?"

현무 장로의 눈빛이 깊어졌다.

"60년 무림을 살며 깨달은 것이 있소. 미신이란 것은 없다. 모두 이치가 있을 뿐."

민준은 할 말을 잃었다.

화련이 다가와 민준의 손을 잡았다.

"강 고수님, 부탁드려요. 이 마을 사람들을..."

상처투성이 얼굴로 애원하는 화련을 보자 민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아, 진짜. 왜 예쁜 애가 이러면 나 약해지잖아.'

"저, 저기... 제가 뭘..."

"고수님이 아니면 안 돼요."

화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망했다. 진짜 망했어. 이거 어떻게 해.'

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현무 장로의 날카로운 눈빛, 화련의 애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기대 섞인 시선.

"...소금이요?"

민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소."

"그, 그럼 일단... 소금부터 구해야..."

"이미 준비했소."

현무 장로가 손짓하자 제자 하나가 커다란 자루를 들고 왔다.

천일염이 가득 담긴 자루였다.

'미쳤나, 진짜. 이거 뭐 어떻게 하라고.'

민준은 자루를 받아들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진무혁이 팔짱을 끼고 비웃었다.

"자, 어디 한번 보여주시지. 그 대단하다는 비급의 위력을."

민준은 자루를 끌어안고 마을 입구로 걸어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게임에서... 게임에서 뭐 본 게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화련이 다가왔다.

"고수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뿌리면 돼요. 그냥."

# Part 2/3: 전개

민준의 손이 자루 안으로 들어갔다.

거친 소금 알갱이가 손바닥에 닿았다.

'이거... 그냥 뿌리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현무 장로의 시선이 등을 찔렀다. 진무혁은 팔짱을 낀 채 비웃고 있었다.

"강 고수, 무슨 진법을 쓸 것이오?"

장로의 질문에 민준의 목구멍이 막혔다.

"진, 진법이요?"

"그렇소. 소금을 어떤 이치로 배치할 것인지."

'이치? 배치? 아 씨, 그냥 뿌리는 게 아니었어?'

민준은 자루를 꽉 쥐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화련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왔다.

"고수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너무..."

"아, 저기... 괜찮아요. 집중하는 거라..."

거짓말이었다. 지금 머릿속은 새하얘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진무혁이 비아냥거렸다.

"혹시 방법을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요?"

민준의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 그럴 리가요..."

"그럼 어서 보여주시지."

현무 장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노부도 궁금하오. 60년 무림을 살았지만 소금으로 마기를 막는다는 건 처음 듣는지라."

민준은 자루를 들고 마을 입구 쪽으로 걸었다.

다리가 떨렸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게임에서... 게임에서 뭐 본 게 있잖아. 소금으로 뭐 하는 거.'

하지만 떠오르는 건 RPG에서 본 마법진 그림뿐이었다.

'원? 아니면 별 모양? 아 씨, 그냥 둥글게 뿌리면 되는 거 아냐?'

민준이 자루를 기울였다.

소금이 우수수 쏟아졌다.

하얀 가루가 땅바닥에 선을 그렸다.

"오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민준은 손을 떨며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이 떨려서 선이 삐뚤빼뚤했다.

'망했다. 이거 완전 개판이잖아.'

진무혁이 코웃음 쳤다.

"저게 진법이라고? 어린애 낙서보다 못하군."

화련이 급히 끼어들었다.

"진무혁 사형! 고수님을 의심하지 마세요!"

"의심? 저걸 보고도 믿으란 말이오?"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는 사이, 민준은 계속 소금을 뿌렸다.

원이 완성됐다. 아니, 완성됐다기보단 어떻게든 이어졌다.

'이제 뭐 해? 이게 끝이야?'

현무 장로가 다가왔다.

"흠..."

장로가 원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민준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강 고수."

"예, 예?"

"이 원의 의미가 무엇이오?"

민준의 입이 바짝 말랐다.

"그, 그게... 원은..."

'원? 원이 뭐였더라. 완전함? 순환? 아 모르겠어!'

"...천지의 이치를 담은 거예요."

입에서 나온 말에 민준 본인도 놀랐다.

현무 장로의 눈빛이 깊어졌다.

"천지의 이치?"

"네, 그러니까...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데..."

민준은 어디선가 들은 말을 끄집어냈다.

"원은 하늘을 상징하고, 마기는 땅의 기운이니까... 하늘의 이치로 땅을 누르는..."

말하면서도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하지만 현무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원지방(천지)... 그렇군."

'헐, 통했어?'

민준은 속으로 환호했다. 하지만 장로의 다음 질문이 날아왔다.

"그럼 소금은 어떤 원리로 마기를 막는 것이오?"

민준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소, 소금은..."

'삼투압? 나트륨? 아 씨, 이걸 어떻게 설명해.'

"정화 작용이 있어서요."

"정화?"

"네, 소금은... 부정한 기운을 빨아들여서..."

현무 장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빨아들인다? 그럼 소금 자체가 마기에 오염되는 것 아니오?"

'아 맞네. 그러네.'

민준은 말문이 막혔다.

진무혁이 비웃었다.

"역시 사기꾼이었군. 말이 앞뒤가 안 맞지 않소?"

화산파 제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자가 정말 고수가 맞나?"

"라면 봉지도 수상하고..."

민준의 등에서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망했다. 진짜 들켰어.'

그때 화련이 앞으로 나섰다.

"장로님, 고수님은 분명..."

"화련, 물러서라."

현무 장로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장로가 민준 앞으로 다가왔다. 단 한 걸음이었지만 공기가 무거워졌다.

"강민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이 노부는 60년간 수많은 무인을 봐왔소."

민준은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진짜 고수는 말에 흔들림이 없소. 그런데 그대는..."

장로의 손이 민준의 어깨에 닿았다.

"떨고 있구려."

민준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끝났다. 진짜 끝났어.'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우...

땅이 울렸다.

민준이 뿌린 소금 원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올랐다.

"이, 이게?"

현무 장로가 뒤로 물러섰다.

소금 알갱이 하나하나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백광이었다.

"저건..."

진무혁의 얼굴이 굳었다.

빛이 원을 따라 번져나갔다. 마을 전체를 감싸는 하얀 장막이 형성됐다.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민준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뭐야, 이거 진짜 된 거야?'

소금 원에서 피어오른 백광이 마을을 감쌌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장막이었다.

현무 장로가 손을 뻗어 빛을 만졌다.

"이건..."

장로의 눈이 커졌다.

"순수한 양기(기)로구나."

진무혁이 황급히 다가왔다.

"장로님, 저건 그냥 우연일 수도..."

"우연?"

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소금 알갱이 하나하나가 정확히 같은 간격으로 빛을 낸다. 이게 우연이겠는가?"

민준은 땅바닥을 내려다봤다.

'...진짜네?'

떨리는 손으로 뿌렸는데 소금이 일정한 간격을 이루고 있었다.

'이거 내가 한 게 맞아? 손 떨려서 막 뿌렸는데?'

화련이 감격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고수님! 역시 고수님이셨어요!"

"아, 그게... 저기..."

민준은 손사래를 쳤지만 화련은 이미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현무 장로가 민준을 뚫어지게 봤다.

"강 고수."

"예, 예?"

"방금 그대가 한 것은..."

장로가 소금 원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천지정기를 소금에 담아낸 것이오?"

'뭐? 천지정기? 그게 뭔데?'

민준은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 그런... 셈이죠..."

장로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

"대체 어떤 심법으로..."

그 순간이었다.

쿠궁!

마을 밖에서 폭음이 터졌다.

소금 장막이 흔들렸다. 밖에서 시커먼 기운이 밀려들었다.

"마기다!"

화산파 제자들이 검을 뽑았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장막 너머로 붉은 형체가 어른거렸다. 마천룡이었다.

"크크크... 재미있는 재주로군."

음산한 목소리가 장막을 뚫고 들어왔다.

"하지만 소금 따위로 본좌를 막을 수 있다고?"

마천룡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혈기가 소금 장막을 때렸다.

파지직!

장막이 금이 갔다.

"안 돼!"

화련이 비명을 질렀다.

민준은 눈앞이 캄캄했다.

'망했다. 진짜 망했어. 이거 곧 깨지잖아!'

현무 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강 고수, 장막을 보강할 수 있겠소?"

"보, 보강이요?"

"그렇소. 지금 상태론 10초도 못 버틸 것이오."

민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보강? 어떻게? 소금을 더 뿌려? 아니면 뭐?'

진무혁이 칼을 겨눴다.

"장로님, 이제 그만 정신 차리십시오! 저자는 사기꾼입니다!"

"닥쳐라!"

뜻밖에도 화련이 소리쳤다.

"고수님을 의심하지 마!"

"화련, 네가 지금..."

"사형이야말로 질투에 눈이 먼 거 아니에요?"

진무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 뭐라고?"

그 사이 장막의 금이 더 벌어졌다.

마천룡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10초? 아니, 5초면 충분하겠군."

민준은 자루를 꽉 쥐었다.

손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게임에서... 게임에서 뭐 본 게 있잖아. 방어막 강화. 버프. 뭐라도!'

그때 문득 떠올랐다.

'잠깐. 소금이 빛을 낸 건... 내가 떨면서 뿌렸을 때잖아?'

민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 땀에 젖은 손바닥.

'설마... 땀? 내 땀 때문에?'

현대 지식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트륨은 수분을 만나면 반응하고... 이온화되면 전류가 흐르고...'

민준은 자루에 손을 쑤셔 넣었다.

땀 범벅인 손으로 소금을 움켜쥐었다.

"강 고수, 뭐 하시오!"

현무 장로가 다급히 물었지만 민준은 대답 대신 소금을 움켜쥔 채 원 위를 뛰기 시작했다.

"저, 저기... 이거... 이렇게..."

떨리는 손에서 소금이 뚝뚝 떨어졌다.

땀에 젖은 소금 알갱이가 기존 원 위에 흩뿌려졌다.

그 순간.

콰아아악!

장막이 두 배로 밝아졌다.

"이게?!"

현무 장로가 경악했다.

소금 원이 이중으로 빛을 냈다. 안쪽 원과 바깥쪽 원이 서로 공명하며 장막을 강화했다.

마천룡의 혈기가 튕겨 나갔다.

"크윽!"

마천룡이 뒤로 물러섰다.

"이런... 이중 진법이었단 말인가?"

민준은 헐떡이며 멈춰 섰다.

'뭐야, 진짜 됐어? 땀 때문에?'

현무 장로가 민준에게 다가왔다.

"강 고수..."

장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대가 방금 보여준 것은... 땀으로 소금을 활성화시킨 것이오?"

"네? 아, 그러니까..."

"체내 정기를 땀으로 배출해 소금과 융합시키다니..."

장로의 눈이 흔들렸다.

"본좌가 60년간 본 무공 중 가장 기이하구나."

민준은 입을 다물었다.

'칭찬... 인가? 아니면 의심하는 건가?'

진무혁이 이를 갈았다.

"장로님, 저건 분명..."

"진무혁."

장로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네 눈으로 직접 보고도 의심하겠는가?"

진무혁은 할 말을 잃었다.

화련이 민준의 손을 잡았다.

"고수님, 괜찮으세요?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총 7,040자 · 약 14분

- 4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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