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주인공: 강도혁
총성이 멎었다.
귀가 먹먹하다.
연기가 가시기도 전에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둔탁하게, 바닥에 그대로 꽂히듯이.
가운데 서 있던 쪽이었다.
"형!"
도윤이 뛰어갔다. 무릎이 바닥에 쓸리는 것도 모르고 쓰러진 몸을 끌어안았다. 손바닥에 끈적한 것이 묻어났다.
따뜻하다. 그런데 너무 빨리 식어가고 있었다.
"형, 형 눈 떠봐. 제발..."
숨소리가 가늘었다. 들릴 듯 말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유진은 총을 쥔 손을 내리지 못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방아쇠를 당긴 순간의 감각이 손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쐈어. 내가.'
그런데 뭘 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왼쪽에 서 있던 도혁, 오른쪽에 서 있던 도혁. 둘 다 똑같은 얼굴로 숨을 쉬고 있었고 가운데 있던 건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던 세 번째였다.
'셋 중 누가 진짜였지.'
생각이 거기서 멈췄다. 더 나아가지 않았다.
"유진 씨."
왼쪽 도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담담했다.
그가 천천히 걸어왔다. 쓰러진 자 옆에 무릎을 꿇더니 손목을 짚었다.
맥을 짚는 손길이 느렸다. 너무 느렸다.
"늦었네."
짧은 한마디였다.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
도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늦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대답이 없었다. 왼쪽 도혁은 그저 손목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표정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오른쪽에 서 있던 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안 오지.'
유진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저 침묵이 더 무서웠다.
도윤은 다시 쓰러진 형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피 묻은 손을 더듬다가, 손끝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그대로 멈췄다.
작은 흉터였다. 새끼손가락 아래쪽, 희미하게 남은 자국.
"이거..."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거 내가 낸 상처야. 여섯 살 때, 형이랑 같이 놀다가 내가 칼 떨어뜨려서... 형이 대신 맞아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흉터를 쓸어내리는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이게... 진짜였어?"
누구에게 묻는 건지도 모를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형이... 진짜 형이었어?"
대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왼쪽 도혁은 그저 서서 지켜볼 뿐이었고 오른쪽 도혁은 여전히 멀리서 침묵하고 있었다.
유진이 떨리는 다리로 다가왔다. 총은 여전히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조준은 이미 풀려 있었다.
"숨은, 숨은 붙어있어?"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심문관의 냉정함이 아니라 그냥 사람의 목소리였다.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손이 떨려서... 확인이 안 돼."
손가락이 자꾸 목덜미에서 미끄러졌다. 맥을 짚으려 해도 제대로 짚히질 않았다.
유진이 무릎을 꿇고 함께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의 손이 동시에 쓰러진 자의 목에 닿았다.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둘 다 숨을 참았다.
"있어."
유진이 먼저 말했다.
"약하지만, 있어."
도윤의 눈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렸다. 울음도 아니고 안도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낮은 잡음이 울렸다. 스피커가 켜지는 소리, 오래된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모두의 시선이 천장 쪽 스피커로 향했다.
치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고 느리게, 마치 미리 녹음해둔 유언처럼.
"...셋을 만들었다. 완벽하게 같은 것으로."
철민의 목소리였다. 죽은 지 오래인 사람의 음성이 지금 이 순간 지하실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유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기억도, 흉터도, 버릇까지 전부 같게 만들었지만."
잠시 침묵이 끼어들었다. 테이프가 늘어지는 소리.
"선택받은 하나만 살아남는다."
그 한마디가 지하실 벽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흩어졌다.
도윤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쓰러진 형의 몸을 안고 있던 팔이 떨렸다.
"선택받은... 하나만..."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끊겼다.
유진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재조립됐다.
'그럼 내가 쏜 게 복제품이야, 아니면 진짜가 복제품을 대신 막은 거야.'
답이 나오지 않았다. 셋 다 같은 얼굴, 같은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면 애초에 구분할 방법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때 왼쪽 도혁이 움직였다.
천천히, 한 걸음씩 유진 쪽으로 걸어왔다. 손을 내밀면서.
"유진 씨, 이리 와요."
목소리에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평소보다 지나칠 정도로.
유진의 몸이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같은 순간, 오른쪽 도혁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도윤의 등 뒤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발걸음.
도윤은 쓰러진 형에게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했다.
유진이 외치려 했다.
"도윤 씨, 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하실의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완전한 어둠. 숨소리만 남았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유진의 팔을 붙잡았다.
차갑고, 단단하고, 너무나 익숙한 감촉이었다.
손이 팔을 붙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유진의 숨이 턱에서 멈췄다.
"누구야."
대답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손가락만 더 세게 파고들었다.
손톱 끝이 팔뚝 살을 눌렀다. 아플 정도로.
'왼쪽인가. 아니면.'
머릿속에서 셋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뒤섞였다. 같은 눈, 같은 입, 같은 흉터.
"도윤 씨!"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흩어질 뿐이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둠 저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몸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
그리고 낮은 신음.
"도윤 씨, 괜찮아요?"
목소리가 흔들렸다. 유진은 팔을 붙잡은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천천히 손목까지 미끄러져 내려왔다.
맥을 짚는 손길이었다.
익숙한 손길. 아까 쓰러진 자의 목을 짚던 그 느낌과 똑같았다.
"살아있네."
목소리가 귓가에서 낮게 울렸다.
"다행이야."
그 말투. 공손하면서도 어딘가 뒤틀린 어조. 유진의 등골이 곤두섰다.
"도혁 씨예요?"
"그게 왜 궁금해요."
반문이 날아왔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버릇.
"유진 씨가 쏜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게 더 궁금하지 않아요?"
그 말에 유진의 숨이 걸렸다.
'내가 쏜 거.'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이 다시 손끝에서 재생됐다. 조준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당긴 손가락.
"불 켜요."
유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당장."
"그게 예의지."
손이 떨어졌다. 동시에 지하실 구석 어딘가에서 스위치 소리가 들렸다.
불이 다시 들어왔다. 눈이 멀 듯한 백색광이 쏟아졌다.
유진은 눈을 찡그리며 주위를 살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건 왼쪽 도혁이었다. 아까와 똑같은 표정, 똑같은 자세.
그런데 도윤이 보이지 않았다.
"도윤 씨!"
소리친 순간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윤이 벽 쪽에 쓰러져 있었다. 목을 감싸 쥔 채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옆에 오른쪽 도혁이 서 있었다. 손끝에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 하신 거예요."
유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른쪽 도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을 졸랐죠."
담담한 대답이었다.
"죽이려던 건 아니고, 그냥 조용히 시키려던 거였어요. 저러다 소리 질러서 다른 애들 내려오면 귀찮아지니까."
말투가 너무 태연했다. 유진의 속이 뒤집혔다.
"그 손 치우세요."
"치우고 있잖아요."
오른쪽 도혁이 한 발짝 물러섰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내가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유진 씨. 자꾸 이렇게 의심하면."
그 말투에서 처음으로 날이 섰다.
도윤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목을 감싼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형... 아니, 둘 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대체 누가 진짜야. 누가 형이고 누가 아니야."
왼쪽 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걸 알아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손가락으로 쓰러진 자를 가리켰다. 여전히 가늘게 숨을 쉬고 있는 몸.
"저 사람이 눈을 뜨면, 기억하는 게 진짜예요. 흉터는 똑같이 만들 수 있어도 기억은 복제가 안 되니까."
"복제가 안 된다고 어떻게 확신해요."
유진이 쏘아붙였다.
"철민 회장이 그렇게 말했거든요."
대답이 너무 빨랐다. 너무 매끄러웠다.
유진의 시선이 두 도혁을 번갈아 오갔다.
'방금 그 말, 누가 한 거지.'
기억을 되짚어도 목소리의 출처가 헷갈렸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그 순간 쓰러져 있던 자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아주 천천히 열렸다.
흐릿한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다가 한곳에 멈췄다.
입술이 달싹였다. 소리가 되지 않는 말.
유진이 무릎을 꿇고 귀를 가까이 댔다.
가느다란 숨소리 사이로 단어 하나가 새어 나왔다.
"...셋째."
그 한마디가 지하실 공기를 얼려버렸다.
왼쪽 도혁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오른쪽 도혁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도윤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셋째가... 무슨 소리야. 우리가 셋이 아니라 넷이었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지하 깊은 곳에서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느리고, 규칙적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유진의 손이 저절로 총을 다시 움켜쥐었다. 총구가 어둠 속 계단 입구를 향했다.
"누가 와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왼쪽 도혁도, 오른쪽 도혁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둘 다 계단 쪽을 보고 있었다. 똑같은 표정으로.
"둘 다 몰랐던 거예요?"
유진이 물었다. 대답 대신 침묵이 돌아왔다.
쓰러진 자의 숨이 다시 가빠지고 있었다. 눈꺼풀이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했다.
"셋째가... 와."
가느다란 목소리가 다시 새어 나왔다.
도윤이 기어가듯 다가가 형의 어깨를 붙잡았다.
"셋째가 누군데. 왜 아무도 말 안 했어."
대답은 없었다. 숨소리만 거칠어질 뿐이었다.
계단 쪽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윤곽을 드러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유진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느낌이었다. 숨을 참느라 가슴이 뻐근했다.
그림자가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디뎠다.
불빛 아래로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유진의 손에서 총이 떨어질 뻔했다.
같은 얼굴이었다.
똑같은 눈, 똑같은 코, 똑같은 입매. 그리고 왼손 새끼손가락 아래, 똑같은 흉터.
"다들 모여 있었네요."
목소리마저 똑같았다. 다만 말투가 조금 달랐다. 공손함 아래 숨은 날이 더 선명했다.
"이게 예의는 아니지 않아요? 나만 빼고 시작하다니."
왼쪽 도혁의 눈이 흔들렸다. 오른쪽 도혁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유진은 세 얼굴을 번갈아 봤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지금 막 내려온 넷째.
'셋이 아니었어. 처음부터.'
철민의 녹음이 다시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셋을 만들었다. 선택받은 하나만 살아남는다.*
셋이라고 했다. 그런데 넷이었다. 그렇다면 녹음 자체가 거짓이거나, 아니면—
쓰러진 자의 손이 바닥을 긁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이 다시 달싹였다.
유진이 급히 귀를 가져다 댔다. 숨소리 사이로 단어가 끊어지며 흘러나왔다.
"...본체는... 없었다."
그 말에 지하실 전체가 숨을 멈춘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본체가 없다니. 그럼 우리가 전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넷째 도혁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아까 오른쪽 도혁의 것과 똑같았다.
"내가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유진 씨."
똑같은 말버릇. 똑같은 어조.
"이제 넷 중 누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누가 마지막까지 서 있느냐죠."
꺼내든 건 녹음기였다. 낡고 작은, 철민의 것과 똑같은 모델.
재생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치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다시 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짜는 기억하지 못한다. 가짜만이 기억한다. 그것이 내가 설계한 마지막 함정이다."
유진의 숨이 완전히 멈췄다.
도윤의 손에서 형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힘이 풀렸다.
왼쪽 도혁과 오른쪽 도혁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똑같이 흔들리는 눈으로.
지하실 불빛이 또다시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완전한 어둠이 쏟아졌다.
유진의 팔을 누군가 다시 붙잡았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차갑고, 더 세게.
귓가에 숨결이 닿았다.
"이제 선택해야 해요."
목소리가 넷 중 누구의 것인지, 유진은 끝내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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