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약 10분 · 총 5,232자

결말 — 마지막 숨소리

주인공: 강도혁

손이 먼저였다.

어둠 속에서 손목을 낚아챈 손가락 다섯 개, 그 억센 힘에 유진은 숨을 삼켰다.

"선택해야 합니다."

목소리가 귓가에 바짝 붙었다.

"유진 씨가 선택해야 선택해야 선택해야..."

같은 말이 테이프처럼 반복됐다. 뚝 끊기더니 다시 처음부터.

'넷째다.'

유진은 손목을 비틀어 빼려 했지만 그럴수록 손가락이 더 파고들었다.

손톱이 살을 누르는 감각, 아프다기보다 서늘했다.

"놔."

"제가 왜 놔야 하죠? 이게 예의인데."

그 말투에 소름이 돋았다. 도혁의 말버릇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가짜 같았다.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매끄럽기만 했다.

비상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러다 켜졌다.

붉은 빛 아래 네 개의 그림자가 벽에 걸렸다. 유진은 숨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나머지 셋은 서 있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체격, 똑같이 구겨진 셔츠.

'넷 중 하나는 죽어가고 있어.'

'셋 중 하나는 진짜고.'

유진의 손목을 쥔 자가 입을 열었다.

"보셨죠? 쓰러진 게 가짜입니다. 진짜라면 저렇게 쉽게 당할 리가 없잖아요."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너무 빨랐다.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유진은 손목을 다시 비틀었다. 이번엔 힘이 빠졌는지 스르륵 풀렸다.

"놔달라니까."

"...al겠습니다. 제가 좀 심했네요. 그게 예의가 아니죠."

'방금 그 문장, 어색해.'

'도혁이라면 저렇게 안 써.'

유진은 뒷걸음질 치며 쓰러진 자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숨소리가 들렸다.

얕고 불규칙했다. 가슴이 들썩이는 간격이 짧았다 길었다 했다.

'진짜 다쳤어.'

'연기가 아니야.'

손을 뻗어 옆구리 상처에 살짝 닿았다.

그 순간, 쓰러진 자의 왼손이 움찔했다. 각도가 미세하게 틀어지며 손끝이 안으로 말렸다.

유진의 눈이 커졌다.

"도혁 씨."

대답은 없었다. 숨소리만 거칠어졌다.

"강도혁 씨, 맞죠."

"...내가... 참는 데도, 한계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 유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 말버릇은 흉내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몸에 새겨진 거였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도윤이었다.

"유진 누나."

낮은 목소리로 다가온 도윤이 옆에 쭈그려 앉았다. 형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흔들렸다.

"형 왼손...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뭐가?"

"상처 건드리면 저렇게 움찔하면서 손끝이 안으로 말려요. 아홉 살 땐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무릎 깨졌을 때도 저랬어요. 아프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하면서 손만 저렇게..."

도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버지한테 맞을 때도 그랬고요."

유진은 쓰러진 자의 손을 다시 살폈다. 똑같았다. 도윤이 말한 그대로, 손끝이 안으로 말리는 그 각도.

'하나는 찾았어.'

'근데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직 몰라.'

서 있는 셋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재밌는 추리네요. 근데 그거 아세요? 저도 그 버릇 있습니다."

손목을 쥐었던 자였다. 그가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옆구리를 짚더니, 똑같이 손끝을 말아 보였다.

완벽했다. 각도도, 속도도 똑같았다.

도윤의 얼굴이 하얘졌다.

"저것도... 저것도 똑같아."

유진은 숨을 고르며 둘을 번갈아 봤다. 쓰러진 자와 서 있는 자. 같은 몸짓, 같은 반응.

'똑같이 따라 했어.'

'근데 뭔가, 뭔가 달라.'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처음 쓰러진 자가 손끝을 말았을 때와, 방금 서 있는 자가 손끝을 말았을 때. 그 사이의 침묵.

쓰러진 자는 손이 닿는 순간 바로 반응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서 있는 자는... 반 박자 늦었다. 아주 짧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지연.

'거기다.'

'그 틈이 가짜의 흔적이야.'

유진은 천천히 일어났다. 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손이 떨렸지만 조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너."

손목을 쥐었던 자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방금 그 반응, 생각하고 한 거지. 진짜는 생각 안 해. 몸이 먼저 움직이니까."

그가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웃음인지 당황인지 구분이 안 가는 표정이었다.

"유진 씨, 똑똑하시네요. 근데..."

목소리가 달라졌다. 공손한 존댓말이 뚝 끊기더니, 처음 듣는 억양이 흘러나왔다.

"씨발, 이쯤 되면 나도 인정해야겠네."

총구를 든 유진의 손끝이 움찔했다.

그 말투는, 넷 중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정적이 지하실을 눌렀다.

유진은 총구를 거두지 않았다. 귀에 남은 그 말투, 누구의 것도 아닌 말투가 머릿속에서 되감겼다.

"방금 그거, 뭐야."

"뭐가요."

지목당한 자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존댓말로 돌아왔지만 눈빛은 그대로였다.

"씨발이라고 했잖아. 너."

"제가 언제요."

능청스러운 부정이었다. 그런데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들어 올린 두 손,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저건 연기가 아니야.'

'뭔가 억누르고 있어.'

옆에서 도윤이 형의 어깨를 받쳐 안았다. 쓰러진 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반쯤 열렸다.

"...씨발 저 새끼..."

쓰러진 자의 입에서 거친 숨과 함께 흘러나온 말이었다.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형, 형 정신 들어요?"

대답 대신 기침이 터졌다. 핏기 섞인 숨이 입가를 적셨다.

유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쓰러진 자와 지목당한 자, 둘 다 같은 욕을 뱉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타이밍에.

'도혁의 말버릇이 아니야.'

'이건 다른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거야.'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어긋나게 맞춰졌다. 넷째의 테이프 같은 반복, 서 있는 자의 반 박자 늦은 반응, 그리고 지금 터져 나온 낯선 욕설까지.

"너네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대본을 받은 거지. 전부."

지목당한 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완벽하게 유지되던 연기 위에 금이 갔다.

"뭐라는 거야 지금."

반말이 튀어나왔다. 다시 존댓말로 고치려는 듯 입을 다물었지만 늦었다.

"철민이 짠 거잖아, 이 지하실 전체가."

유진의 손끝이 조금씩 진정됐다. 생각이 정리되자 몸이 따라왔다.

"넷을 풀어놓고 서로 죽이게 만든 거야. 근데 누가 진짜 도혁인지는 철민도 몰라. 그러니까 각자한테 똑같은 대본을 줬겠지. 말버릇까지 통째로."

"...대본 같은 소리 하네."

"그럼 설명해봐. 방금 그 욕, 넷이 전부 똑같이 뱉은 이유를."

침묵이 흘렀다. 지목당한 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본엔 없는 말이었던 거야. 그치?"

총구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천장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콘크리트를 때리는 발소리, 여러 명이었다.

"유진 누나, 위에..."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환풍구 너머로 그림자가 지나갔다.

'황태식 쪽이야.'

'여기까지 찾아왔어.'

서 있던 나머지 둘 중 하나가 갑자기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을 붙이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 했다.

"움직이지 마."

유진의 경고에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금속이 스치는 소리.

유진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러나 조준이 흔들렸다. 지목한 자를 쏴야 할지, 뒷걸음질 치는 자를 막아야 할지.

둘 중 어느 쪽도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쓰러진 자가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엔 또렷했다.

"유진아."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누나도, 씨도 아닌, 그냥 이름.

'저건.'

유진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 익숙하면서도 낯선 떨림.

뒷걸음질 치던 자의 손에서 뭔가 번쩍였다. 어둠 속에서 짧게 반사된 빛.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유진은 이미 몸을 틀고 있었다.

총성이 공기를 찢었다.

몸을 튼 순간 어깨가 뜨거웠다. 뜨겁다기보다 저릿한 느낌, 뒤늦게 통증이 번졌다.

"유진 누나!"

도윤이 소리쳤다. 유진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벽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는 콘크리트가 차가웠다.

'맞았어.'

'근데 안 죽어.'

총을 쏜 자가 다시 자세를 잡으려 했다. 두 번째 사격을 준비하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유진은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뒤로 넘어갔다. 어깨를 움켜쥔 채 바닥을 굴렀다. 신음이 터졌지만 죽지는 않았다.

천장에서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둔탁한 진동이 지하실 벽을 타고 전해졌다.

"유진아, 괜찮아?"

쓰러져 있던 자의 목소리였다. 이름을 두 번째로 불렀다. 그 울림이 처음보다 깊었다.

'왜 자꾸 이름을 불러.'

'도혁은 나한테 저렇게 부른 적 없는데.'

생각이 거기서 멈췄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작은 기억이 올라왔다. 지하실에 들어오기 전, 도혁과 처음 만났던 날.

그날도 그는 존댓말을 썼다. '유진 씨' 라고, 한 번도 이름만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진은 어깨를 감싸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지목했던 자, 반말을 흘렸던 자, 그가 여전히 두 손을 든 채 서 있었다.

"너."

목소리가 갈라졌다.

"방금 쓰러진 쪽이 내 이름 불렀어. 근데 그거, 대본에 없는 거라며."

그가 입을 다물었다. 눈동자가 바닥을 향했다.

"대본에 없으면 그게 진짜라는 거잖아. 아니야?"

침묵이 길어졌다. 도윤이 형의 몸을 끌어안은 채 유진을 올려다봤다. 눈빛에 불안이 가득했다.

"유진 누나, 그럼 형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쓰러진 자가 다시 기침을 뱉었다. 피가 섞인 숨이 턱을 타고 흘렀다.

유진은 총구를 거두지 않은 채 한 걸음 다가갔다. 발끝이 핏자국을 밟았다.

"도혁 씨, 맞아요?"

대답 대신 손이 움직였다. 왼손, 옆구리를 향해 천천히. 손끝이 다시 안으로 말렸다.

'똑같아.'

'아까랑 똑같은 반응이야.'

확신이 드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 씨."

지목했던 자였다. 존댓말이었다. 그런데 그 억양 끝에, 처음 듣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저도 왼손 그렇게 움직입니다. 지금 보여드릴까요."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렸다. 옆구리에 손끝이 닿는 순간, 손가락이 안으로 말렸다.

반 박자의 지연도 없었다.

완벽했다.

유진의 숨이 멎었다.

'아까는 늦었잖아.'

'근데 지금은, 똑같이 빨라.'

머릿속에서 모든 게 다시 어긋났다. 쓰러진 자와 서 있는 자, 둘 다 같은 반응, 같은 속도, 같은 떨림.

천장의 발소리가 바로 위에서 멈췄다. 환풍구 덮개가 삐걱거렸다.

"그게 예의지."

지목했던 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처음으로 나온, 모두가 기다렸던 그 말버릇.

유진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서 얼어붙었다.

쓰러져 있던 자의 입꼬리가, 그 순간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환풍구 덮개가 떨어져 나갔다.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

총 5,232자 · 약 10분

- 22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남일욱

Powered by NtoTOON

#느와르#미스터리#스릴러#액션
남일욱

작가

이 작품처럼 나도 만들기

아이디어 한 줄이면 AI가 웹소설을 써드려요 · 가입하면 4컷 웹툰 4편 무료

나도 만들기

댓글 0

로그인하고 댓글 달기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