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약 14분 · 총 7,115자

관찰자의 거래, 그리고 균열

주인공: 강민준 / 아벨리우스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도. 그리고 내 귀에 가장 크게 울리는 건—

"10."

관찰자의 목소리였다.

공중에 떠 있는 네 개의 버튼이 눈앞에서 빛났다. 파란색, 붉은색, 초록색, 검은색. 각각의 위에 짧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인류 말살]

[마족 말살]

[자아 포기]

[루프 지속]

"9."

손끝이 떨렸다. 아니, 손만이 아니었다. 무릎도, 입술도, 온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이게 대체 무슨...'

"폐하."

발테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보였다.

아니, '그'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반투명한 코드 조각들이 간신히 사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팔 하나는 완전히 사라졌고, 얼굴 절반은 픽셀처럼 깨져 있었다.

"폐하... 저는..."

"8."

발테온의 입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끊겼다. 코드 조각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흩어졌다.

"발테온!"

외쳤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무릎을 꿇은 채,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시선을 돌렸다. 한서진이 보였다.

그녀는 검을 든 채 멈춰 있었다. 정확히는,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진 상태였다.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나를 향하고 있었다.

'시간 정지가 완전히 풀린 게 아니야.'

관찰자가 의도한 거였다. 나에게만 정상 속도를, 다른 모든 건 슬로우 모션으로.

"7."

"잠깐, 기다려!"

관찰자를 봤다. 그는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다리긴 뭘. 넌 102번이나 기다렸잖아."

"그, 그게 아니라..."

말이 꼬였다. 긴장하면 항상 이랬다.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심호흡을 했다. 아벨리우스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냉정하게, 위엄 있게.

"...짐의 뜻은..."

"6."

"아니, 잠깐!"

위엄은 개뿔. 목소리가 떨렸다.

관찰자가 한숨을 쉬었다.

"매번 이래. 102번 다 똑같더라. 처음엔 다들 협상하려 들어."

"협상이 아니야. 그냥, 이 선택지들이..."

네 개의 버튼을 다시 봤다.

인류 말살. 마족 말살. 자아 포기. 루프 지속.

"대체 뭐가 정답이야? 어느 걸 눌러도 망하는 거잖아!"

"정답은 없어."

관찰자가 무심하게 말했다.

"애초에 이건 선택이 아니라 분류야. 네가 어떤 엔딩을 보고 싶은지."

"5."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버튼들이 더 밝게 빛났다. 마치 빨리 누르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102번째 민준.'

갑자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선택해, 민준아.'

그는 뭘 선택했을까. 이 네 개 중 하나를?

"관찰자."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차분했다. 떨림이 멈췄다.

"102번째 민준은 뭘 선택했어?"

관찰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왜 그걸 물어?"

"궁금해서."

"4."

"대답 안 할 거야?"

관찰자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세 번째."

"세 번째?"

네 개의 버튼을 다시 봤다. 하나, 둘, 셋, 넷. 세 번째는 초록색 버튼이었다.

[자아 포기]

"자아 포기를 선택했다고?"

"응."

관찰자의 대답이 짧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왜 지금도 어딘가에서..."

"3."

"잠깐, 설명 좀 더 해봐!"

"설명할 게 없어. 그냥 그걸 눌렀어."

관찰자의 목소리에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뭔가 숨기고 있어.'

확신이 들었다.

"거짓말."

"2."

"거짓말이라니까! 네 표정 봐. 뭔가 숨기고 있잖아!"

관찰자가 나를 내려다봤다. 무표정했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 같은 게 스쳤다.

"...넌 다르네."

"뭐가?"

"다른 민준들은 여기서 그냥 아무거나 눌렀어. 1초 남았을 때 패닉 상태로."

관찰자가 천천히 내려왔다. 발이 바닥에 닿았다.

"근데 넌 질문을 하네."

"1."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버튼들이 점점 더 밝게 빛나며 떨리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선택지는 없어?"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계획한 게 아니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관찰자의 눈이 커졌다.

"...뭐?"

"다섯 번째. 이 네 개 말고 다른 선택지."

"0."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버튼들이 일제히 붉게 변하며 경고음이 울렸다.

[시간 초과. 자동 선택 개시.]

"잠깐!"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네 개의 버튼 중 하나가 저절로 눌리려는 순간—

"있긴 해."

관찰자가 말했다.

모든 게 멈췄다. 경고음도, 버튼의 움직임도.

관찰자가 나를 똑바로 봤다. 그의 얼굴에 뭔가 이상한 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픽셀.

아니, 에러 코드였다. 검은 숫자와 문자들이 그의 얼굴을 가로질러 흘러갔다.

"다

# Part 2: 전개

관찰자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은 코드들이 점점 빨라졌다. 픽셀이 깨지듯 그의 윤곽이 흔들렸다.

"다섯 번째 선택지..."

그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기계음처럼 변했다.

"...는 시스템 외부로의 이탈이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외부?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이 루프 밖으로 나가는 거."

관찰자의 손이 허공을 가리켰다. 네 개의 버튼 위쪽,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거기 있어. 안 보이지?"

"...아니."

솔직하게 답했다. 아무리 눈을 가늘게 떠도 허공일 뿐이었다.

"당연하지. 넌 아직 자격이 없으니까."

"자격?"

"시스템의 본질을 이해한 자만 볼 수 있어. 102번째 민준은 봤어."

가슴이 철렁했다.

'102번째가 그걸 선택했다고?'

"잠깐, 아까는 세 번째라고..."

말을 끝맺기도 전에 관찰자의 몸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얼굴 전체가 에러 코드로 뒤덮였다.

"커억..."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때 나는 소음 같았다.

"야, 괜찮아?"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관찰자가 무릎을 꿇었다. 허공에 떠 있던 그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쿵.

무거운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었다.

"[경고: 시스템 관리자 기능 이상 감지]"

기계 음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네 개의 버튼이 일제히 깜빡이기 시작했다.

"[자동 복구 프로토콜 실행]"

"안 돼..."

관찰자가 바닥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에러 코드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복구되면... 다시 말 못 해..."

"뭐?"

"102번째는..."

그가 고개를 들었다. 반쯤 복구된 얼굴이 나를 봤다.

"...세 번째를 선택하지 않았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거짓말했어?"

"아니, 유도했지."

관찰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입가의 픽셀이 다시 깨지기 시작했다.

"나도 규칙에 묶여 있거든. 직접적인 정보 제공은 금지야. 그래서 우회했어. 세 번째라고 말하면 넌 당연히 의심할 거라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어?'

"왜? 왜 그런 짓을..."

"[복구율 47%]"

기계 음성이 끼어들었다. 관찰자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그가 허공을 가리켰다. 네 개의 버튼 위,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을.

"집중해.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뭐야?"

"뭐?"

"빨리 대답해!"

관찰자가 소리쳤다. 목소리에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가장 두려운 것?'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선택이야."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뭘 골라도 망하는 상황. 누군가 날 책임지라고 떠미는 거. 그게 제일 무서워."

관찰자가 미소 지었다. 희미하게, 사라지기 직전의 미소였다.

"그럼 이미 보고 있어."

"...뭘?"

"다섯 번째 버튼. 그건 네 두려움 그 자체야."

"[복구율 89%]"

관찰자의 형체가 거의 사라졌다. 목소리만 간신히 들렸다.

"102번째 민준은 그걸 눌렀어. 그리고..."

"그리고 뭐?!"

"[복구 완료]"

관찰자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에러 코드는 모두 지워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택 시간 종료. 자동 선택을 시작합니다."

목소리마저 기계적으로 변했다.

"잠깐! 방금 한 말은..."

"기록에 없습니다."

차가운 대답이었다. 관찰자의 눈동자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

'복구되면서 기억까지 지워진 거야?'

네 개의 버튼 중 붉은색이 빛나기 시작했다.

[인류 말살]

"안 돼!"

손을 뻗었다. 다른 버튼을 눌러야 했다. 뭐든, 저것만 아니면.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제자리에 묶어놓고 있었다.

"시스템 선택: 최적 엔딩 루트로 자동 배정."

"최적은 개뿔! 인류 말살이 어딜 봐서 최적이야!"

"103번째 강민준의 성향 분석 결과, 책임 회피 성향 94%. 타인에게 결정 위임 성향 89%."

관찰자가 무감정하게 읽어 내렸다.

"당신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고로 시스템이 대신 선택합니다."

붉은 버튼이 점점 더 밝게 빛났다. 곧 자동으로 눌릴 것 같았다.

'이대로는...'

시선을 돌렸다. 한서진이 보였다.

여전히 슬로우 모션 상태였다. 검을 든 채, 극도로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달랐다.

정확히 나를 보고 있었다. 느린 시간 속에서도, 의지만큼은 정상 속도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저 눈빛...'

한서진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슬로우 모션이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입 모양으로는 알 수 있었다.

'선택하지 마.'

심장이 뛰었다.

'뭐? 선택하지 말라고?'

한서진의 눈빛이 위를 향했다. 네 개의 버튼 너머,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허공을 봤다. 한서진의 시선이 향한 그곳을.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였다.

"[자동 선택 카운트다운: 3초]"

붉은 버튼이 맥박처럼 뛰었다.

'집중해. 가장 두려운 것.'

관찰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선택이 무서워. 뭘 골라도 망하는 상황이.'

그 순간, 허공에 뭔가 어른거렸다.

희미하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2초."

손을 뻗었다. 네 개의 버튼이 아니라, 그 위쪽으로.

손끝이 허공을 스쳤다.

따뜻했다.

'이게... 버튼?'

"그건 안 돼!"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관찰자였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1초."

"102번째가 그걸 선택하고..."

관찰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에러 코드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허공이 찢어졌다.

쩌어어억.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검은 틈 사이로 누군가 손을 밀어 넣었다.

창백한 손이었다. 손목까지 핏줄이 검게 변한.

그 손이 관찰자의 입을 막았다.

"말하지 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년의 목소리였다.

틈이 더 넓어졌다. 그 사이로 한 소년이 빠져나왔다.

열두 살쯤 돼 보이는 아이였다. 새하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온몸에서 픽셀이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불안정한 것처럼.

"...누구야?"

물었지만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관찰자를 붙잡은 채,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0초."

소년의 입술이 움직였다.

"제로."

"뭐?"

"내 이름."

제로라는 소년이 미소 지었다.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102번째 민준은... 세 번째를 선택했어."

관찰자가 발버둥 쳤다. 제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제로의 몸이 깨지기 시작했다.

아니,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손가락부터. 픽셀 단위로 분해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루프를 돌고 있어."

"잠깐!"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제로의 팔이 사라졌다. 어깨가 사라졌다. 목까지 분해되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마지막 남은 머리만이 공중에 떠 있었다.

"넌 달라."

제로가 말했다. 목 없이, 머리만으로.

"103번째. 넌 질문을 했으니까."

"무슨 소리야? 대체 무슨..."

"다섯 번째 버튼."

제로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봤다.

**"그건 선택이 아니야. 거부야."**

머리마저 사라졌다.

픽셀 조각들이 눈송이처럼 흩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관찰자가 풀려났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시스템 오류: 외부 개입 감지]"

기계 음성이 울렸다. 네 개의 버튼이 전부 깜빡이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 초기화]"

"5."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섯 번째 버튼이 보였다.

흐릿하게, 윤곽만. 네 개의 버튼 위쪽에 떠 있었다.

색깔도 없었다. 투명에 가까웠다.

그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

빈칸이었다.

"4."

손을 뻗었다. 다섯 번째 버튼을 향해.

"안 돼!"

한서진의 목소리였다.

슬로우 모션이 풀렸다. 그녀가 정상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을 들어 올렸다. 내 목을 향해.

"그걸 누르면 넌 사라져!"

"3."

한서진이 달려왔다. 검이 허공을 갈랐다.

쉬익.

목덜미에 차가운 감촉이 스쳤다.

'늦었어.'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다섯 번째 버튼. 투명한 그것을 향해.

'거부라고 했지. 선택이 아니라.'

손끝이 닿았다.

따뜻했다. 아까보다 더.

"2."

한서진의 검이 내 목 1cm 앞에서 멈췄다.

아니, 세상이 멈췄다.

관찰자도, 한서진도, 네 개의 버튼도.

모든 게 정지했다.

나만 움직이고 있었다.

손끝으로 다섯 번째 버튼을 눌렀다.

딸깍.

소리가 났다. 작고 선명한.

빈칸에 글자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강민준]

내 이름이었다.

그 순간, 네 개의 버튼이 전부 깜빡였다.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 회색.

동시에.

"[오류: 다중 선택 감지]"

"[오류: 시스템 모순 발생]"

"[오류: 루프 구조 붕괴 시작]"

기계 음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세계가 흔들렸다.

바닥에 금이 갔다. 하늘이 갈라졌다. 허공에 떠 있던 관찰자의 몸이 다시 에러 코드로 뒤덮였다.

한서진의 검이 떨렸다. 1cm 앞에서, 여전히 내 목을 겨눈 채.

그녀의 눈동자만 움직였다.

나를 봤다.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바보.'

소리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달랐다.

분노도, 살의도 아니었다.

'...안도?'

착각일까.

한서진의 눈가에 뭔가 맺혔다. 투명한 것이.

"1."

카운트다운이 계속됐다.

하지만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1초가 무한히 반복됐다.

"1. 1. 1. 1."

총 7,115자 · 약 14분

- 8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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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코미디#던전#착각물
리
리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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