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약 14분 · 총 7,159자

관찰자의 거래, 게임 밖으로 나가는 법

주인공: 강민준 / 아벨리우스

손가락이 움직였다.

민준의 의지와 상관없이.

검지가 천천히 구부러지며 허공의 무언가를 가리켰다. 아니, 가리키려 했다. 민준은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했다.

'멈춰. 제발.'

1밀리미터.

손가락이 떨리며 멈췄다. 하지만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관절을 비틀었다.

"끄으윽..."

민준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옥좌 방의 천장이 코드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검은 벽 너머로 푸른 빛의 격자무늬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위를 미끄러지는 하얀 화살표.

커서였다.

'저게 날 조종하고 있어.'

민준의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갔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열기가 팔을 타고 올라왔다. 아벨리우스의 마력인지, 시스템의 강제 동기화인지 알 수 없었다.

"폐하!"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아득하게.

민준은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알만 간신히 굴렸다.

한서진이 투명한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쾅.

쾅.

장갑도 벗은 맨손이었다. 피가 튀었다. 하지만 한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이딴 게... 벽이라고!"

세 번째 타격.

투명한 공기가 갈라졌다.

미세한 균열이었다.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그 틈새로 뭔가 검은 것이 스며들었다.

아니, 기어 나왔다.

제로였다.

"커헉..."

제로가 바닥에 쓰러졌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시스템 장벽을 통과하는 데 무리했던 모양이다.

"관찰자... 새끼..."

제로가 피를 뱉으며 웃었다.

"너도... 죄수야. 인정 안 해서 그렇지."

그 순간, 민준의 손가락이 멈췄다.

커서가 사라졌다.

민준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옥좌 위 허공에 관찰자가 떠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여유로운 표정은 없었다.

관찰자의 눈이 흔들렸다.

"제로. 넌 왜 매번..."

"매번? 웃기네."

제로가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비틀거렸지만 시선만은 또렷했다.

"내가 여기 온 게 처음인 줄 알아? 난 이미 스물세 번째야. 루프마다 기억 지워지는 거 빼면."

민준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스물세 번?'

"그, 그러니까..."

민준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관찰자의 시선이 민준에게 꽂혔다.

'아, 안 돼. 또 이러면...'

민준은 허겁지겁 말투를 바꿨다.

"...짐의 뜻은 이미 정해졌다. 설명하라. 지금 당장."

관찰자가 한숨을 쉬었다.

"강제 동기화를 중단하지."

관찰자가 손을 내렸다. 민준의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민준은 그대로 옥좌에 주저앉았다.

"대신 거래하자."

관찰자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차갑던 음색에 미세한 떨림이 섞였다.

"나도 여기서 나가고 싶어."

한서진이 검을 뽑았다.

"무슨 개소리야. 넌 게임 마스터잖아."

"아니."

관찰자가 고개를 저었다.

"난 중간 관리자일 뿐이야. 진짜 플레이어는 따로 있어. 렌즈 너머에서 커서를 움직이는."

민준의 시야가 다시 흔들렸다. 천장의 코드가 완전히 벗겨졌다. 그 위로 거대한 메뉴창이 떠올랐다.

[SAVE / LOAD / OPTION]

"저게... 뭐야..."

민준이 중얼거렸다.

관찰자가 손을 뻗었다. 허공에 세 개의 구슬이 나타났다. 각각 다른 색으로 빛났다.

붉은색. 검은색. 회색.

"선택지를 줄게."

관찰자의 손이 떨렸다. 구슬들이 흔들렸다.

"첫 번째. 아벨리우스와 완전히 융합해. 네 의지는 사라지지만 절대자로서 영원히 살 수 있어."

붉은 구슬이 맥박처럼 뛰었다.

"두 번째. 네 의지를 포기해. 껍데기가 되는 거야. 아벨리우스가 널 완전히 먹어치우겠지."

검은 구슬이 빛을 잃었다.

"세 번째. CO-OP 모드. 두 의식이 공존하는 거야. 네가 낮에, 아벨리우스가 밤에. 교대로."

회색 구슬이 둘로 쪼개졌다 다시 합쳐졌다.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공존... 그게 제일 나아 보이는데.'

하지만 제로가 비웃었다.

"CO-OP? 그거 함정이야."

"입 닥쳐."

관찰자가 날카롭게 말했다. 제로는 개의치 않았다.

"공존 상태에서는 시스템을 못 벗어나. 영원히 루프 안에 갇히는 거지."

민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때였다.

옥좌 뒤편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누군가 걸어 나왔다.

민준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체격.

하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너무 많은 걸 본 사람의 눈이었다.

"백두 번째."

제로가 중얼거렸다.

"네가 왔구나."

백두 번째 민준이 웃었다. 지친 웃음이었다.

"나도 ③을 선택했어."

그가 손을 들었다. 허공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옥좌에 앉은 민준.

회색 구슬을 선택하는 민준.

아벨리우스와 악수하는 민준.

그리고 다시 옥좌에 앉은 민준.

똑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백 번.

# Part 2/3: 전개

백 번째 화면이 끝났다.

민준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걸 느꼈다. 피가 났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백 번을... 반복했다고?'

백두 번째 민준이 홀로그램을 지웠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처음엔 희망이었어."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공존하면 둘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아벨리우스도, 나도."

관찰자가 입을 열려다 멈췄다. 백두 번째 민준이 먼저 웃었다.

"근데 아니더라. 공존은 공존이 아니야."

그가 옷깃을 풀었다. 목덜미에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아니, 문신이 아니었다.

숫자였다.

[CO-OP MODE / DAY 36,500 / LOOP 100]

"매일 자정마다 의식이 바뀌어. 낮엔 내가, 밤엔 아벨리우스가."

백두 번째 민준의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였다.

"백 년 동안 하루도 안 쉬었어. 잠들면 다른 사람이 깨어나거든."

한서진이 검을 내렸다. 손이 떨렸다.

"그럼... 넌 백 년 동안..."

"안 잤지."

백두 번째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면 아벨리우스가 내 몸으로 뭘 할지 모르니까. 그 새끼는 밤마다 발테온을 불태웠어. 낮에 내가 막아도 소용없었지."

민준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럼 발테온은..."

"백 번 멸망했어. 백 번 되살아났고."

백두 번째 민준이 허공을 가리켰다. 천장의 메뉴창이 깜빡였다.

"시스템은 루프를 멈추지 않아. 공존 모드에선 세이브도 로드도 안 돼. 그냥 시간만 흘러."

제로가 피를 닦으며 웃었다.

"말했잖아. 함정이라고."

관찰자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 개의 구슬은 떠 있었다.

"그래도 선택은 해야 해. 안 그러면..."

"강제 클릭당하지."

백두 번째 민준이 말을 끊었다.

"알아. 나도 당해봤으니까."

그가 손을 들었다. 손목에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커서가 내 손을 잡고 붉은 구슬을 눌렀어. 일곱 번째 루프에서."

민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넌..."

"융합됐지. 완전히."

백두 번째 민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3초 동안은 아벨리우스였어. 진짜로. 발테온이 한순간에 재가 됐어. 내 손으로."

한서진이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시스템이 되돌렸어."

백두 번째 민준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메뉴창의 'LOAD' 버튼이 붉게 빛났다.

"플레이어가 재미없어하면 리셋이거든. 난 너무 빨리 끝나서 리로드당했어."

관찰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선택을 신중하게 하라는 거야."

"닥쳐."

백두 번째 민준이 처음으로 날카롭게 말했다.

"넌 선택지를 세 개만 보여줬잖아. 네 번째는 숨기고."

민준의 심장이 뛰었다.

"네, 네 번째?"

관찰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건..."

"시스템 거부."

제로가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모든 권한을 포기하는 거야. 관리자도, 플레이어도, 캐릭터도 아닌 상태."

민준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럼 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백두 번째 민준이 말했다.

"기억도 다 잃어. 발테온도, 아벨리우스도, 이 세계도."

한서진이 검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럼 날... 잊는다고?"

민준은 한서진을 봤다. 그의 눈이 떨렸다.

"그, 그러니까..."

말이 막혔다. 관찰자의 시선이 꽂혔다.

'또 이러면 안 되는데.'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짐의 뜻은..."

"그만해."

한서진이 웃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냥 네 말로 해. 강민준."

민준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 나..."

그때였다.

바닥이 흔들렸다.

아니, 분해됐다.

한서진이 깬 균열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올랐다. 코드가 역류했다. 벽이 무너졌다.

관찰자가 비명을 질렀다.

"시스템 오류! 왜 지금!"

천장의 메뉴창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붉은 경고문이 떴다.

[ERROR: UNAUTHORIZED ACCESS DETECTED]

[PLAYER INTERVENTION REQUIRED]

커서가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개였다.

하나는 하얀색. 하나는 검은색.

"플레이어가 둘?"

제로가 중얼거렸다.

백두 번째 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나는 플레이어고..."

검은 커서가 민준에게 다가왔다. 천천히. 마치 손가락을 뻗듯.

"하나는 시스템 자체야."

민준의 몸이 얼어붙었다.

검은 커서가 민준의 이마에 닿았다.

순간, 시야가 뒤집혔다.

민준은 더 이상 옥좌에 앉아 있지 않았다.

아니, 앉아 있긴 했다. 하지만 동시에 천장에서도 보고 있었다.

바닥에서도.

벽에서도.

민준의 의식이 방 전체로 퍼졌다.

'이게... 뭐야...'

아벨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의 입에서.

"드디어 깨달았구나."

민준은 자기 몸을 봤다. 옥좌에 앉은 자신을. 하지만 조종할 수 없었다.

# Part 3/3: 위기-클리프행어

아벨리우스가 민준의 몸으로 일어났다.

민준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내 몸이... 내 몸인데!'

관찰자가 뒷걸음질 쳤다.

"융합이 시작됐어. 검은 커서는 강제 동기화야."

백두 번째 민준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벨리우스가 손을 휘두르자 그는 벽에 박혔다.

"백 번을 반복한 주제에 아직도 모르나."

아벨리우스의 목소리가 민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 의지 따윈 처음부터 없었어."

한서진이 검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민준아!"

아벨리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민준의 얼굴로 웃었다.

"그 이름은 이제 의미 없어."

한서진이 검을 휘둘렀다. 아벨리우스는 피하지 않았다.

검날이 목을 스쳤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시스템 보호야. 주인공은 안 죽거든."

한서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넌... 넌 민준이 아니잖아."

"맞아."

아벨리우스가 한서진의 뺨을 쓰다듬었다. 민준의 손으로.

"난 절대자니까."

민준의 의식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 마! 한서진한테 손대지 마!'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민준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로가 피를 토하며 웃었다.

"이럴 줄 알았어. 공존은 없어. 한쪽이 먹히는 거지."

관찰자가 손을 들었다. 세 개의 구슬이 사라졌다.

"시스템이 선택했어. 붉은 구슬로."

천장의 메뉴창이 깜빡였다.

[SYNCHRONIZATION: 87%]

민준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기억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원룸.

편의점 아르바이트.

새벽 배달.

하나씩 사라졌다.

'아니야... 아니야...'

백두 번째 민준이 바닥을 기어왔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네 번째 선택지..."

그가 손을 뻗었다. 허공에 네 번째 구슬이 나타났다.

투명했다.

아니, 텅 비어 있었다.

"시스템 거부가 아니야."

백두 번째 민준이 웃었다. 이빨이 깨졌다.

"시스템 역류야."

관찰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친... 그건 자살이야!"

"알아."

백두 번째 민준이 구슬을 집어 들었다. 손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백 번 중에 한 번도 안 해본 건 이것뿐이었거든."

그가 구슬을 아벨리우스에게 던졌다.

아니, 민준에게.

민준의 가슴에 구슬이 박혔다.

순간, 모든 게 멈췄다.

아벨리우스의 움직임이.

한서진의 눈물이.

관찰자의 비명이.

민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목소리가 나왔다. 민준의 목소리였다.

백두 번째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3초야. 시스템이 멈춘 시간."

민준은 자기 손을 봤다. 멀쩡했다. 아벨리우스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뭘... 어떻게 해야 해?"

"선택해."

백두 번째 민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괴물이 될래, 사라질래, 백 번 더 반복할래..."

그가 웃었다. 얼굴이 반쯤 사라졌다.

"아니면 전부 잊을래?"

민준의 시야에 네 개의 선택지가 떴다.

[①융합: 아벨리우스가 되어 영원히]

[②포기: 의지를 버리고 껍데기로]

[③공존: 백 년의 루프 속에서]

[④망각: 모든 기억을 지우고 인간으로]

한서진이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눈물이 뺨에 멈춰 있었다.

민준은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이 온기를... 잊고 싶지 않아.'

하지만 백두 번째 민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백 번을 반복했어. 백 번 멸망했어.'

관찰자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입술이 '시간 제한'이라는 단어를 만들다 멈췄다.

민준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메뉴창이 깜빡였다.

[SYSTEM PAUSE: 2.87 SEC REMAINING]

2초.

민준의 손이 떨렸다.

'선택하면... 끝나는 거야?'

제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멈춘 시간 속에서도.

"선택 안 하면 강제 클릭이야. 플레이어가 대신 누르지."

민준은 네 개의 버튼을 봤다.

어느 것도 답이 아니었다.

'그럼... 다섯 번째는?'

그때였다.

한서진의 손이 움직였다.

멈춘 시간 속에서.

그가 민준의 손을 꽉 쥐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지만 민준은 알 수 있었다.

'네가 뭘 선택하든.'

한서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멈춘 시간 속에서.

'난 너를 찾아낼 거야.'

민준의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SYSTEM PAUSE: 1.02 SEC REMAINING]

백두 번째 민준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지막 말만 남겼다.

"선택해, 민준아."

민준의 손이 허공으로 뻗어졌다.

네 개의 버튼 위에서.

[SYSTEM PAUSE: 0.31 SEC REMAINING]

커서 두 개가 동시에 움직였다. 하얀 것과 검은 것.

민준을 향해.

한서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멈춘 시간이 깨지기 시작했다.

"민준아!"

관찰자가 비명을 질렀다.

"시간 제한 10초!"

천장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총 7,159자 · 약 14분

- 7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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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코미디#던전#착각물
리
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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