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약 12분 · 총 5,931자

죽은 자의 목소리

주인공: 강도혁

휴대폰이 울린 건 화재 현장에서 벗어난 지 삼 분 만이었다.

발신자 표시는 강도혁.

유진의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멈췄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을 뚫고 흘러나온 건 도혁의 음성이 아니었다.

"오랜만이다, 유진아."

숨이 턱 막혔다.

철민의 목소리였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

"...누구세요."

"목소리 잊었어? 서운하네."

전화가 끊겼다. 발신 표시는 여전히 도혁의 번호로 남아 있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떨리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

사무실로 돌아온 유진은 노트북을 켜고 조직 내부망에 접속했다. 원래는 접근 권한이 없는 통신 기록이었다. 도혁이 예전에 남겨둔 백도어를 이용하면 가능했다.

'이 방법을 쓸 줄은 몰랐는데.'

키보드 위 손가락이 자꾸 어긋났다. 오타가 세 번, 네 번 났다.

발신 위치를 역추적하는 데 십 분 넘게 걸렸다. 화면에 좌표가 뜨는 순간 유진은 숨을 삼켰다.

낡은 창고 건물. 위성지도로 보면 그냥 방치된 폐건물이다.

공식 기록을 조회했다. 등록된 명칭은 없고 십 년 전 폐쇄 처리된 안가라는 메모만 남아 있었다.

'십 년 전.'

그 숫자가 눈에 박혔다.

숙청 사건이 일어난 해였다.

전화를 걸어봤다. 도혁은 받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있는 거야, 진짜.'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없었다.

결국 유진은 혼자 차 키를 챙겼다. 가지 말라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지만, 무시했다.

***

건물은 도시 외곽 공단 지역에 있었다. 주변엔 가로등도 없고, 낡은 철제 셔터가 반쯤 뜯겨나간 채 벌어져 있었다.

손전등을 켜고 안으로 들어섰다.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발밑에서 뭔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유리 조각이었다.

'여기가 안가였다고?'

계단은 지하로 이어졌다. 유진은 한 걸음씩 내려가며 손전등으로 벽을 훑었다.

벽에 낙서처럼 남은 숫자들, 지워지다 만 표식들.

지하 공간에 들어선 순간 낡은 통신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콘솔, 릴 테이프가 감긴 구식 녹음기.

그리고 책상 위엔 서류 뭉치가 놓여 있었다.

유진은 손전등을 입에 물고 서류를 넘겼다. 첫 장에 적힌 서명을 본 순간 손이 멈췄다.

강태산.

도혁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이게 왜 여기...'

서류는 부동산 명의 이전 관련 계약서처럼 보였는데, 날짜가 이상했다. 십 년 전, 숙청 사건이 있던 그 주였다.

서류 아래 깔려 있던 메모 한 장을 꺼냈다.

손글씨였다. 유진은 그 필체를 알고 있었다. 도혁의 방에서, 오래된 편지에서 본 적 있는 글씨체.

철민의 글씨.

목소리는 죽지 않는다.

그 문장 아래 이니셜 세 개가 적혀 있었다.

KDH.

LYJ.

그리고 하나 더, 낯선 이니셜.

'LYJ...'

유진의 이름 이니셜이었다.

목이 바짝 말랐다. 손전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내 이니셜이 여기 있어.'

그 순간 콘솔 쪽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전원이 꺼져 있던 녹음기가 저절로 릴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진아,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철민의 목소리였다. 아까 통화에서 들었던 그 음성 그대로.

유진은 뒷걸음질쳤다. 등이 차가운 철제 선반에 부딪혔다.

"누가... 이거 어떻게."

"넌 항상 궁금한 게 많았지. 그게 네 문제였어."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렸다. 스피커가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유진은 손전등으로 녹음기를 부수려 다가갔다. 손이 장비를 향해 뻗는 순간.

**"멈춰. 아직 안 끝났어."**

몸이 얼어붙었다.

그 순간 손전등이 깜빡거리더니 꺼져버렸다.

암전.

숨소리만 들렸다. 자신의 숨소리와, 어딘가에서 여전히 흘러나오는 잡음 섞인 목소리.

"...씨발."

낮게 욕이 튀어나왔다. 평소라면 삼켰을 말이었다.

손전등을 두드렸다. 배터리가 완전히 나간 모양이었다. 다시 켜지지 않았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려는데 손이 떨려서 액정을 두 번이나 놓쳤다.

간신히 불빛을 만들어냈을 때, 녹음기는 이미 멈춰 있었다.

정적.

유진은 벽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침착해. 침착해야 돼.'

***

숨을 고른 뒤 다시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서랍이 하나 열려 있었다.

안을 뒤지다가 낡은 사진 한 장이 손에 걸렸다. 꺼내려는 순간 서랍 틈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핸드폰 불빛을 비췄다.

사진 속엔 어린 도혁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앳된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엔 어린 유진.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정확히는 조금 뒤쪽에 서 있는 낯선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이게 누구야.'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도혁과 함께 자란 사람 중에 저런 아이는 없었다.

유진은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 뭔가 적혀 있었다.

글씨를 읽으려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순간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발소리가 계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유진의 손에서 사진이 미끄러졌다.

을 다 읽지 못한 문장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유진은 핸드폰 불빛을 손으로 가렸다. 계단 쪽에서 빛이 새어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숨을 곳.'

콘솔 뒤편으로 몸을 움직였다. 먼지 쌓인 장비 사이로 등을 붙였다.

발소리가 세 개, 어쩌면 네 개.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게 더 오싹했다.

***

계단을 내려온 그림자들이 손전등 불빛을 사방에 흩뿌렸다.

빛이 콘솔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진은 숨을 멈췄다.

"여기 맞아?"

낮고 걸걸한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녹음기 켜져 있었다는데."

"꺼졌잖아, 지금."

발소리가 서류 뭉치 쪽으로 향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저 서류... 강태산 서명이 있는.'

유진의 눈이 어둠 속에서 그쪽을 향했다. 손이 저절로 주먹을 쥐었다.

"태식이 형님이 찾던 게 이거 맞나."

'황태식.'

이름이 들리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도혁과 오랫동안 얽혀온 이름. 그 이름이 이 지하에서 나올 이유가 없었다. 아니, 있었다. 처음부터 있었다는 걸 유진만 몰랐던 걸지도 몰랐다.

"사진은?"

한 명이 물었다.

발소리가 유진 쪽으로 가까워졌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찾고 있었다.

'안 돼.'

유진은 손을 뻗어 사진을 더듬었다. 손끝에 종이 모서리가 닿았다. 소리 없이 끌어당겼다.

빛이 콘솔 밑을 훑고 지나가려는 찰나, 유진은 몸을 최대한 낮췄다.

"여기 없는데."

"바닥 잘 봐. 떨어졌을 거야."

빛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콘솔 옆면을 스쳤다.

숨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심장이 귀 안쪽에서 뛰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

그때 위층에서 무전기 소리가 울렸다.

"철수해. 지금."

"아직 다 못 찾았는데."

"철수하라고. 위에서 딴 놈들 움직인다."

발소리가 멈칫하더니 다시 계단 쪽으로 이동했다.

유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숨을 참았다.

일 분, 이 분.

정적이 다시 지하를 채웠다.

'갔다... 갔어.'

몸에서 힘이 빠지려는 순간 손에 쥔 사진이 생각났다.

핸드폰 불빛을 다시 켰다.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

사진 뒷면 글씨를 마저 읽으려 눈을 가까이 댔다.

우리 셋 중 하나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 문장 아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십 년 전, 숙청 사건 그 주였다.

'셋 중 하나...'

유진의 시선이 사진 속 세 번째 아이 얼굴로 다시 향했다. 낯익은 듯 낯선 얼굴이었다.

'누구야, 넌.'

그 순간 서류 뭉치 사이에서 명함 크기의 카드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집어 들었다. 인쇄된 이름이 있었다.

강. 도. 윤.

유진의 숨이 멎었다.

도혁에게 형제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십 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내는 동안 단 한 번도.

'도혁이 오빠가 있었다고?'

핸드폰이 그 순간 진동했다. 화면에 뜬 발신자.

강도혁.

유진의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다시 멈췄다. 아까와 같은 자리, 같은 망설임.

받아야 하는지, 받으면 안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화면 위로 손가락을 가져가는 순간, 지하 전체의 조명이 갑자기 켜졌다.

눈이 부셔서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불빛 사이로 계단 위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내려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오랜만이다."

목소리가 지하 공간을 울렸다.

이번엔 스피커가 아니었다.

실제 사람의 목소리였다.

팔 사이로 실루엣을 확인하려 눈을 가늘게 떴다.

계단을 내려오는 걸음이 느릿했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저 목소리...'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 어딘가에 묻혀 있는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유진 스스로도 놀랄 만큼 떨리는 소리였다.

"몰라서 물어?"

계단 아래 마지막 단에 발이 닿았다. 조명 아래로 얼굴이 드러났다.

유진의 눈이 커졌다.

낯이 익었다. 사진 속에서 방금 봤던 얼굴이었다.

'세 번째 아이.'

성인이 된 얼굴이었지만 분명했다. 눈매가, 그 어색한 표정이 사진 속 아이와 겹쳤다.

"넌... 사진 속에."

"기억은 못 해도 얼굴은 알아보네."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손에 뭔가 들려 있었다.

핸드폰이었다. 유진의 것과 똑같은 기종.

"이거 찾고 있었지."

남자가 화면을 켰다. 발신자 목록이 보였다.

강도혁.

방금 전 유진의 핸드폰에 걸려온 것과 같은 이름, 같은 번호였다.

'설마.'

숨이 턱 막혔다. 눈앞의 남자가 쥔 핸드폰에서도 도혁의 번호가 뜨고 있었다. 유진에게 전화를 건 것도, 아까 콘솔 스피커로 철민의 목소리를 흘려보낸 것도.

"네가... 도혁이 오빠 번호를."

"오빠?"

남자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렇게 부르는구나. 웃기네."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는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새끼가 그렇게 소개했어? 오빠라고?"

'그 새끼라니.'

도혁을 향한 적의가 목소리 전체에서 묻어났다. 형제라기엔 너무 날카로운 온도였다.

"넌 강도윤이야. 명함에서 봤어."

"이름까지 찾았으면 나머지도 찾아봤어야지."

도윤이 서류 뭉치 쪽으로 다가갔다. 강태산의 서명이 적힌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뭔지 알아?"

"부동산 계약서."

"그 밑에."

도윤이 서류를 넘겼다. 유진이 아직 보지 못한 다음 장이 있었다.

"이거."

핸드폰 불빛에 종이가 비쳤다. 유진의 눈이 그 위를 훑었다.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친자 확인.

그 아래 두 사람의 이름.

강태산.

그리고, 강도윤.

'친자... 확인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윤이 강태산의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도혁의 이복형제라는 뜻이었다.

"십 년 전에 밝혀졌어. 그 주에."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숙청 사건 그 주에, 나는 아버지를 찾았고. 그 새끼는 그걸 덮으려고 사람을 죽였지."

"그게... 무슨."

"철민이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 메모를 남긴 거고."

목소리는 죽지 않는다.

메모의 문장이 유진의 머릿속에서 다시 울렸다.

"죽은 사람도 말을 하거든. 방법만 알면."

도윤이 유진 쪽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넌 이제 선택해야 돼. 그 새끼 편에 설 건지, 아니면."

말이 끝나기 전에 위층에서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유진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강도혁.

화면 위로 도윤의 손이 뻗어 왔다.

"받지 마."

유진의 손가락이 이미 화면에 닿아 있었다.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가 지하 전체에 울려 퍼졌다.

숨소리 하나 없는 침묵.

그리고 도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진아, 거기서 나와. 지금 당장."**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쏟아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총 5,931자 · 약 12분

- 11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남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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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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