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시험
주인공: 강도혁
새벽 네 시.
장례식장 빈소는 국화 냄새와 향 연기로 가득했다.
강도혁은 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검은 양복 재킷은 벗어 옆에 던져뒀고, 와이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였다.
'아버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관 속 얼굴은 분칠로 덮여 있었지만, 도혁은 알았다. 저 밑에 숨겨진 주먹 자국들을. 평생 자신을 두들겨 팬 그 손이 이제 차갑게 식어 있다는 걸.
"죽어서도 골치 아프게 하시네."
중얼거린 목소리가 빈소에 울렸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급했다.
"형님!"
유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스물여섯, 백호파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놈이었다.
도혁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왜 그래. 새벽부터 시끄럽게."
"황태식이 옵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
"지금 부하 스무 명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십 분 안에 도착합니다."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겁먹은 게 아니라 분노 때문이었다.
"저 개새끼가, 장례식날 처들어오게요?"
도혁은 천천히 일어났다.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재킷을 집어 들었다.
"민재 형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피하시라고 차 준비해뒀습니다."
"피하라고?"
도혁이 재킷을 걸쳤다. 넥타이를 매만지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망치면 끝이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도망치는 놈은 개새끼야. 개새끼는 보스 될 자격 없어.
"형님, 결정하셔야 합니다."
유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도혁은 관을 내려다봤다. 저 안의 남자는 평생 도망친 적 없었다. 대신 모든 걸 주먹으로 해결했고, 결국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다.
'나는 당신처럼 안 살아.'
그렇게 다짐했건만.
"...유진아."
"예, 형님."
"황태식이 여기 오면 뭐 하러 온 거야?"
"그야..."
유진이 말끝을 흐렸다. 답은 뻔했다.
도혁이 재킷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
"조문 온 거지. 아버지 장례식에."
"형님!"
"근데 조문객한테 도망치면 어떻게 돼?"
유진이 입을 다물었다.
도혁은 거울을 봤다.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었다. 손이 떨려서 매듭이 제대로 안 잡혔다.
'젠장.'
세 번 만에 겨우 매듭을 완성했다.
"민재 형한테 전해. 아무도 안 피한다고."
"하지만—"
"여기서 증명 못 하면 조직은 황태식 거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혁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가서 형한테 전해. 손님 맞을 준비하라고."
유진이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혁은 다시 관 앞에 섰다.
"아버지."
이번엔 소리 내서 말했다.
"제가 당신처럼 안 살려고 했는데... 결국 이 꼴이네요."
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혁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이려다 말고 다시 집어넣었다.
'빈소에서 담배 피우면 예의 없다고 혼내시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다 보니 목이 메었다.
"개새끼."
누구한테 하는 욕인지 스스로도 몰랐다.
***
오전 다섯 시.
장례식장 주차장에 검은 차량 열 대가 들어섰다.
민재가 현관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흔셋, 백호파 고문이자 도혁의 오른팔이었다.
유진이 뛰어와 보고했다.
"형님이 안 피한답니다."
민재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미쳤나."
"황태식이 여기 오면 피 터집니다."
"알아."
"그럼—"
"도혁이가 결정했으면 따라야지."
민재가 담배를 바닥에 비볐다. 구두 뒤축으로 꾹 눌러 껐다.
"우리 할 일은 형님 안 죽게 하는 거야."
"예."
유진이 고개를 숙였다.
민재는 주차장을 내려다봤다. 백호파 조직원들이 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모이고 있었다.
'황태식, 이 새끼가.'
민재는 주먹을 쥐었다. 손등 핏줄이 불거졌다.
황태식은 백호파 2인자였다. 아니, 전 보스 생전엔 그랬다. 이제 보스가 죽었으니 자기가 조직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믿는 놈이었다.
'도혁이 형님은 아직 어려. 스물아홉에 무슨 보스야.'
황태식이 조직 내에서 퍼뜨린 말이었다.
민재는 헛웃음을 흘렸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오늘 보여줘야 해.'
***
오전 다섯 시 반.
검은 승합차 다섯 대가 장례식장 정문 앞에 멈췄다.
차에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무 명. 모두 검은 정장 차림이었지만 조문객 같지 않았다.
눈빛이 달랐다.
황태식이 제일 먼저 내렸다. 오십 중반, 백발에 곰 같은 체구였다. 얼굴에 칼자국이 세 개 있었다.
"들어간다."
낮게 깔린 목소리.
부하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정문 앞에 서 있던 경비원이 손을 들어 막았다.
# 피의 시험 (2/3)
"조문이십니까?"
경비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황태식은 대답 없이 경비원의 어깨를 밀쳤다. 경비원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넉다운됐다.
"비켜."
부하들이 우르르 현관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민재가 복도 끝에서 담배를 입에 문 채 서 있었다.
"황 사장님."
민재가 담배를 빼물고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난동이십니까?"
황태식이 걸음을 멈췄다. 부하들도 따라 멈췄다.
"난동? 조문 왔는데?"
"스무 명 데리고 오는 게 조문입니까?"
"인기 많아서 그래. 박 고문은 혼자 왔나?"
민재가 손가락으로 복도 양쪽을 가리켰다.
계단 위, 화장실 앞, 빈소 입구.
백호파 조직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서른 명쯤 됐다.
황태식이 피식 웃었다.
"역시 박민재답네. 준비성 하나는 기가 막혀."
"어서 조문하십시오. 고인이 기다립니다."
민재가 빈소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황태식은 민재를 지나쳐 걸었다. 부하들이 뒤따랐다.
복도가 좁아서 어깨가 부딪쳤다. 민재 쪽 조직원 하나가 비틀거렸다.
"죄송합니다."
황태식 부하가 일부러 크게 말했다.
민재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빨았다.
유진이 민재 옆으로 붙었다.
"형님, 저 새끼들—"
"닥쳐."
민재가 낮게 말했다.
"아직 아니야."
***
빈소 문이 열렸다.
황태식이 들어섰다.
도혁은 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늦었습니다, 보스님."
황태식이 말했다.
도혁이 천천히 일어났다. 재킷 먼지를 털어내며 몸을 돌렸다.
"황 사장님. 오셨습니까."
존댓말이었다. 목소리는 평온했다.
"조문 감사합니다. 분향하시겠습니까?"
황태식이 도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보스님 아드님이 이렇게 의젓하시니 고인도 편히 가시겠어요."
"과찬이십니다."
도혁이 분향대를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황태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죠."
"예."
"보스님 유언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빈소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도혁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유언이요?"
"후계자 말입니다."
황태식이 한 발짝 다가섰다.
"보스님이 살아계실 때 저한테 하신 말씀이 있어요."
도혁이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갔다.
"무슨 말씀이신지."
"조직은 내가 맡으라고 하셨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도혁은 알았다. 아버지는 후계자 지명 같은 거 안 했다. 그냥 죽었다. 심장마비로.
'이 개새끼가.'
목구멍까지 욕이 치밀어 올랐다. 도혁은 삼켰다.
"증인이라도 있습니까?"
"여기 스무 명이 다 들었습니다."
황태식이 뒤를 돌아봤다. 부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이 허공을 봤다. 천장 모서리에 CCTV가 있었다. 빨간 불이 깜빡였다.
'저게 녹화되고 있나?'
민재가 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유진은 그 옆에 서서 손을 재킷 안쪽에 넣고 있었다.
도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황 사장님."
"예."
"아버지 관 앞에서 거짓말하시는 겁니까?"
황태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짓말이라니. 내가 왜—"
"아버지는 후계자 지명 안 하셨습니다."
도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럼 누가 조직을 물려받습니까?"
"규칙대로 하면 되죠."
"규칙?"
황태식이 비웃었다.
"규칙이 뭔데요? 보스 아들이라고 자동으로 물려받습니까?"
"간부 회의에서 투표하면 됩니다."
"투표?"
황태식이 고개를 저었다.
"강도혁 씨. 세상 물정을 모르시네."
"..."
"조직은 힘으로 먹는 겁니다. 투표로 먹는 게 아니라."
황태식이 도혁 앞까지 걸어왔다. 코앞이었다.
"당신 나이가 몇이에요?"
"스물아홉입니다."
"나는 쉰다섯이야."
말투가 바뀌었다. 반말이었다.
도혁의 턱 근육이 씰룩거렸다.
"백호파에서 이십 년 넘게 피 흘렸어. 당신 아버지 옆에서."
"그래서요?"
"그래서 조직은 내 거야."
황태식이 도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꽉 눌렀다.
"알아듣겠어?"
도혁은 어깨를 떨쳐내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손 치우십시오."
존댓말이었다. 하지만 목소리 밑바닥에 뭔가 깔려 있었다.
황태식이 어깨를 더 세게 눌렀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그 순간.
탁—
뺨을 때리는 소리가 빈소에 울렸다.
황태식이 도혁의 뺨을 후려쳤다.
도혁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빈소 안이 조용해졌다.
민재가 문 쪽에서 한 발 나섰다가 멈췄다. 유진이 재킷 안에서 뭔가 꺼내려다 말았다.
도혁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뺨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입꼬리에서 피가 흘렀다.
"...하."
도혁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피 맛이 났다.
# 피의 시험 (3/3)
"황 사장님."
도혁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제가 참는 데도 한계가 있거든요."
황태식이 비웃었다.
"그래? 뭘 어쩔 건데?"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빈소잖아."
"아버지 관 앞입니다."
도혁이 한 발짝 물러섰다.
"여기서 싸우시겠습니까?"
황태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깐이었다.
'물러서나?'
민재가 문 앞에서 지켜봤다. 도혁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참고 있어. 아직.'
황태식이 입을 열었다.
"싸움? 내가 왜 싸워. 조문 왔는데."
"그럼 분향하십시오."
도혁이 분향대를 가리켰다.
"하시고 나가세요."
"......"
황태식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혁이 다시 말했다.
"아니면 조문 안 하실 겁니까?"
"도혁 씨."
황태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지금 예의 차려주는 거야."
"예의요?"
"보스 아들이니까. 근데 계속 이러면—"
"이러면 어쩔 건데요?"
도혁이 끊어 말했다.
황태식의 턱 근육이 씰룩거렸다.
"후회할 거야."
"누가요?"
"당신이."
황태식이 손을 들었다. 부하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손에 봉투를 들고 있었다.
"이거."
황태식이 봉투를 도혁 발밑에 던졌다.
"부의금이야. 오백."
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도혁은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감사합니다. 돌아가실 때 챙겨가십시오."
"주워."
"예?"
"내가 던진 거 주우라고."
황태식이 턱으로 가리켰다.
"그게 예의지."
도혁의 눈빛이 변했다.
민재가 한 발 나섰다.
"황 사장님, 지금—"
"박 고문은 닥쳐."
황태식이 민재를 쏘아봤다.
"나는 도혁이랑 얘기하는 거야."
민재의 손이 주먹으로 쥐어졌다.
도혁이 바닥을 봤다. 봉투가 먼지 위에 놓여 있었다.
'주우면 끝이야.'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한 번 무릎 꿇으면 평생 꿇는 거다.'
도혁은 숨을 참았다. 심장이 귀에서 뛰었다.
"...안 주우시겠어요?"
황태식이 물었다.
"그럼 내가 주워줄까?"
황태식이 허리를 숙였다.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탁—
도혁의 정수리에 봉투를 내리쳤다.
"이렇게?"
빈소 안 공기가 끊어졌다.
도혁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어깨가 떨렸다.
유진이 재킷 안에서 뭔가 꺼냈다. 민재가 손으로 막았다.
"아직."
민재가 속삭였다.
황태식이 봉투를 도혁 손에 쥐여줬다.
"받아. 보스 아들."
도혁의 손가락이 봉투를 구겼다.
"고맙다는 인사는?"
황태식이 물었다.
도혁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풀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황태식이 웃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지."
등을 돌렸다.
"가자."
부하들이 움직이려는 순간.
"황태식."
도혁이 불렀다.
반말이었다.
황태식이 멈췄다. 천천히 돌아봤다.
"뭐?"
"내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도혁이 봉투를 바닥에 던졌다.
"니 아버지 장례식 때 누가 이랬으면 어땠을 것 같아?"
황태식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
"내 말 못 알아들었어?"
도혁이 재킷을 벗었다. 바닥에 던졌다.
"다시 한 번 해볼까?"
민재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시작됐다."
***
황태식의 부하 둘이 앞으로 나섰다.
도혁은 분향대를 옆으로 밀었다. 향로가 바닥에 떨어져 재가 흩어졌다.
"여기서 할 거야?"
황태식이 물었다.
"아버지 관 앞에서?"
"니가 먼저 시작했잖아."
도혁이 넥타이를 풀었다.
"아니면 나가서 할까? 근데 밖에 니네 새끼들 스무 명 있잖아."
"그럼?"
"여기서 하는 게 공평하지."
도혁이 넥타이를 손에 감았다.
"민재 형, 문 잠가."
민재가 빈소 문을 닫았다. 안에서 잠갔다.
유진이 창문 쪽으로 갔다. 커튼을 쳤다.
황태식이 혀를 찼다.
"미친 새끼."
"그 말 자주 듣거든."
도혁이 웃었다.
"근데 말이야."
"......"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니가 날 미치게 만든 거야."
황태식이 손을 들었다.
부하 둘이 달려들었다.
도혁은 오른쪽 놈의 주먹을 피했다. 왼쪽 놈의 멱살을 잡아 관 쪽으로 밀었다.
쾅—
머리가 관에 부딪쳤다.
오른쪽 놈이 옆구리를 쳤다. 도혁이 비틀거렸다.
"크윽—"
갈비뼈가 울렸다.
민재가 뒤에서 그 놈의 목을 감았다. 졸랐다.
"형님은 황태식만 보십시오!"
유진이 창문 쪽에서 소리쳤다.
황태식이 재킷을 벗었다.
"도혁아."
"왜."
"후회할 거야."
"닥쳐."
도혁이 달려들었다.
주먹이 황태식의 턱을 스쳤다. 황태식이 고개를 젖혔다.
반격이 왔다. 명치였다.
퍽—
도혁이 뒤로 밀렸다. 등이 벽에 부딪쳤다.
"으윽—"
숨이 안 쉬어졌다.
황태식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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