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의 증언
주인공: 강도혁
핸들을 쥔 손에 땀이 배어들었다.
USB를 꽂은 노트북 화면이 깜박이더니 파일 하나가 떴다. 2015_03_17_22:47.mp4. 강도혁은 재생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백미러에 헤드라이트가 번쩍였다.
차 두 대. 빠르게 접근 중이었다.
"씨발."
도혁은 시동을 걸었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공장 주차장을 박차고 나갔다. 뒤따라오는 차들이 거리를 좁혔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론 노트북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흔들렸다. 어두운 실내, 누군가의 신음 소리.
"이 새끼가 진짜."
아버지 목소리였다.
쇠파이프가 내려찍히는 소리. 비명. 화면 속 민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리며 애원했다.
"형님, 제발... 제발요..."
"입 닥쳐. 네가 돈을 빼돌린 게 확실하냐고."
"아닙니다, 진짜 아니에요...!"
쇠파이프가 다시 날아들었다.
도혁은 핸들을 꺾었다. 뒤따라오던 차 한 대가 모퉁이를 못 돌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한 대는 여전히 바짝 붙어 있었다.
노트북 화면 속에서 문이 열렸다.
누군가 들어왔다.
"그만하세요."
여자 목소리.
도혁의 심장이 멎었다.
유진이었다.
"뭐야, 넌 왜 여기 있어."
"민재 오빠는 안 했어요. 제발 그만하세요."
"닥쳐. 네가 뭘 안다고."
"알아요. 돈 빼돌린 거... 다른 사람이에요."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빠졌다.
측면에서 충격이 왔다.
"으윽!"
추격차가 들이받은 것이었다. 차체가 휘청거렸다. 도혁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액셀을 밟았다. 공장 정문이 보였다. 200미터, 100미터.
노트북 화면 속 아버지가 쇠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유진아, 넌 나가 있어."
"안 나가요. 민재 오빠 보내주세요."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영상이 끊겼다.
도혁은 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 자국이 아스팔트에 새겨졌다.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뒤쪽에서 차 두 대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남자 넷이 내렸다.
황태식 부하들이었다. 앞장선 놈이 야구방망이를 어깨에 걸쳤다.
"강도혁 씨. 사장님이 찾으십니다."
도혁은 숨을 골랐다. 손끝이 떨렸지만 목소리만은 차분하게 유지했다.
"비켜주십시오. 급한 일이 있어서요."
"그럴 순 없습니다. 같이 가시죠."
"제가 부탁드리는 겁니다. 한 시간만 시간을 주십시오."
야구방망이를 든 놈이 비웃었다.
"부탁? 우리가 왜 들어줘야 하는데."
'내가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도혁의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야."
목소리가 바뀌었다.
"비키라고."
"뭐?"
"귀 먹었냐. 비키라고 했잖아."
야구방망이가 날아왔다.
도혁은 몸을 숙였다. 방망이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일어서면서 주먹을 날렸다. 턱에 정확히 꽂혔다. 놈이 휘청거렸다.
옆에서 다른 놈이 달려들었다.
도혁은 놈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뚝, 소리가 났다. 비명. 무릎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코뼈가 으스러지는 감촉.
"이 새끼들아."
셋째 놈이 칼을 꺼냈다.
도혁은 웃었다.
"칼? 진짜 칼까지 들고 나와?"
놈이 찔러왔다. 도혁은 손목을 잡아 꺾었다.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발로 놈의 무릎을 걷어찼다. 무릎이 꺾이며 놈이 쓰러졌다.
넷째 놈은 도망쳤다.
도혁은 숨을 몰아쉬며 손등의 피를 닦았다. 누구 피인지 모르겠다. 손가락 관절이 쑤셨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는데.'
공장 정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도혁은 안으로 들어갔다.
녹슨 기계들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1층은 텅 비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만 메아리쳤다.
지하로 내려가는 철제 문이 보였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문을 열었다.
냉기가 얼굴을 때렸다. 지하 냉동창고. 10년 전 그대로였다. 벽에 총탄 자국, 바닥에 핏자국.
그리고 의자에 묶인 남자.
"민재 형."
민재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부어 있었다. 입술이 터져 있었다.
"도혁이..."
목소리가 갈라졌다.
"미안하다."
도혁은 다가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형이 왜 미안해요."
"10년 전에... 내가 진짜로 돈을 빼돌렸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뭐?"
"2억. 내가 빼돌린 게 맞아. 유진이가... 유진이가 날 구해줬어."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USB 봤지? 그날 밤 유진이가 네 아버지한테 날 풀어달라고 했어. 그래서 살았어."
도혁은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씨발, 그럼 형이 우리 아버지를 죽인 거야?"
"아니!"
민재가 소리쳤다.
"그날 밤 네
민재의 목소리가 창고 벽에 부딪쳐 울렸다.
"그날 밤 네 아버지를 죽인 건 내가 아니야!"
도혁은 민재의 멱살을 잡았다. 셔츠 깃이 찢어졌다.
"형이 돈을 빼돌렸다며? 그럼 우리 아버지가 형을 왜 안 죽였어?"
"유진이가... 유진이가 거래를 했어."
"무슨 거래?"
민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2억을 갚을 때까지 형님한테 말 안 하기로 했대. 유진이가 자기 돈으로 메우겠다고."
손에 쥔 셔츠 깃에서 힘이 빠졌다.
"말이 되냐 그게. 유진이가 무슨 돈이 있어서."
"나도 몰라. 근데 그 뒤로 유진이가... 황태식한테 붙었어."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도혁은 민재를 밀쳐냈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민재가 신음했지만 도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창고 안을 천천히 걸었다. 벽의 총탄 자국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쏜 총알. 배신자를 향해 날아갔을 그 총알.
'배신자가 민재가 아니었다면.'
벽 한쪽에 낙서가 보였다.
스프레이로 휘갈긴 글씨. '민재 배신 확정'. 아버지 필체였다. 그 밑에 다른 글씨가 덧붙여져 있었다.
'배신자는 민재가 아니다.'
이건 아버지 글씨가 아니었다.
"형, 이거 누가 썼어?"
뒤에서 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겠어. 그날 밤 이후로 난 여기 안 왔으니까."
도혁은 벽에 손을 짚었다. 페인트가 손에 묻어났다. 아직 마르지 않았다. 며칠 안 된 낙서였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유진.
손가락이 굳었다.
"받아."
민재가 말했다.
"유진이 전화 받아봐. 그래야 진실을 알 수 있어."
도혁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숨소리만 들렸다.
"유진아."
"오빠."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금 어디야?"
"...공장 2층."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기 왜 왔어?"
"오빠 따라왔어. 혼자 오면 안 될 것 같아서."
"민재 형 풀어주고 나가. 지금 당장."
"안 돼."
유진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민재 오빠 풀면 안 돼요. 그 사람... 거짓말하고 있어."
뒤에서 민재가 소리쳤다.
"유진아! 내가 언제 거짓말했어!"
"돈 빼돌린 거 2억 아니잖아요. 5억이었잖아요."
도혁의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리고 민재 오빠가 회장님한테 한 말... 오빠는 몰라요. USB에도 안 나왔어요."
"뭐라고 했는데."
민재가 끼어들었다.
"유진아, 그만해."
"민재 오빠가 회장님한테 그랬어요. '형님 아들은 형님보다 못할 겁니다. 조직은 제가 맡겠습니다'라고."
도혁은 핸드폰을 주웠다.
"형."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게 사실이야?"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
"...미안하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미안하다고? 그게 끝이야?"
"도혁아, 그때 난 네가 보스 자리를 안 받을 줄 알았어. 네가 항상 그러잖아. 아버지처럼 안 살겠다고."
"그래서 형이 대신 앉으려고 했다는 거지?"
"..."
도혁은 민재에게 다가갔다. 쓰러진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민재의 몸이 바닥에서 튕겼다.
"이 씨발 새끼야."
발로 옆구리를 찼다. 한 번, 두 번. 민재가 신음했다.
"도혁아... 그만..."
"닥쳐!"
세 번째 발길질이 날아갔다. 민재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핸드폰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그만해요!"
"넌 왜 이걸 나한테 안 알려줬어?"
"말했으면 오빠가 민재 오빠 죽였을 거잖아요."
"당연하지. 죽여야 하는 새끼니까."
"안 돼요. 민재 오빠는... 민재 오빠는 회장님을 안 죽였어요."
도혁은 민재를 내려다봤다. 피범벅이 된 얼굴. 10년 전 USB 영상 속 그 얼굴.
'그럼 누가 죽였어.'
핸드폰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유진아, 거기서 움직이지 마."
"오빠, 나 지금 2층 사무실에 있어요. 여기... 여기 뭔가 있어요."
"뭐가?"
"금고요. 회장님 사무실에 있던 그 금고."
10년 전 아버지가 쓰던 금고. 사건 이후 사라졌던 그 금고.
"안 열어. 거기서 나와."
"비밀번호 알아요. 0-3-1-7."
도혁의 생일이었다.
철컥, 소리가 들렸다.
"헉."
유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오빠, 이거..."
"뭐가 있어?"
"사진이요. 회장님이랑... 황태식 사장님이랑... 그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누구?"
"우리 아빠."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뭐라고?"
"사진 뒷면에 글씨가 있어요. '1995년 3월, 백호파 창립 멤버'라고."
유진의 아버지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
# Part 3: 위기-클리프행어
"사진 뒷면에 글씨가 있어요. '1995년 3월, 백호파 창립 멤버'라고."
핸드폰을 쥔 손이 떨렸다.
유진의 아버지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에 치여서.
'교통사고.'
도혁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유진아, 거기서 나와."
"오빠, 사진이 한 장 더 있어요."
"나오라고!"
"이건... 이건 우리 아빠 장례식 날 찍은 거예요. 회장님이랑 황태식 사장님이 나란히 서 있어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근데 왜 둘 다 웃고 있어요?"
뒤에서 민재가 신음했다.
"도혁아... 유진이 데리고 나가..."
"닥쳐."
도혁은 민재를 내려다봤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서 눈동자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형은 알고 있었어?"
"뭘."
"유진이 아버지 일."
민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답이 없었다. 그게 대답이었다.
도혁은 민재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의자째로 들어 올려졌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입 닥치고 있었어?"
"증거가... 없었어..."
"씨발!"
민재를 벽에 던졌다. 의자가 벽에 부딪치며 부서졌다. 민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핸드폰에서 유진의 비명이 들렸다.
"오빠!"
"유진아, 괜찮아. 형만 좀 혼내주는 거야."
"아니요, 오빠. 누가... 누가 계단에서 올라오고 있어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몇 명?"
"한 명이요. 근데... 근데 총 들고 있어요."
도혁은 주위를 둘러봤다. 냉동창고 안에는 숨을 곳이 없었다. 출입구는 하나뿐이었다.
"유진아, 금고 안에 뭐 더 있어?"
"서류요. 회계 장부 같은데..."
"USB는?"
"...있어요."
"그거 들고 창문으로 나가."
"2층이에요!"
"뛰어내려. 다리 하나 부러지는 게 총 맞는 것보단 나아."
민재가 바닥에서 신음했다.
"도혁아... USB... 그거 보지 마..."
"왜?"
"네가 보면... 넌..."
목소리가 끊겼다.
도혁은 민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내가 뭐?"
"넌 황태식을 죽일 거야. 그럼 넌 끝이야."
"이미 끝났어. 아버지 죽인 새끼 찾는 순간."
민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아버지 죽인 건... 황태식이 아니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뭐?"
"USB 끝까지 들어봐. 총소리 나고 10초 후에... 네가 들어야 할 목소리가 나와."
핸드폰에서 유진의 비명이 들렸다.
"오빠! 문 열리고 있어요!"
도혁은 민재를 놓았다. 창고 문쪽으로 뛰어갔다. 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안 열렸다.
"씨발."
발로 걷어찼다. 철제 문이 흔들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유진아!"
핸드폰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구두 소리. 천천히, 규칙적으로.
그리고 목소리.
"유진아, 거기 있는 거 알아."
황태식이었다.
도혁은 문을 두드렸다.
"황태식! 유진이한테 손대지 마!"
웃음소리가 들렸다.
"도혁이? 너 지하에 있구나. 민재랑 둘이?"
"문 열어!"
"안 돼. 너희 둘이 나오면 내가 곤란해지거든."
"씨발 새끼야!"
도혁은 문을 발로 걷어찼다. 한 번, 두 번, 세 번. 문이 조금씩 휘어졌다.
핸드폰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저 그냥 갈게요. USB도 두고 갈게요."
"USB? 그거 이미 쓸모없어. 네가 금고 열어봤으면 알겠지만."
"...무슨 말씀이세요?"
"네 아버지 얘기 말이야."
정적.
도혁은 문 두드리는 걸 멈췄다.
"네 아버지가 돈 빼돌린 거 알고 있었어. 2억이 아니라 10억. 그래서 회장님한테 말하려고 했지."
유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근데 네 아버지가 먼저 나한테 왔어. 거래하자고. 자기가 회장 자리에서 도혁이 아버지 끌어내릴 테니까, 그 대신 돈 빼돌린 건 묻어달라고."
"거짓말..."
"거짓말? 금고 안에 녹음 파일 있을 텐데. 네 아버지 목소리로."
도혁은 민재를 돌아봤다. 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도혁아, 믿지 마. 황태식은 지금 유진이 흔들려는 거야."
핸드폰에서 황태식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래서 내가 네 아버지 브레이크를 끊었어. 10년 전 그날."
총소리.
유진의 비명.
도혁은 문을 발로 걷어찼다. 문이 휘어지며 틈이 생겼다.
"유진아!"
대답이 없었다.
"유진아!"
핸드폰에서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발소리. 구두 소리가 멀어졌다.
도혁은 문틈에 손을 넣어 잡아당겼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문이 조금씩 벌어졌다.
"도혁아."
뒤에서 민재의 목소리.
"USB."
"뭐?"
"내 주머니에 USB 있어. 그거 가져가."
도혁은 민재에게 달려가 주머니를 뒤졌다. USB가 나왔다.
"이게 뭔데?"
"10년 전 그날 밤... 진짜 녹음."
"왜 이제 말해?"
"네가 알면... 넌 미쳐버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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